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역
顧母驛 / Gomo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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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로 208에 위치한 경부선 철도역
1925년 영업을 시작해서 1931년 보통역으로 승격했으나 1949년 11월 화재가 발생했던 흑역사가 있다. 그 이후 잠시 소화물차를 대신 쓰다가 1957년에 현재 역사를 만들었다. 그러다 2004년 7월 15일부로 '''여객영업 중지''' 크리를 먹었다.
원래 구내는 경부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로 지극히 일반적인 구조였으나, 2005년 11월 대구선 이설과 함께 가천역이 생기고 KTX를 위한 선로 개량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자 지금처럼 다소 괴상한 형태로 바뀌었다. 본래 동대구에서 고모역까지는 상하행선이 나란히 달렸고, 현재 선로 바로 밑에 있는 도로 쪽으로 약간 더 휘어 있었으며 건널목이 존재했다. 기존 경부선 하행선은 대구선이 되고 기존 경부선 상행선이 하행이 되었으며 새로운 경부선 상행선을 직선으로 신설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경부 하행선과 상행선이 멀어지게 되고, 지금과 같은 구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연결되지 않지만, '''설치되어 있는 선로와 나란히 경부고속선이 놓여 있다.'''[1]
범안로 고가도로에서도 보이는 고모역 육교는 2003년 8억 9천만원을 들여 대구광역시에서 설치했으나 '''바로 다음해인''' 2004년 여객 취급이 중단된 이후에는 재정 낭비라고 '''까이고 있다'''. 참고로 고모역 육교를 만든 이유는 주변 철로도 많고, 옆의 도로도 넓기 때문이다. 즉 역은 콩알만한데...철로와 도로가 대문짝만하게 넓다는 이야기다. 2006년 11월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됐다. [2] 화물취급 중지 관련 뉴스
2014년부터 역사를 '고모역 가요박물관'이라는 향토문화 전시관으로 활용하자는 계획이 추진되면서 2018년 복합문화공간이 조성되었다. 이에 따라 역사 내부와 광장 등 일부 구역이 시민들에게 개방되었으며 고모령과 대구 지역 철도 역사 연표를 관람할 수 있다. 대구권 철도역사마다 시를 남긴 박해수 시인의 시비가 여기에도 있다.관련 기사 다만 남아 있었을 법한 기차역 시절 흔적을 모두 없애버려서 아쉬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역사 옆 관련 건물은 아직까지 폐쇄상태이니 들어가면 처벌받는다. 우측 사무실과 창고는 여전히 철도 관련 업무가 진행되는 곳이니 들어가지 말자. 2017년 코레일 철도노선도에서는 역 표시는 있으나 역명이 없었고 2019년 6월 1일에 나온 코레일 철도노선도에서 역명이 추가되었지만 다른 역과 달리 '고모역 331.8'이라고 '역'과 함께 등재되어 있다.
대구권 광역철도 계획에도 빠져 있는 역이라, 여객 영업은 재개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주변 인구가 너무 적어서[3] 기대할 만한 여객 수요가 없기 때문.
그런데, 다시는 기차가 다시 설 가능성이 생겼다. 2023년에 실시할 예정이었던 대구권 광역철도 역 신설 연구용역을 원대역을 포함한 역 신설 요구 증가로 2021년 안에 진행하기로 한 것. 진행되는 역에 고모역과 화물역인 가천역이 포함이 되어있다. 타당성이 인정되면 2023년 이후 실행될 2단계에 역 신설을 포함하겠다는 것. 다만 “고모 또는 가천역은 경산·시지지구 인구가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인근 연호지구도 개발에 들어감에 따라 광역철도 역사 신설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모역과 가천역은 시지지구와 좀 떨어져 있다. 타당성 인정이 되려면 시지지구, 수성알파시티, 연호지구에서 고모역과 가천역 방면으로 버스 연계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고모역과 가천역과 근접한 곳으로는 군부대 존재로 앞으로도 개발 계획이 없어서 버스 연계가 되지 않으면 타당성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관련 기사 더불어 고모, 가천역에서 안심과 거리도 멀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시지<->안심 간 도로교통 확충 및 광역철도와 환승이 되도록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모(顧母)라는 역명을 한자로 풀어쓰면 '''어머니가 돌아본다''' 라는 뜻이 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출처: 문화원형백과
첫째는 옛날에 역 위치 근처에 살던 홀어머니와 어린 남매 이야기다. 지나가던 스님이 이들을 보고 전생에 덕을 쌓지 못하여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 하자 이에 가족이 모두 덕을 쌓고자 산을 쌓은 게 근처에 있는 모봉과 형봉, 제봉이다.[4] 이 때 두 남매가 산을 쌓으면서 덕을 쌓기는 커녕 오히려 서로 더 높이 쌓겠다고 다투고 시샘하자 이를 본 어머니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마음과 실망감에 집을 나왔다. 그렇게 걷던 어머니가 언덕 위에 올라서서 집을 향해 뒤돌아본 그 곳이 바로 고모령이다.
