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토의 여명/에피소드 가이드/1부 1장
네이버 웹툰 동토의 여명 1부 1장의 줄거리를 정리한 문서.
1. 01. 왕의 귀향
'''세상 만물이 신이고 세상 만물이 자연이던 때가 있었다…'''
'''이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동토의 세계에서 운명을 건 영웅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 * *
화륵, 불꽃이 일렁이는 현장. 한 사내는 홀로 자객 여럿을 상대하며 격렬한 칼싸움을 한바탕 벌이고 있다..
"비키지.. 못할까!"
사내의 거친 외침. 그와 동시에, 사내와 칼을 맞대고 힘싸움을 하던 상대는 그가 뻗은 손에 밀쳐져 날아가 버린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자객들의 공격.. 한 자객이 사내의 뒤를 노리곤 칼날을 그의 머리 위에 드리운다. 하지만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자객의 머리를 관통해, 습격은 저지당한다. 그리고 저멀리서, 한 무리가 사내의 이름을 부르며 부리나케 달려온다.
"아밈님!"
삿갓을 쓰고, 활과 화살을 장비한 모습.
"자네들은 서둘러 사람들을 피신시키게."
"하지만,"
"이건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닐세! 서두르시게!"
하지만 아밈, 부하의 말을 끊고는 말을 황급히 달려 산골짜기 깊은 곳에 다다른다. 그는 애타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찾는다.
"스승님!!"
그때, 아밈의 눈에 들어온 한 아이.. 아이는 가쁘게 숨을 쉬고 있고, 스승의 손에서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우우웅 뿜어나온다. 아밈은 아이를 보며 상황을 파악하고자 하는데..
"마리의 아들 마고일세..."
그런 그의 마음을 간파하기라도 한 듯, 이 아이가 누군지 말해주는 스승. 스승은 이어서 지팡이를 든 손을 나무를 향해 스윽 뻗는다.
나무에서 드득 두드득 날아와 얼기설기 붙은 조각들은 커다란 새, 목란이 되어 키에에 울부짖는다.
"마고를 부탁하네.. 목란의 기운이 자네와 마고를 가려줄 걸세."
마고를 아밈의 품에 안기는 스승. 그리고선 스승은 등을 돌려 아밈에게서 멀어져 간다. 아밈은 멀어져 가는 스승을 다급히 부른다.
"스승님!"
"이것은 늙은이들의 몫, 자네와 마고가 휘말리게 둘 순 없지! 가시게나!"
하지만 스승은 그저 이렇게 답할 뿐. 아밈은 그 모습을 그저 묵묵히 바라본다.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노 선사의 의연한 뒷모습, 허나 그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목란은 날개를 펄럭인다.
'스승님의 적공, 잊지 않겠습니다..'
아밈은, 분화하는 화산을 배경으로 목란을 타고 그곳에서 빠져나간다.
* * *
9년 후, 나르골 서부지역 노루뜰. 어둠 속에서 안광을 빛내며 다가오는 짐승들. 놈들은 크르르하고 울더니 이내 크웡, 아가리를 벌린다. 겉모습만 보아도 평범한 짐승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땅바닥을 거센 발톱으로 찍어 누르는 놈들.. 놈들은 순식간에 땅을 박차고, 마치 한 몸인듯 일제히, 뜰 한 가운데 서 있는 두 사람에게 달려든다. 남자는 익숙한 상황인 듯, 놈들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다.
"이놈들은.."
그러더니, 순식간에 칼을 뽑아드는 남자. 남자는 놈들에게 질린 듯, 다소 화난 듯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놈들을 소탕한다.
"없애고! 없애도!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것이 끈질기게 나온단 말야!"
깨갱, 하고 눈물 쏙 빠지게 도망가는 놈들의 뒷꽁무니를 보며 말하는 남자. 그의 옆에 있던 여자가 입을 연다.
"겁들이 날뛰는 게 어디 어제오늘 일인가요? 전 가끔 녀석들이 가엽게 느껴지기도 하더라구요.."
"가, 가여워? 다이라, 너 겁들에게 당한 사람들 앞에서도.."
'''"아!"'''
여자가 주먹으로 손바닥을 탁 치며 남자의 말을 자른다.
"뭐, 뭐야!"
당황한 남자 쪽으로 다이라는 몸을 빙글 돌리고는 그에게 미소 지으며 묻는다.
"그거 아십니까? 내일이면 아밈님께서 원정을 답파하고 이 곳 나르골로 돌아오신다는 거..."
"알다마다! 내 그 바람에 신경 쓸 데가 얼마나 많아진 줄 알아? 귀찮게시리.."
남자는 팔짱을 끼고 잔뜩 권위적인 표정을 지으며 답한다. 하지만 답하고 나서야 자기 말이 잘린 걸 깨달은 남자. 잔뜩 화를 낸다.
"...가 아니라 누가 내 말 자르래! 놀랬잖아! 키 작다고 무시하냐!"
다이라는 혀를 빼꼼 내밀고 웃으면서, 그의 말을 듣다가 눈을 반짝인다.
"전 크든 작든 아주님이 좋아요!" "됐거든!"
* * *
다람쥐가 노니는, 고요하고 평범한 숲. 물론, 다람쥐의 얼굴에 있는 화려한 문양을 봐서는.. 우리 세계와 확실히 다르다. 다람쥐는 달그락 소리가 들리는 곳을 한참 보다가, 저멀리 달구지가 보이자 급히 도망간다. 달구지에 탄 자들은.. 다름아닌 아밈 그리고 훌쩍 성장한 마고다.
"스승님, 스승님!"
"..왜 그러느냐 마고야."
"나르골까진 얼마나 남은 것이옵니까?"
"원, 녀석도.. 아까 일러주지 않았더냐.. 이 숲만 빠져나가면 금방이니라!"
아밈은 애정어린 말투로 마고를 타이른다. 마고는 잔뜩 기대에 차있다.
'''나는 '마고'. 내 꿈은 선비가 되어 엄마를 찾는 것이다!'''[1]
마고를 태운 달구지는 잠시 뒤, 드디어 숲을 빠져나온다. 그때, 무슨 일인지 몹시 놀라는 마고. 아밈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삿갓 챙의 끝을 매만진다.
"놀랐느냐.. 그래.. 저곳이 바로 왕국 나랑고스의 수도.. 나르골이란다."
깡, 까깡, 쿵쿵쿵 요란한 소리를 내는 황폐한 도시. 눈앞에 나타난 이 도시가 바로, 마고가 그동안 그토록 고대하던 나르골이었던 것이다.. 그런 마고의 위로 허공을 가르며 나타난 한 무리. 그 중 하나가 딸깍하고 탈을 벗는다.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큰 탈 없이 도착해서 다행입니다."
그의 이름은 함, 둘의 호위 임무를 맡은 자였다.
"자네들이 고생 많았네.. 덕분에 마음 편히 올 수 있었으이."
함과 그 무리에게 감사를 표하는 아밈. 함은 마고를 잠자코 보더니 무언가를 알아챈다.
"탈이라면 마고가 나르골을 보고 실망한 게 탈이려나.."
"시, 실망이라뇨! 당치 않습니다!"
마고는 부끄러워하며 답하고는 말을 잇는다.
"다만, 흰머리산의 재앙이 나르골까지 미쳤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사올 뿐..".
"아무렴.. 그날의 재난은 나랑고스 뿐만 아니라 중원의 제국에까지 이를 정도였으니까.."
마고의 말을 듣고는 친절하게 답하는 함. 둘 사이에 잠깐의 대화가 오가는 동안, 어느덧 달구지는 나르골 성문에 다다른다.
"녀석들 상대하랴 울력[2] 에 힘쓰랴 이래저래 어수선하지만 선인들에겐 이만한 곳도 없을 거야."
마고는 대답도 않고, 문에 새겨진 멋드러진 도깨비 얼굴 문양을 신기한 듯 쳐다본다. 나르골의 저잣거리를 지나는 달구지. 그 뒤를 동네꼬마들이 신이 나서 뒤따른다.
그때.. 어느 한 남자가 달구지를 유심히 본다. 남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남자는 황급한 마음에 말이 나오지 않아, 동료의 어깨를 마구 두드린다.
"아, 아..!"
"머시여 시방? 바뻐 죽겄는디 말을 혀, 마.."
그때, 그가 크게 외친다.
'''"아밈님! 아밈님이시다!"'''
그의 목소리가 온 동네에 우렁차게 울리고, 그의 손가락 끝은 정확하게 아밈 쪽을 향한다. 땀은 아밈의 뺨을 타고 흘러댄다.
"뭐 아밈님이라고?"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진 거리.
'쳇, 들켜버렸나?'
함은 입을 앙 다물며 긴장한다. 그런데 그때, 삿갓을 벗고는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밈! 함은 마른 침을 삼킨다.
'''"무안의 신민들이여, 그간 안녕하시었소! 나르골의 '달왕' 아밈이 돌아왔소이다!"'''
아밈은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을 드러내버린다. 함과 그 무리는 물론이요, 마고와 달구지를 끌던 말 마저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야 만다.
"이래선 행상인으로 가장해 들어온 의미가 없잖습니까!"
"물고 죌 거 많은 여정, 작전은 좋았네만.. 내가 내 집에 숨어 들어와야 하다니.."
아밈은 멋쩍게 웃어보인다.
"하지만, 오랜 시간에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이들 앞에서 내 무엇을 더 숨기겠는가..!"
* * *
"뭐, 아밈님이 오셨다구?"
"어디 어디!"
그걸 들은 한 궁녀,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급히 옥외 난간으로 달려간다.
"얘가 정말! 조신히 좀 굴어 얘-!"
동료 궁녀도 그 뒤를 따라가며 그를 나무란다.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 보는 둘.
"진짜다 진짜야!!"
"그런데, 저 아이는.."
궁녀들의 시야에 새로운 얼굴인, 마고가 들어온다.
"제 짐은 제가 들겠사옵니다..!"
마고는 아밈에게 손을 뻗고 소심한 한마디를 내뱉고 있다. 궁녀는 손수건을 앞니로 물어 당기며 얼굴을 붉힌다.
"혹시, 숨겨뒀던 왕자님이라던가 뭐 그런 거 아닐까?"
"네 짝으론 쟤도 좀 많이 어리다 생각지 않니?"
"사랑에 국경이 어딨니?"
동료 궁녀의 일침에도 그는 응큼한 표정으로 반론한다.
"자, 잠깐! 이건 국경이 아니라... 게다 넌 진짜 사랑 때문에 이러는 것도 아니잖어!"
궁녀는 흥,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래! 난 왕비가 돼서 세상을 내 맘대로 주무르며 살고 싶다구! 그게 뭐 어때서!"
궁녀는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동료는 상상을 들여다 본 듯 말한다.
"남자들 벗겨놓고 시중받는 게 세상을 주무르는 거구나.."
"시꺼!"
궁녀는 몸을 튼다. 거기엔 짐을 정리 중이던 함이 있었고.. 궁녀는 함과 친분이 있는 듯 그에게 묻는다.
"얘, 함아! 저 아인 누구니? 넌 이번 호위임무를 수행했으니 얻어들은 거라도 있을 거 아냐?"
그 말을 들은 함, 읏차하고 손에 들고 있던 짐을 올려두고는 어흠. 헛기침을 한 차례한다.
"그럼 정보 하나당 은자 닷냥.."
뻔뻔한 제안을 하는 그에게 궁녀는 종이뭉치를 던지고, 함은 이마를 한 대 맞고서야 입을 연다.
"임무를 받은 게 반년 전 아고르 경계지역부터라 자세한 건 잘 모르겠고.. 나이는 열 셋, 흰마루 출신으로 아밈님 곁에서 쭈욱 가르침을 받아왔다는 거 같죠, 아마.."
"왕의 가르침이라! 역시 숨겨둔 왕손이 틀림없어!"
궁녀는 얼굴을 붉히며 확신한다. 그때였다.
"뭐여!"
척, 그들 앞에 나타난 아주와 다이라.
"나한테 남은 형제가 있었다고? 키는 나보다 크다냐?"
아주의 정체는 나르골의 왕자였던 것이다!
"아, 아주님! 그게 아니오라.."
조금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변명해보려 하는 함. 반면..
"아주님 보단 큰 줄 아뢰오."
궁녀는 무척이나 편한 태도로 농담까지 한다.
'내 형제라.. 재밌군!'
'내 직접 확인해주지, 녀석의 정체!!'
아주는 마고의 정체를 몸소 확인하러 뛰어내린다.
2. 02. 불발
'나르골 왕족은 대대로 염제의 불을 다루는 능력을 갖고 있지.. 만약 네가 내 형제라면 이 주력[3] 에 감응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아주는 손에 염제의 불을 켠 채 마고에게 달려든다. 마고는 한아름 짐을 든 상태. 그때, 쿠웡하는 포효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날아오는 커다란 용 형상의 염공..!
"이, 이건 아버지의..?!"
아주는 진땀을 흘린다. 이어서 들려오는 쿵 소리.. 갑자기 몰아치는 먼지바람과 폭음에 깜짝 놀라는 백성들. 그리고 겨우내 충격을 견뎌내는 아주의 앞에, 아밈이 먼지바람을 헤치며 나타난다.
"내 염공을 상쇄시키는 걸 보니 그간 놀고먹진 않은 것 같구나.. 그러나.."
아밈은 아주를 칭찬하는 것도 잠시, 불빛과 같이 다가와..
"아직 멀었다!"
따악, 딱밤을 때린다.
* * *
한바탕 소란을 겪고난 이후, 마고는 함과 함께 비자둥우리로 들어간다. 둘을 따라온 궁녀는, 비자둥우리 입구에 멈춰선다.
"안타깝게도 저희 나인들은 비자둥우리에 드나들 수가 없답니다."
"아, 예.."
당황한 듯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마고.
"'''마고님!!''' 부디 저를 잊지 말아 주세요!"
궁녀는 가짜 눈물까지 보이면서, 끝까지 자신을 어필하고.. 보다 못한 함은, 마고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우리는 가던 길 마저 가자꾸나.."
이후, 함은 마고를 안내하며 비자둥우리에 대해 알려준다.
"이곳은 나르골에서도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곳이란다. 오직 누리의 선인들만이 드나들 수 있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마침내 비자둥우리에 도착하는 둘. 마고는 몹시 놀란다.
"하나! 둘!"
"죽은 뒤 누구에게 효도할 것인가! 부모와 형제들을 즐겁게 하지 못하면서 외부 사람들과 사귀려 해서는 아니 되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면서 소원한 사람들과 멋대로 가까이하려 해서도 아니 되나니.."
창술 훈련을 하는 선인들, 수업을 듣는 어린 선인들..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 둘은 한 방에 도착한다. 끼이익, 문을 여는 함.
"...그리고 여긴 마고가 머물 숙소!"
"이렇게 커다란 방은 처음이라 잠이 올지 모르겠어요.."
흐뭇한 표정으로 마고를 보는 함. 그는 마고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배는 안 고프니? 난 고픈데.."
"네! 배고픕니다!"
* * *
"부르셨습니까 아밈님.."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고개를 돌린 아밈. 사뭇 놀란 모습이다.
"이런이런.. 각시풀처럼 조그맣던 아이가 어느새 묘령의 여인이 되었구나!"
선비의 이름은 아란, 여나비제이자 으뜸선인이다.
"하시고잔 말씀이.."
"..내 긴히 부탁할 것이 있네만.. ..자네가 맡아줬으면 하는 아이가 있네.."
그 말을 들은 아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선인 양성은 제 소관이 아닌 줄.."
"양성이 아닐세. ..호윌세."
* * *
비자둥우리 대식당, 에졍지.
마고는 비자둥우리에서의 첫 식사를 한다.
"저 아이가 아밈님과 함께 온 아이라며?"
"지금껏 아밈님께 가르침을 받았다나 봐."
"들리는 말로는 음자[4] 라던데?"
"뭐? 진짜?"
"야, 쉿!"
역시 소문이 무서운 법, 그새 마고가 아밈의 숨겨진 자식이라는 낭설이 퍼져 있다. 그때였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떠다니는 말에 살붙이는 꼴이라니.."
에졍지에 나타난 아주와 다이라. 아주는 일그러진 얼굴로 중얼거린다. 둘이 나타나자 방금까지 수군대던 선비들은 슬금슬금 물러난다. 다이라는 아랑곳않고 귓속말로 농담을 한다.
"아주님 정도면 그렇게 작은 것도 아니랍니다!"
"알았으니까 키 얘기 그만해, 정말!"
아주와 다이라가 옥신각신하는 동안, 함은 그릇을 가지고 마고 옆에 자리를 잡는다.
"음식은 입에 맞니?"
"네 맛있어요!"
함과 마고가 대화하는 틈을 타, 아주는 또다시 마고를 공격하려 한다. 후웅, 아주의 손에서 푸른불이 피어오른다.
'이번에야말로..'
'''"아주님!!"'''
깜짝 놀라는 아주. 주위를 훽훽 돌아본다.
"웬 녀석이냐!"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주위는 조용하다.
"분명히 누가 날 불렀는데.. 이상하네.."
그때, 아주의 머리 위에서 등장하는 아란..!! 아란을 발견한 다이라는 순식간에 아주 앞에 선다.
"천하의 아란님이라도 아주님은 못 건드리십니.."
자세를 취해 아주를 보호하는 다이라! 하지만.. 아란은 가볍게 다이라 뒤로 넘어간다.
"..다."
"아주님 좀 빌릴게, 잠깐이면 돼."
무안해져서는 땀을 삐질 흘리는 다이라.
"호들갑은.."
아란이 한마디 덧붙인다.
* * *
"아란선비! 어디까지 가는 거야!?"
아주를 으슥한데 데려온 아란. 아란은 꽝, 하고 아주를 벽까지 밀어붙인다.
"아주님.. 방금 어떤 아이에게 염제의 불을 쓰려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 그게.."
변명해보고자 하는 아주. 하지만 날카로운 아란의 눈빛에 잔뜩 위축된다.
"그, 그래! 쓰려고 했어!! 하지만 그건 알아볼 게 있어 그랬던 거야!"
아란은 이미 한 수 앞을 내다본다.
"그 아이가 아밈 님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아닌지 말입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죠. 그 아인 왕손이 아닙니다. 아니, 그보다 치명적인 아이죠."
