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레터맨
1. 소개
1980년대 부터 NBC와 CBS에서 활동한[1] 미국을 대표한 심야 토크쇼 호스트. 지미 팰론이나 코난 오브라이언와 같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현 시대의 심야 토크쇼 호스트들의 대부분은 레터맨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명성을 가졌다.
2014년 TV 프로그램에서의 은퇴를 선언하였고, 2015년 5월 20일 부로 마지막 방송을 진행하였다.[2] 현재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My Next Guest Needs No Introduction with David Letterman[3] 이라는 월간 토크쇼를 진행 중이다. 현재는 시즌 1을 마치고 시즌 2를 준비 중.
2. 생애
2.1. TV에 모습을 드러내다
1947년생으로, 미국 인디애나 주의 인디애나폴리스 출신이다. 꽃집 주인인 아버지와 교회 비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인디애나 대학교에 입학하고자 했으나, 성적이 좋지 않아 볼주립 대학을 입학하게 되었다. 레터맨은 대학에서 대학 라디오의 진행자로 활동했는데, 얼마 못 가 짤렸다. 사유는 고전 음악에 대한 비판적 발언이었다. 정말로 이게 사유였다고 한다.
레터맨은 대학 졸업 후 군에 징집되었다. 마침 이 시기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지만 레터맨은 운좋게 베트남으로 배치 받지 않았다. 이후 대학 시절의 라디오 진행자 커리어를 이용해 1969년 지역 라디오 방송의 기상 캐스터로 방송에 입문하였다. 이때 독특한 진행[4] 으로 관심 받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각종 지역 심야 방송에 게스트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때 즈음 부터가 방송 일에 본격적으로 그가 의욕을 보이기 시작한 때. 이후에도 인디 500 레이스의 피트 인터뷰어로 활동하였다.[5]
레터맨은 본격적인 방송계 활동을 위해 고향이자 방송인의 꿈을 키워준 인디애나폴리스를 떠나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했다. 이 때의 레터맨은 주로 작가로 활동하였고, 당시 크고 작은 유행을 끈 몇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냈다.
레터맨 특유의 예의차리며 비꼬는[6] 조크는 지금까지도 최고로 평가 받는 심야 토크쇼 호스트였던 조니 카슨과 그의 투나잇 쇼 작가들의 눈길을 끌어 쇼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말 그대로 '''모든 방송인의 꿈'''을 실현하게 된 셈.
2.2. 더 데이비드 레터맨 쇼
2.3. 레이트 나잇 위드 데이비드 레터맨
2.4. 레이트 쇼 위드 데이비드 레터맨
3. 기타
미국의 유명 배우이자 연출자 겸 코미디언인 루이스 C.K.가 젊었을 적, 그의 쇼에서 스텐드업을 하고 싶어서 면접을 봤지만 끝내 쇼에 올라가지 못했다. 대신 작가로 활동했다고 한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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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소녀시대가 출연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레터맨 쇼의 최초 한국인 출연자는 소녀시대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배우 김윤진이 앞서 6년 전에 출연했다.
2014년 10월 8일에는 뉴욕에서 열렸던 '하츠네 미쿠 엑스포' 홍보차 하츠네 미쿠가 미국 방송 데뷔겸 '''직접'''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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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2년 이후 무려 33년동안 지상파 심야 토크쇼 호스트로 활동했다. 투나잇 쇼라는 단일 프로그램에서만 30년간 진행한 심야 토크쇼의 제왕 조니 카슨의 명성에 거의 유일하게 근접했다고 평가 받는다.[2] 후임자는 스티븐 콜베어. 레이트 쇼 문서를 참고하자.[3] 한국명 '오늘의 게스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데이비드 레터맨 쇼'[4] 열대성 폭풍이 허리케인으로 변한 것을 '''축하'''한다거나(...) 우박의 크기를 통조림 햄 크기로 비유했다고[5] 레이트 나잇 시절의 재치있는 야외 촬영 영상들이 여기서 영향 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6] 부정적 표현은 아니란 걸 명심하자. 굳이 따지자면 블랙 코미디 정도?[7] 후에 루이스가 회고하길 당시 오디션을 보러 가기 전에 레터맨이 겁을 엄청 줬다고 한다. 하도 겁을 먹은 그는 코난을 대동해서 면접을 보러갔고 결과는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