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글러스 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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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uglas Sirk'''
(1897. 4. 26. - 1987. 1. 14.)

서크는 가장 다정한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 영화들은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경멸하지 않는 사람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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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1. 개요
2. 생애
3. 기타
4. 작품 목록


1. 개요


독일에서 태어나 주로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한 영화 감독.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의 거장으로 유명하다.

2. 생애


서크는 1897년[1]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한스 데틀레프 시어크이다. 젊은 시절 서크는 뮌헨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이 시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에르빈 파노프스키[2] 등과 같은 여러 유명 인사들의 강의를 들었다. 또한 연극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서크는 결과적으로 연극 분야에서 일하게 된다.
서크는 연극 연출자로 명성을 얻었으며, 이 시기 그는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 등의 고전 명작 연극들을 주로 무대에 올렸다. 1934년에는 독일 표현주의의 산실이던 UFA 스튜디오에 입사하여 당대 독일의 대표적인 영화 감독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서크의 두 번째 아내는 유대계였고, 이 때문에 나치 독일에서 영화 생활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 점차 어려워져만 갔다.[3] 결국 서크는 1941년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미국에 도착한 후 그가 처음으로 만들게 된 영화는 반나치 선전영화인 <히틀러의 미치광이>였다. 40년대에, 서크는 주로 소규모의 누아르 영화, 멜로드라마 등을 감독했지만, 그다지 비평적, 대중적 주목을 받은 편은 아니었다. 그의 대중적인 성공은 50년대 초반, 테크니컬러를 이용한 일련의 멜로드라마를 통해 거두어졌다. 이 시기 서크는 주로 록 허드슨과 협업하였는데, 허드슨은 서크의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스타로 성장하였다. 이 시기 그의 작품들은 (주로 여성층을 중심으로 하여) 대부분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며, <바람에 쓴 편지>는 도로시 말론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주는 등, 어느 정도의 비평적 관심을 거두기도 했다. 이와 같은 연이은 성공을 통해 서크는 할리우드에서 점차 작가적 자유를 얻기 시작한다.
서크는 1959년 <슬픔은 그대 가슴에>를 감독하였는데, 이 작품은 그 해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의 비평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 작품은 주제 측면에서, 인종 문제라는 첨예한 주제를 다룬 최초의 영화들 가운데 하나이며, 오늘날에도 서크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고는 한다. 그렇지만 서크는 이 작품을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선언하고는 은퇴한다. 할리우드에 대한 서크의 부정적 태도와 그의 건강 문제가 주된 이유였다. 은퇴 이후 서크는 스위스 루가노에서 은둔하며 살아간다.
당대에 자크 리베트나 앤드류 새리스 같은 소수의 비평가들에게 주목받긴 했지만, 넓은 비평적 관심을 끌어모으지 못했던 서크가 재조명받게 된 것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다니엘 슈미트 같은 뉴 저먼 시네마의 구성원들이 그의 영향을 고백하면서부터였다. 이런 재조명 탓에 루가노에는 서크를 만나러 전 세계에서 사람이 몰려들었고, 서크 부부는 난데없이 북적한 노년 생활을 맞이하게 된다...
말년에 시력을 완전히 잃은 서크는 1987년 세상을 떠났다.

3. 기타


당대에는 여성용 막장 드라마 감독이라 폄하받았지만, 오늘날에는 서크에 대한 다방면에서의 분석이 행해지고 있다. 많은 평론가들이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영향을 언급하는데, 인공적인 세트나 화려한 소품을 통해 소격 효과를 실현한다는 것이 주된 분석 가운데 하나이다.[4] 또한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계층적 시각은 정치적 영화 감독이나 영화 평론가에게 영향을 주었고, 퀴어 영화나 페미니즘 영화 비평계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등, 현대 비평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감독 가운데 하나이다. 화려하면서도 냉소적인 태도로 사회 계급이나 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멜로 드라마는 대체로 서크의 영향력이 강하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 다니엘 슈미트, 마틴 스콜세지, 토드 헤인스 등의 영화 감독들이 서크의 영향을 고백한 바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파스빈더와 헤인스는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을 리메이크하여 각각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와 <파 프롬 헤븐>을 감독하기도 했다. 셰이프 오브 워터도 서크 멜로드라마의 오마주에 가깝다.
윌리엄 포크너는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 가운데서 서크의 <몰락한 천사들>을 제일 좋아했다고 한다.
2019년 9월 모의평가에 더글러스 서크에 관한 지문이 출제되기도 했다.
영화 감독 중에서는 드물게 2:1 화면비를 주로 쓴 감독이었다. 이후 아리 애스터가 2:1 화면비를 쓰고 있다.

4. 작품 목록


대표작만 나열했다.
  • <여름의 폭풍> (1944)
  • <파리의 스캔들> (1946)
  • <현혹된> (1947)
  • <쇼크프루프> (1949)[5]
  • <마음의 등불> (1954)
  •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 (1955)
  • <바람에 쓴 편지> (1956)
  • <몰락한 천사들> (1957)
  • <사랑할 때와 죽을 때> (1958)[6]
  • <슬픔은 그대 가슴에> (1959)

[1] 1900년생이라는 설도 있다.[2] 도상학적 접근으로 유명한 독일 출신의 미술사가[3] 반면 서크의 첫 번째 아내는 열성적인 나치 지지자였다. 이 때문인지 서크는 전 부인을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4] 실제로 서크는 브레히트의 영향을 고백하기도 하였다.[5] 영화 감독 새뮤얼 풀러가 각본을 썼다.[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였으며, 레마르크는 여기서 교수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