"더.. 치명적인.. 아이?"
"그 아이에게 염제의 주력이 닿게 될 경우.. 주력을 발휘한 자의 성장 기운이 모두 흡수되어,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다 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당황하는 아주.
"원정 중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밈님은 그 주력이 적의 손에 들어가 아주님의 성장에 치명적 영향을 끼칠 것을 우려해 이곳에 숨겨두기로 한 거구요.."
아주는 믿기지 않는 듯 외친다.
"거짓말이지!!!! 아버님이 고작 내 키 줄어들 걸 걱정해 이곳에 숨겨 두는 거라고? 우, 웃기지 말라해!"
"정히나 못 믿으시겠다면.. 한번 해보시던지요! 사실 저도 잘 안 믿기는 이야기라 궁금하긴 하네요.. 정말로 왕자님의 성장이 멈추는지.."
아란, 완전히 아주를 가지고 논다. 그 말을 들은 아주는 완전히 넋이 나가버린다.. 아주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온 아란.
"저한테까지 그 이야기를 믿으라는 건 아니시겠죠? 아란님.."
어느새 따라와 엿듣고 있던 다이라, 아란에게 묻는다.
"안 그래도 찾을 참이었는데.. 수고를 덜었군!"
아란은 좋아하더니, 곧바로 다이라의 목을 장난스레 조른다.
"왕자가 사람에게 염공을 쓰려는데도 보고만 있었다 이거지?!"
"전 아주님만을 위해 움직일 뿐, 그 밖의 일은 신경쓰지 않는다구요.."
"그 밖의 일 아니거덩? 이건 아주님을 위한 일이기도 하단 말야!"
화악하고 목을 조르던 팔을 풀어버리는 아란. 다이라는 어지러워한다.
"너, '검'이란 존재에 대해 들어본 적 있니?"
"...'검'...이라면..."
"불귀의 존재로 태어나 신이라 불리운 사람들.. 마고는 그 '검'의 계승자야.."
"계승자라구요?"
"응."
"그 아이가요?"
다이라는 안 믿기는 듯 아란에게 거듭 반문한다.
"그럴리가요.. '검'의 기색이 있었다면 제가 못 알아봤을리 없어요.. 제 눈엔 밤비에 자란 아이처럼.."
"네 가락으론 무리일 수도 있지, 나도 그 아이의 기색을 겨우 알아차릴 정도였으니까"
"그렇다는 건.."
"이제 좀 감이 오는가 보군.. 검의 기색을 숨기는 건 고등의 선인들이나 가능한 일.. 그 아이의 기척은 아밈님께서 가리신거야. '검'의 신비한 능력을 노리는 사냥꾼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말야.."
아란은 경위를 설명해주곤 경고의 말을 더한다.
"당분간 그 아이를 보호하라는 명을 받았어, 그러니.. 너도 아주님이 실수하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을 거야. 살기를 품고 접근하는 녀석은 누구든 변장한 사냥꾼으로 간주할 테니까."
3. 03. 습격
"살기를 품고 접근하는 녀석은 누구든 변장한 사냥꾼으로 간주할 테니까..."
아란의 경고를 들은 다이라, 턱을 손으로 괴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래!"'''
"뭐, 뭐가 그래?"
깜짝 놀라며 다이라에게 묻는 아란.
"걱정마세요! 제가 '아주' 찰거머리가 되겠습니다!"
"재미없거든!! 이 살인귀 녀석!!"
* * *
마고는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다. 마고의 눈은 우주를 담은 듯 반짝거린다.
"자 그럼 새 식구를 소개하지~! 오늘부터 버금선비님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
함의 말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말을 끊는다.
"이름은 마고! 나이는 열 다섯[5] 으로 흰마루 출신. 맞죠?"
슥, 나뭇가지의 껍질을 칼로 벗겨내며 마고의 신상을 술술 읊어대는 아이.
"아밈님께 특별 수련을 받았다며?" "잘 부탁해!"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이 말하는 걸 보니, 아밈과의 관계도 이미 아는 상황이다.
"자.. 잘 부탁.."
그 와중에 노란머리 아이는 마고에게 첫눈에 반했는지, 얼굴이 붉어져서는 말까지 더듬는다.
"에에~ 쉬라 얼굴 빨개졌대요!"
"아, 아냐.."
노란머리 아이의 이름은 쉬라. 쉬라는 빨간 두건 아이가 놀려대자 머리가 뻗치고, 얼굴은 더더욱 붉어진다.
"어떻게 다 알고 있었냔 표정이군. 당연히 알지, 선인들은 귀가 밝은 집단이니까!"
빨간 두건 아이와 쉬라가 그러고 있는 동안, 검은 두건 아이는 당연하다며 마고에게 설명한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본 함, 땀을 삐질 흘린다.
'하여간 귀염성이란 없는 녀석들이라니까.. 쉬라 빼고...'
* * *
달은 밝고 물은 줄기차게 흐른다.
"웜마! 얼마만에 느껴보는 열락이라냐!!"
아란은 욕탕에서의 온욕에 기분이 좋다.
"아밈 님이 오시니깐 물 온도부터 바뀐다야!"
"좀 멋대로긴 하지만 왕은 왕이시니깐요!"
"꼬마선인님들도 언제 또 온욕하시게 될 지 모르니 즐길 수 있을 때 실컷 즐겨두시라구요!"
꼬마선인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아란. 그런데..
"네 선비님.."
꼬맹이들, 애써 답은 하면서도, 부끄러운 건지 무서운 건지 우물쭈물한다. 그걸 본 아란.. 꼬마선인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꼬맹이들, 진땀은 뻘뻘, 눈물은 찔끔..
'''"너희들 너무 귀여운 거 아니니?!"'''
"서, 선비님.. 이러시면 곤란하옵니다.."
아란이 볼을 맞대고 부벼대는 통에, 꼬마선인은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귀여워, 귀여워! 나랑 뽀뽀하자! 우쭈쭈-"
"아란님도 참-!"
"이, 이러시면 고, 곤란.."
같은 시간, 벽 너머 남탕. 한 선비는 건너편 여탕에서 들려오는 시끌벅적한 소리에 주목한다.
'온욕 하나로 이렇게 화기애애해질 수 있다니.. 진작 건의해 볼 걸 그랬나?'
선비의 이름은 뮤울, 버금선인이다. 건너편에서 아란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는..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다른 선비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서, 선비님!"
"어구, 귀여워!"
"가, 간지럽사옵니다!"
"그, 그만!"
"너두 일루와!"
여탕의 시끄러운 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던 갈색 피부의 선비. 점점 열 받는 듯 미간이 찌푸려진다.
"거 쫌 조용히 못하냐니! 가뜩이나 피곤해 죽갔는데! 여기가 무슨 휘휘한 촌락 탕이냐니?"
결국 참지 못한 선비, 몹시 분개하며 빽, 소리를 지른다.
"얼씨구! 간만에 일 좀 하셨나 보지?!"
"내 어제오늘 겁들을 얼마나 짼 줄 아냐니! 자그마치 스무 마리라니 스무 마리!!
"'''뭐시여 시방!''' 기껏 스무마리 가지고 유세 부리는 거여? 난 오늘 하루만 서른 마리도 넘게 잡어부렀어! 알어?!! 여기 안 피곤한 사람이 어딨다고 뒨장질이여 뒨장질이!!"
"어, 어디서 거짓부렁이냐니! 한번 해보자는 거냐니?!"
한참 동안 이어지는 말싸움..
"꼬마선비님들도 계시는데.."
"울이 넌 빠져!"
뮤울은 선비를 말려보려 하.. 지만, 오히려 열뻗친 선비의 버럭질이 돌아오자 주눅들어 훌쩍거린다. 이에 눈에 큰 상처를 가진 동료 선비가 나선다.
"자네답지 않게 왜 이러나, 란이가 성격은 불같아도 이런 일로 허풍 칠 선비는 아니란 거 알잖나..!"
"후우.."
그제서야 조금 진정이 된 듯, 심호흡을 하는 선비.
"자네가 그 놈들을 봤어야 했다니..! 그런 겁들은 난생 처음이었다니. 지금껏 상대하던 놈들관 뭔가 달랐다니.."
"그래도 달고 치고 뺑이쳤을 것 아닌가!"
"뭐.. 그랬다니.."
"들었으면 아란선비도 그쯤 해두시게!"
동료는 선비의 말을 들어주고는 다툼을 중재한다.
"내 특별 안마해 줄 테니 마음 풀게나."
"자네밖에 없다니.."
선비는 특별 안마를 받으며 흥분한 마음을 진정시킨다.
"저래가지고 선승[6] 은 무슨.."
"모든 선비들이 아란님 같진 않으니깐요.."
아란은 아직 화가 덜 풀린 모양이다. 옆의 선비는 약간의 아양을 떤다. 다시 남탕. 동료 선비도 그 말을 듣고 떠오르는 게 있는지, 안마를 하며 골똘히 생각한다.
"녀석들의 움직임이 요새 심상찮긴 했어.. 멧겁[7] 들이 떼로 몰려다니질 않나 밀겁[8] 들이 강에서 출몰하질 않나.."
"서쪽 일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녔나 보군요."
"게다가 그 놈들.."
그때, 선비의 시야에 들어오는 꼬마선인들.. 따뜻한 물에 즐거워하는 꼬마선인들의 모습을 보고선, 그냥 말을 물린다.
* * *
"그럼 앞으로 친하게들 지내려무나!"
"네~!"
그렇게 마고와 친구들의 첫 만남은 이렇게 평화롭게 마무리된다.
싶었지만 바깥쪽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낌세.. 오직 마고만이 그 낌세를 알아챈 듯, 표정이 심각해진다.
"서, 선비님.."
"왜?" "바, 밖.."
"밖.. !?"
뒤늦게서야 알아챈 함.. 놀란 토끼눈이 된다. 그리고 밖에는..
놀란 것은 온욕 중이던 아란도 마찬가지. 아란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음.."
욕탕에 있던 다른 선인들도 겁의 기척을 느낀 듯, 온욕을 중단하고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
"울아, 여긴 네게 맡기마."
"아, 네.."
남탕에서 대화가 오가는 동안, 아란은 급히 가운 하나를 챙겨 달려 나간다.
"이럴리 없어, 둥우리에서 겁들의 기척이 느껴지다니!!!"
* * *
아밈은 뒷짐을 진 채, 떨어지는 꽃잎을 보며 아쉬워한다.
"벌써 지는 겐가.."
그때, 새롭게 나타난 또 하나의 권력자.
"듣고 계시옵니까, 아밈님..?"
현 나랑고스 집정자, 나마자르 2세 달 미르다.
"아밈님이 나르골에 계시단 소문이 영지에 파다하더군요.. 어째서 강령을 따르지 않으신 겝니까?"
"암수들로부터의 위협이 어디 한두 번이었습니까.. 이제는 놀랍지도 않습니다. 남은 생을 그들과 함께 하겠지요.. 제가 진정으로 두려워 하는 게 그들이 아니란 거 아시잖습니까.."
아밈이 고개를 돌린다.
"그보다는 제게 보내셨던 전령의 뜻이 더 궁금합니다만.."
"...보고드린대로 아밈님의 노력에도 불구, 실지[9] 가 더 커지고 있는 실정이지요.."
달 미르는 무언가 속셈이 있는 듯, 잠시 뜸을 들인다. 촛불은 어둡고 적막한 방을 밝힌다.
"하여, '칼리그' 무리의 힘을 빌리고자.."
"'칼리그'? '칼리그' 무리라 하였소..?"
"..그렇습니다만.."
순식간에 표정이 일그러지는 아밈. 달 미르는 태연하게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 * *
"이럴리 없어, 둥우리 안에서 겁들의 기척이 느껴지다니! 게다가 이 방향.. 위험해!!"
아란이 부리나케 달려가고 있는 그 사이, 숙소.
"너희는 물러서 있거라!!"
함은 칼을 빼어 들고 아이들을 겁들에게서 보호한다. 그때, 불룩하고 부풀어오르는 두꺼비겁의 볼때기.. 연두빛의 액체가 겁의 주둥이 밖으로 튀어나온다. 이내, 촤아악하고 뻗어나오는 겁의 기다란 혀. 함의 칼을 한바퀴 감싼다. 칼날은 속절없이 순식간에 녹아내려 반으로 동강난다. 챙그랑 떨어지는 칼날.. 손잡이와 칼날 일부만 남은 칼의 끄트머리에선 희뿌연 김이 피어오른다.
"선비님! 밖에도 겁들 천지예요!!"
"쥐구멍이다! 모두 훈련 받은대로 하는 거야!!"
"아, 알겠습니다!"
"하나, 둘, 셋!"
아이들은 힘을 합쳐 책장을 넘어뜨린다. 뒷쪽 벽의 돌 하나를 두 손으로 꾸욱 누르자 숨겨져 있던 쥐구멍이 나타난다.
"이쪽으로!"
아이들이 대피하는 동안, 함은 단신으로 겁들을 상대한다.
"내가 너무 간단케 봤군."
딸깍, 함은 외투 안쪽에 손을 넣어 칼집의 띠를 푼다.
"이제부터 복잡하게 봐주겠어!"
4. 04. 마찰
"이제부터 복잡하게 봐주겠어!"
칼집을 빼어 든 함, 결의를 다진다. 눈을 꿈뻑이는 겁. 우웅, 연두빛 눈동자가 빛난다. 또 다시 한번 덮쳐오는 겁의 혀. 함은 칼집을 휘둘러 혀를 쳐낸다. 이어지는 겁들의 공격. 함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겁을 바라보며 손에 힘을 모으더니, 그대로 겁의 배때지에 꽂아넣는다. 쿵, 쿵. 요란스런 상황. 근데.. 무슨 일인지, 마고와 쉬라는 아직 대피를 하지 못한 상황이다.
"선비님!!!!"
"복잡하구만!"
혼란스런 틈을 타 겁은 또 한번 쩌억 아가리를 벌린다.
"그렇겐 안되지!"
겁과 아이들 사이를 가로막는 함. 함의 등 뒤에서, 마고는 쉬라를 껴안아 보호한다. 그런데, 그 순간.. 등지고 선 함과 마고의 사이에서 작은 기운이 치직거린다. 그리고..
'''콰광''', 폭발이 일어나고야 만다.
마침 아란이 부리나케 달려 숙소 건물 앞까지 도착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 * *
같은 시간, 아주는 숙소에서 숙면 중이다. 콧방울을 불리고 침을 흘리며, '아주' 잘 자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쾅'''하는 폭발음에 아주의 달콤한 잠은 그걸로 끝. 아주는 다크서클 짙은 쾡한 눈을 뜨고는, 비몽사몽 일어나려 하는데..
"일어나셨군요!"
갑자기 화악 나타난 다이라!
"다, 다이라?!"
미처 피하지 못한 둘, 이마를 박고 아파한다.
"다이라! 이게 무슨 짓이야!"
아주가 화내는 소리에 잠에서 깨버린 같은 방의 선인들도 한소리 한다.
"다이라님.. 속옷바람으로 여긴 웬일이십니까.."
"아주님과의 긴간[10] 이라면 밖에 나가서 좀 해주세요.."
한숨을 푹 내쉬는 아주.
"그래, 네가 뭣 때문에 내려왔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가서 얘기하자.. 으뜸선인이라도 지킬 건 지켜야지.."
아주는 다이라의 손목을 잡고 밖으로 데려간다. 그런데, 다이라의 손목에서 느껴지는 미끌거리는 감촉. 이상하게 여긴 아주는, 어둠 속에선 보이지 않던 상처 투성이인 다이라를 그제서야 본다. 머리를 긁적이며 바보 같이 실없이 웃는 다이라.
"뭐, 뭐야 그 꼴은?!"
곧이어 복도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아주. 복도에는 겁 떼가 죽어있다..!!
"..이 무슨!?"
"..가, 갑자기 녀석들의 기운이 느껴지길래.."
"그럼 바로 날 깨웠어야지!!"
"..혼자서도 충분했는 걸요...? 게다가 주무시는 아주님을 깨우고 싶지 않았.."
"비자둥우리에 겁이라니 이게 어디 보통 일이야? 선비로서의 자각이 왜 그리 없어?!"
그러나 아주바라기 다이라에게 그런 말이 먹혀들리가 없었다.
"보통 일이 아니니까요."
아주는 뭔소리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당신을 지키는 것!! 제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자 기분이 상한 다이라.. 급히 자리를 뜬다.
"아주님 바보! 멍게!! 말미잘!!!"
"다이라!!"
하도 시끄러웠던지, 아주와 같은 방을 쓰는 선비 중 하나가 문을 벌컥 열고 나온다.
"거 시끄러워 죽겠네! 저희 새벽부터 수업 있단 말예욧!!"
불만을 표하더니.. 찰박거리도록 고여 있던 피를 밟고는 거품을 물고 기절한다. 그리고 아주는 다이라의 뒷모습을 보며 복잡오묘한 표정을 한다.
* * *
아밈과 달 미르가 대화 중인 방에, 사람 하나가 급히 들어온다.
"지, 집정자님! 겁들이 비자둥우리에!!!"
몹시 놀라는 아밈.
"겁들을 몰아내기 위해 미지가 된 자들을 불러들이잔 말씀이십니까?! 참으로 무모하십니다."
"아밈님에게 다른 방도가 있다면 저도 좋겠습니다만.."
달 미르는 특유의 기분 나쁜 눈웃음을 지으며 도발한다.
"이미 남은 세 왕에게도 자신의 뜻을 전했습니다. 곧 그에 대한 답신이 올 터.."
달 미르의 서신을 쥔 새는 어둔 밤하늘을 가른다.
"..달왕이시여, 더는 더 이상 왕국이 겪는 재난이 아닙니다."
달 미르의 표정은 꽤나 엄숙하다.
"..전쟁입니다."
5. 05. 겁두령
"음음음~♪"
흥겨운 콧노래가 들려오고, 짙은 피부색의 다리 하나가 흔들거린다. 뾰족한 발톱과, 발목의 장신구가 금빛으로 반짝인다.
"심심해♪ 심심해♬ 기다리는 건~♩"
마치 짐승같은 귀와 꼬리를 가진 소녀.. 입은 옷조차도 이질적이다. 이방인인 걸까? 소녀는 고목의 가지에 앉아 콧노래를 부르다, 파앗 땅바닥으로 뛰어내린다.
