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허드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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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록 허드슨 (Rock Hudson)
'''본명'''
로이 해럴드 셰러 주니어
(Roy Harold Scherer Jr.)
'''국적'''
미국 [image]
'''출생'''
1925년 11월 17일, 일리노이 주 위네트카
'''사망'''
1985년 10월 2일 (향년 59세)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힐스
'''신장'''
193cm
'''배우자'''
필리스 게이츠(1955년 ~ 1958년)
'''학력'''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활동'''
1944년 – 1985년
'''링크'''

1. 개요
2. 성적 지향
3. 출연 영화들
4. 여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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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이언트에서. 전설적인 배우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제임스 딘과 함께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3년 연속 '최고 인기상'을 받으며 제임스 딘과 함께 당대 최고의 청춘 스타이다. 1925년생인 그는 검은 눈빛, 깊은 목소리, 훤칠한 키로 인해 로맨틱한 남자 주인공의 전형이었으며 영화 '''자이언트에서 보여진 수트핏은 그야말로 끝판왕.'''
1950년대를 대표하는 남배우들 중 하나이지만, 동시대 유행했던 제임스 딘, 말론 브란도보다는 한국인들에게 현재 인지도가 떨어지는 편. 그 이유는 그의 비참한 최후와도 연관이 되어있다.[1]

2. 성적 지향


록 허드슨은 게이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일생동안 대중의 눈에서 피했다. 그가 스타로 등극한 이후부터 그가 게이라는 소문이 퍼졌는데 당시 성소수자 인권이 나락이였던 시대 상 게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허드슨 자신의 커리어와 명성은 물론 소속사도 엄청난 손해를 입을 것으로 보여[2] 그의 매니저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자신의 비서인 필리스 게이츠와 허드슨을 결혼시켰다. 하지만 애정없는 결혼이 잘 될 리가 있나? 결국 3년만에 파경을 맞았고 필리스에게 거액의 위자료를 준 다음에 이혼하게 된다. 허드슨은 대중에겐 비밀리에 애인을 두었지만, 자신의 성적지향을 끝까지 감추면서 배우의 커리어를 이어갔다.
그가 죽을 때까지 게이임을 감출 수 있었던 것은, 소문을 단지 소문으로만 축소시켰던 스튜디오의 갖은 노력 덕분이었다. 그의 친구들도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고, 공적인 영역에서는 이성애자로 살아갔다. 다만 그 중 유명한 예시인 말론 브란도제임스 딘는 록 허드슨과 달리 양성애자라는 점을 아예 대중에 공개하고 다녔다. 당시로선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후리고 다닌다는 섹스심볼 반항아 이미지로 쓰기에 맞아 떨어져서 대중은 쉽게 넘어갔다. 반면에 록 허드슨은 양성애자가 아니라 게이였기 때문에 호모포비아가 극심하던 당시에 그걸 이용한 이미지 구축은 별 소용이 없을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다.[3] 1985년 6월, 그는 파리의 한 호텔에서 쓰러졌고, 처음에는 간암으로 발표되었지만 한 달 후 대변인은 록 허드슨이 심각한 병에 걸렸음을 알렸다. 그 병은 바로 에이즈였다. 악몽 같은 10주를 보낸 후 그는 1985년 10월 2일 베벌리힐스에서 사망한다. 화장된 유해는 태평양 위에 뿌려졌고, 그의 유산은 '에이즈연구재단'의 설립 기금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사망 후 그의 연인이었던 마크 크리스천이 재산권 소송을 하면서 평생 동안 감추어졌던 그의 개인적인 삶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팬들을 경악시켰다. 그는 에이즈로 사망한 최초의 유명스타였으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비극적 죽음은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을 울리는 경종이 되어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에이즈에 대해 느끼는 충격은 대중들에게 두 갈래로 나타났다. 첫째는 어떤 사람도 에이즈에 면역되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록 허드슨은 특유의 로맨틱한 이미지로 이상적인 애인감, 남편감으로서 모든 여자들의 이상형이었고, 그와 동시에 책임감 있는 신사적인 배역을 많이 맡아 가장 이상적 미국 남성의 이미지로 뽑히던 인물이었다. 그로 인해 충격의 여파가 더 크기도 하였다.
여하튼 그의 인기로 인해 에이즈라는 중대한 공중 보건 위기에 대한 관심이 환기 되었으며 경각심이 높아지자 정부 지출도 증대되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는 없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레이건[4]은 수많은 사람들이 에이즈파동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데도 공개연설에서 에이즈에 대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만 언급했으며, 성소수자들이 주로 걸리는 병이란 이유로 그냥 손을 놓고 있었다. 록 허드슨은 평생 자신의 게이임을 숨기고 살아왔으며 자신의 병을 통해 고통스럽게 자신이 게이임이 아웃팅되어 여타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들보다 어쩌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는 1985년 8월 30일 토요명화에서 글래머 이탈리아 배우로 유명했던 지나 롤로브리지다(1927 ~ )와 같이 주언으로 나온 9월이 오면 (Come September,1961)이 더빙 방영되었는데 이 당시, 그가 투병 생활 중이라는 뉴스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이거 방영한지 한달 조금 지나서 그가 세상을 떠났다. 당시 KBS 뉴스에서 토요명화 더빙판 장면을 조금 보여주면서 록 허드슨이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90년 초반에 방송된 성우 이선영의 영화음악실 라디오 방송에 의하면 FBI는 진작에 그의 성적 지향을 잘 알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FBI에서는 인기면으로 차기 대통령 감이 되어도 이상할 거 없는 배우로 록 허드슨을 손꼽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그래서 FBI가 몰래 그에 대한 걸 조사하다가[5] 이 과정에서 그의 사생활이 드러났던 것. 하지만 이걸 공개한다면 당연히 자기들이 몰래 배우들을 조사하고 있으니 엄청난 비난과 논란에 휩쓸려게 뻔하니 공개할 수도 없어 그냥 덮어버렸다고 한다.
유니버설 픽처스에 의해 전기 영화로 제작되어진다.#
여담으로 자이언트에 함께 출연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절친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록 허드슨이 게이임을 알고도, 그리고 에이즈에 걸린 것을 알고도 이전과 같이 대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록 허드슨이 에이즈로 죽자, 자신의 명의로 에이즈 재단을 설립한다.

3. 출연 영화들



4. 여담


한참 어린 액션배우 실베스터 스탤론과 닮았다.

[1] 록 허드슨은 게이인데다 에이즈 감염자였고, 따라서 그의 사망 이후 보수적인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그의 이름이 쉬쉬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현재는 말론 브란도나 제임스 딘보다는 인지도가 적은 편.[2] 한국도 2000년의 홍석천 커밍아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한 동안 방송을 접고 살아야했다.[3] 지금도 사람들에게는 양성애자는 이성만으로는 만족을 못해서 동성까지 넘보는 호색한/호색녀이고, 게이는 특이 취향 변태라는 잘못된 인식이 있다. 이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양성애자는 단지 문란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게이는 그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그 당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4] 본인이 영화배우 출신으로 허드슨과 절친한 친구였다.[5] 사실 FBI는 미국 유명인들을 이렇게 몰래 조사하고 감시하던 게 수두룩했다. 음모론이라고 하던 적도 있었지만 세월지나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라든지 존 스타인벡같은 유명 작가에서부터 배우나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