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경소녀
對東京少女
공식 홈페이지
모닝구 무스메로 유명한 일본의 연예 기획사 업프론트 프로모션과 엠넷에서 합작한 여성 아이돌 오디션 및 그 오디션의 개최 상황을 편집하여 엠넷에서 방영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2009년 5월 22일부터 동년 7월 10일까지 방영되었다.
방송 진행은 2PM의 준호와 찬성이 맡았다.
2,500여 명의 청소년들이 오디션에 지원, 최종 심사를 통과한 15명 가운데 장다연이 오디션에 합격하여 헬로! 프로젝트 연수생으로 들어갔다. 합격자는 2009년 개최된 베리즈코보의 내한 콘서트 자리에서 발표되었다. 장다연은 이후 약 4년 간 헬로! 프로젝트 연수생으로서 백댄서 등의 활동을 하였으나 정식 데뷔는 하지 못하였다.
2000년대 후반 들어서 헬로! 프로젝트에서는 한국,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지역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시작은 2007년 모닝구 무스메 10주년을 기념해서 결성된 유닛 '모닝구 무스메 탄생 10년 기념대'였다. 이 유닛은 뜬금 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MY ASIA'라는 곡을 발표하였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아시아권을 공략한 활동을 시작했다. 모닝구 무스메에 중국인 멤버인 쥰쥰, 링링을 특별채용하였다. 대만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진출해서, '헬로! 프로젝트 대만'이라는 서브 레이블을 세워서 활동했다. 대만에서 대동경소녀와 비슷한 방식으로 '早安家族New Star'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개최, 여기에서 뽑힌 멤버들로 아이스크림 무스메, 대소저(프란시스 & 아이코) 등의 그룹을 데뷔시켰다.
한국에서도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다. 2007년, 모닝구 무스메의 컴필레이션 음반인 <モーニング娘。ALL SINGLES COMPLETE ~10th ANNIVERSARY~>을 정식으로 발매하였다. 이 때 다카하시 아이, 니이가키 리사, 쿠스미 코하루 등 대표 멤버 세 명이 참가하는 악수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 악수회에는 1,600여 명의 팬이 참가하였다.
하지만 하로프로의 적극적인 아시아 진출은 실패로 끝났다. 대만에서 데뷔시켰던 아이스크림 무스메, 대소저는 인기를 얻지 못하고 얼마 못 가 해산하였다. 모닝구 무스메의 중국인 유학생 쥰쥰, 링링은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백댄서 역할만 하다가 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실시한 대동경소녀 오디션 역시 하로프로의 열악한 환경과 참가자들의 자질 부족 등으로 인해 초라한 오디션이 되고 말았고, 합격자인 장다연은 데뷔를 포기하고 하로프로 연수생을 탈퇴함으로써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방송 진행은 2PM의 찬성, 준호가 맡았다.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이유에서 MC로 캐스팅되었고 잘 생기긴 했으나(…), 2PM도 당시 메이저 데뷔 1년 밖에 안 된 신인이라 방송물이 많이 안 먹어서 그런 건지 진행이 매끄럽지가 않았다. 이걸 꼭 둘에게만 뭐라 할 수도 없는데, 참가자들끼리 연출도 아닌 실제 상황에서 막말이 나오는데, 거기서 방송 경험도 적은 신인이 뭘 할 수 있겠는가(…).
이트라이브의 ED, 가수이자 보이스 트레이너인 솔플라워, 댄스 트레이너 정성욱 등이 초기 트레이닝과 심사를 맡았는데 일본 아이돌 업계에 대해서 밝은 이들은 아니다 보니 프로그램의 목적과는 생뚱맞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었다.
팀 미션 편집 과정에서 참가자들 사이의 싸움과 막말을 여과없이 보냈는데, 자칫하면 이미지가 나빠질 수도 있는 편집으로 인해 논란이 많았다. 롤링 페이퍼를 적으랬더니 '얼굴이 별로면 말이라도 곱게 해' 같은 폭언을 적질 않나, 카메라 앞에서 대놓고 다른 멤버의 흉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 이건 참가자들도 문제지만 편집도 문제인데, 남의 치부를 이렇게 전국적으로, 그것도 반영구적으로 남는 형태의 매체로 내보낸 걸 보면 PD의 악취미가 심하다.
