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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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대한민국의 사적''' '''제341호'''
'''김해 대성동 고분군'''
金海 大成洞 古墳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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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경상남도 김해시 대성동 418-2번지 외 24필지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면적'''
56\,762㎡
'''지정연도'''
1991년 1월 9일
'''제작시기'''
금관가야시대
'''위치'''


1. 개요
2. 상세
3. 조사내용
4. 교통
5. 바깥고리
6. 사적 제341호


1. 개요



경상남도 김해시 대성동에 소재하는 금관가야/금관국의 고분군. 사적 제341호.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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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동 고분군의 항공 전경
김해시의 중심지에 위치한 구릉의 위에 고분군이 형성되었고, 주변으로 구지봉김해 회현리 패총, 분산성, 그리고 금관가야의 궁성인 봉황토성 및 생활유적이 자리잡았다.
대성동 고분군이 있는 언덕의 옛 명칭이자 별칭인 애구지는 작은 구지봉 내지는 제2의 구지봉이라는 뜻이다. 문헌기록에서 금관가야의 성지로 나타나는 구지봉과 연관시킨다는 점에서 과거부터 이 언덕이 어떤 의미가 있는 곳으로 신성시되었고 그 전승이 이어져왔음을 알 수 있다. 구지봉과는 약 600 m 떨어졌다.

3. 조사내용


대성동 고분군은 1990년부터 2014년까지 총 9차례 발굴조사가 있었다. 확인된 무덤은 총 304기로 고인돌, 독무덤, 널무덤, 덧널무덤, 구덩식돌덧널무덤, 돌방무덤 등 여러 시대 형식이 동시에 나왔다. 가야권 고분군치고도 초창기 무덤이 아주 잘 보존된 경우이다.
다소 독특한 것은 봉분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지금의 애꼬지(=애구지)라고 불리는 능선에만 중첩되어서 왕릉급 무덤이 연속적으로 축조되었다. 능선의 중심으로는 왕릉급 대형묘들이 있고 그 주변으로 능선의 사면 옆으로 위계가 낮은 고분들이 분포한다.
주로 구덩식덧널무덤 같은 대형무덤은 구릉 능선부의 좋은 자리에 위치한 반면 중소형무덤들은 구릉의 사면과 주변 평지에 있어 지배계층의 묘역과 피지배계층의 묘역이 분리되고 있다. 지배계층의 초대형 덧널무덤은 모두 순장이 확인되는데, 고령 대가야처럼 수십 명씩 묻은 대규모는 아니고 몇 명 같이 묻은 정도. 보통 도굴꾼은 값진 부장품을 노리므로 메인 덧널만 털고 가느라 현대 발굴로는 오히려 순장자 덧널에서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순장유골들을 조사해 본 결과 평균키는 남성 155.7 cm, 여성 150.8 cm였다고 한다.
광개토대왕이 남정한 서기 400년으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시점부터 초대형급 무덤과 별도의 딸린덧널이 더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최대규모가 줄어든다. 부장품도 전성기의 금동제장식마구와 왜계 위세품이 더이상 부장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무렵부터 금관가야가 쇠퇴했다고 추정한다. 부산대 학파는 광개토대왕의 남정이 직접적 계기가 되어 쇠퇴한 게 아니라, 전성기가 조금 더 갔다고 주장한다.
  • 대성동 88호분
일본계 위세품인 바람개비 모양 청동기[1] 13점이 출토되어 당시 김해와 일본의 교류상황을 보여준다. 순장자 유골 3구가 나왔는데 노년 여성 1명, 젊은 남녀 각 1명으로 얼굴과 가슴에서 화살촉이 발견되었다. 형태상 모두 생매장이 아니라 죽은 뒤에 안치한 듯하다.
  • 대성동 1호분
5세기 초 무덤으로 금관가야 전성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초대형 덧널무덤이다. 유물은 극심한 도굴 때문에 일부만 남았고 순장자 5구가 확인되었다. 가야에서 화폐로 쓰였던 덩이쇠를 가득 깔아놓았다.
가야 무덤 중에서 최초로 발견된 도굴되지 않은 무덤이다. 온갖 부장품이 들어 있어 가야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4. 교통



5. 바깥고리



6. 사적 제341호


국립김해박물관과 김해 수로왕릉 사이의 동서로 뻗은 구릉지대에 있는 가야의 무덤들이다. 길이 약 300m, 높이 20m정도의 구릉 지대로, 경사가 완만해 무덤이 있기에 매우 적합하다. 고분군에 인접하여 고분 박물관이 건립되어 있다.

발굴조사 결과 1∼5세기에 걸친 지배집단의 무덤 자리로 고인돌을 비롯하여 널무덤(토광묘), 덧널무덤(토광목곽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 등 가야의 여러 형식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구릉 주변 평지에는 1∼3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고, 구릉 정상부에는 4∼5세기 무덤이 밀집되어 있어, 삼한시대 구야국 단계에서 금관가야 시기까지의 무덤이 발견되고 있다.

덧널무덤은 나무판을 조립하여 널(관)을 만든 것으로, 이전에 통나무관을 이용하던 것에서 나무판널을 사용하는 시기로의 전환이 1세기경임을 보여준다. 유물로는 토기류와 철기류, 목류, 중국제 거울 등이 출토되었다.

우리나라 고대무덤 형식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며, 중국제 거울이나 토기류에서 한·중·일의 문화교류 상황을 밝혀주고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1] 파형동기(巴形銅器)라고 한다. 88호분에서 13점, 13호분에서 6점, 2호분에서 1점, 23호분에서 2점이 출토되었으며 한국에서는 대성동 고분군 이외에서 출토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