"심심.. 해!!!"
다짜고짜 고목에 대고 발길질을 해대는 소녀. 고목은 힘없이 쓰러진다.
"왜 이렇게 늦는 거야.."
소녀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다. 그때,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두꺼비겁.. 그렇다. 이 소녀, 이번 사태와 긴밀하게 연관된 인물이었던 것이다.
"오오! 드디어 왔구나!! 그래그래.. 물건은 찾아왔니?!"
소녀는 겁의 등짝을 팡팡 두들겨대며 묻는다. 그때,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또다른 존재.. 욕탕에서 온욕 중이던 선비다. 맞다. 눈에 큰 상처가 있고.. 안마를 잘하는 그 선비다.
"미안하게 됐군.. 내 녀석의 뒤를 좀 밟았지.. 각오하는 게 좋을.."
"묻잖아!!!! 찾아왔냐니까?!"
소녀, 선비의 말은 가볍게 씹어버린다.. 겁은 안절부절 못하며 구르르 울어댄다. 그걸 들은 소녀.. 온몸에서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뭐? ..못찾고.. 그냥 돌아왔다고?"
위험함을 느낀 선비, 곧바로 칼을 빼어든다.
'이 녀석..!'
* * *
아란, 마고가 무사한 지 확인하기 위해 급히 숙소로 올라 간다.
"마고야!!!"
하지만 아란의 눈 앞에는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폭발로 생긴 커다란 구멍만 있을 뿐. 뭐, 그런 줄 알았지만.. 덜그덕, 바닥의 목재가 움직이더니.. 이윽고 목판을 뚫고 나타나는 함!
"휴.. 죽을뻔했네."
함은 소매 윗부분의 먼지를 손으로 털어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피투성이 얼굴로 아란과 눈을 맞추는 함..
"함?"
무척이나 놀란 듯, 아란의 눈은 동그래진다.
* * *
"괜찮을까요? 이 아이들.."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은 것 뿐.. 괜찮을 겁니다"
푸른빛으로 가득한 신비로운 공간에서, 아란은 늙은 선비와 대화를 나눈다. 그러는 동안, 바깥에서는 아밈이 한 병사에게 보고를 받는 중이다.
"아뢰기 송구하오나 내림뜰에 낀 짙은 안개로 수색에 차질을 빚고 있다합니다.."
그때 누군가 다급하게 아밈을 부른다.
"아밈님! 지금 막 겁들에 대한 조사를 마쳤습니다!!"
지금까지 등장한 인물들과는 다른, 특이한 외형. 녹망이자 울림선인인 바르 바눔이다.
"잘하면 이 녀석들의 산성타액과 질긴 혀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요!"
아밈은 음음 헛기침한다.
"... 제가 부탁드린 건 알아 보셨는지요.."
"...에?"
바르 바눔은 잠시 머리 속이 하얘진다.
"아아!! 그럼요 그럼요! ..말씀대로 기척을 가리는 건 놈들의 타고난 기질이 아니었습니다요.. 보건대 누군가에 의해 덧 씌워진 힘이 틀림없습니다요!"
바르 바눔은 짧은 팔을 휙휙 저으며 열성을 다해 설명한다.
"아시다시피 이런 일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이는 누리에 몇 안되지 않습니까요.. 감이 오시지요?"
그때, 또 다시 누군가가 아밈을 부른다. 함이다.
"아밈님..!"
"오! 내 안 그래도 자넬 지금 찾으려던 참일세! 따라오시게. 이곳은 조금 소란스러운 듯 하니.."
* * *
"알고 계셨던 거로군요.."
쏴아아아 폭포 소리가 우렁차다.
"마고에게.. 그런 힘이 있었으리라곤.."
"..그 아이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네.. 나랑고스의 선인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지."
같은 시간, 아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침대에 뉘인 마고를 보고 있다.
"검의 힘이란 헤아릴 수 없이 오묘한 것.. 힘을 발현한 자 스스로 깨우칠 수 밖엔 없다네. 그 때까지 이곳에서 선비들의 보호를 받게 하려 했네만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듯 하이, 잠든 '검의 힘'이 '선인의 힘'에 영향을 미칠 줄이야.. 이러다간 보호는 커녕 자네들까지 위험해지겠어."
"'선인의 힘'이 문제 되는 것이라면.. 무단 할 수 있는 이가 한 명 있긴 있습니다. 근간의 '힘'을 쓰지 않고도 실력이 뛰어난, 정확하게는 '힘'을 다루지 못하는 선인이지요. 그 때문에 버금선인으로만 머물러 있어야 했던.."
함이 추천한 인물은 바로.. '''뮤울'''이었다.
* * *
"뮤울 이 녀석! 빨리 뛰어오지 못해?!"
"가, 갑니다요."
"아주님, 다이라님과 오신 게 아닙니까?"
"뭐 그렇게 됐네. ...그보다. 간밤, 비자둥우리에 겁들의 습격이 있었다네. 다행히 큰 피해 없었지만.."
그 말을 들은 한 선비, 아주의 어깨를 잡고는 마구 흔들며 묻는다.
"제 동생! 제 동생은 무사한 겁니까? 왜 말이 없으신 겁니까!! 아주님!!"
후드 아래로 진하게 낀 그림자에도, 선비의 글썽이는 눈매가 또렷이 보인다.
"..설마 제 동생이.."
아주는 잠자코 손에 불을 켠다. 손을 선비의 옆구리에 가져다대자 하늘에서 푸른불이 선비의 몸에 번개처럼 내린다. 그리고.. 선비는 그대로 기절한다.
"일어나면 동생을 볼 수 있을 게다."
병사들에 의해 질질 끌려가는 선비. 그를 뒤로 하고 아주는 제 갈길을 간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아주는 선비 4명을 대동하여 뜰로 들어간다.
"어째 한 녀석도 보이질 않지?"
"경비대장 말로는 어젯밤 이후로 겁들이 뜰에서 종적을 감췄다 합니다."
"혹시 보복이 두려워 숨어버린 게 아님메?"
'숨는다고? 그놈들이? 아냐.. 분명 뭔가..'
"오늘은 틈새로 좀 더 들어가봐야겠네.."
"저희들끼리 말입니까요?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집정자님께서 테라부락 아새끼들도 모자라 칼리그 무리까지 불러들이려 한단 말이 있슴둥. 이럴 때일 수록 우리가 뭐라도 가져가야 안캇슴메?"
"암만 그래도 그렇지 수리 한무리론 무립니다!"
"깊이 들어가지 않을 테니 걱정 말게.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 그러니.."
그때, 누군가 아주를 큰소리로 부른다.
"아주니이임~!!"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돌아보는 아주. 아주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이라?"
해맑게 웃으며 흔들흔들 손을 흔드는 다이라. 표정과는 다르게 죽기살기로 달려오고 있는데.. 그 뒤엔.. 연두빛 두 눈을 밝게 빛내는.. 초대형 겁이 따라오고 있었다..!!
6. 06. 출정
"뭐, 뭐야 저게!!!"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경악하는 선비들. 겁은 걸어다니는 나무 같은, 기괴한 모습이다. 선비들의 얼굴을 따라, 비내리듯 땀이 주룩주룩 흐른다. 침착한 것은 오직 뮤울 뿐.
"아하하하하!"
"오, 오지마!!"
해맑게 웃으며 겁을 끌고 오는 다이라. 선비들은 줄행랑을 친다.
"진정들 못해?! 덩치만 컸다 뿐이지 느껴지는 이지[11] 는 형편 없잖아!!"
아주는 얼빠진 선비들을 다그친다. 그때, 기발한 발상이 뇌리를 스친다.
'가만!? 이지가 느껴진다는 건 얼이 있다는 뜻! 이놈에겐 염제의 불이 통할지도 몰라!!'
아주는 입을 앙다물고 두손을 가슴 앞에 모아 깍지를 낀다. 그리고.
"쏟아져라!!"
아주의 눈이 푸르게 빛나고, 깍지 낀 손에 화륵, 푸른불이 일렁인다. 이내 아주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여러 갈래의 푸른불들이 겁을 향해 달려나간다. 이름처럼, 마치 소나기와 같이 말이다. 그대로 시원하게 겁을 관통하는 작은 불들. 불들이 지나가자 겁은 푹 고개를 숙이더니 곧바로 잠잠해진다.
"머, 먹혀든 겁메?"
긴장한 채 질문하는 선비. 하지만.. 드드드드드드, 겁은 금세 눈을 뜨고야 만다. 겁은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며, 분노에 가득차 포효한다.
"성질만 더 돋괐잖슴메!!"
'잠시 발을 묶는 정도인가.. 얼이 너무 쥐콩만해!!'
커다란 팔을 들어올리는 겁. 겁은 땅바닥을 내리치고, 선비들은 피하기 급급하다.
"아주님! 저희가 금방 응원군을 불러오겠습니다!"
"한 놈만 가지 왜 다 가는 건데?!""
기겁하던 선비들은 핑계를 대면서 내빼기 바쁘다.
"다 안갔는뎁쇼.."
아주의 말을 듣고는 자신도 있음을 말하는 뮤울. 그 옆에는 다이라가 빙긋 웃고 있다.
"울! 경비대로 가 노포를 준비해줘, 다이라랑 내가 시간을 벌어볼테니.."
"..하지만.."
"빨랑 안 가?!"
"가, 갑니다요."
뮤울과 아주가 실랑이하는 동안, 먼저 자리에서 피한 선비들 셋은 멀찌감치서 겁과 싸우는 아주와 다이라를 지켜보고 있다.
"저렇게 덩치 큰 녀석은 처음이꼬마! 저 두 분이서 괜찮겠슴둥?"
"된걱정 말라야. 아금박스런 호흡으로만 치믄 저 두 사람, 둥우리선 왕땅이니까니!"
* * *
"자네들은 '사나사이'로 가줘야겠네.."
"'사나사이'라면.."
"제국의 서쪽에 있는 구방[12] 말일세. 잘하면 그곳에서 이번 습격의 배후를 알아낼 수 있을 게야."
아밈은 함과 아란을 불러, 출정 임무를 지시하나 아란이 반박한다.
"... 울이가 검의 호위를 맡는 덴 이견이 없습니다만 이번 습격에 대한 조사는 이미 하눌동인[13] 들께서 하고 계시잖습니까..? 저희들까지 나서야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 검의 힘을 숨기기 위해 유랑한지도 열 해.. 하지만 잃은 것도 많았어... 내가 없는 동안 나르골도 변했다네. 자네들에게 이 일을 맡기는 이유.. 그건 내가 아직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야.."
그리고 또 다른 이유를 덧붙이는 아밈.
"나랑고스 밖에서 이루어지는 하눌선비들의 활동은 모두 집정관님의 인가를 필요로 한다네.. 하지만, '''자네들은 아니거덩!'''"
아밈은 호탕하게 웃는다.
"사나사이는 학술적 이유로 견습을 떠나는 거라 기록될 걸세.."
"뭐.. 못 믿는다 못 믿는다시면서도 저흰 믿는다 이 말씀이신 건가요?"
"'''난 자네들도 안 믿네!''' 출중한 실력은 의심치 않네만 그건 다른 종류의 믿음이고..."
아란과 함은 아밈의 대답에 약간 어이없는 듯하다.
"그러시면서 저희에게 왜 이리 막중한 일을 맡기시는 건데욧!!"
"자네들은 원래 내 말도 잘 안 들었잖은가! 때문에 누구의 말도 안 들을 것 같았거든..!"
어째어째 정리가 되었는지, 두 선비는 바깥으로 나온다. 아밈은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일종의 걱정어린 조언과 축복을 한다.
"...모르긴 해도 이번 일은 자네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 될 걸세, 명심하게.. 적은 결코 밖에 있지 않아.. 선비로서 항상 자세를 바로하고 세상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시게!"
그때, 바르 바눔이 아밈 옆에 다가온다.
"남다른 재주들을 지녔다곤 하지만 어디까지나 으뜸인.. 저는 조금 걱정입니다요."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부정 당하고 자신의 신념이 시험대 위에 섰을 때,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곤 오직 본능에 의한 감 뿐이지요.. 하눌동인에 비해 경험이 적을진 모르나 육감만큼은 타고난 녀석들입니다. 이건 제 감입니다만 이번 일은 경험보다 그런 감각을 더 필요로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두 선비를 걱정하며 바르 바눔과 아밈이 대화하는 동안, 두 선비는 떠날 채비를 한다. 두 선비는 아밈과의 대화를 되새긴다.
"이시간부로 자네들은 하눌동인일세!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말야.."
"비공식이요? 저희 그냥 으뜸선인 하겠습니다."
"차라리 행운이나 빌어주세요.."
"... 고맙네.."
"맡겨주십쇼!"
* * *
삐이이익. 날선 소리가 창공을 가른다.
"다이라! 철수다!!"
"네!"
땀을 뻘뻘 흘리는 둘. 다이라는 대답하기도 벅찬 것 같다. 하지만 겁의 공격에 철수는 만만치 않고.. 다이라는 겁의 주먹질을 간신히 피한다.
"다이라!!!!"
"전 괜찮.."
그때, 땅바닥을 뚫고 튀어나온 나무뿌리가 다이라의 발목을 휘감는다. 아주가 급히 달려가 뿌리를 칼로 끊어내지만, 고개를 돌려보니 겁의 주먹이 닿기 직전..!! 겁은 후웅, 주먹을 올려친다. 그렇게 당한 줄 알았으나.. 다행히도 아주는 다이라와 함께 몸을 피하는데 성공한다. 빛과 같은 속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 아주님.."
"이 언덕만 넘으면 돼, 기운 내라구!"
쿵, 쿵, 쿵. 겁의 묵직한 발걸음에 천지가 요동친다. 그 앞에서 다이라와 아주는 남은 힘을 쥐어짜내 경비대를 향해 달린다.
"나타났다! 거대 겁두령이다!!"
"머리를 조준해! 무게중심을 흩트리는 거다!"
아주의 말에 노포의 끝은 끼릭끼릭 움직여 겁의 머리를 겨눈다.
"지금이야!!"
'''꽝''' 병사가 망치를 내리친다. 날카로운 화살은, 매서운 기세로 겁에게 향한다.
7. 07. 꿈
"맞아라!!!"
빠각! 선비들의 염원대로 화살은 겁의 머리에 기분 좋게 명중한다. 겁은 균형을 잃고 뒤로 나자빠진다.
"다이라!" 아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이라에게 신호한다.
아주와 다이라, 힘을 합쳐 겁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린다!
* * *
폭발로 정신을 잃었던 마고. 악몽이라도 꾼 듯,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일어나셨군요. ...악몽이라도 꾸신 겝니까?"
"여, 여긴.."
"...둥우리에 있는 '푸른 고야'입니다. '푸른 궤'라고도 하지요. 닻별이 뜬 뒤에도 닻별이 진 뒤에도, 항상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는다 하여 그리 불렀다는데.."
늙은 선비의 설명대로.. 이 곳, 신비로운 푸른 빛으로 가득찼다.
""자 받으세요, 천천히 씹어 드시면 기분이 한결 좋아질 겝니다.."
"가, 감사합니다"
선비가 권한 환약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마고. 이내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감탄한다.
"약력만큼이나 향이 좋지요, 그래도 많이는 못 드립니다. 만드는 과정도 힘들지만 약재 구하긴 더 힘들어서요.."
"그런데 제가 악몽을 꾼 걸 어찌.."
"일렁이는 힘이 악몽을 꾸는 자와 같았기 때문이지요"
마고는 자신이 꾼 악몽을 설명한다.
"지독한 꿈이었답니다. 불에 휩싸인 백목[14] 이 살려달라 울부짖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어요.. 무서운 건 나무가 소리칠수록 불길이 거세지는 거에요.. 그 광경이 너무나 끔찍했지만 저는 아무것도.."
마고, 고개를 푹 숙이곤 말을 잇지 못한다. 늙은 선비는 마고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흉몽대길이 아닐까요? 뛰어난 선인은 흉몽도 길조로 만들어버리는 재주가 있다지요. 마고공이 지닌 섬세한 감성은 뛰어난 선인들의 자질 중 하나, 어떻습니까, 주어진 운명까지도 조정할 수 있는 동인[15] 이 되어보는 건.."
그 말을 들은 마고, 묘한 표정을 짓는다.
"물 좀 드릴까요?"
"네!"
* * *
함과 아란은 횃불을 들고 어둔 길을 나아간다.
"쥐구멍[16] 이란 쥐구멍은 모조리 꿰고 있다 생각했는데 에졍지 밑에도 있었을 줄이야.. 이거, 옛날 생각 절로 나는구만"
함은 감회가 새롭다. 둘의 앞에는 물이 졸졸졸 흐른다.
"...쓸데없는 생각은 안하는 게 좋아, 임무에나 집중하자고.."
"갈 길도 먼데 좀 낭창하게 가면 안되나? 호흡을 맞추는 것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난데.."
"호오, 선비님은 호흡을 입으로 맞추시나봐요"
'이 녀석! 대놓고 비아냥거리기 시작했어!!'
아란의 도발에 함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함은 분을 속으로 삭힌다.
'...하긴, 차가운 불악귀보단 얄궂은 불악귀가 더 낫겠지.. ...아닌가..?'
함은 나름대로 위안을 삼아보지만, 썩 좋은 위안은 못 된 것 같다.
"집정자님께도 알리지 않은 비공식 임무.. 사태 수습을 명목으로 둥우리 내 모든 훈련을 취소하고 으뜸선인들을 재편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출구가 하나 뿐인 비밀탈출갱도로 두 선인을 은밀하게 내보낸다라.. 그럼 뻔한 거 아냐?"
"물론, 뻔하지"
그때. 갑자기 아란은 손에 선힘을 모으고, 함은 단검을 빼어든다. 함은 단검을 날린다.
"우욱"
매복 중이던 추격자의 어깨에 단검이 꽂힌다. 추격자는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떨군다. 아란, 때를 놓치지 않고 그 또한 선힘을 써 상대를 공격한다.
"끄아악"
어깨에 꽂힌 단검은 추격자의 어깨를 관통해 땅바닥에 박힌다.
"이, 이 놈들 어떻게.."
"기척을 가린다고 고기 비린내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거든."
"뭐라?"