둘째는 일제강점기 때 이 역을 통해 강제징용으로 끌려가던 아들을 어머니가 배웅하며 다시 돌아보았다는 데서 기원한다. 당시에 증기기관차가 고모령을 지나가는 데에 큰 어려움이 많아서 천천히 다녔는데 이때 징병가는 아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에 관하여 현인이 부른 비내리는 고모령이라는 유명한 옛날 노래[5] 가 있고[6] , 또한 6.25 전쟁 당시에는 상시적으로 부상병을 호송하던 병원열차가 정차했다고 하니... 여러모로 사연많은 역이다.
다음은 해당 곡 가사 전문.
다만 이 곡의 가수 현인도 3절까지 다 부르진 않았고 적당히 가사를 바꿔 2절로 축약한 것을 불렀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부를 때는 현인이 압축한 가사로 부른다. 압축된 가사 전문은 여기 참조.
이 노래를 기리기 위한 시비가 이 역에 세워져 있다. 다음은 해당 시의 전문이다.
대형 철도 사고 두 건이 주변에서 일어났다. 하나는 경산 열차 추돌사고, 다른 하나는 대구 열차 추돌사고. 두 사건 지명이 서로 다르나 이는 사고 당시 행정구역 명칭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고[8] 실제로 두 사건이 일어난 지점은 1km 정도에 불과하다. 또, 1991년 9월 27일에는 한국일보 김문호 기자가 주변에 있는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비"를 취재하려다 안타깝게도 열차에 치여 순직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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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로 208에 위치한 경부선 철도역
2. 상세
1925년 영업을 시작해서 1931년 보통역으로 승격했으나 1949년 11월 화재가 발생했던 흑역사가 있다. 그 이후 잠시 소화물차를 대신 쓰다가 1957년에 현재 역사를 만들었다. 그러다 2004년 7월 15일부로 '''여객영업 중지''' 크리를 먹었다.
원래 구내는 경부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로 지극히 일반적인 구조였으나, 2005년 11월 대구선 이설과 함께 가천역이 생기고 KTX를 위한 선로 개량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자 지금처럼 다소 괴상한 형태로 바뀌었다. 본래 동대구에서 고모역까지는 상하행선이 나란히 달렸고, 현재 선로 바로 밑에 있는 도로 쪽으로 약간 더 휘어 있었으며 건널목이 존재했다. 기존 경부선 하행선은 대구선이 되고 기존 경부선 상행선이 하행이 되었으며 새로운 경부선 상행선을 직선으로 신설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경부 하행선과 상행선이 멀어지게 되고, 지금과 같은 구조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연결되지 않지만, '''설치되어 있는 선로와 나란히 경부고속선이 놓여 있다.'''[1]
범안로 고가도로에서도 보이는 고모역 육교는 2003년 8억 9천만원을 들여 대구광역시에서 설치했으나 '''바로 다음해인''' 2004년 여객 취급이 중단된 이후에는 재정 낭비라고 '''까이고 있다'''. 참고로 고모역 육교를 만든 이유는 주변 철로도 많고, 옆의 도로도 넓기 때문이다. 즉 역은 콩알만한데...철로와 도로가 대문짝만하게 넓다는 이야기다. 2006년 11월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됐다. [2] 화물취급 중지 관련 뉴스
2014년부터 역사를 '고모역 가요박물관'이라는 향토문화 전시관으로 활용하자는 계획이 추진되면서 2018년 복합문화공간이 조성되었다. 이에 따라 역사 내부와 광장 등 일부 구역이 시민들에게 개방되었으며 고모령과 대구 지역 철도 역사 연표를 관람할 수 있다. 대구권 철도역사마다 시를 남긴 박해수 시인의 시비가 여기에도 있다.관련 기사 다만 남아 있었을 법한 기차역 시절 흔적을 모두 없애버려서 아쉬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역사 옆 관련 건물은 아직까지 폐쇄상태이니 들어가면 처벌받는다. 우측 사무실과 창고는 여전히 철도 관련 업무가 진행되는 곳이니 들어가지 말자. 2017년 코레일 철도노선도에서는 역 표시는 있으나 역명이 없었고 2019년 6월 1일에 나온 코레일 철도노선도에서 역명이 추가되었지만 다른 역과 달리 '고모역 331.8'이라고 '역'과 함께 등재되어 있다.
2.1. 대구권 광역철도 추가 정차 요구
대구권 광역철도 계획에도 빠져 있는 역이라, 여객 영업은 재개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주변 인구가 너무 적어서[3] 기대할 만한 여객 수요가 없기 때문.
