대구 열차 추돌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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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경부선 무궁화호 추돌사고''' 혹은 '''경산역-고모역 열차 추돌사고'''라고도 한다.
1. 개요
2003년 8월 8일 대구광역시 수성구 사월동 경부선 철로(서울기점 337km)하행선에서 김천발 부산행 303호 무궁화호 열차[2] 가 정차중인 2661호 화물열차를 추돌하였다. 이 사고로 6세 남아 어린이와 34세 고등학교 영어 여교사가 사망하고 123명이 부상당하였다.(경상 40명)
사고소식 뉴스 동영상이다. 참고해보자
2. 발생 과정
2003년 8월 8일 경부선 경산역-고모역 구간은 경부고속철도 공사로 인해 신호기 교체공사가 진행중인 탓에 한시적으로(새벽 6시~오후 2시)무전을 통한 수동으로 열차가 통행되고 있었다. 오전 7시 고모역을 출발한 화물열차가 사고지점에서 신호기가 적색인것을 확인 정차하였다.
이 때 경산역에서는 "하행선은 통신식으로 운행한다. 신호를 무시하라"라고 하지만 화물열차 기관사는 "정상운행인데 어떻게 무시하는가?"하고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때 고모역에 들어온 무궁화호를 고모역에서 "천천히 출발하세요"라고 해서 시속 60km로 달리던중 화물열차를 발견 급정거를 했지만 추돌하게 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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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돌 직후 무궁화호는 탈선하지는 않았지만 기관차 바로 뒤에 달려있던 발전차가 바로뒤 객차와 충돌하면서 타오름 현상을 일으켜 객실 좌석3열까지 밀고 들어오게 되고 객차내 승객들은 그대로 밀리게 된다. 이 때문에 2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게 된다. 그나마 60km로 서행했고 탈선이 일어나지 않아 피해가 적은 정도 였다. 하지만...
3. 사고 원인
사고원인의 핵심은
1. 왜 화물열차가 정차해 있었는가?
2. 왜 고모역에서 무궁화호를 출발시켰는가?
이다.
부수적으로 무궁화호 기관사가 선로 구조상 100m 넘게 시야가 확보됨에도 불구하고 40m 남겨두고서야 정차를 시도했던 것도 원인조사가 들어가게 된다.
3.1. 2661호 화물열차의 정차이유
2661호 화물열차는 고모역을 출발할때 "하행선은 정상운행합니다. 통신식으로 운행하세요"라는 무전을 듣게 된다. 즉 "신호를 무시하고 정상으로 운행하라"라는 이야기임에도 화물열차는 도중에 적색신호를 보고 정차하게 된다.
이에 경산역에서 다시 "통신식이니 신호를 무시하고 바로 들어오세요"라고 무전을 하니 뜻밖에도 "정상운행인데 어떻게 신호를 무시하냐?"라는 대답이 들려오게 된다.
철도대학 교수에 의하면, 당시 무전으로는 목적어 없이 '정상으로 운행'하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기관사는 대용폐색방식이 아니라 '상용 폐색 방식을 사용하며' 정상으로 운행하라는 것으로 오인했고, 폐색신호기 앞에 정차한 것.
이전 버전에는 기관사가 대용폐색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대용폐색은 야간에 작업 등이 있을 때 상당히 자주 사용되는 방법이고 기관사 교육 및 양성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부분이 신호 및 폐색 부분인데 애초에 이 부분에 대한 개념이 없다면 기관사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3.2. 고모역은 왜 303호 무궁화호를 출발시켰는가?
경산역-고모역 구간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신호교체 공사구간이었다. 신호기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당구간을 운행은 하되 구간전체를 폐색구간으로 보고 반드시 1대씩 통행하도록 무전을 통해 폐색구간 확인을 해야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상대편 역에서 열차가 들어와야 이쪽에서도 출발시킬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고모역에서는 '''경산역에 화물열차가 도착했음을 확인하지도 않고 무궁화호를 출발 시켰다.''' 물론 고모역에서는 아무런 근거없이 출발시킨것은 아니고 부산지역사무소 지령으로부터 출발무전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경산역에 확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3.3. 303호 무궁화호의 전방주시 태만
무궁화호 기관사도 전방주시를 게을리한것으로 파악되었다.
해당구간은 선형상 150m 시야가 확보되어있었고 당시 안개가 끼어 있었지만 1km의 시야확보가 가능한 옅은 안개로 조사되었다.
즉, '''앞만 똑바로 보고 갔었더라면 화물열차를 보고 세우거나 추돌하더라도 훨씬 약한충격을 받을수 있었다.''' 적어도 2명의 생명은 지킬수가 있었던 것이다.
4. 사고 이후
사고 직후 119구조대가 투입되었지만 찌그러진 객차에서 승객을 구조하기엔 장비가 부족했다. 또한 현장 도로사정이 열악해 환자수송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철도청은 사고 후 동대구지역관리역장, 운전사령, 기관사 2명을 직위해제했다. 또한 경찰은 사고원인 조사후, 과실혐의가 있는 고모역장과 부산사무소사령, 기관사 2명과 신호기 교체공사도중 신호기를 끄지않아 화물열차 기관사의 혼란을 야기한 공사관계자등을 사법처리했다.
당시 발전차의 타오름현상에 대해 무궁화호 열차의 결함에도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타오름 현상을 방지하고자 충돌시 타오름방지 장치와 열차간 충돌흡수장치를 장착하던 시대이다. 그런 장치가 전무한데다가 객차에 결함이 있었던것으로 드러나 감사를 하기도 했다.
또한 사람이 타지 않는 발전차만 상대적으로 단단하여 객차를 부수게되는 현상을 수십년째 봐왔음에도 그대로 두어 이번에도 발전차가 객차를 부수어 승객을 죽였다. 참고로 사고난 객차는 당시 철도청에서 1999년부터 새로 도입하던 신형객차로 발전차가 객차와 기관차를 모두 덮쳐서 사태가 커진 '''구포참사가 1993년에 터지고도 이에 대한 대책을 만들지도 않으며, 철도청이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음을 보여주었다.''' 타오름현상을 막기 위한 장치는 2000년대 후반이 돼서야 전동차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사고를 당한 해당 객차(12585호)는 도입된지 5년도 되지 않았던 연식과[3] 는 별개로 모두 대전조차장에 유치되어 있다가 이후 2000년대 중반에 고철로 분해된 것으로 보인다.
5. 이야깃거리
- 이번에 사고난 지역은 경산 열차 추돌사고에서 불과 1km떨어진 곳이다.
- 대구광역시는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은지 얼마되지 않아 또 다시 열차사고가 발생해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10년 뒤 대구에서는 열차 사고가 또 일어난다.
[1] 부산발 서울행, 수색입고후 225열차로 다시 부산에 내려간후 304열차로 김천까지 운행한후 다시 303열차로 김천에서 부산행을 운행하는 방식으로 로테가 돌아갔다.[2] 지금은 없어진 계통이다. 97년 7월경 대구발 열차가 김천으로 연장되면서 생긴 계통. 당시 열차번호는 193이었고, 99년경 303으로 변경 되었다. 여담으로 본래는 봉고견인열차이다. 이날 사고여파로 당시 실질적인 복편인 224열차[1] 가 객차 5량으로 운행하였다고 한다. 당연히 카오스는 덤. 224열차도 봉고견인이었다.[3] 2001년에 디자인리미트에서 도입된 신차에 가까운 객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