"아밈님께선 꼬리가 붙을 걸 알고 계셨지.. 근데 그 많은 갱도 중 왜 하필 에졍지에 있는 갱도였을까..? ...숯으로 처리된 비자수리들의 의복은 냄새가 잘 배지 않아 매복이나 추격에 용이하지만, 되려 그런 장점 때문에 주변의 냄새나 환경을 살피는 덴 나태해지기 쉽지. 보통의 경우 흩어질 냄새지만 그곳이 차갑고 습한 물줄기가 흐르는 밀폐 갱도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함은 추격자의 실수를 요모조모 낱낱이 비판한다.
"...자 그럼 이제 복면을 벗고 정체를 밝혀 주실까?"
추격자는 얼굴을 찡그린다.
"그깟 냄새 좀 맡았다고 잘난 척은.."
추격자, 품에서 호리병 하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옛정을 생각해 곱게 보내주려 했더니만, 스스로 명을 재촉하겠다는데야 할 수 없지!"
적잖이 놀라는 아란과 함. 추격자의 온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어이 어이, 농담이지? 사람이 겁으로 변했다는 이야기 따위 들어본 적 없다구!"
8. 08. 최고의 서포터
겁은 끝이 갈라진 뱀혀를 날름거린다. 주먹을 꽉 쥐고서 겁을 노려보는 둘.
"사람이 겁으로 변했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 없다구!"
함은 당황하지만.. 아란, 어느새 짐보따리를 내려두고 겁에게 달려든다.
"그렇게 막 뛰어들고 보는 게냐! 무섭지도 않나?"
함은 더 당황하면서 결국 자신도 짐보따리를 내던진다.
'...이러면, 복잡하게 싸울 수 밖에 없잖아!!"
* * *
"모, 몸은 좀 어때?"
"괜찮아!"
마고의 병문안을 온 아이들. 쉬라는 얼굴을 붉히며 마고에게 묻는다. 다행히도 마고의 상태가 좋은 듯하다. 마고의 머리 뒷편으로는 개미가 줄지어 지나간다.
"네가 쉬라를 끝까지 지켜줬다며? 보기보다 제법인 걸?"
"그, 그렇지도 않아.. 함 선비님이 막아주지 않으셨음.."
검은 두건 아이가 칭찬하지만, 마고는 겸손하게 답한다. 그때였다.
"오오, 있다 있어!"
한 무리가 아이들 앞에 나타났다.
"..듣자하니 너희 방에만 겁들이 들었다면서? 누가 이비[17] 들 방 아니랄까봐.."
"애기, 저리 꺼지지 못해?! 여기서 소란 피우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무리가 등장하자 빨간 두건 아이는 무척이나 적대적인 태도로 대응한다.
"진정하라구! 황인들한텐 볼 일 없으니까 말야.."
"뭐얏?!"
말하는 것을 보아, 애기란 이름의 이 선비는 선인善人은 아닌 것 같다.
"적당히 좀 하지..? 선민들 앞에서 개망신 당하고 달랠 곳 없어진 네 맘은 알겠다만.."
듣다못해 침대에서 일어나는 누군가..
"그렇다고 너무 안달하지 마라. 못다 한 승부는 한겨룸터[18] 에서 확실하게 내줄 테니"
그는 다름아닌 버금선인 하랑이다.
"괜찮겠어? 무리하다 또 궤 신세 지게 되면 어쩌려고 그래?"
"너야말로 내 걱정할 시간에 수리 품는 연습이나 더 하는 게 어때? 저번처럼 꼴사납게 매달려서 구경거리 되지 말고 말야.."
애기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꼴찌 수리패 주제에 큰소리는! 어디 또 지고도 그렇게 큰 소리칠 수 있는지 보자구!"
애기와 그 무리는 자리를 뜬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칫하는 애기.
"아..! 그리고 말야.. 얼굴에 새겨진 그 '힘의 인', 꼴찌 패가 달고 다니기엔 너무 과한 것 같지 않냐? 아무리 니 아비가.."
이불이 펄럭인다. 순식간에 박차고 나가 애기의 멱살을 움켜쥐는 하랑.
"저 자식 저러다 상처 벌어지겠어!"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상황에 시우는 하랑을 걱정한다.
"뭐야.. 시합 전까지 힘 아끼자는 거 아녔어? 아니면, 여기서 한번 얼러볼까?"
"거기!! 너희 지금 뭐하는 거야?!"
둘 사이의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지려는 찰나, 다행히도 한 선비가 나타나 아이들을 다그친다.
"애기! 그냥 가자, 걸리면 이거 출전 정지 감이라구..!"
"이놈이 이걸 놔줘야 가지.. 안 그래? 아님 같이 정지 먹던가"
그 말을 들은 하랑은 부들부들 떨더니 멱살을 놓는다.
"그럼, 또 보자구 이비들~!"
거만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자리를 뜨는 애기. 그때였다.
"읅!"
애기, 바닥에 엎드려있던 마고에 걸려 넘어져 버린다.
"개미.." "마고?!!"
그렇다. 개미들이 마고의 보호 아래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저 녀석 언제 절로.."
"너 이자식!! 나중에 개미로 죽을 때까지 때려줄 테다!"
머리 위에 혹이 퉁퉁 부어오른 애기. 마고에게 화를 내고는 급히 도망간다.
"거기 안 서!"
"..누가 빈 수레들 아니랄까봐 요란하긴.."
아이들을 다그친 선비는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애기네 무리의 뒷통수에 대고 외친다. 그리고 하랑이 그 옆에서 한 소리하자 날카로운 눈으로 훽 돌아보는 선비.. 하랑은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발걸음을 옮긴다.
"너희들도 그래.. 뛰어다니거나 하면 안된다고 그렇게 일렀건만.."
선비는 마고와 하랑을 앉혀놓고 나무란다.
"그, 그치만.. 개, 개미들이 도망쳐야 한다고 그랬는걸요? 땅에서 어, 엄청 크고 무서운 구렁이가 나왔다고요.."
마고의 말을 들은 선비의 표정이 오묘하다.
"선비가 거짓말로 둘러대면 못 써요! 또 그러면 그땐 숨도 못 쉬게 해줄 거야!"
"으익!! 거짓말 아니란 말예요!"
선비는 마고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알고, 귀여워하면서 꼬옥 안아버린다.
"그럼 오늘은 회복하는 데만 집중하도록~!"
"저, 저도 거짓말 잘 합미다요!"
"쉬라! 도와줘!! 오빠 눈에 또 딱정벌레가 왔다 갔다 하나 봐!"
* * *
부웅, 겁의 날카로운 손톱이 다가오자 아란은 허리를 젖혀 공격을 피한다. 이어서, 몸을 팽이마냥 회전시켜 칼을 휘두르는 아란. 아란이 착지하자, 잘린 겁의 오른손이 털썩 떨어진다.
겁은 아랑곳 않는 건지, 곧바로 다음 공격을 시도하지만 함이 재빠르게 아란에게 달려들어 위기로부터 구해낸다. 하지만, 아란은 한 수 위. 그 와중에 바닥에 있던 선검을 쥐고 올려쳐.. 겁의 대가리를 베어버린다.
함이 세게 달려든 탓에, 함이 아란을 껴안은 채로 데굴데굴 구르는 둘. 속도를 이기지 못한 탓에 함이 갱도 벽에 머리를 부딪히고 나서야 멈춘다. 함은 머리를 부여잡고 아파한다. 근데.. 함 아래에 아란이 깔린 것이, 영 민망한 자세다.
어쨌든. 아란은 함의 목을 두 손으로 감싼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하는 함..
"..함.. 그대로 있어.."
함의 얼굴은 붉어지고 심장은 콩닥콩닥 뛰는데..
"끄악!"
사실 겁의 대가리를 치고는 놓쳐버린 선검 때문! 선검은 함의 머리 바로 왼쪽에 떨어진다.
"칼자루 간수 똑바로 못혀!?"
"그러게 누가 그렇게 세게 밀치고 들어오래?"
함은 불같이 화를 내지만, 아란은 무심하게 먼지를 탁탁 털어내며 의연한 태도로 응수한다.
"인~마! 네 치다꺼리 하다 그런 거 아녀!"
콧방귀를 뀌는 아란.
"혼자서도 충분히 피할 수 있었거든?"
'이 복잡한 상황에? 고수도 아니고..'
하지만.. 시선을 돌려보니 그 생각은 헛된 것이었다..
"뭐여!! 이 녀석 목은 언제 떨어진겨?!"
9. 09. 해체작업
아란과 함은 겁을 불사른다.
"이를 어쩐다.. 진실을 밝혀줄 물증이 사라져 버렸으니.."
"겁으로 변하는 순간 회유도 추궁도 이미 끝난 거였어. 작은 거에 너무 신경쓰지 말자구.."
아란은 걱정하는 함의 부담감을 덜어준다.
"그건 그렇고.. 너 그렇게 담방거리다 제 명에 못 산다?"
"걱정인지 비아냥인지.."
아란은 칼을 칼집에 다시 넣는다.
"변태 중일 때의 틈, 상기[ㄱ] 를 놓쳐버린 이상 태세를 갖추기 전의 틈, 중기[*ㄱ ]라도 잡아야겠기에 움직였던거야."
칼집과 코등이가 맞물리며 경쾌한 소리가 난다.
"예전의 그 말괄량이가 아니라구.."
자신을 쳐다보는 아란의 시선에, 함의 얼굴은 잠시 붉어진다. 하지만 곧바로 정신을 다잡는 함.
"혼자 중기를 구하는 것보다는 두 사람이 하기[*ㄱ ]를 도모하는 게 훨씬 안전하다 사료되오만..?"
'너만 배웠냐? 나도 으뜸선비라 이거야!'
나름 으뜸선비로서의 체면을 살려보려 하는 함. 하지만, 아란의 답은..
"누굴 믿고?"
함은 그 답을 듣고는 눈을 질끈 감는다.
'나는 못 믿는다 이거냐.. 예나 지금이나 독불여장인 건 여전하구만..'
그때였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겠지? 고마워, 함!"
"어? 어, 어어.."
아란은 얼굴에 옅은 홍조를 띄우며 감사를 표한다. 그거 하나에, 함은 금세 헤벌레해진다.
* * *
나르골 성문, 병사들은 무언가를 보고선 크게 놀란다. 그들의 시선 끝에 있는 것은..
다름아닌 아주다. 아주는 정좌로 앉아 선정인을 맺은 채, 온몸으로 불을 발산하고 있는데.. 아주가 앉은 곳은 바로, 거대한 겁의 산산조각난 사체였다!
"문을 여시오~! 십 년 치 땔감을 구해왔소이다~!!"
'자기가 구한 것도 아니면서 큰소리는..'
겁과 마주치자 내빼기 바빴던 선비들 중 하나는 마치 제가 잡은 듯, 의기양양하다.
"가, 가서 집정자님을 뫼셔오게!" "예, 옛!"
"성문을 열어라!!"
* * *
아밈과 달 미르는 나르골에 입성한 겁의 사체를 보며 놀란다.
"어마어마하네요.."
"만일에 대비해 아들 녀석이 놈을 붙잡아 둘 겁니다."
"아주공이 수고가 많군요.. 이런 녀석들이 주변을 배회한다고 생각하면 편치가 않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누리의 선인들이 이 땅을 지키고 있는 한 왕국은 안전할 겁니다."
"그런가요?"
"...예?"
아밈이 어리둥절해하며 묻는다. 달 미르는 특유의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럴 거라구요!"
그때. 겁의 사체 사이에서 바르 바눔이 뾱, 모습을 드러낸다.
"아밈님! 이거 이거, 울그루 숲의 걸음나무가 틀림없습니다요!!"
바르 바눔은 아밈에게 관찰 결과를 보고한다. 약간 흥분한 듯이, 두 팔을 양옆으로 쭉 펴면서.
"헌데 이상한 일이죠.. 울그루 숲에는 갈라진 틈이 없는데 말이죠"
바르 바눔은 턱을 괴고 고민한다.
"그럼," 달 미르가 입을 연다.
"확인해보는 수 밖에요."
그의 표정은, 방금과는 달리 무척이나 냉철하다.
* * *
다이라는 불을 발산 중인 아주 옆에, 양손으로 턱을 괴고 엎드려 있다.
"아주님!"
"왜?"
"이거요오~ 둥우리에 있는 선비님들 다 나와 거들어도 이틀은 걸린다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이놈 일어나서 우거질 거 생각하면 불 짜는 건 일도 아니래요~ ...배는 좀 고플지도.."
아주는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며, 다이라를 보지도 않고 대답한다.
"그래도 이렇게 오래 쓰시는 건 처음 아니신가요?"
"말 시키지 말래요, 배꺼진대요.."
"그럼 밥 갖다 드릴까요?"
"아서라.. 너 거기서 한 발치만 더 오면 똥되는 거 알지?"
아주는 조금 힘겨운 듯, 땀을 조금 흘린다.
"내가 그렇게 걱정되면 가서 해체하는 거나 돕던가.."
"음.." 다이라는 잠시 고민한다.
"아!"
그러다 이내 답을 찾고는, 밝은 표정으로 폴짝 뛰어내려서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그런 다이라를, 곁눈질로 바라보며, '뭔 생각인건지..' 라 생각한다.
* * *
"얘들아! 얘들아!"
푸른궤를 가득채우는 소리.
"엄청엄청엄청난 일이 지금!!!!"
검은 두건 아이는 무척이나 흥분한 상태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선비가 엄청난 일을 알릴 땐 어떻게 알린다 배웠더라...?"
하랑은 그가 행동을 바로 잡게끔 냉정히 말한다. 이에, 검은 두건 아이는 땀을 삐질 흘린다.
"은밀하게, 신속하게, 정확하게.. ...고맙다, 덕분에 정신 차렸다"
"오빤 그래서 으뜸선인이 못 되는 거.."
"아니거든~ 나르못[19] 이 죄다 꿰차버려서 그런 거거든~"
둘이 실랑이를 한다.
"일단 모여봐.. 이게 뒷간 갔다 훔쳐들은 건데 말야.."
둥글게 모여 속닥거리는 아이들. 나름대로 비밀스럽게 얘기하려 한 것 같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본다. 얘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하랑이 입을 연다.
"...그럼 마고가 결정하는 걸로 하지, 불만 있는 사람 없지?"
"예! 선장님!"
쉬라는 아무 말 없이 얼굴만 붉힌다. 그리고, 마고는 침을 꿀꺽 삼키는데..
10. 10. 선택
아이들이 속닥이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무얼 그리 숨겨가면서까지 해야하는 비밀 이야기인가? 한번 들어보도록 하자.
"뭔데 그리 호들갑이야?"
"들어봐! 겁두령이 잡혔는데 그놈 크기가 얼마나 큰지, 선비님들 전부 거들어도 해체하는 데만 이틀이 걸린다는 거야! 지금 그 녀석 일로 나르골이 난리도 아니래! ..너희들, 놈이 얼마나 큰지 궁금하지 않니? 보고 싶지 않아?"
"응응응, 보고싶어! 보고싶어!"
"하, 하지만.. 약속했잖아, 오늘 하루 동안은 회복하는 데만 집중하기로.."
"...그, 그래! 쉬라 말이 맞아, 게다 둥우리 밖으로 나가려면 선승님 허락도 받아야 하잖아.. 안될 거야 우린.."
"음.."
아이들이 절망하는 중에도, 하랑은 집요하게 파고 든다.
"그렇담 방법이 있지. 작전명 '마당을 나온 수리'"
"푸른궤에 있는 쥐구멍 세 곳 중 두 곳은 폐쇄됐지만 남은 한 곳 '나뭇잎 쥐구멍'으로 나가면 마당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약속은 분명 '오늘 하루' 동안 얌전히 있는 거였지. 고로 자정이 지나면 우린 자유의 몸.."
"서, 선장!"
아이들을 매료시키는 능력이 보통이 아니다.
"작전은 규칙에 따라 한 명 씩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모두가 동의할 때 결행토록 한다."
하랑이 아이들에게 의견을 묻는다.
"진시우!"
"난 지금이라도 상관없는데.."
시우는 싱글벙글 웃고,
"진시아!"
"꼬, 꼭 보고 싶습니다!"
시아는 눈이 초롱초롱,
"쉬라!"
"나, 나는.."
쉬라는 답하지 못한다.
"쉬라는 마고가 가면 갈 거야! 그치이~?"
"마, 마고랑?"
마고의 이름을 듣기만 했는데도 쉬라는 헤롱헤롱, 얼굴이 시뻘개진다. 다음은 마고의 차례다.
"그럼 마고가 결정하는 걸로 하지, 불만 있는 사람 없지?"
"예! 선장님!"
* * *
저기 산머리 너머로 넘어가는 석양과 붉은 기와지붕들이 어우러지는 시간, 황혼은 기묘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자아낸다.
그런데..
"줘!"
"안 돼욧!"
이 대체 무슨 소리인가?
"거 먹는 걸로 되게 깐깐하게 구네!"
"이곳은 집정자님과 내빈께 드릴 성찬을 만드는 곳이라구요! 선비님들 요깃거리라면 에졍지에도 얼마든지 있잖아요?!"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은 바로 다이라 그리고.. 전에 등장했던 그 궁녀! 궁녀가 꽤나 단호하게 나왔지만, 다이라, 포기할리가 만무하다.
"그, 그런 거 말고! 에졍지엔 없는 특별한 요리가 필요하단 말이야!!"
다이라는 언성을 높이고, 둘은 팽팽한 기싸움을 벌인다. 그때, 어마무시한 아우라를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무슨 일이신지요"
"자, 장려님!"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장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실로 대단하다.
잠시 시간이 흐른다.
"마당에서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희가 아직 바깥 사정을 몰라 그런 것이니 부디 이해해 주세요. 곧 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이라의 설명을 들은 장려는 미소를 유지한 채 답한다.
"리아야, 아주공께 드릴 성찬을 준비해 오거라"
"자, 장려님!"
장려의 지시에 궁녀 리아는 당황한 듯하다.
"하지만 이는 왕궁의 법도에 어긋나는 일 아니옵니까? 대모님께서 아시기라도 하면.."
"왕궁의 법도도 왕궁이 있고 나서 있는 것, 걱정 말거라.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네에.."
