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

 

1. 개요
2. 설명


1. 개요


레오폴트 리터 폰 자허마조흐(독일어: Leopold Ritter von Sacher-Masoch, 1836년 1월 27일 ~ 1895년 3월 9일)는 오스트리아소설가이자 언론인이다. 마조히즘이라는 용어는 그에게서 유래되었다.

2. 설명


오스트리아령 갈리치아의 수도 렘베르크[1]의 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2살이 되어서야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2] 그라츠 대학교에서 그는 법학역사학, 수학 등을 배우고 교수가 되어 렘베르크로 돌아왔다.
초창기에는 갈리치아를 중심으로 한 역사 소설을 썼다고 한다.
유명한 그의 저서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실제 그의 경험을 모델로 한 것으로, 자허마조흐 본인과 젊은 미망인 파니 피스토어(Fanny Pistor) 남작 부인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는 실제로 「부인의 노예가 되어 그 소망과 명령을 모두 들어주겠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교환하고 6개월을 기한으로 예속되었다고 한다. 특히 파니가 그를 잔인하게 다룰 때는 모피를 입었으며 자허마조흐는 "그레고어(Gregor)"라는 전형적 남자 하인의 이름을 쓰고 마치 하인처럼 굴었다. 이 때 모피를 입은 파니에 대해 자허마조흐가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도 남아있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자허마조흐에게 있어선 하나의 큰 분신과 같아서 심지어 파니와 그가 이탈리아 베네치아[3] 여행을 할 당시 소설처럼 파니는 1등석, 그는 3등석을 타고 갔다고 한다. 또한 아우로라 뤼멜린(Angelika Aurora Rümelin)이라는 젊은 여성과 결혼한 뒤에는 그녀에게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등장인물과 같은 이름인 "반다 폰 자허마조흐(Wanda von Sacher-Masoch)"라는 이름을 붙이고 파니에게와 같은 계약서를 교환, 주종관계를 맺었다고 하니 말 다했다.[4]
이러한 자허마조흐지만 근 100년의 격차를 두고 태어난 사드 후작에 비하면 너무나 대조적으로 풍족한 삶과 영예를 누렸다.[5]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그의 소설에 대하여 많은 비난이 빗발쳤지만 되려 '모피를 입은 비너스'가 출판될 당시의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는 마조히즘이 어느 정도 허용되는 분위기였고 그는 마조히스트들에게서 수많은 팬레터들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역사학 교수로 활동하며 말년에는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았다.
그가 태어난 우크라이나 리비우에는 그의 실물 크기 동상이 있다.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외증조삼촌라고 한다. 레오폴트의 조카 손녀가 마리안느의 어머니라고.


[1] 오늘날 우크라이나리비우[2] 현재의 오스트리아는 독일어권 국가이다. 그가 태어난 지방이 지금은 우크라이나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3] 소설 속에서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는데 장소는 '피렌체'이다.[4] 그러나 이 둘의 관계는 반다가 청년 언론인과 야반도주를 하는 바람에 10년 만에 파탄이 나고 만다.[5] 사드는 일평생의 1/3을 감옥에 보냈다. 물론 사드 이 사람 스스로가 자기 성향을 주체하지 못해서 범죄를 저지른 이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