첫 평가 중에 다른 참가자의 춤을 보고 웃는다든가 미션 중에도 웃는 등 실력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태도도, MC인 황찬성이 대놓고 '참가자들이 프로그램을 가볍게 생각한다'고 지적할 정도로 심각했다.
오디션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지원자들의 역량이 수준 이하였던 점이었다. 심지어 음정과 박자조차 못 맞추는 참가자도 있었다. 물론 하로프로는 댄스나 보컬 미경험자를 위주로 뽑았었고 기존 하로프로 오디션 합숙훈련에 참가한 지원자들과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아이돌 지원자들과 특별히 차이가 없는 수준이라면 굳이 한국까지 와서 뽑을 이유가 없다.
합격자인 장다연은, 어차피 다른 참가자들도 실력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층쿠도 실력은 포기하고 외모와 캐릭터만 보고 뽑은 것 같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일본어로 노래 한 곡 못 외우는 상황 속에서 결국 데뷔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왔다. 마지막 기회였던 스마이레이지 2기 오디션에서 과제곡인 <有頂天LOVE>의 가사를 못 외울 정도였으니 일본 아이돌은 힘들었을 것이다.
2009년 당시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등 한국 여성 아이돌이 한국과 아시아권에서 전성기를 맞던 시기였고, 일본에도 한국 아이돌이 본격적으로 인지도를 얻기 시작하던[2] 일본에서느 한류의 전성기였다. 반면 당시 일본 여성 아이돌 시장은 2003년 모닝구 무스메가 몰락한 이후 2010년 AKB48이 성공하기까지 7년간 빙하기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아이돌로 데뷔를 해봐야 그다지 메리트가 없었다. 한국에서 아이돌이 되고자 하는 여자 청소년들이 미래가 창창한 한국 기획사를 놔두고 오타쿠를 대상으로 한 장사에 머물고 있는 일본 기획사의 문을 두드릴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력 있는 아이돌 지망생들은 이 오디션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것이다.
슈퍼스타K 시즌 1 방영 전에 개최되고 방영된 오디션인데, 기획과 접수는 슈퍼스타K 시즌 1과 대동경소녀가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엠넷에서는 슈퍼스타K는 엠넷 방송을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한 반면 대동경소녀는 홍보를 많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두 오디션은 규모부터가 달랐기 때문에 이미 성패는 결정된 상태라고 봐도 무방했다. 슈퍼스타K는 상금 1억원에 음반 발매가 확정되는 등 특전이 매우 화려했지만, 대동경소녀는 우승해봐야 상금도 없고 일본에 가서도 바로 데뷔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연수생부터 시작해야 하는 매우 나쁜 조건이었다. 그래서 슈퍼스타K는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았지만, 대동경소녀는 기존의 헬로! 프로젝트 팬덤 사이에서만 관심을 받았다.
공식 홈페이지
1. 개요
모닝구 무스메로 유명한 일본의 연예 기획사 업프론트 프로모션과 엠넷에서 합작한 여성 아이돌 오디션 및 그 오디션의 개최 상황을 편집하여 엠넷에서 방영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2009년 5월 22일부터 동년 7월 10일까지 방영되었다.
방송 진행은 2PM의 준호와 찬성이 맡았다.
2,500여 명의 청소년들이 오디션에 지원, 최종 심사를 통과한 15명 가운데 장다연이 오디션에 합격하여 헬로! 프로젝트 연수생으로 들어갔다. 합격자는 2009년 개최된 베리즈코보의 내한 콘서트 자리에서 발표되었다. 장다연은 이후 약 4년 간 헬로! 프로젝트 연수생으로서 백댄서 등의 활동을 하였으나 정식 데뷔는 하지 못하였다.
