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빌헬름 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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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독일 육군의 지휘관. 보병대장.
2. 생애
2.1. 1차대전~전간기
프로이센 왕국 바멘 출신인 뮐러는 제1차 세계 대전 때 제 2보병연대 소속으로 참전하였으며 1915년에는 소위로 승진하였다. 종전 이후에도 군대에 남아있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을 때는 중령이었다.
2.2. 2차대전
1941년에는 105보병연대의 지휘관으로서 대 소련 전선에서의 성과로 철십자 기사 훈장을 받았으며, 1942년에는 곡엽 철십자 기사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1942년에는 22강하보병사단[1] 의 지휘관으로써 크레타 섬 전투에 참전하였다. 크레타 섬에 주둔해 있는 동안 크레타의 비아노스, 아노기아, 아마리, 다마스타 등지에서 민간인에 대한 학살을 저지른다. 이로 인해서 '''크레타의 도살자(The butcher of Crete)'''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하였다.
1943년에 이탈리아 왕국이 항복하면서 영국군은 도데카니사 제도의 이탈리아 병력이 독일군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고 해당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서 도데카니사 전투가 펼쳐진다. 이 전투에서 뮐러가 이끄는 독일군은 영국군에 협조하기로 한 일부 이탈리아군과 영국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1943년 6월에는 뮐러의 명령에 의해서 코스(Kos) 섬에서 영국군에 항복하여 참전한 이탈리아 장교들에 대해서 대규모 학살을 저지른다.
때문에 영국군 특수작전국(SOE)에 의해서 납치 작전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나, 1944년 3월에 사단장 하인리히 크라이페 소장으로 교체되고 뮐러 본인은중장으로 진급함과 동시에 최고지휘관 예비군으로 이전되어 독일로 돌아갔었다. 결국 자신을 대신하여 하인리히 크라이페 소장이 납치되고 나서 뮐러는 1944년 7월에 크레타 주둔군 사령관인 브루노 브로이어의 후임으로 주둔군 사령관으로 되돌아 온다.
1944년에는 크레타 섬에 나치 독일이 주둔하면서 발생한 게릴라를 소탕하기 위해서 학살을 벌이기도 하였다. 크레타 섬 전투 문서에 나와있듯이 크레타 주둔군은 사실상 철수의 수순을 밟고 있었다. 한편 게릴라들은 영국과 결탁하여 아마리(Amari)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고 주된 근거지가 되었다. 뮐러는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리 지역에서 지리적으로 게릴라들이 활동하기 좋았던 케드로스(Kedros) 산을 불시에 기습하여 또 다시 대량학살을 벌였다.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사전 공지도 없었기 때문에 게릴라 뿐만아니라 수많은 민간인 피해자가 발생하였고 마을과 경작지 등에 대한 파괴도 이루어졌다. 이를 케드로스 학살(Holocaust of Kedros)이라고도 한다.
쿠르트 폰 티펠스키르히 장군은 자서전에서 프리드리히빌헬름 뮐러에 대해서 "모든 명령을 무조건적으로 수행하였으며 히틀러가 좋아했던 장군 중의 하나"였다고 회고하기도 하였다.
1944년 11월에는 34군단 사령관으로 발령았었으며, 1개월 뒤 68군단 사령관으로 발령받아 발칸 반도에 펼쳐진 방어전을 담당하였다.
2.3. 종전
이후 뮐러는 후퇴 일로의 육군 4군의 사령관으로 발령받아 소련군을 상대하였으나 나중에 동프로이센에서 포위되면서 체포되었다. 종전이 이루어지고 브루노 브로이어와 함께 그리스 군사법원으로 회부되어 학살 등의 전쟁범죄에 관한 죄로 기소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47년 독일의 크레타 침공 기념일인 5월 20일에 총살당한다.
[1] 22nd Air Landing Infantry Division, 원래는 22보병사단이었다가 잠시 강하보병사단이 되었다. 나중에 22국민척탄병사단으로 전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