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트 킬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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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2]
1.1. 선수 생활
1.1.1. 클럽
킬홀츠는 16살부터 고향 바젤을 연고로 하는 BSC 올드 보이즈에서 축구 선수로서의 첫 단추를 끼웠다. 킬홀츠는 하위 리그 소속이었던 블랙 스타즈 바젤을 거쳐 1930년 FC 바젤의 스칸디나비아 투어를 시작으로 바젤의 선수가 되었는데 그 투어는 18일간 7게임을 치르고 배와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이동 시간만 거의 160시간을 쓴 강행군이었다. 바젤은 7경기에서 4승 1무 2패로 투어를 마쳤고 킬홀츠는 7경기 중 5경기에 출전해서 1골을 넣었다.
1932년부터 세르베트 FC의 선수가 된 킬홀츠는 세르베트에서 첫 리그 우승도 맛보고 1933-34 시즌에는 40골을 넣으며 커리어 유일의 리그 득점왕 기록도 썼다.[3]
1935년 베른으로 무대를 옮긴 킬홀츠는 1년 만에 프랑스로 이적해 스타드 드 랭스의 선수 겸 감독이 되었지만 랭스에서는 7경기만 뛰고 다시 스위스로 돌아왔다. 킬홀츠는 1943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1.1.2. 국가대표
1933년 나티에 데뷔한 킬홀츠는 1934년 월드컵에서 주전 센터 포워드로 낙점되었다. 킬홀츠는 경기 시작 7분 만에 선제골을 넣었고[4] 스위스는 킬홀츠의 2골에 힘입어 네덜란드를 3대2로 꺾었다. 8강전의 상대는 체코슬로바키아. 킬홀츠는 전반 18분에 선제골을 넣었지만 스위스의 수비진은 체코슬로바키아 공격진의 화력을 제어하지 못했고 결국 스위스는 2대3으로 역전패했다. 이 대회에서 킬홀츠는 2경기만에 3골을 넣어 대회 득점 3위에 올랐다.
킬홀츠는 1935년에 헝가리를 상대로 자신의 나티 경력에서 유일한 해트 트릭을 성공시킨 적이 있고 1938년 월드컵에도 참가했지만 주전으로 기용된 경기는 없었다.
킬홀츠는 대표팀에서 통산 17경기, 12골을 기록했다.
1.2. 이후
킬홀츠는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이후 스위스의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축구 감독직 이후에는 한 음식 소매 체인에서 인사과 매니저로 일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경기 중에 안경을 썼음에도[5] 공중볼 다툼에 능했고 정확하면서도 강력한 슈팅 능력을 가졌다.
3. 수상
3.1. 클럽
- 나티오날 리그 우승 2회: 1932–33, 1933–34(세르베트 FC)
- 나티오날 리그 준우승 1회: 1934-35(세르베트 FC)
- 스위스 컵 준우승 1회: 1933-34(세르베트 FC)
3.2. 개인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3]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스위스 리그 1시즌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 있다.[4] 하지만 4분 만에 골을 넣은 아르헨티나의 에르네스토 벨리스가 있어서 대회 첫 득점자가 되지는 못했다.[5] 킬홀츠가 현역 생활을 하던 1930년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콘택트렌즈가 없었다. 그나마 플라스틱 재질의 콘택트렌즈가 개발된 건 1939년이었고 운동할 때 사용할만한 콘택트렌즈는 1971년에서야 개발되었다.[6] 라이문도 오르시와 공동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