2. 배경
2000년대 후반 들어서 헬로! 프로젝트에서는 한국, 중국, 대만 등 아시아 지역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시작은 2007년 모닝구 무스메 10주년을 기념해서 결성된 유닛 '모닝구 무스메 탄생 10년 기념대'였다. 이 유닛은 뜬금 없이 '우리가 살아가는 MY ASIA'라는 곡을 발표하였다.
그 이후 본격적으로 아시아권을 공략한 활동을 시작했다. 모닝구 무스메에 중국인 멤버인 쥰쥰, 링링을 특별채용하였다. 대만에는 보다 직접적으로 진출해서, '헬로! 프로젝트 대만'이라는 서브 레이블을 세워서 활동했다. 대만에서 대동경소녀와 비슷한 방식으로 '早安家族New Star'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개최, 여기에서 뽑힌 멤버들로 아이스크림 무스메, 대소저(프란시스 & 아이코) 등의 그룹을 데뷔시켰다.
한국에서도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다. 2007년, 모닝구 무스메의 컴필레이션 음반인 <モーニング娘。ALL SINGLES COMPLETE ~10th ANNIVERSARY~>을 정식으로 발매하였다. 이 때 다카하시 아이, 니이가키 리사, 쿠스미 코하루 등 대표 멤버 세 명이 참가하는 악수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 악수회에는 1,600여 명의 팬이 참가하였다.
하지만 하로프로의 적극적인 아시아 진출은 실패로 끝났다. 대만에서 데뷔시켰던 아이스크림 무스메, 대소저는 인기를 얻지 못하고 얼마 못 가 해산하였다. 모닝구 무스메의 중국인 유학생 쥰쥰, 링링은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백댄서 역할만 하다가 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 실시한 대동경소녀 오디션 역시 하로프로의 열악한 환경과 참가자들의 자질 부족 등으로 인해 초라한 오디션이 되고 말았고, 합격자인 장다연은 데뷔를 포기하고 하로프로 연수생을 탈퇴함으로써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3. 방영 내역
- 1화(05/22): 최종 진출자 15명 결정, 모닝구 무스메 내한, 기초 실력 테스트
- 2화(05/29): 녹음실에서 보이스 레슨, 야지마 마이미&우메다 에리카 내한, 1차 팀별 발표회(<사쿠라치라리> 미션)
- 3화(06/05): 1차 탈락자(10명 생존), 콘셉트 미션 준비, 찬성&준호와의 사연 토크, 최면을 통한 자신감 회복(…), 2차 팀별 발표회(콘셉트 미션), 2차 탈락자(7명 생존)
- 4화(06/12): 오디션 추가 멤버 3명, 안무/가창 미션 준비, 1박 2일 펜션 여행(소녀 골든벨&롤링페이퍼),
- 5화(06/19): 안무/가창 미션, 3차 탈락자(9명 생존 및 1명 부활), 일본으로 출국, 하로프로 트레이닝(YOSHIKO&스가이[1] ), 하로프로곡 미션(<3, 2, 1, Breakin' Out!!>&<비가 내리지 않는 별에서는~>)
- 6화(06/25): 2일차 트레이닝, 하라주쿠 의상 구입 미션, 스타일링, 모닝구 무스메(니이가키, 쿠스미, 준준, 링링) 응원 메세지, 큐트 트레이닝장 방문, 일본 발표회
- 7화(07/03): 4차 탈락자(8명 생존), 콘서트 미션, 엠카운트다운 무대 출연, 베리즈 콘서트 출연 전날
- 8화(07/10): 베리즈코보와 대면, 베리즈코보 리허설 관람, 콘서트 무대 피로, 최종 발표(장다연 합격)
4. 실패 원인
방송 진행은 2PM의 찬성, 준호가 맡았다. 같은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이유에서 MC로 캐스팅되었고 잘 생기긴 했으나(…), 2PM도 당시 메이저 데뷔 1년 밖에 안 된 신인이라 방송물이 많이 안 먹어서 그런 건지 진행이 매끄럽지가 않았다. 이걸 꼭 둘에게만 뭐라 할 수도 없는데, 참가자들끼리 연출도 아닌 실제 상황에서 막말이 나오는데, 거기서 방송 경험도 적은 신인이 뭘 할 수 있겠는가(…).