결국 성찬을 준비하러 가는 리아.. 그 뒤에선 다이라가 혀를 쭉 빼고 놀리는 제스쳐를 취한다.
* * *
푸른궤의 밤.
등불을 켠 선비가 뚜벅뚜벅 걸어 다니며 곳곳을 확인한다. 하지만 확인이라 해도 멀리서 훑어보는 것이 전부인 것일까? 선비는 그냥 일직선으로 지나가버린다. 그래서, 선비는 마고와 친구들의 침대에.. 급조 인형이 대신 누워 있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하랑을 선두로 쥐구멍을 통해 마당으로 나가는 아이들. 순서는 하랑, 시아, 시우, 마고, 쉬라다.
"오빠! 자꾸 발 밟지 말란 말야!"
"미, 미안! 어두워서 앞이 잘.."
그때, 시우의 뺨에 덩굴의 잎자락이 스친다.
"까, 깜짝이야!!"
"아 정말!!"
"오빤 겁두령 볼 자격도 없어! 그렇게 겁을 집어 먹구선 무슨 겁을 보겠다는 거야?!"
"나, 나 겁먹은 거 아냐! 갑자기.. 좀 예민해져서 그래!"
둘이서 별것도 아닌 걸로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마고는 어두운 쥐구멍 안에서 쉬라의 손목을 꼭 잡고 있다. 그리고 쉬라의 얼굴은, 안 붉은 날이 없다.
* * *
자, 그럼 여기서 잠시 멈추고, 시간을 앞으로 돌려 마고의 선택을 한번 들여다 보자.
"낯선 신세계를 탐험하고 미지를 밝히는 건 선비들의 일, 우린 그 가르침에 따르고자 할 뿐이야. 어떻게 할래, 마고?"
하랑은 가공할 수준의 화려한 언변으로, 마고를 고민에 빠지게끔 한다.
"나, 나는.."
하랑, 시아, 시우 셋은 빛비춘 검은 바둑돌 같이 눈을 뜨고는 기대하는 표정으로 입을 모아 말했다,
"엄청 큰 겁두령 보고 싶지 않니?" 라고.
".. 엄청.. 큰.. 겁두령.."
마고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쉬라는.. 마고가 거절하기를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둥우리 밖 미지를 개척하는 건 다 자란 수리들의 몫이지 우리 몫이 아니라구! 마고 너도 이런 건 싫은 거지? 그치?'
하지만..
"보.. 보고 싶습니다!!" 결국 마고도 다를 바가 없는 천진난만한 아이였다.
"마고 완전 실망이야!" 쉬라는 땅을 치며 눈물을 머금는다..
그리고 다시 현재 시점, 쉬라는 마고가 이끄는대로 따라가며 생각한다.
'마고 네가 가면.. 난 따라갈 수 밖에 없단 말이야..!'
그때였다. 선두의 하랑이 입을 연다.
"다 왔어.."
아이들을 맞이한 것은, 까마득한 높이의 구불구불한 외나무다리였다..
* * *
조금 뒤, 준비가 끝나고.
"상 나왔습니다!"
리아가 상을 가져온다.
"고생했어~ 고생했어~ 이리줘, 내가 잘 가지고 갈.."
고생했다며 팔을 쭉 뻗어 상을 받으려는 다이라.. 하지만 리아도 만만찮은 상대다. 리아는 다이라의 말을 가볍게 무시한다.
"모두 다 드실 때까지 정성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 왕궁의 가르침이자 저희의 신념이지요. 그렇죠, 장려님?"
"그, 그렇지."
장려에게도 갑작스런 질문을 날려 얼떨결에 동의하게끔 하는 리아.. 혹시, 요리를 하면서 이 멘트를 같이 준비한 걸까? 여간 고단수가 아니다.
"요리는 제가 직접 갖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방 먹은 다이라는 어버버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무슨 문제라도..?"
여유롭게 뒤를 돌아보는 리아.
".. 저.. 그, 그게"
"아무 문제 없는 거죠?"
"자, 잠깐 기다려!"
다이라, 황급히 리아를 따라간다.
11. 11. 마당을 나온 수리들
"근데! 여긴 어떻게 안 거야?"
"아버지가 가르쳐 주셨어. 분화 전에는 여기서 물도 올라왔었다나 봐."
"암튼 선장은 모르는 게 없다니까!"
시아는 신이 나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외나무다리를 오른다.
"근데 말야.. 어째 좀 추운 것 같지 않니? 나만 그런가.."
"오빤 여기가 추워? 난 하나도 안 추운데! 무서우면 걍 무섭다고 말해~!"
"아으씨! 하나도 안 무섭다니깐!!"
시우가 오들오들 떨며 추워하자, 시아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시우를 놀린다. 이뿐만이 아니다.
"에이, 쬐고만 겁 첨 봤을 때도 이부자리에 오줌 쌌으면서!"
시아는 활짝 웃으면서 시우에게 제대로 된 한방을 선사한다. 앞장서던 하랑조차도 "무슨 소리야!"하고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아주 제대로 된 한방을! 길길이 날뛰던 시우를 단숨에 얼음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한방을 말이다!
헤헤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시아. 뒤따라오던 마고와 쉬라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비, 비밀을 폭로하다니.. 진시아 너!!!"
눈물을 머금은, 울분에 가득한 시우의 외침.. 그런데..
"뭐 오줌 갖고 그러냐? 어릴 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하랑, 크흠 헛기침을 하며 한마디한다. 그의 말을 듣고는 시아는 어리둥절.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아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선 차마 가려지지 않는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이런, 제손으로 먹이를 던져준 꼴이다.
"그보다 서두르라구, 조금이라도 더 녀석의 온전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말이야!"
시아의 두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번쩍이고, 시우의 낯빛은 어두우며.. 하랑은 어딘가 긴장한 듯한 얼굴. 발걸음도 왠지모르게 성급해진다. 하랑은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본다.
"뭣들하는 거야!! 빨리 안 오고!?"
뒤에서 아이들이 실실대고만 있는 걸 본 하랑, 부끄러워하면서 괜히 아이들에게 큰소리친다.
* * *
"저, 저기.." 마고는 시우의 등을 두들긴다.
"이, 이거 궤에 계신 선비님이 주신 건데.. 춥거나 불안할 때 먹어도 좋다셨어."
마고가 건넨 것은, 푸른궤에서 먹었던 그 환약이다.
"마고, 너 내 이름 까먹었구나!"
"미, 미안 내가 이름을 잘 못 외워.."
시우는 벌벌 떨면서 환약을 집어든다. 마고는 괜히 미안해서 울먹울먹. 옆에서 지켜보던 쉬라, "내 이름도?"하고 한마디한다.
"괜찮아~ 괜찮아~ 이름이야 천천히 알아가면 되지 뭐~ 고마워, 잘 먹을게!"
쏘옥, 환약은 시우 입 속으로 들어간다. 근데.. 시우, 몇번 우물우물하더니 그대로 넘겨버린다.
"그걸 한번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마고는 당황한다.
"그거 천천히 씹어 삼키라셨던 건데.."
"괜찮아~ 괜찮아~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 건데 뭐."
아, 역시 사람은 다 똑같은 건가보다.
"그러면 약효가.."
마고는 시우를 걱정한다. 그런데, 갑자기 멈칫하는 시우.
"오잉?" 시우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이, 이거 정말이잖아!! 열이 막 나!!"
급격히 약효가 들어, 시우는 무척이나 신기해한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핑글 돈다.
"시우야 괜찮아?"
"응? 응.."
'저 위.. 저 위에서 강한 기운이 느껴져!'
시우, 무언가를 인지한 모양이다.
'사람? 아냐, 덩치가 작아!'
시우는 위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점점 빨리 발을 놀린다.
"오빠! 갑자기 왜 그래?"
"여기서 뛰다 떨어지면 뼈도 못추리는 거 알지?"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위, 저 바위 뒤에서 엄청난 기운이 느껴져!!"
"뭐? 무슨 기운인데?"
시우의 말에 하랑과 시아의 표정이 급변한다.
'기운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 * *
"잠깐만!! 네가 가져가면 안 된다니깐?!"
"왜죠?"
다이라와 리아는 길을 가면서도 여전히 투닥거리고 있다.
"왜, 왜냐면.."
리아가 왜냐고 묻자 다이라는 속수무책. 다이라의 동공은 지진이 난 듯, 가만 있을 줄을 모른다. 그때, 나름 괜찮은 수가 떠오른 다이라!
"거, 거긴 너무 거칠고 위험해서 단련된 선비들이 아니면 큰일 난다구!"
"그렇습니까?"
음, 아무래도 괜찮은 수가 아니었던 것 같다. 씨알도 먹히질 않는구만. 게다가.. 맞은 편에서 누군가 오고 있다.
"세상에 어찌나 크던지.."
"아주머니!"
"어머, 리아님?"
리아와 아는 사이인가본데.. 다이라, 큰일이다!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들이세요?"
"저희야 뭐 작업하시는 선비님들 밤참 나르고 오던 길입죠, 리아님이야말로 이곳은 어인 일로.."
하필이면 딱 이때에 아주머니들과 마주치다니!
"아주님께 드릴 특찬을 주문받아서요~"
"아유, 궁녀님들까지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주머니들과 짧은 대화를 나눈 후, 리아의 표정은 여유롭다.
"다이라님, 뭐라고요? 단련된 선비가 아니면 위험하다고요?"
"사, 사실은 있지?! 저분들 고도로 훈련받은 그림자 선비님들이셔!"
"거짓말 마세요!!"
리아는 얼굴을 가까이 대며, 다이라를 궁지로 밀어붙인다.
"저도 한 촉 하는 궁녀라고요! 직접 만든 요리인 것처럼 꾸며서 아주님의 환심을 사려는 속셈 누가 모를까봐서요?"
다이라의 얼굴이 붉어진다.
"제 잠을 달아나게 한 벌이라 생각하세요!"
* * *
"벌써 열두 시간 째이옵니다. 정말 괜찮겠사옵니까?"
"스승님은 이보다 더 혹독하셨다네, 곡기[20] 를 끊고 일주일 간 불을 짜낸 적도 있었어."
아주가 걸음나무를 붙잡아 두고 있는, 나르골의 마당. 아밈은 병사와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아주를 걱정하는 병사에게, 아밈은 자신의 스승 노 선사와의 옛 기억을 떠올린다.
그때, 마당에 도착하는 리아와 다이라! 다이라는 영.. 얼이 빠져버렸다.
"오오! 짐을 위한 팔진미인가? 끼니는 때웠지만 사양치 않겠네!"
아밈은 호탕하게 웃으며 몹시 좋아한다. 하지만..
"송구하오나, 이 찬은 아주님 것이랍니다!" "뭐라?"
곧바로 진실을 알고는 적잖게 실망한다. 아주도 인기척을 느끼곤 아랫쪽을 내려다본다. 아밈은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았음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왕자는 지금 수행 중이란 말일세! 이리 내놓으시게!"
"안 돼욧! 아주님 드릴 거란 말예욧!"
"염제 때문에 어차피 먹을 수도 없다니깐!"
"아뇨,"
다이라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이거라면 가능해요."
* * *
"오빠! 같이 좀 가!"
'기운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시우는 기운이 느껴지는대로 급히 위로 뛰어 올라간다. 그 바람에, 나머지들도 덩달아 달음박질한다. 시우는 달리고 달려, 마침내 기운이 느껴지던 곳에 다다르는데..
'아, 아무것도 없잖아!!'
"뭐야 오빠!! 괜히 사람 놀래키고!"
"무슨 일 난 줄 알았잖아!"
곧바로 따라올라온 시아와 하랑, 귀가 떨어져라 큰소리로 화를 낸다.
"다들 조용히 해봐!!"
시우는 더 큰 목청으로 둘을 조용히 시키고는, 옆머리를 부여잡는다.
'안 돼.. 아무것도 안 느껴져..'
시우는 빠르게 태도를 바꾸기로 한다.
"이, 이젠 안 느껴지넹?"
순식간에 쭈글, 움츠러드는 시우. 시아와 하랑은 더더 크게 노발대발한다.
"안 느껴지넹?? 안 느껴지넹 같은 소리하고 있네! 대단한 거라도 발견한 줄 알고 힘들게 뛰어 올라왔구만 뭐?"
"오빠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참아.."
"에라이, 시네리안[21] 벌판에서 귤이나 까먹어라!"
시아는 쉬라가 말리고,
"네가 선장의 고뇌를 알아? 정신없이 뛰다 헛디디기라도 하면 어쩔 뻔 했어?! 일탈이라도 지킬 건 지켜야지!!"
"지, 진정해 하람아!"
"하람이 아니라 하랑이거든!"
하람.. 아, 아니 하랑은 마고가 말린다. 같은 분노, 다른 느낌.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
시끌벅적해진 상황 중에도, 시우는 방금의 그 기운에 집중한다.
'그나저나, 뭐였을까.. 그건..'
잠시 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돈되고, 아이들은 다시 길을 오른다.
"그 덕분에 빨리 올라왔잖아~"
"빠른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니깐 그러네!"
"선장은 다 좋은데 너무 소심한 게 탈이야.."
"근데 왜 하람이를 선장이라고 불러?"
"말도 행동거지도 선장님 같아서 그래.."
"'''하람'''이가 아니라 '''하랑'''이라니깐 정말!!!"
재잘재잘 대화를 나누는 아이들. 다람쥐 한 마리는 그 소리에 쫑긋, 귀를 세운다.
12. 12. 제압
"이거라면 가능해요."
다이라의 말에 리아와 아밈은 어리둥절해하면서도, 그녀에게 집중한다.
다이라, 외투의 뒷자락을 펄럭이며 허리춤에 맨 무언가를 뽑는다.
"이것이 바로!!!"
"아밈님, 물러서십쇼! 다이라! 네가 드디어 본색을.."
병사, 재빠르게 칼을 뽑아 아밈을 보호한다. 표정을 보아, 놀란 것은 아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병사는 모르는 걸까? 다이라는 그럴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님을 위한,"
척, 두꺼운 나무 막대 두 개가 땅바닥을 찍는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특제 젓가락!!!" "저, 젓가락?"
다이라는 제 허리까지 오는 특제 젓가락을 가지고 와서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는다. 흑칠 같은 다이라의 머릿결과 품큰 외투 뒷자락이 폼나게 휘날린다.
"이거라면 충분히 드시게 할 수 있어요!"
가만히 앉아서 모든 상황을 듣고 있던 아주는 생각한다.
'신나서 간 게 젓가락 때문이었다니.. 정말 감당 안 되는군..'
한편, 소동 아닌 소동에, 걸음나무 해체작업에 동원된 다른 선비들에게도 그 소리가 닿았는가보다.
"무슨 일이래?"
"궁에서 아주님 드실 특찬을 내려보냈다나 봐"
한참 도끼질 중이던 한 선비, 턱 하고 도끼날을 꽂는다.
"거, 일할 맛 안 나게 하네. 누구 입은 입이고 누구 입은 주둥이란 말야?"
선비는 동료 옆에 붙어 성을 낸다.
"귀천[22] 없이 누구나 선인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게 비자수리 아녔어?"
"이 사람 딴 세상 살다 왔나, 먹는 거엔 민감해서.. 누구나 받아 주고 차별없이 대해 주던 그런 세상이 아니야 지금은"
선비들은 신세를 한탄한다.
"뭐 좀 있는 것들은 서너 해 있다 으뜸선비입네 하면서 군대도 안 가~ 농사도 안 지어~ 여간하지 않음 선비도 나발이고 겁이나 때려 잡는 게 고작이라구"
"그래도 아주님은 그런 오물통들관 다르지."
"그럼 그럼.."
선비들은 걸음나무서 나온 잔가지를 지게에 싣는다.
"다르긴 겁뿔? 다른데 호위무사가 따로 있고 밥이 따로 나오나? 설령 다르다 해도 똥 치우는 놈보다 싸는 놈이 많은 건 사실이잖나!"
선비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걸음나무에 마구 도끼질을 해댄다.
"세상이 망하려니까 이런 것들이 튀어나오는 게지. 이놈의 것은 또 왜 이리 질긴 거야"
"엔간히 하시게, 믿을 거라곤 몸뚱이 뿐인데 그러다 다치기라도.."
"신경 끄시오! 상해도 내 몸이고 성해도 내 몸이니!"
선비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동료의 말에도 예민해진다.
"에잇, 빌어먹을 놈의 세상! 그냥 콱 망해버리라지!!"
선비가 퍽, 도끼질을 하는 그 순간, 아주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이, 이 녀석의 얼[23] 이!!'
츠즈즈즈즈. 안 그래도 콩알만한 얼이 점점 쪼그라들더니..
'사라졌어!'
쿵, 묵직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바, 방금 뭔가.."
작업하던 선비들도 소리를 듣고는 이상함을 느끼나, 갑자기 찾아온 커다란 울림은 미처 피하지 못한다.
곧이어 끊어지는 밧줄들.. 아밈은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걸음나무의 꼭대기로 뛰어든다. 아주가 있는 바로 그곳으로.
"아버지!!"
"자릴 거두거라! 더 이상 푸른불은 무의미하니.."
뒤이어, 한 선비가 아밈의 앞에 나타난다. 빨간 바탕에 검은 문양이 새겨져 있고, 두 뿔이 달린 탈을 썼다.
"아밈님, 모두 대피시켰습니다. 분부를.."
"진행하시게!"
아밈의 지시에, 선비는 작은 피리를 꺼내 신호한다. 피리의 가녀리고 맑은 소리가 퍼진다. 목재 기중기들은 일제히 움직여, 커다란 나무 상자들을 걸음나무 머리 위에 드리운다.
꾸득, 활시위는 당겨진다.
힘차게 뻗어나가는 화살. 화살은 정확하게 기중기의 밧줄을 끊는다. 그 덕에, 고정되어 있던 나무 상자의 아랫뚜껑이 열리며 안에 있던 항아리가 챙그랑, 산산조각이 난다. 항아리 안에 들어 있던 끈적이는 액체가 걸음나무의 몸뚱아리를 흠뻑 적신다.
연이어 나타나는 선비들. 방금 전 그 선비와 같은, 붉은 탈을 쓰고 있다. 선비들은 검지와 중지를 펴서 미간 앞에 갖다대고, 선힘을 모으더니 땅바닥에 그대로 내리꽂는다. 그리고, 선비들의 손끝에서 솟아나는 거센 물줄기! 솟아난 물줄기는 걸음나무와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는 늪이 된다.
