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clearfix]
1. 개요
독일의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조크, 빔 벤더스와 함께 뉴 저먼 시네마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2. 생애
1945년 뮌헨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번역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6살인 무렵 부모는 이혼했고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으나 새아버지와 자주 다투었고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아로 자랐다. 이후 15살 때 쾰른에 있는 아버지에게로 가서 야간학교를 다녔다. 이후 뮌헨의 배우학교를 다니면서 몇 개의 단편영화를 만들었으며 1967년에는 뮌헨의 한 전위 극단에 들어가 연극배우가 된다. 이듬해인 1968년, 자신의 단원들과 함께 안티테아터(Anti-Theatre)라는 영화공동체를 만들었고 1969년 장편 데뷔작 <사랑은 죽음보다 차갑다>를 통해 본격적으로 영화감독의 길을 걷는다. 영화인생 13년 동안 40편이 넘는 장편영화와 TV 시리즈, 24편의 연극을 남겼으며 필모 대부분을 자신의 각본으로 채웠을 뿐 아니라 카메라맨, 작곡, 디자인, 편집, 심지어 직접 출연까지 하는 등 영화사에서도 손꼽히는 대표적인 워커홀릭이었다. 사나흘씩 밤을 새며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이를 견디기 위해 술과 마약을 남용하게 된다. 1982년 코카인과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죽음과 함께 뉴 저먼 시네마 역시 막을 내린다.
3. 특징
그의 영화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 기법을 영화에 도입했으며 동시에 대중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통속적인 멜로드라마의 형식을 빌렸다. 이를 통해 중산층의 이중성과 시민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폭로했으며, 동성애자[1] , 외국인 노동자, 창녀, 노인과 같은 소외계층을 주역으로 내세워 현대사회의 소외와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부각시켰다. 또한 이데올로기, 역사, 권력이라는 주제에도 천착해 19세기 독일 제국(에피 브리스트), 3월 혁명(브레멘의 자유), 바이마르 공화국과 파시즘의 대두(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라인강의 기적(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면서 독일의 역사를 관통했다.
4. 주요 작품
- 사랑은 죽음보다 차갑다 Liebe ist kälter als der Tod, 1969
- 저주의 신들 Götter der Pest, 1970
- 성스러운 창녀에 주목하라 Warnung vor einer heiligen Nutte, 1971
- 사계절의 상인 Händler der vier Jahreszeiten, 1972
-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 Die Bitteren Tränen der Petra von Kant, 1972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Angst essen Seele auf, 1974
- 에피 브리스트 Effi Briest, 1974
- 마르타 Martha, 1974
- 퀴스터 부인의 천국 여행 Mutter Küsters' Fahrt zum Himmel, 1975
- 중국식 룰렛 Chinesisches Roulette, 1976
- 절망 Despair, 1978
- 13달인 어느 해에 In einem Jahr mit 13 Monden, 1978
-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Die Ehe der Maria Braun, 1979
- 제3세대 Die Dritte Generation, 1979
-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Berlin Alexanderplatz, 1980[2]
- 롤라 Lola, 1981
- 베로니카 포스의 갈망 Die Sehnsucht der Veronika Voss, 1982
5. 기타
- 가죽점퍼와 청바지를 위시한 반항적인 이미지와 너저분한 사생활로 유명했다. 술과 담배는 물론 폭식과 마약복용도 거리낌 없었고 게이바를 자주 드나들었으며 수많은 연인들과 스캔들을 남겼다. 성격도 개판이었던지라 평전이나 주변인들의 회고를 찾아보면 인성에 대한 평가는 바닥을 찍는다. 촬영장에서도 스테프와 배우에게 학대와 폭언을 일삼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