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섀그스

 

The Shag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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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실체
3. 관련 문서


1. 개요


1968년부터 1975년까지 활동하고, 1999년에 재결성 공연한 위긴(Wiggin)가의 자매들로 구성된 미국의 록밴드. 멤버는 도로시(도트) 위긴(보컬, 리드기타), 베티 위긴(백킹 보컬, 리듬기타), 헬렌 위긴(드럼), 그리고 나중에 합류한 레이첼 위긴(베이스)
커트 코베인은 자신이 뽑은 위대한 앨범 50에 그들의 유일한 앨범 Philosophy of the World를 5위로 안착시켰고, 프랭크 자파가 사랑한 밴드였으며, 평론가 레스터 뱅스는 비틀즈보다도 위대한(Better than the Beatles)[1] 록밴드로 꼽은 바 있다. Philosophy of the World는 올뮤직닷컴 평점에서 5점 만점의 4.5점을 받았고, 모조에서도 긍정적인 평을 받았다. 피치포크에서도 이들의 리이슈반에 8.6점을 매겼다. 그것도 베스트 뉴 리이슈 딱지와 함께!
'''위에 언급된 것은 100% 사실임을 알린다. 왜 이런 말을 하냐면...'''

2. 실체




이 밴드는 연주를 지지리도 못하고 음악의 기초조차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계의 더 룸.'''
왜 그런지는 Philosophy of the World의 수록곡들, 특히 My Pal Foot Foot을 들어보면 안다. 30분 내내 보컬과 기타가 드럼과 전혀 다른 리듬을 따라가며, 지속적으로 아무런 이유 없이 리듬과 멜로디가 뒤바뀌고 악기 튜닝은 전혀 되어있지 않은 등 음악 전체가 불규칙하고 기괴하다.
사실 그냥 들리는 것으로만 따졌을 때 섀그즈의 음악 이상으로 특이하고 괴상하게 들리는 전위음악은 의외로 많지만, 섀그즈 음악은 그 이상의 유니크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바로 이 모든 불협화음이 전혀 의도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부모님의 강요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고 밴드를 하게 된, 기존 음악과 음악계의 규범과 질서에 대해 거의 모르는 10대 소녀들이 아버지를 위해 '진실하게' 내놓은 음반이라는 점이 작품 전체에 다소 음울한 감성을 덧씌우며, 보컬인 도로시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잃어버린 고양이나 부모님의 중요성 등 건전가요나 동요에 나올 만 한 주제에 대해 노래하며 부조리함을 더해준다.[2] 이 때문에 섀그스의 음악은 가히 세상에 둘도 없다고 할 정도로 특이한 경험을 제공한다. 피치포크의 리뷰도 이 점을 강조해서 언급한다.
이들이 밴드를 결성한 이유는 아버지 오스틴이 자신의 딸들이 유명한 음악 그룹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믿었기 때문이었고, 밴드 결성은 오로지 아버지의 강요 때문이었다. 섀그스는 당연히 처음에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고, 라이브 공연에서는 관객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앨범을 낸 뒤에도 몇 년 간 활동했지만 1975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죽은 뒤에 미련없이 밴드 활동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어떤 라디오쇼에 출연한 프랭크 자파가 이들의 곡을 즐겨 연주한다는 발언을 한 걸 시작으로 더 섀그스는 여러가지 이유로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고, 1979년에 Philosophy of the World의 리이슈 음반이 발매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한 롤링 스톤지의 평은 '전두엽 절제술 받은 트랩 가족같다.' 이를 보다 못해 팬들은 My pal Foot Foot을 정상적인 곡으로 완성시켜 부르는 일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딸들이 유명한 그룹이 될 것이라는 아버지의 예언은 결국 정말로 사실이 되었다. 그가 의도한 바와는 정반대 방향의 팬층을 대상으로였지만 말이다. 최악의 연주와 어설픈 가창이 되려 펑크와 전위음악 뮤지션에게 각광을 받으면서 상기한 뮤지션들 이외에도 비트 해프닝이나 요 라 텡고, 하프 재패니즈, 레인코츠, 파스텔즈, 슬리츠, 바셀린즈 같은 인디 록 밴드라던가 존 존에게 영향을 미쳤다. 심지어 오프웨이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2001년에는 여러 인디 뮤지션들이 모여 섀그스 음악을 커버하는 헌정 앨범을 내기도 했다. 해당 앨범의 수록곡인 유명 실험음악 밴드 디어후프의 My Pal Foot Foot 커버
1999년에 섀그스는 재결합 공연을 한번 열었고, 2006년에 드럼을 맡았던 헬렌이 사망하였다. 이후 섀그스의 팬이던 뉴욕의 뮤지션 몇 명은 밴드를 결성해 2012년에 섀그스 헌정 공연을 열고 도로시와 베티를 초대했는데, 여기서 도로시에게 아직도 여러 미완성/미발매곡과 악보(!!)[3]가 남아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제시 크라코우가 여타 뮤지션을 데리고 도로시와 밴드를 결성해 2013년 앨범 Ready! Get! Go!까지 냈다. 전반적으로 섀그스때보다 훨씬 얌전하고 정상적인 편.
이후 도로시의 밴드는 2015년에 뉴트럴 밀크 호텔 투어에서 오프닝 공연을 섰고, 2017년 6월에는 윌코의 솔리드 사운드 페스티벌에서 베티를 데리고 재결합 공연을 하였다.

3. 관련 문서


  • Met Romana Op De Scooter - 더 섀그스와 비슷한 사례로 그다지 좋지않은 가창실력에 병맛같은 뮤비에 가사로 인한 시너지로 인해 입소문을 타게 되어 아이튠즈 랭킹 98위를 찍게 되었고 가수 본인도 출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1] 동명의 트리뷰트 음반이 있다.[2] 더 부조리한 점은 이 때 멤버들의 나이는 마냥 순수함을 내뿜을 나이인 10대 초반도 아닌, 10대 후반 내지 20대 초반이었다는 점이다. 위긴 가족의 양육 분위기가 어땠는지 돌려서 보여주는 부분이다.[3] 즉 일견 무질서하고 무계획적으로 보였던 섀그스 음악은 적어도 보컬과 기타 부분에서는 전부 도로시가 직접 작곡/작사해 악보에 적힌, 이론적으로는 '완성'된 상태였던 것이다. 다만 드럼과 전혀 맞춰지지 않았고, 연주에 있어서 무수한 '실수'가 있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