그런데, 다시는 기차가 다시 설 가능성이 생겼다. 2023년에 실시할 예정이었던 대구권 광역철도 역 신설 연구용역을 원대역을 포함한 역 신설 요구 증가로 2021년 안에 진행하기로 한 것. 진행되는 역에 고모역과 화물역인 가천역이 포함이 되어있다. 타당성이 인정되면 2023년 이후 실행될 2단계에 역 신설을 포함하겠다는 것. 다만 “고모 또는 가천역은 경산·시지지구 인구가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인근 연호지구도 개발에 들어감에 따라 광역철도 역사 신설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다” 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모역과 가천역은 시지지구와 좀 떨어져 있다. 타당성 인정이 되려면 시지지구, 수성알파시티, 연호지구에서 고모역과 가천역 방면으로 버스 연계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고모역과 가천역과 근접한 곳으로는 군부대 존재로 앞으로도 개발 계획이 없어서 버스 연계가 되지 않으면 타당성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 관련 기사 더불어 고모, 가천역에서 안심과 거리도 멀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시지<->안심 간 도로교통 확충 및 광역철도와 환승이 되도록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3. 승강장
4. 역명
고모(顧母)라는 역명을 한자로 풀어쓰면 '''어머니가 돌아본다''' 라는 뜻이 되는데 이에 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출처: 문화원형백과
첫째는 옛날에 역 위치 근처에 살던 홀어머니와 어린 남매 이야기다. 지나가던 스님이 이들을 보고 전생에 덕을 쌓지 못하여 가난하게 사는 것이라 하자 이에 가족이 모두 덕을 쌓고자 산을 쌓은 게 근처에 있는 모봉과 형봉, 제봉이다.[4] 이 때 두 남매가 산을 쌓으면서 덕을 쌓기는 커녕 오히려 서로 더 높이 쌓겠다고 다투고 시샘하자 이를 본 어머니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마음과 실망감에 집을 나왔다. 그렇게 걷던 어머니가 언덕 위에 올라서서 집을 향해 뒤돌아본 그 곳이 바로 고모령이다.
둘째는 일제강점기 때 이 역을 통해 강제징용으로 끌려가던 아들을 어머니가 배웅하며 다시 돌아보았다는 데서 기원한다. 당시에 증기기관차가 고모령을 지나가는 데에 큰 어려움이 많아서 천천히 다녔는데 이때 징병가는 아들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에 관하여 현인이 부른 비내리는 고모령이라는 유명한 옛날 노래[5] 가 있고[6] , 또한 6.25 전쟁 당시에는 상시적으로 부상병을 호송하던 병원열차가 정차했다고 하니... 여러모로 사연많은 역이다.
다음은 해당 곡 가사 전문.
다만 이 곡의 가수 현인도 3절까지 다 부르진 않았고 적당히 가사를 바꿔 2절로 축약한 것을 불렀기 때문에 대부분의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부를 때는 현인이 압축한 가사로 부른다. 압축된 가사 전문은 여기 참조.
이 노래를 기리기 위한 시비가 이 역에 세워져 있다. 다음은 해당 시의 전문이다.
5. 사건·사고
대형 철도 사고 두 건이 주변에서 일어났다. 하나는 경산 열차 추돌사고, 다른 하나는 대구 열차 추돌사고. 두 사건 지명이 서로 다르나 이는 사고 당시 행정구역 명칭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고[8] 실제로 두 사건이 일어난 지점은 1km 정도에 불과하다. 또, 1991년 9월 27일에는 한국일보 김문호 기자가 주변에 있는 "비내리는 고모령 노래비"를 취재하려다 안타깝게도 열차에 치여 순직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1] 경춘선 전동열차 중 망우선으로 들어오는 열차가 석계역에 정차하거나 석계역 승강장으로 통과하지 못하는 것과 똑같다.[2] 네이버 지도에서는 폐역으로 나오지만, 아직 폐역으로 처리되지 않고 있다.[3] 마을이 있고 주변에는 녹지가 많지만 전부 그린벨트에 군부대까지 존재한다. 그나마 이 근처에서 개발한다는 곳이 한참 남쪽에 있는 연호역 일대다.[4] 현재도 남아 있는 지명이며 동대구역에서 고모역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오른편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네이버 지도 링크[5] 말이 그렇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발표된 곡이다.[6] 가사가 일제징용과 관련된다.[7] 당시에는 '울었오'가 옳은 표기였다.[8] 해당 지역은 경산 열차 추돌 사고 당시인 1981년에는 경산군 고산면이었고 대구 열차 추돌사고 당시인 2003년에는 대구광역시 수성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