이트라이브의 ED, 가수이자 보이스 트레이너인 솔플라워, 댄스 트레이너 정성욱 등이 초기 트레이닝과 심사를 맡았는데 일본 아이돌 업계에 대해서 밝은 이들은 아니다 보니 프로그램의 목적과는 생뚱맞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있었다.
팀 미션 편집 과정에서 참가자들 사이의 싸움과 막말을 여과없이 보냈는데, 자칫하면 이미지가 나빠질 수도 있는 편집으로 인해 논란이 많았다. 롤링 페이퍼를 적으랬더니 '얼굴이 별로면 말이라도 곱게 해' 같은 폭언을 적질 않나, 카메라 앞에서 대놓고 다른 멤버의 흉을 보는 경우도 있었다. 이건 참가자들도 문제지만 편집도 문제인데, 남의 치부를 이렇게 전국적으로, 그것도 반영구적으로 남는 형태의 매체로 내보낸 걸 보면 PD의 악취미가 심하다.
첫 평가 중에 다른 참가자의 춤을 보고 웃는다든가 미션 중에도 웃는 등 실력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의 태도도, MC인 황찬성이 대놓고 '참가자들이 프로그램을 가볍게 생각한다'고 지적할 정도로 심각했다.
4.1. 참가자들의 역량 부족
오디션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지원자들의 역량이 수준 이하였던 점이었다. 심지어 음정과 박자조차 못 맞추는 참가자도 있었다. 물론 하로프로는 댄스나 보컬 미경험자를 위주로 뽑았었고 기존 하로프로 오디션 합숙훈련에 참가한 지원자들과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아이돌 지원자들과 특별히 차이가 없는 수준이라면 굳이 한국까지 와서 뽑을 이유가 없다.
합격자인 장다연은, 어차피 다른 참가자들도 실력이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에 층쿠도 실력은 포기하고 외모와 캐릭터만 보고 뽑은 것 같다. 그러나 1년이 넘도록 일본어로 노래 한 곡 못 외우는 상황 속에서 결국 데뷔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왔다. 마지막 기회였던 스마이레이지 2기 오디션에서 과제곡인 <有頂天LOVE>의 가사를 못 외울 정도였으니 일본 아이돌은 힘들었을 것이다.
4.2. 당시 한일 연예계의 상황
2009년 당시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등 한국 여성 아이돌이 한국과 아시아권에서 전성기를 맞던 시기였고, 일본에도 한국 아이돌이 본격적으로 인지도를 얻기 시작하던[2] 일본에서느 한류의 전성기였다. 반면 당시 일본 여성 아이돌 시장은 2003년 모닝구 무스메가 몰락한 이후 2010년 AKB48이 성공하기까지 7년간 빙하기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아이돌로 데뷔를 해봐야 그다지 메리트가 없었다. 한국에서 아이돌이 되고자 하는 여자 청소년들이 미래가 창창한 한국 기획사를 놔두고 오타쿠를 대상으로 한 장사에 머물고 있는 일본 기획사의 문을 두드릴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실력 있는 아이돌 지망생들은 이 오디션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것이다.
4.3. 홍보 부족
슈퍼스타K 시즌 1 방영 전에 개최되고 방영된 오디션인데, 기획과 접수는 슈퍼스타K 시즌 1과 대동경소녀가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엠넷에서는 슈퍼스타K는 엠넷 방송을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한 반면 대동경소녀는 홍보를 많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애초에 두 오디션은 규모부터가 달랐기 때문에 이미 성패는 결정된 상태라고 봐도 무방했다. 슈퍼스타K는 상금 1억원에 음반 발매가 확정되는 등 특전이 매우 화려했지만, 대동경소녀는 우승해봐야 상금도 없고 일본에 가서도 바로 데뷔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연수생부터 시작해야 하는 매우 나쁜 조건이었다. 그래서 슈퍼스타K는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았지만, 대동경소녀는 기존의 헬로! 프로젝트 팬덤 사이에서만 관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