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주의
왼쪽에서 부터 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블라디미르 레닌
1. 개요
러시아의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이 마르크스주의를 계승하여 만든 사상으로, 블랑키의 비밀결사주의[2] , 카를 카우츠키의 과소소비이론[3] , 플레하노프의 반영론에서 영향을 받았다.
레닌은 공산주의 혁명의 제1단계를 '사회주의'라고 규정하였고,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하여 수립되는 '사회주의' 정권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정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레닌 이래로 공산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강령으로 하지 않는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부하는 사회주의는 결코 사회주의로 인정하지 않는 전통을 세웠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라는 용어도 공산주의자와 비공산주의자 사이에서는 전혀 별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회의 발전, 즉 '보다 높은 단계'로의 진화는 생산력의 높은 발전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여기서는 개인이 분업(分業)에 노예처럼 예속되는 상태가 소멸되며, 따라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차이가 없어지고, 노동이 단지 생활의 수단이 아니라 생활의 '제일의 욕구(欲求)'로 되고, '개인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이 낭만적인 공산주의의 미래상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레닌주의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계승한 것은 여기까지이며, 레닌주의에는 마르크스가 주장하지 않은, 레닌 등에 의해 '''덧붙여진 부분도 상당히 많다. 이는 사실상 필연적인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철학자이자 사상가로써 '자본주의가 몰락할 필연적인 이유'를 기술하고 그 대안으로서 나타날 공산주의를 예언하였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통해서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것인지에 대해서나 공산주의 사회가 어떤 형태를 띌 것이며 어떤 생산방식이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혁명의 방법론과 그 이후 수립될 사회의 모습은 전부 마르크스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레닌 등이 새로 만들어낸 부분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대의 공산주의는 사실상 마르크스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부분이 생산 수단의 국유화다.''' 오늘날에는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와 국유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지만, 정작 마르크스 본인은 국유화를 주장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국가가 소멸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존재하지 않는 국가가 경제를 관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4] 마르크스 본인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고 주장했으므로, 중요한 것은 노동자라는 하부구조이며 경제체계라는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에 의해 자연스럽게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까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규제하고 자본가의 손에서 경제적 권력을 거둬들이기 위한 수단은 국가 권력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장악했기에, 1단계로 노동자 계급의 국가가 생산수단을 국유화 하고, 사회주의 발전에 따라 자연히 국가가 소멸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노동자를 혁명의 주체로 여기고 농민을 무시한 것에 비해, 레닌은 서유럽과는 다른 당시 러시아 제국의 상황에 맞추어 '''농민과 소수민족 역시 도시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혁명의 주체로 상정하였다.''' 물론 농민 문제 관련해서는 노동자로 구성된 적위대가 농민들의 식량을 약탈하는 등 현실은 시궁창에 가까웠지만, 소수민족 문제 관련해서는 레닌주의 교리 내 소수민족의 영토에 기반을 둔 자치권 및 민족어,민족문화 교육 보장을 명시하였고 이는 갈등과 분란을 줄이고 소수민족 인재들을 포섭하는 효과가 있었다.[5]
혁명을 실행하기 위한 정당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내용 역시 레닌주의에 속한다. 레닌주의적 정당운영방식은 '''민주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라고 불린다. 대한민국에도 정당을 민주집중제로 운영할 것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있었지만, 실제로 레닌주의를 생각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며[6] 별다른 반향을 이끌어내지도 못했다.
혁명의 과정 역시 문제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했을 뿐 어떤 방식으로 무너트리라는 행동지침은 제시하지 않았다. 공산주의 혁명에서의 행동지침은 마르크스주의보다 더 역사가 긴 러시아의 혁명가들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다듬어진 것을 레닌이 최종적으로 정리한 것이며, 마르크스 본인이 기여한 바는 거의 없다. 마르크스는 어디까지나 혁명에 이론적 기반과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이다. 전위당에 의한 혁명이론은 오히려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로부터 더욱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 때문에 현대의 사회주의자 중에는 심지어 혁명 자체도 공산주의 본래의 내용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는 예언은 자본주의를 무너트리려고 노력하는 혁명가들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며, 자본주의를 인정하면서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꾀하던, 마르크스가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부른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 않고 점진적인 개량을 추구하는 것은 적어도 마르크스가 제시한 방향은 아니다.
흔히 간과되는 사실인데 레닌주의라는 용어는 레닌 살아 생전엔 쓰이지 않았다. 과거에 레닌류의 사상을 일컷는 용어는 볼셰비키라는 당명을 따라 볼셰비즘이라고 불렸을 뿐이며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견해를[7] 교조주의라고 비난하며 혁명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 다른 견해를 가진 러시아 공산주의자 집단의 사상을 의미했다. 레닌주의라는 용어는 레닌이 질병으로 죽기 직전에 그리고리 지노비예프라는 공산주의자가 레닌의 후광을 이용해 반대파를 억누를 목적으로 광범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8] 그는 레닌주의를 전위당을 기반으로하는 혁명이론이라고 주장했는데, 곧바로 레프 카메네프, 이오시프 스탈린과 3인 동맹체제를 형성하여 반대파를 탄압하고 제거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이름으로 레닌주의는 스탈린에 의해 완성이 이루어지게 된다. 지노비에프는 얼마지나지 않아 스탈린에게 토사구팽되고 대숙청 과정에서 사형되었다.
2. 비판
리버테리언 사회주의자인 놈 촘스키는 레닌주의를 우파적 탈선이라고 비판했다.
3. 파생 사상
레닌주의는 단독으로 언급되지는 않고 다음과 같은 파생 사상들과 연계되어 언급되고 있다.
[1] 의역.[2] 소수의 엘리트가 폭력적인 방법을 강구하여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이론 [3] 필연적인 잉여에 따른 세계화, 자본화의 진행으로 인해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변화가 진행된다는 이론[4] 일단 이 이론에 완전히 어긋나지 않도록, 소련은 형식상으로는 '소비에트'의 연합이며 국가가 아니었다.[5] 오늘날 중앙아시아나 시베리아의 소수민족들은 레닌을 자상한 할아버지나 심지어는 "신령"이라는 이미지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6] 민주집중제라는 말에는 '레닌주의적 정당체계' 혹은 '레닌주의의 전반적인 내용' 이외의 의미는 없다. 그러나 민주집중제를 거론한 정치인들이 어떤 측면에서건 레닌주의적 정책을 추구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7]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해야 등장한다." "사회주의는 노동자의 자기 해방이다." 같은 것들. 과거엔 트로츠키 또한 이러한 신념을 가졌었는데 이는 스탈린주의자들이 트로츠키를 반레닌주의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하는 근거가 되기도한다. 물론 가치관이 변한 이후의 트로츠키는 전혀 반레닌주의자가 아니고, 반레닌주의자라는 용어는 오늘날 사회주의 국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정통마르크스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을 가르키는데 이들 또한 트로츠키주의자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8] The New Fontana Dictionary of Modern Thought Third Edition (1999) pp. 476–477.[9] 현대 중국공산당은 마오주의 같은 반수정주의를 표방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