"내 그대의 고통을 끝내드리리다."
아밈은 자세를 낮추고 두 손을 땅바닥에 짚는다. 그러자 장엄한 소리와 함께, 하늘을 가른 듯 걸음나무에게만 푸른불이 내려온다.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걸음나무에 불이 붙어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다. 아밈은 활활 타오르는 걸음나무를 지켜본다.
".. 편히 가시구려.."
같은 시간, 성벽 위에서 전투 태세를 유지 중이던 병사들. 그들도 불타는 걸음나무를 보며 한마디씩 나눈다.
"울뱀장어 기름에 늪이라.. 겁두령도 이젠 진짜 끝이로군"
"완전히 잿더미가 되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다! 다들 긴장 놓지 말라구!"
"넵, 알겠습니다!"
병사의 목소리는 우렁차다. 그런데.. 저 위에 저건 무언가? 길게 땋은 머리는 노랗고.. 낯선 옷차림에.. 짙은 피부색.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낯선 이방인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안정적으로 착지해, 병사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킥킥.."
연두빛 눈동자를 번뜩이며, 그는 섬뜩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마치, 곧 이곳 나르골에 닥칠 재앙을 예고하는 것처럼.
13. 13. 불청객
"맞아 맞아,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뭐, 뭣하는 녀석이냐! 정체를 밝혀라!"
짐승의 귀와 꼬리를 가진 소녀. 그가 나타나자 병사들은 경계하며 창끝을 겨눈다. 하지만, 소녀의 관심은 오로지 아밈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 같다. 소녀, 밝게 웃으며 한 병사의 목을 껴안는다.
"쟤 말이 맞아. 끝난 게 아니니 다들 긴장하라구!"
소녀는 아밈을 '쟤'라 칭하는 등, 거만하기가 비할 이 없다. 소녀는 그 날카로운 손톱을 병사의 어깨 위에서 놀려가며 그들을 농락한다. 게슴츠레 뜬 소녀의 두 눈은 그 속내를 은근히 드러낸다.
부웅.
성벽 위에 있던 거포 한 문이 묵직하게 날아 마당으로 떨어진다. 거포는 힘없이 산산조각난다. 그걸 본 선비와 아밈은 놀라면서도 곧바로 대응할 준비를 한다. 선비들은 서둘러서 어디론가 가고, 그 바람에 비어버린 아밈의 앞에, 고양이 소녀는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선비들은 가다말고, 멈칫하고 선다.
"으악!"
또다른 거포 한 문이 떨어져 선비들의 앞길을 막는다. 고양이 소녀는 가소롭다는 듯한 어투로 아밈에게 말을 건넨다.
"정말 저런 것들로 우릴 막을 수 있다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뭐하는 놈인진 모르겠다만.. 한가지 알려주지. 이 땅을 지키는 건 저런 병기들이 아니니라."
아밈의 뒤에서 아주와 다이라가 뛰쳐나온다. 소녀, 좋은 사냥감을 찾은 것마냥, 낼름 입맛을 다신다. 칼을 뽑아들고 소녀에게 덤비는 다이라. 다이라는 소녀의 머리를 노리고 깊게 찌르지만, 소녀는 여유롭게 고개를 돌려 피한다. 공격이 실패하자 왼손에 선힘을 모으는 다이라. 또다시 소녀의 머리를 노린다.
소녀에겐 일말의 긴장조차 없다. 코앞까지 다가온 다이라의 손을 잠자코 보고만 있다가, 슬쩍 고개를 틀 뿐이다. 다이라의 선힘에, 그들의 뒤로 웅대한 먼지바람이 인다.
"호오. 실력은 좀 있어 보인다만.."
소녀가 뒤를 돌아보며 한마디한다. 다이라는 포기 않고, 뒤에서 칼을 내리칠 심산이다. 하지만, 소녀는 가볍게 빙글 돌아, 다이라의 칼을 차 날려버린다. 소녀에겐 쉬운 일인 듯, 그는 여유롭게 웃어보인다. 그때. 소녀의 얼굴에 푸른 빛이 비춘다.
"작은불소나기!!!"
아주, 작은불소나기를 날린다. 아주의 불들이 고양이 소녀에게 맹렬하게 달려든다. 그러나, 걸음나무를 붙잡아두느라 힘을 많이 소진한 것이 화근이었던 것일까. 실효는 하나도 없다. 기진맥진하여 땀을 뻘뻘 흘리는 아주.
"저기.. 난 가만히 있는데도 다 빗나갔다구..!"
"... 역시.. 더 이상은 무리인가.."
아주는 어둔 눈으로 소녀를 힘겹게 노려보다 앞으로 고꾸라진다.
"아주님!!!" 다이라는 순식간에 아주 옆으로 움직인다. 다이라의 얼굴에도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아주님!" "난 괜찮으니까 녀석을.."
아주와 다이라는 고개를 든다. 그리고, 그 앞엔 고양이 소녀가 기분나쁜 표정으로 서있다. 그 눈빛은, 어딘가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과도 비슷해 보인다.
"뭐야! 푸른불도 쓸 줄 아는 거야?"
그때, 두 눈을 하얗게 빛내며 달려드는 아밈. 아밈이 소녀의 앞에 착지하자 그 충격으로 땅바닥이 솟구쳐 오른다. 소녀는 그 바람에 튕겨져 나가지만, 역시 안정적으로 착지한 후 몸을 천천히 일으킨다.
어느새 주위를 둘러보니 선비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선비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소녀를 공격한다. 세 발의 비수. 세 개의 바위. 용감한 칼날과 재빠른 화살.
소녀는 유연하게 몸을 틀어, 제 머리를 노린 화살을 피한다. 뒤이어 날아오는 비수. 소녀는 공중으로 몸을 띄운다. 소녀는 입에 하나, 왼손 오른손에 하나씩 비수를 잡아내고는, 그 상태로 날아오는 바위를 피한다. 바위는 땅바닥에 깊숙히 박힌다.
공중에 뜬 상태로 비수를 되날리는 소녀.
"끄아악" 머리에 꽂힌 비수에 선비들은 고통스러워한다.
칼을 든 두 명의 선비는, 소녀가 착지하는 틈을 빌어본다. 소녀의 얼굴 앞으로 들어오는 칼날. 소녀는 선비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팔꿈치로 선비의 탈을 찍는다. 탈은 산산조각나고, 선비의 손엔 힘이 풀린다. 소녀는 선비의 칼을 가로채, 또다른 한명에게 찔러넣는다.
선비의 피가 흩날린다.
혈흔이 묻은 칼날. 그 뾰족한 끝으로 모인 피가, 뚝뚝 흘러내려 고이기 시작한다. 소녀는 피가 튄 얼굴로 소름끼치게 웃으며 말한다.
"재밌어 재밌어!"
14. 14. 빈틈
나뭇잎 쥐구멍 저 위 출구로, 붉은 빛이 일렁이는 것이 살풋 보인다.
"연기가 자욱한 것이 어째 예사롭지가 않은데?"
"불난 거 아냐?" "불..?"
"잠깐.. 설마 저거..!?"
아이들은 자신들의 계획에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하고선, 경직된 표정으로 서로서로 눈을 맞춘다.
"아냐아냐, 작업이 벌써 끝났을 리 없어! 분명 이틀은 걸린댔단 말야!"
"으이그, 오빤 어떻게 말 하나도 제대로 못 훔쳐오냐?"
아이들은 달음박질한다. 제일 먼저 출구로 나온 이는 시아다.
"이렇게 고생해서 올라왔는데 별볼일 없기만 해봐라 아주 그냥!! ..아고 힘들어..."
시아는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시아는 침을 질질 흘리며 힘들어한다. 그때, 시아의 시야에 들어오는 무언가. 시아의 눈이 번쩍 뜨인다. 그 시선의 끝에는,
활활 타오르는 걸음나무가 있다. 아이들은 멍하니, 붉음을 품은 걸음나무를 본다.
* * *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피해 상황은!?"
"겁두령을 겨누던 거포 세 문이 나갔고 부상자 다섯에 사망자는 아직 없는 줄 아뢰오!"
긴급상황이다. 병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도대체 어디로 들어온 거랍니까? 숫자는요?"
장군의 표정은 엄숙하다.
"한 놈일세." "예?"
병사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한 놈에게 하늘동인 다섯이 당했어!"
"그들이 당할 정도라면 보통 실력자가 아니란 건데.. 어디서 보낸 놈일까요?"
"나랑고스를 위협하는 세력 중 저만한 고수가 있을 만한 곳이 글쎄.. 놈을 잡아 물고를 내면 알 수 있지 않겠나?"
"그야 그렇지만 우리 힘만으로 그게 가능할까요?"
"언제까지 선인들에게 의지할 순 없지, 사수 앞으로!!"
한편, 고양이 소녀는 무척이나 만족스럽게 웃고 있다.
"재밌어! 재밌어! 나랑고스는 정말 재밌어! 너무 조용해서 내려와 봤더니만 걸음나무가 잡혀있질 않나, 웬 꼬맹이가 푸른불을 뿜어내고 있질 않나.."
소녀의 뒤에선 걸음나무가 여전히 거세게 타오르고 있다.
"알겠다 알겠어! 그러니까 저 꼬맹이가 겁두령을 쓰러뜨렸단 거잖아."
"저런 꽁냥이를 봤나.. 누구더러 꼬맹이래."
"아주님, 일단 자릴 피하셔야.."
다이라, 이를 악문 채 중얼거리는 아주를 부축한다.
"오호라.. 걸음나무를 저꼴로 만든 게 바로 네놈 짓이렷다?"
"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 사람 말은 내가 아직 서툴러서 말야."
"변명 따윈 필요없다. 누가 널 여기로 보냈는지, 네놈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거만 밝히면 된다."
소녀가 애매모호한 말로 응수하자, 아밈은 주먹을 꽈악 쥐며 다시 묻는다. 그렇게 노를 억누르는 것인가 했더니, 아밈은 오히려 엄청난 살기를 내뿜기 시작한다.
"자 어쩔 텐가.. 순순히 실토할 텐가, 아님 뜨거운 맛을 보고 나서 실토할 텐가!"
"오!" 아밈의 살기가 소녀의 관심을 끈 듯, 소녀는 흥미로워 한다.
"근데 실토가 뭐야? 어려운 말 난 몰랑!"
소녀는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아밈의 화를 돋군다.
"이 녀석.."
열이 오를대로 오른 아밈의 입에선 입김이 뿜어져 나온다.
"혼구멍이 나봐야.."
아밈이 기를 모으자 땅이 푹 꺼진다.
"알겠느냐!!!"
힘차게 땅을 박차는 아밈. 그때, 소녀는 참 웃기고도 어이없는 수를 꺼내든다.
"잠까안~!!" 소녀가 두 손을 뻗는다.
깜짝 놀란 아밈, 그대로 멈춰선다.
"뭐냐, 항복이라도 하겠단 거냐?"
소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한다.
"... 나르골에 달왕이 있을 거란 이야기두, 달왕이랑 싸우게 될 거란 이야기두 못 들었단 말이야.."
하지만 그것은, 그저 주의 분산에 불과했다. 소녀는 아밈이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틈을 타, 자신의 두 손을 모아 숨을 불어넣는다. 도깨비불 같이 생긴 것이 연두빛으로 발광한다.
"으음?"
"나랑고스의 달왕 아밈 얘긴 많이 들었지. 엄청 쎄다며?"
소녀는 연두빛 기운을 왼손 검지에 올려놓고선 해맑게 웃는다.
'굉장한 기운이다. 마치 스승님의 그것과도 같은 힘.. 설마!'
한참을 지켜보고만 있던 아밈, 뒤늦게야 이상한 점을 느낀다. 씨익 웃는 소녀. 그대로 팔을 척 뻗어, 총을 쏘듯이 걸음나무를 겨눈다.
"마, 막아야해!!"
아밈은 다급히 달려가 소녀의 왼팔을 잡아채 제지한다. 하지만,
"늦었지롱~"
소녀는 승리자의 얼굴이다. 후웅, 화려한 곡선을 그리며 걸음나무에게 날아가는 빛. 아밈의 실수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소녀는 아밈의 등에 올라타서는 그의 귀 옆에서 속삭인다.
"그거 알아? 아저씨 빈틈 투성인 거?"
'이런!!' 아밈의 눈이 요동친다.
소녀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아밈의 팔을 응시한다. 우둑. 아밈은 외마디 신음만 내뱉는다.
"아버지!!!"
빛은 어느새 걸음나무에게 닿는다. 다시금 생기를 되찾는 가지들.
걸음나무는 그 큰 몸뚱이를 일으킨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메울 기세로 피어오른다.
"부.. 불이.. 꺼지고 있어!!"
15. 15. 격돌
"불아비[24] 의 팔을 완력만으로 뽑아내다니.. 네 녀석 정체가 뭐냐."
"너 디게 질기구나! 뽑는 게 아니라 찢어버리려던 거였는데.. 근데 어쩌지? 난 시작한 건 끝장을 봐야 하는 성미라서 말야.."
아밈은 안광을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소녀의 코앞에서 푸른불을 온몸으로 발산한다.
"놀랬잖아!! 갑자기 푸른불 쓰기 없기!?"
소녀는 짐승과도 같은 반응 속도로 날래게 피해내더니, 고양이마냥 하악질을 해댄다. 방금 자신이 걸음나무에다가 돌발적으로 했던 것은 기억을 못하는 것일까, 되려 자신이 화를 내다니.
"코앞에서 푸른불을 피한 녀석은 지금껏 없었다."
아밈은 제손으로 팔을 다시 끼워맞춘다.
"너.. 푸른불을 다루는 자와 싸워 본 경험이 있었으렷다."
"불아비랑은 처음이야! 어디 그럼~ 실력 좀 볼까나!?"
소녀는 손을 푼다. 소녀는 걸음나무를 싸움에 동원한다.
'결국 되살아나버렸단 말인가.. 하는 수 없지.. 우선은 저 꼬마 녀석이다!'
아밈은 우선 고양이 소녀부터 노리기로 한다. 아밈의 표정은 비장하다.
'스승님과 같은 기술을 구사하는 비상함에, 불을 피해내는 날랜 몸.. 자잘한 기술로는 잡을 수 없어!'
소녀가 범상치 않음을 안 아밈, 두 손을 뻗는다. 아밈의 손은 현장에 있던 도끼들을 끌어당긴다.
'그렇다면!'
* * *
쿵 소리와 함께, 천장의 흙먼지가 뿌옇게 떨어진다. 아주는 너무 무리한 탓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다.
"다이라님, 아주님을 부탁합니다." "예!"
하눌동인의 부탁에, 다이라는 긴장된 얼굴로 답한다. 그때 마침, 아주가 이마를 짚고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 앉는다. 하지만, 다이라는 아주의 이마에 손을 올려 그를 제지한다.
"아직은 일어나시면 안 돼요."
"다이라!"
아주는 어안이 벙벙하다.
"어떻게 된 거야? 여, 여기는.."
"동문 지하 병참소랍니다. 걸음나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곳이죠."
"걸음나무라니? 겁두령은 불에 타서 죽은 거 아녔어?"
아주는 정신을 잃었던 탓에 현재의 그 어떤 상황도 알 지 못한다. 그때, 버선발로 달려오는 누군가.
"아주님!!"
궁녀 리아, 아주에게 달려와 아주를 와락 껴안는다.
"아니 글쎄 갑자기 불이 꺼지더니 나무가 파라락 살아나버리지 뭐에요.. 아주님 전 이제 어쩌면 좋아요? 넘 무서워요!"
"리아!"
은근슬쩍 교태를 부리는 리아. 눈뜨고는 차마 못 볼 그 광경에, 다이라는 질투심이 인다.
"너 여기 왜 있는 거야?!"
"이곳이 안전하다며 다이라님이 데려왔잖아요!!"
"내가 언제!!!"
툭탁툭탁 유치한 말싸움에, 아주는 아예 등지고 앉아 에휴, 한숨을 쉰다.
* * *
아밈은 압도적인 힘으로 도끼를 휘두른다. 하지만 강자들의 싸움이 으레 그렇듯이, 소녀는 아밈의 날선 도끼질을 강물처럼 흘려보낸다.
"호오!" 옷깃 끝자락이 베어져 나감에도, 소녀는 짧은 감탄사만 내뱉을 뿐이다.
'아직이다!'
그때, 아밈의 위로 짙게 끼는 그림자. 그것은 바로 걸음나무의 주먹이었다. 묵직하게 땅이 울린다. 아밈은 그 주먹에 깔린 듯 하였으나, 무척 높게 뛰어올라 피해낸다.
공중에 뜬 상태로, 아밈은 오른쪽 눈을 감고 소녀를 겨냥한다. 아밈의 두 손에서는 뿌연 김이 흘러나온다.
손톱달 같은 자태의 수많은 푸른 섬광이 매섭게 날아든다.
"나왔다! 아밈님의 온달도끼춤!!"
"기술의 격이.. 달라요"
아밈이 온달도끼춤을 시전하자, 하눌동인들마저도 감탄하기 바쁘다.
"우리도 구경만 하고 있을 순 없지!"
온달도끼춤의 검기는 소녀를 집어삼킬 기세로 달려들지만, 소녀는 뒷걸음질만으로 가볍게 피해준다. 하지만 걸음나무의 큰 덩치에는 그야말로 제대로 꽂아들어간다.
"지금이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하눌동인과 병사들이 협공을 펼친다. 하눌동인들은 뾰족한 촉이 달린 줄을 던져, 걸음나무를 포박하는데 성공한다. 이 분위기를 이어, 병사들도 불화살 포화를 퍼붓는다.
"이것들이 정말, 귀찮게 하고 있어!!"
하지만 불화살 포화는 소녀의 성질을 돋구고야 만다. 짜증을 내면서 발을 굴리는 소녀. 소녀는 땅을 솟구치게 해, 빗발치는 화살을 막아버린다. 소녀가 정신이 팔린 사이에 하눌동인들은 열심히 줄을 잡아당긴다.
"놈을 다시 늪으로 끌어들이는 거다!"
"저것들이 또오!!? 이놈들 싹 다 죽여버리겠어!!"
