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성

 

[image] '''대한민국의 사적'''
65호

'''66호'''

67호
창녕 목마산성
'''김해 분산성'''
함안 성산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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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대한민국의 사적''' '''제66호'''
'''김해 분산성'''
金海 盆山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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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로405번안길 210-162 (어방동)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면적'''
53,191㎡
'''지정연도'''
1963년 1월 21일
'''제작시기'''
가야, 삼국시대
'''위치'''


1. 개요
2. 역사
3. 바깥고리
4. 사적 제66호


1. 개요


盆山城. 경상남도 김해시 어방동에 있는 2.63km 규모의 가야시대의 산성. 사적 제66호로 지정되어 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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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분산성 항공사진
성은 삼국시대 금관국 시대에 처음 지어졌고 고려 후기 김해부사 박위가 수축한 뒤 임진왜란 때 전란을 맞아 허물어졌다가 흥선대원군이 다시 개축했다. 6개의 봉화가 있었지만, 현재는 3개만 전해진다고 한다. 지금도 고대의 고인돌부터 흥선대원군이 새긴 비문까지 여러 역사의 흔적이 공존하는 곳.
지금의 성벽은 칼 같이 반듯하게 되어있는데 현대에 다시 보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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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구간은 1990년대 이전의 옛 모습을 일부러 남겨놓았다.[1]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김해 시가지와 김해평야를 내려다보는 위치라 시야가 트여있고 경치가 좋아서 사람들의 산책로로도 애용되고 있다. 성벽 아래로 가리는 나무가 없어 야경 촬영하기도 좋다.
2020년 봄부터 성 중앙에서 대대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3. 바깥고리



4. 사적 제66호


낙동강 하류의 넓은 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분산의 정상에 둘레 약 900m에 걸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처음 쌓은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시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전기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박위(朴蔿)가 수리하여 쌓은 뒤, 임진왜란(1592) 때 무너진 것을 고종 8년(1871)에 다시 쌓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산 위의 평탄한 지형을 둘러서 그 주위에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루도록 쌓았다. 서남부는 험준한 천연 암벽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현재 성벽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성 안에 이르는 통로는 산성 서쪽에 있는 계곡을 거쳐 북쪽 뒤편에서 들어가는 길을 이용한 듯 하다. 현재 성 안에 우물과 암자, 그리고 민가가 있으며 산꼭대기에는 3기의 비석이 있다.

성 주변에는 가야 무덤들과 수로왕비릉, 가야의 건국설화와 관련있는 구지봉이 있어 이 성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분산성 → 김해 분산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1] 마치 관리 부족으로 허물어진 것 같지만 저 구간을 자세히 보면 작은 표지판에 성곽 보존 구간이라고 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