화를 내는 고양이 소녀. 그러던 중 인기척을 느낀다. 어느새 소녀의 뒤에 붙어 기습하는 아밈. 둔탁한 소리와 함께,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가 떨어져내린다.
16. 16. 푸른블미르
차가운 돌바닥 위로 떨어져 내리는 피. 피는, 소녀의 손목에서 흐르고 있었다.
'이 녀석!!'
아밈의 도끼질이 막혀버린 것이다.
"내 몸에 상처를 내다니.."
소녀는 차디찬 표정을 지으며 말할 뿐. 아밈은 슬쩍 발을 뒤로 빼고는, 소녀의 머리를 노리고 발을 찬다. 소녀는 팔을 올려 방어하지만, 꽤나 버거워한다. 아밈은 또다시 도끼를 휘두른다. 하지만 고양이 소녀는 가볍게 피해버린다.
* * *
다이라와 리아가 투닥거리는 사이, 아주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아주님 어디 가시는 거.."
"어디 갈 것 같아? 내가 지금!"
"안 돼요! 그 몸으론 무리예요!"
다이라의 만류에도 아주의 얼굴은 굳은 결심으로 가득찼다. 아주는 외투를 걸친다.
"여태껏 누워 있었으면 됐어."
다이라는 걱정스레 그를 쳐다본다.
"그리고 지금은 무리하고 싶어도 못해.. 다만, 한 명의 선인으로서 내 역할을 하려는 것 뿐.."
'아주님..'
다이라는 잠시, 사뭇 진지한 얼굴을 한다.
"그렇담 저도.. 바늘 가는데 실도 가야죠? 아주님은 제가 없으면 안되잖아요!"
다이라, 해맑게 웃으며 따라나선다. 이에 멈칫하는 리아. 리아의 두 눈이 잔뜩 커진다. 아주는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다. 다이라는 리아에게,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 보인다.
"리아는 여기 꼭꼭 숨어있어! 아주님은 내게 맡기고, 알았지?!"
리아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두 눈을 치켜뜬다.
"꼭 무기를 다룰 줄 알아야 하는 건 아니죠. 저도 나가서 부상자를 돌보겠어요!"
"눼눼~ 그렇게 하시든가요~"
* * *
'마치 바람과도 같은 움직임이다.. 수세에 몰린 척 하면서 반격의 기횔 엿보는 저 기민함!'
소녀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아밈의 눈이 매섭다.
'그러나.. 네 뜻대로만 되진 않을 게다!!'
아밈은 두 팔을 엇갈려 세차게 도끼를 던진다. 하지만 소녀는, 슬쩍하고 약간의 움직임으로 피해버린다. 아밈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소녀. 곧바로 둘은, 맨손 격투로 돌입한다.
아밈의 육중한 공격을, 고양이 소녀는 몇 번이고 민첩하게 피해버린다. 그때, 아밈이 던진 도끼가 완벽한 포물선을 그리며 소녀의 뒤로 날아든다. 아밈과 도끼 사이에 갇혀버린 소녀. 소녀의 눈이 연두빛으로 빛난다.
이윽고, 아밈이 커다란 섬광을 동반하는 일격을 날린다. 마고와 친구들은 쥐구멍의 출구에 서서 멍하니 그것을 지켜본다. 희뿌연 먼지구름을 뚫고, 아이들에게 곧장 날아오는 무언가.. 그것은 바로 고양이 소녀다. 소녀는 기이한 자세로 아이들 앞에 착지한다.
"아밈.."
소녀, 미간을 찌푸리며 뒤를 노려본다.
"아밈!!!"
소녀는 무척이나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아밈의 이름을 크게 외쳐부른다. 소녀의 머리칼은 그 심정을 대변하듯, 잔뜩 뻗쳐있다. 아이들은 놀라서 뒤로 나자빠진다. 한편, 아밈은 소녀의 곱게 땋은 머리칼이 끊어져 땅바닥에 있는 것을 줍는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기껏 머리카락이란 말인가..'
아밈의 얼굴엔 약간의 허망함이 드러나는 듯하다.
'공중에서 내 일격을 맞받아치다니 참으로 대단한 녀석이다.'
아밈은, 저 멀리 절벽 위에서 무어라 언성을 높이는 소녀를 올려다본다.
'허나, 달빛이 휘황하면 눈이 오는 법.. 불의 힘은 다 모였다.'
아밈의 눈이 푸르게 빛난다. 합장한 두 손에서는 푸른불이 피어오른다.
'조상들의 혼이 깃든 곳에서 이 기술을 쓰게 될 줄이야'
아밈의 온 몸에서 푸른불이 일렁인다. 이내, 공중으로 솟아오른 불길이 꿈틀댄다.
"저 형상은!?"
하눌동인마저 놀라게 하는 저 염공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밈은 결의에 차 크게 외친다.
아밈의 푸른블미르는, 지켜보던 모든 이의 얼굴을 밝게 비춘다.
17. 17. 약속
마당으로 나가려던 아주는, 길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것을 본다.
"뭐야? 뭔데 저렇게들 서 있는 거야?"
아주는 문 너머로 기웃댄다. 아밈의 푸른블미르를 발견한 아주의 입은 속절없이 벌어진다. 한편, 푸른블미르의 머리는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고양이 소녀에게 향해 있다. 문제는, 고양이 소녀의 뒷편에 마고와 친구들이 있다는 것..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다급하게 도망친다.
"뛰어!!!"
이를 앙다물고 달리는 아이들. 근데 시우의 발이, 바닥에 무성하게 뻗은 나무 뿌리에 끼어버린다.
"오빠!"
하랑과 시아, 발빠르게 다시 시우에게로 간다.
"어서 일어나!"
"안 돼! 바, 발이 껴서 안 빠져!!"
"에이씨! 꼭 이럴 때 끼고 자빠지고 그러더라! 정말!!"
"몰라! 우린 이제 끝났어!"
시우는 울먹인다.
"마고! 너도 와서 이것 좀 어떻게 해봐!"
다급하게 마고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는 하랑. 하지만..
"마고?"
마고는 우두커니 서서, 그들을 덮치는 푸른블미르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공포에 질린 아이들.. 마고의 표정은 이상하리만치 무덤덤하다. 결국, 코앞까지 다가온 푸른블미르.. 마고는 단념한 듯 눈을 지그시 감는다.
* * *
'마고야'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음성.
'마고야!'
'누가 날 부르고 있어..'
마고의 자아는 깊은 무의식으로 빠진다. 홀로 남은 마고, 자신을 부르는 걸 듣고 힘겹게 눈을 뜬다.
'마고야, 이제 그만 일어나렴'
따뜻한 목소리가 마고를 감싼다. 익숙한 목소리.
'...이 목소리는?!'
몸을 일으키자, 누군지 모를 두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탁자에 앉은 백발노인과, 그 옆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또다른 한 사람.. 검은머리의 여인, 마고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엄마? ...할아버지...!?'
그들은 다름아닌, 엄마인 마리 그리고 노 선사..!!
마고는 그리움의 감정이 벅차올라 울컥, 하더니 어린 시절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다.
"엄마!"
"또 무서운 꿈을 꿨나 보구나?"
어린 마고는 마리에게 와락 안겨서 울음을 터트린다. 마리는 따스한 말투로 마고를 달랜다. 햇살이 은근하게 집안을 비추고, 쇠그릇에 담아둔 과일 내는 향기로운 것이, 그야말로 평온하기 그지 없다.
"푸른불이 솟구치더니 용이 튀어나와 친구들을 덮쳤다고?"
울먹이며 밥을 먹는 마고에게, 노 선사는 되묻는다. 이야기를 들은 마리는 의아하다.
"친구들이라니? 이곳에 네 또랜 나기 뿐이잖니.."
"아뇨.. 나르골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이요.."
"이야! 우리 마고, 새 친구도 사귄거야?"
마리는 밝게 웃으며 마고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노 선사는 턱을 괸 채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연다.
"...나르골에 푸른불이라.. 음.."
늙은이임에도 그의 눈은 흐릿한데가 없다.
"큰일이로고! 용의 형상이라면 보통 일이 아닌데.. 아밈이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구나."
그때, 쿵하고 울림이 느껴진다. 흠집난 과일 그릇은 식탁 위에서 덜그덕 덜그덕하더니 아래로 떨어져 널부러진다. 방금까지 따스한 햇살이 들던 창에서는 매서운 푸른빛이 들이닥친다.
"...마고가 빨리 가봐야 할 것 같구나.. 만약 일이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면 담이 널 도와줄 게다."
"하, 하지만! 어떻게 만나자마자.."
마고는 애절하게 애원한다.
"저 그냥 엄마랑 할아버지랑 여기 있으면 안 돼요? 더 이상은 헤어지기 싫어요!"
하지만, 그들의 아늑한 공간마저 무너져내리기 시작하고.. 그 소란스러운 중에, 마리는 마고의 양어깨에 손을 얹고서 마고에게 용기를 북돋아준다.
"마고, 엄마랑 했던 약속 기억하지?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항상 씩씩하게 밝고 맑게 지내기로 했던 거?"
마고는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네가 돌아가지 않으면 이곳도 친구들도 모두 잃게 돼, 그러니.. 가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착하지? 너라면 할 수 있어.. 용기를 내렴, 마고야.."
마고는 힘차게, 빛속으로 달려나간다.
* * *
마고는 온몸에서 힘을 내뿜는다. 공중에 떠오른 마고의 몸은 온통 새하얗다.
'''"마고야!!!!"'''
아이들은 애타게 그의 이름을 외쳐부른다.
18. 18. 재회
푸른블미르와 접촉해, 그 커다란 힘에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마고.
아밈, 하랑, 쉬라.
시우, 시아, 고양이 소녀.
다이라, 아주, 리아.
그리고 음침한 눈을 한 의문스런 하눌동인까지, 모두의 시선이 마고에게 집중된다. 그러던 중에, 무언 짐승 한 마리가 날래게 산 위에서 달음박질해온다. 고놈은 아이들의 다리 사이로 쉭쉭 달려나온다. 작은 몸집에 풍성한 꼬리를 가진, 갈색 털의 자그마한 짐승.. 다람쥐다.
한치의 고민도 없이 마고에게 달려드는 다람쥐.
"뀩!"
다람쥐가 마고와 접촉하자, 큰 섬광이 일어난다.
* * *
한편, 마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나르골의 병사들 몇몇이 둘러앉아 토끼를 구워 주린 배를 달랜다.
"출출할 땐 고저 야르르한 토끼구이가 최고디"
"고럼 고럼 햐~ 냄새래 죽인다야"
그때, 번쩍이는 섬광에 일제히 고개를 돌리는 병사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토끼구이에 정신이 팔렸다.
"소금 좀 작작 치라야, 밥보다 귀한 걸 기렇게 막 뿌리면 되네!"
오직 한 병사만이 계속 지켜볼 따름이다. 그의 이마며 뺨에 점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그의 시선 끝엔, 푸른불의 거대한 돔이 날뛰고 있었다.
* * *
푸른불은 나르골 전역을 덮친다. 그 영향으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던 백성들하며, 근무 중이던 병사들 등 모두가 기절하듯이 잠들어버린다. 서서히 흩어지는 불길. 푸른불이 휩쓸자 걸음나무를 붙잡고 있던 하눌동인들마저도, 그리고 한낱 축생인 말까지 생명이란 생명은 잠에 빠져든다.
"다이라! 정신차려 다이라!!"
쓰러진 것은 다이라도 포함이다. 아주는 그 또한 푸른불 사용자여서인지 멀쩡하다. 아주는 다급한 목소리로 다이라를 불러보지만, 다이라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다이라!!"
근데, 이상하게도, 기절하지 않은 또 다른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리아다.
"어떡하죠? 모, 모두 죽은 건가요?"
리아는 두려움에 휩싸여 묻는다.
"아냐! 푸른불 때문에 잠시 기절한 것 뿐이야"
그런데.. 다이라, 엄청난 회복력으로 금방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다.
"다이라.. 정신이 좀 드니?"
"아, 아주님?"
다이라는 걱정어린 따뜻한 시선을 느끼고 얼굴이 붉어진다.
"아주님!!!"
방금 일어난 사람 치곤 꽤나 힘차게 아주를 와락 안아버리는 다이라.. 리아는 어이가 없다.
"기절한 사람이 너무 일찍 깨어나는 것 아녜요?"
"다이라는 푸른불을 좀 자주.. 많이 맞았거든. 평소에 이런저런 일로.."
"으응 아주니임~"
다이라는 아주를 껴안고 그의 몸을 더듬는다. 아주는 얼굴이 금세 시뻘개지더니, 푸른불을 켠다.
"바로 이런 일로!!!"
* * *
"아버지!"
아주, 다이라, 리아는 아밈에게로 달려간다.
"괜찮으세요?"
"나는 괜찮다만 나르골이 걱정이로구나.." 아밈은 두 눈을 감은 채 답한다.
"집정자님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가만 있지 않을 텐데.. 휘파람 불고 싶은 승냥이에겐 이런 기회도 없을 터.."
그런데 그때, 아밈이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는다. 저 위에서, 마고와 친구들 그리고 고양이 소녀가 떨어져 오고 있었다..!! 아밈은 그걸 보자마자 금빛의 기운으로 감싸 안전하게 내려준다. 마고는 어지러움에 헤롱거린다.
"아고고.. 팔이야, 엉덩이야!" 시우는 끙끙대며 앉는다.
"마고 넌 괜찮니?"
"응? 응.. 그, 근데 다른 애들이.."
그때, 시우의 뒤에서 눈을 빛내며 다가오는 아밈.. 그 압도적인 아우라에 시우의 얼굴에 진땀이 흐른다. 딱딱하게 굳어 힘겹게 뒤를 돌아보는 시우.
"아, 아.. 아자빈 누구세요?!" "아자비?"
시우는 말까지 헛나온다. 그걸 들은 아밈, 특유의 얼빠진 얼굴을 보여주신다. 시우의 옆에 다가와, 어깨에 팔을 두르는 아주..
"시우야.." "아주님?!"
"나르골에 달왕님이 오신단 얘긴 들었지?"
"예? 예.."
"저분이 바로 내 아버지.. 달왕님이셔"
"..달..왕?"
시우는 눈물을 머금고 그 이름을 되뇌인다.
"왕이라고요?!! 차림이.. 딱 산적인데요?"
"산적? 으하하하"
시우는 왕 앞에서 겁도 없다. 못하는 말이 읎어 아주.. 다행히도 아밈은 호탕하게 웃어넘긴다.
"이건 미복[25] 이니라. 눈속임하는 덴 딱이지! ..황폐화 된 땅과 가난한 백성들을 살피러 간 군주가 그들에게 부담을 준대서야.."
그 말에 걸맞게, 아밈은 곧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초가집들로 불어오는 찬바람을 회상한다.
"그 덕분에 한뎃잠 자랴 밥찌끼로 연명하랴 마고가 고생을 좀 했지만.."
아밈은 마고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뒤늦게서야 이상함을 눈치챈다..
'''"마고! 네가 근데 왜 여깄느냐!"'''
당황하는 마고.. 그런데, 갑자기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난다.
"그건 제가 대답해 드릴게요!"
"다람쥐가.." "말을 했어?"
스스슥, 다람쥐에게서 기이하게 뒤틀리는 빛. 빛이 거둬지자 왠 사람 형상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랜만이네요, 아밈님!"
19. 19. 담
"오랜만이네요, 아밈님!"
"자네는!"
그녀를 본 아밈의 두 눈이 커진다.
"자네가 이곳엔 어쩐 일인가! 하비로 깊은 숲에서 은거한다지 않았었나! 소식이라도 미리 주지 않고..!"
아밈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반가워한다.
"보다시피 지금은 나르골 꼴이 말이 아니어서 말야.."
"하비로라뇨.. 언제적 이야길 아밈님도 참.."
하지만, 아주는 그녀를 몰랐다.
"..이분은..?"
"아, 그렇지. 저쪽은 내 소생 '아르 아주'. 이쪽은 스승님의 다섯 제자 중 한 명인 담이라고 한단다."
"아, 안녕하세요.. ..가 아니라!"
아주는 분위기에 휩쓸려 엉겁결에 인사하다가 정신을 차린다.
"그보다 아버지! 나르골 전역을 뒤덮을 만한 푸른불이었다구요! 어째서 이 사람들은 쓰러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는 거죠?"
대답은 담이 해준다.
"그건, 이 아이 덕분이랍니다."
담은 마고의 뒤에 서서 어깨에 손을 얹으며 윙크한다.
"넌?!"
"아르달의 피가 흐르는 아밈님과 아주님을 제외한 이 두 사람은, 모두 마고의 힘에 노출된 적이 있었지요."
마고의 힘에 노출된 적이란 바로, 리아는 마고가 나르골에 온 첫 날 마고와 마주쳤을 때, 시우는 마고가 지니고 있던 알약을 먹었을 때였다. 리아는 당황하며 말을 더듬든다.
"나, 나는 딱히 뭘 한 기억이 없는데!"
담은 리아 앞에 밀착한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답니다. 마고와 마주친 것만으로 성정[26] 이 변한 건 당신 뿐이었으니까요."
"변하다니? 무슨 말이야! 나 안 변했어! 나, 난 그대로라구!"
"아뇨, 변했어요. 지금의 당신이라면 선인도 될 수 있답니다"
'..내가 다시.. 선인이 될 수 있다고?'
리아는 사뭇 심각하다. 리아에겐 숨겨진 과거가 있어보인다.
"그렇담 담이 자네, 지금까지 마고를 지켜보고 있었단 말인가?"
"..마리의 부탁이었죠.."
"엄마!?"
아밈의 질문에 답하는 담. 담의 말을 들은 마고는 놀란다.
"근데 왜 그런 사실을 내겐.."
아밈은 조금은 섭한 듯 묻는다.
"알리지 않았느냐구요?"
담이 손을 뻗자, 파즈즈즈, 나무 지팡이 하나가 소환된다. 지팡이를 움켜쥐는 담.
"알릴 수가 없었답니다! 제가 아밈님과 마고를 찾았을 땐 두 사람 모두 감시당하고 있었으니까요."
아밈은 심상찮음을 느낀다.
"바로 저자에게!!"
담의 지팡이 끝은 고양이 소녀와 또다른 하나에게 향한다.
"내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었다니.."
또다른 하나는 바로, 연두빛 눈을 가지고 있던, 의문스럽던 바로 그 하눌동인이다. 그는 고양이 소녀를 챙긴다.
"역시 나리족은 불아비나 인간들관 다르군요. 뭐 상관없습니다. 제가 원한 건 이뤘으니까요.. 덤으로 검의 소재까지 알게 되었으니.."
그때, 그 뒤에서 걸음나무에 늪에서 허우적댄다.
"좀 추하군요..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이라니."
그는 핑거스냅만으로 걸음나무에게 대규모 충격을 가한다.
"어떻습니까! 걸음나무를 처리하는 수고도 덜어드렸는데 저흰 놓아주심이.."
"네 이놈! 내가 너흴 그냥 돌려보낼 성 싶으냐!"
"당연히 그냥 보내고 싶지 않으시겠지요. 하지만 보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곳엔 당신이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안타깝지만 그의 말은 틀린 것이 없다. 당장 그들의 주위에도, 바닥에 쓰러진 수많은 선비들과 병사들이 있으니 말이다.
"저는 지금 나랑고스와의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 이만 길을 내주시지요.."
아밈의 이마에서 핏줄이 잔뜩 울렁인다. 아밈의 두눈이 희게 빛난다.
"어림없는 소리!!!"
아밈은 염력으로 도끼를 끌어와 하눌동인을 공격한다. 하지만 그는 막대 하나로 아밈의 공격을 막아낸다. 기분나쁜 그의 노란 눈동자가 유독 밝게 빛난다.
"기어이 힘을 쓰게 하시는군요"
그의 발이 땅을 울리고, 연두빛 전류 같은 힘이 뻗어나간다. 그리고, 땅바닥을 뚫고 기어 올라오는 겁들..!! 겁들은 연두빛 눈을 빛내며 아가리를 잔뜩 벌려댄다.
"자!! 선택하시지요! 나르골의 백성들을 지킬지, 아니면 절 붙잡을지!"
겁들은 날래게 아밈에게 달려든다. 지켜보다 못한 담, 마고를 불러 이른다.
"마고야! 마곤 잘 모르겠지만, 마고는 내게 아주 오래된.. 소중한 인연이란다."
담은 자신의 가슴에 두른 천 안에서 쪽지 한 장을 꺼낸다. 마고의 옆에 있던 시우는, 철없게도 그걸 보곤 괜히 얼굴을 붉힌다. 담은 미소 지으며 마고에게 건낸다.
"받으렴.. 선물이야. 상황이 정리되거든 읽어보렴. 아무래도 난 다시 먼 길을 떠나야 할 것 같아"
마고는 갑작스레 닥쳐온 수많은 일들에, 머리 속이 복잡한지 초점 없는 눈이다.
"아쉽지만 할 수 없구나. 그럼 나르골을 부탁한다"
"자, 잠깐만요!"
달려나가는 담의 뒷통수에 대고 뒤늦게 입을 열지만 이미 늦은 상황. 마고는 울먹거린다.
"어이 울보!"
마고는 뒤를 돌아본다.
"울 시간 있음 쓰러진 친구들이나 좀 옮겨주지 그래?"
아주다. 아주는 냉정하게 한소리하고는, 펄럭, 외투를 벗어던진다. 아주는 이를 앙다문다.
"너희는! 이 아주님께서 지켜드리지!"
20. 20. 여명
"너희는! 이 아주님께서 지켜드리지!"
* * *
"선택하시지요. 백성들을 지킬지 절 막을지. 물론 절 막는 것도 그리 쉽진 않겠지만요"
하눌동인이 불러낸 겁들이 아밈을 덮친다. 아밈은 혼자서 겁들을 상대하지만 뽑힌 왼팔을 물리는 바람에 주춤하고, 더불어 수적열세와 계속된 싸움으로 인한 고단함으로 겁에 둘러쌓이게 된다.
"...그러게, 판단을 잘 하셨어야죠"
그 사이 하눌동인은 의식없는 고양이 소녀를 데리고 빠져나간다. 아예 언덕마냥 쌓인 겁들의 더미. 그때, 그 사이에서 아밈은 푸른불을 분출하여 겁들을 치워버리고, 이에 하눌동인은 놀란다. 방금의 여파로 바지 하나 빼고는 옷이 증발된 아밈. 순식간에 도끼로 하눌동인의 왼쪽 전완을 베어버린다.
"단념해라"
"단념?"
하지만, 하눌동인은 더 큰 겁을 불러내 아밈의 복부를 가격한다. 아밈은 피를 토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하고, 결국 튕겨져 나가 땅바닥에 힘없이 떨어지고야 만다.
"아밈님!"
담이 놀라며 아밈의 곁으로 온다. 그런데.. 아밈의 공격이 무색하게, '''하눌동인의 팔이 재생된다'''
"아르달의 결계가 있는 나르골에선.. 제 힘이 약화될 수 밖에 없지만 나르골 밖이라면 다르지요."
꾸무럭 꾸무럭, 뻗어나온 대여섯 개의 촉수가 엉기고 꼬여 팔 형태를 이룬다.
"이 대결은 잠시 미뤄두기로 하죠. 그때까지 옥체 보전하시길"
그는 고양이 소녀를 데리고, 비룡 형태의 겁 위에 올라탄다. 아밈은 스스로 쫓으려 하나, 담이 그의 팔을 붙잡고 말린다.
"제가 쫓겠습니다! 겁들과 비슷한 기운을 내뿜을 수 있는 제가 아무래도 더 용이하지 않겠습니까. 게다 추적술이라면 아밈님보다 제가 한 수 위잖아요?"
담은 자신있게 말한다.
"지금 나르골엔 누구보다 아밈님이 필요합니다"
* * *
"다이라, 각오는 돼 있겠지!"
"물론이죠!"
아주와 다이라, 나란히 서서 겁들과 대치한다. 리아와 마고, 시우는 그 뒤에 긴장한 상태로 서있다. 검고 탁한 침을 흘리며 다가오는 겁 떼. 겁들, 땅을 박차고 달려든다.
아밈 쪽도 상황은 매한가지다. 아밈은 혈혈단신으로 겁들을 소탕한다.
'돌아가거라, 너희가 왔던 곳으로..'
아밈의 얼굴엔 혈흔이 낭자하다.
'..이제 남은 건 걸음나무 뿐인가'
마지막으로 남은 걸음나무로 향하는 아밈. 그런데.. 그 앞에 누군가 서 있다..?
'마고?'
마고는 홀린 듯이 걸음나무를 바라보다, 이윽고 걸음나무 위에 손을 올린다.
마고의 손길이 닿자, 걸음나무의 껍질 틈으로, 마고의 손틈으로 새어나오는 빛..
빛은 갑자기 솟구치더니, 걸음나무의 굵은 껍질들이 후두둑 떨어내린다. 다이라, 아주, 리아, 시우, 이들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어느덧 해가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걸음나무는 아름다운 하얀 빛의 나무로 탈바꿈한다.
* * *
다각거리는 말발굽 소리가 경쾌하다. 풀잎 끝에 달린 반딧불이 꽁무니는 영롱하게 빛난다.
"동토에 여명이 밝았군"
"서두르지 않으면 배를 놓칠거야"
말을 탄 두 사람, 대화를 나눈다.
"어디 그럼.." "슬슬 출발해볼까?"
'''동토의 여명/에피소드 가이드/1부 1장 完'''
21. 핵심 요약 및 여담
「동토의 여명, 막을 올리다」
에피소드 가이드 1부 1장에 해당하는 1화~20화는 동토의 여명의 프롤로그 격 이야기이다. 나랑고스, 선비, 검, 겁 등 기본적인 작중 설정을 설명하며, 주인공 마고에게 찾아온 새로운 생활과 새로운 인물들을 그려내고 있다. 1부 1장 전반에 걸쳐 등장한 겁두령 걸음나무, 그리고 그 배후 고양이 소녀로 하여금 위기를 맞은 나르골은, 그들과의 긴긴 갈등과 싸움 끝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01. 왕의 귀향[27]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아밈, 노 선사, 마리, 마고, 아주, 다이라, 담, 함, 리아, 소이
노 선사가 주술로 만들어 낸 새의 이름은 목란인데.. 디즈니 캐릭터 뮬란의 모티브인 화목란과는 상관 없는 것 같다.
달구지를 타고 가다가 정체를 들키는 씬부터 아밈의 눈동자 색깔이 검은색에서 밝은 주황색으로 바뀐다.
아주가 마고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나한테 남은 형제가 있었다고?"라 하는 것을 보아, 아주에겐 이미 또다른 형제가 있는 모양이다.
"키는 나보다 크다냐?"라고 마고에 대해 묻는 아주에게, 궁녀인 리아가 무척이나 편한 태도로 "아주님 보단 큰 줄 아뢰오."라고 농을 하는데..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재에도 왕족에 대한 취급은 특별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신분에 얽매이지 않는 대화는 상식을 벗어나는 특이한 요소다.
02. 불발[28]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아주, 마고, 아밈, 함, 리아, 소이, 아란, 다이라
함과 마고가 비자둥우리에 들어온 후, 수업을 듣는 선비들 옆을 지나가는데, 수업 내용[29] 은 《대대례기》에 나오는 가르침으로 《소학》에도 실려 있는 내용이다. 이를 보아 작중 등장하는 선비들은 실존했던 선비와 이름만 같은 게 아니라 유학 공부도 하며 정신을 수양하는 듯하다.
함과 마고가 숙소에 도착했을 때, 마고는 이렇게 큰 방은 처음이라며 잠이 올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1부 기준, 마고는 13살이고 9년을 유랑했다. 즉, 4살부터 유랑했단 것이다. 마고의 기억 상 숙소처럼 큰 방이 처음일 수 밖에.
비자둥우리의 대식당 이름이기도 한 에졍지는 《청산별곡》에 나온 말로, 그 뜻은 외딴 부엌(정재)라고 한다. 정재淨齋는 불교 사찰의 부엌을 뜻하는 말. '정지(부엌의 방언)'는 지방에서 아직도 쓴다.
식기는 우리와 같은 수저를 쓰지만, 전통적인 작중 분위기와는 다르게 하얀 도자기 접시를 쓴다.
세계관 이해를 돕기 위해 끝부분에 부록으로 소개글이 나오기 시작한 화이다.
소개글 뒤에는 김정휘 작가의 데뷔 첫 주 간의 심정을 담아낸 단편만화가 실렸다.
03. 습격[30]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아란, 다이라, 아주, 마고, 함, 하랑, 진시우, 진시아, 쉬라, 뮤울, 자무, 주리진, 아밈, 달 미르
아직 아이들 간의 나이 설정이 확립이 안 되었던 건지, 시아가 쉬라에게 '언니' 호칭을 빼고 이름만으로 부르는 장면이 있다.[31]
04. 마찰[32]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함, 마고, 쉬라, 아란, 아주, 다이라, 아밈, 달 미르
아주가 꿀잠을 자는 씬에서, 아주는 엄연히 왕자인데도 불구하고, 여느 선인들처럼 그냥 숙소에서 잔다. 대자리 하나 깔고..
05. 겁두령[33]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고양이 소녀, 주리진, 아란, 마고, 함, 아밈, 바르 바눔, 뮤울, 다이라
이번 화에서는 아밈의 눈동자 색깔이 다시 검은색으로 채색되었다. 아밈의 분량이 적긴 하지만..
06. 출정[34]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뮤울, 다이라, 아주, 아밈, 함, 아란, 마고, 달 미르, 바르 바눔
07. 꿈[35]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아주, 다이라, 마고, 함, 아란, 아밈
악몽을 꾸고 일어난 마고가 백목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잘 들여다보면 이것은 후에 나올 걸음나무의 최후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08. 최고의 서포터[36]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아란, 함, 마고, 쉬라, 진시우, 애드가 애기, 진시아, 하랑
09. 해체작업[37]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아란, 함, 아주, 아밈, 달 미르, 바르 바눔, 다이라, 진시우, 하랑, 진시아, 쉬라, 마고
함과 아란의 대화에서, 함의 대사인 "...(중략)...두 사람이 하기를 도모하는 게 훨씬...(중략)..."에 오타가 있다. (작중에서는 도모가 아닌 '''모도'''로 쓰여있다.)
10. 선택[38]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하랑, 진시우, 진시아, 쉬라, 마고, 다이라, 리아
11. 마당을 나온 수리들[39]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진시아, 하랑, 진시우, 마고, 쉬라, 다이라, 리아, 아주, 아밈, 노 선사, 담
2화부터 꾸준히 끝부분에 부록으로 나오던 소개글이 이 화를 마지막으로 나오지 않는다.
12. 제압[40]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다이라, 리아, 아밈, 아주, 고양이 소녀
13. 불청객[41]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고양이 소녀, 아밈, 아주, 다이라
고양이 소녀의 눈동자는 여태껏 연두빛으로 표현되었는데, 마지막 컷에서는 노랗게 바뀌었다. 매우 가까운 색이긴 하지만, 이전 컷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차이가 난다.
14. 빈틈[42]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진시우, 쉬라, 마고, 하랑, 진시아, 고양이 소녀, 아주, 다이라, 아밈, 노 선사
15. 격돌[43]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아밈, 고양이 소녀, 다이라, 아주, 리아
16. 푸른블미르[44]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고양이 소녀, 아밈, 다이라, 리아, 아주, 마고, 하랑, 진시우, 쉬라, 진시아
17. 약속[45]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아주, 다이라, 리아, 아밈, 고양이 소녀, 마고, 하랑, 진시우, 쉬라, 진시아, 마리, 노 선사, 담
마고가 무의식에 빠져 어린 시절로 돌아갔는데, 오묘하게 눈썹의 흉터 자리를 머리칼로 가리고 있어 괜히 궁금하게 만든다..
마지막 컷에서, 마고의 눈썹 흉터 방향이 바뀌어 있다.
18. 재회[46]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마고, 아밈, 하랑, 쉬라, 진시우, 진시아, 고양이 소녀, 다이라, 아주, 리아, 달 미르, 담
토끼구이를 먹던 병사들 중 하나가 머그컵을 사용한다. 보통 손잡이 없는 둥근 술잔으로 묘사하는 것이 보통인데, 사뭇 특이하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이질적이지도 않고..
19. 담[47]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담, 아밈, 아주, 리아, 마고, 진시우, 마리, 고양이 소녀[48]
담에 따르면 리아는 마고와 접촉한 이후 성정이 바뀌어 선인이 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 말을 들은 리아는 '내가 '''다시''' 선인이 될 수 있다고?'라고 생각하는데.. 리아의 과거에 대한 떡밥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겠다.
20. 여명[49]
'''등장 or 언급된 주요인물'''
아주, 아밈, 고양이 소녀, 다이라, 리아, 마고, 진시우, 아란, 함[50]
[1] 나중에 추가되었다가 다시 삭제된 부분이다.[2] 마을 사람들이 보수나 노동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도와주는 봉사적 노동협동 방식[3] 呪力, 불행이나 재해를 막아 준다고 믿는 신비한 힘.[4] 陰子, 숨겨 둔 자식[5] 원래 열 셋이었으나 차후 오류 수정[6] 선인들의 인도자[7] 붉은 기운을 띈 겁으로 단단한 가죽을 자랑한다.[8] 보라 빛을 띄는 평범한 겁. 주로 농경지나 밀밭에 출몰한다.[9] 잃어버린 땅[10] 緊簡, 요긴한 볼일[11] 理知, 이성과 지혜를 아울러 이르는 말[12] 久邦, 오래된 나라[13] 하눌同人, 비자둥우리의 모든 수행을 마친 최상위 선인[14] 白木, 하얀 나무[15] 動因, 어떤 사태를 일으키거나 변화시키는 데 작용하는 직접적인 원인[16] 비상 탈출 갱도의 은어[17] 벌레[18] 나르골 내에 위치한 비행 주경기장[ㄱ] 상황에 따른 공격 시점[19] 귀족[20] 곡식으로 만든 적은 분량의 음식[21] 얼음왕국 보르앙고르에서 혹독한 추위로 악명 높은 곳[22] 신분이나 일 따위의 귀함과 천함[23] 혼, 정신[24] 아밈을 이르는 말[25] 지위가 높은 사람이 무엇을 몰래 살피러 다닐 때에 남의 눈을 피하려고 입는 남루한 옷차림[26] 성질과 심정. 또는 타고 난 본성[27] 나르고르 '''"왕"''' 아밈이 '''"귀향"'''함.[28] 마고를 노린 아주의 공격이 '''"불발"'''함.[29] ...죽은 뒤 누구에게 효도할 것인가! 부모와 형제들을 즐겁게 하지 못하면서 외부 사람들과 사귀려 해서는 아니되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면서 소원한 사람들과 멋대로 가까이하려 해서도 아니 되나니..[30] 겁들이 비자둥우리를 '''"습격"'''함.[31] 8화, 10화 등에도 똑같은 경우가 발생했다.[32] 아밈과 달 미르 사이에 의견이 '''"마찰"'''함.[33] '''"겁두령"''' 걸음나무가 등장함.[34] 함과 아란이 아밈의 명을 받고 '''"출정"'''함.[35] 마고가 걸음나무에 대한 '''"꿈"'''을 꾸었음.[36] 아란과 함은 서로에게 '''"최고의 서포터"'''.[37] 걸음나무 '''"해체작업"'''이 시작됨.[38] 걸음나무를 보러 갈 것인지에 대한 마고의 '''"선택"'''.[39] 걸음나무를 보러 '''"마당을 나온 아이들"'''.[40] 되살아난 걸음나무를 '''"제압"'''함.[41] '''"불청객"''' 고양이 소녀가 등장함.[42] 고양이 소녀가 아밈의 '''"빈틈"'''을 노리고 팔을 뽑아버림.[43] 아밈과 고양이 소녀가 '''"격돌"'''함.[44] 아밈의 '''"푸른블미르"'''.[45] 무의식 속에서 재회한 마고와 엄마 간의 '''"약속"'''.[46] 다람쥐 담과의 '''"재회"'''.[47] 다람쥐 '''"담"'''.[48] 다이라, 하랑, 쉬라, 진시아 등은 등장하긴 했으나 별 활약이 없다.[49] 동토에 '''"여명"'''이 밝음.[50] 하랑, 쉬라, 진시아 등의 경우 전 화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