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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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0년 6월 2일 ~ 1814년 12월 2일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 '''사디즘'''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원조 중의 원조. 사디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 사람의 이름에서 나왔다.
사드 후작(Marquis de Sade)[1] .
본명은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 1740년 6월 2일에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에서 명성있는 귀족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로 태어났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백작이었다. 1772년 그의 봉지가 후작령으로 격상[2] 되었고 1787년 바스티유 투옥때도 후작명으로 투옥되었다. 그러나 1789년 사드 백작이란 명의로 투옥된 기록이 있으며 1814년 사망시에도 사드 백작으로 기록되었다.
사드는 10세에 루이 르 그랑 중등학교에 입학해 4년간 공부했고, 이후 기병대에 입대하여 7년 전쟁을 경험하고 가문의 입김으로 대위까지 진급한 뒤 종전후 퇴역한다. 같은 해 돈 많은 부르주아 가문인 몽트뢰유 집안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은 군주의 권한 아래 있는 파리 고등법원의 총재였고, 훗날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 장모는 상당한 정치수완을 가진 수완가였다. 그는 아내와의 사이에 두 아들 루이 마리와 도나티앵 클로드 아르망, 그리고 딸 마들렌 로르를 두었다.
사드는 이미 10대 후반부터 난봉꾼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결혼 직후부터 그 특유의 사디즘적 면모를 보여왔으나 귀족이란 신분 덕분에 별 탈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사디즘으로 그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176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부활절 사건'이 터지면서 부터이다. '부활절 사건'은 사드가 매춘부 로즈 켈러를 학대한 사건으로써 당시 온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사드는 서둘러 피해자와 합의를 보려고 했지만 결국 투옥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며 그의 악명을 온 프랑스로 퍼지게 만들었다.
석방 뒤 한동안 자신의 성에서 생활하던 사드는 1772년 여름, 돈을 구하기 위해 방문한 마르세이유에서 매춘부를 상대로한 최음제 오용으로 살인미수 혐의를 받게 되어 외국으로 도피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때 애인을 동반했는데 그 애인이 자신의 처제(!)인 로네 수녀(!!!)였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그는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까지 받는다. 이 일로 그의 장모는 몹시 격분하였고 이것이 나중에 큰 화근으로 작용하게 된다. 몇 번의 도피 생활 이후 사드는 1774년 부인과 함께 자신의 영지에 칩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기행은 오히려 악명을 더해갔고 여기에 그의 부인까지 가담하게 된다.[3]
결국 1776년 미성년자 시종들을 상대로 한 음란행위가 폭로되었고 1777년 2월 13일 국왕 루이 16세의 봉인장을 소지한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수감되고 말았다. 그의 장모가 수를 써서 국왕에게 사면없이 무기한 구금명령을 받아 낸 것이다. 이후 그는 1790년 왕정이 무너지고 봉인장의 효력이 상실할 때까지 13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집필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1789년 7월 즈음엔 유명한 바스티유 감옥에 있었는데, 일설에 따르면 감옥 밖의 시민들을 향해 간수들이 죄수들을 학살하고 있다며 선동하는 고함을 질러서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의 빌미를 제공했다고도 한다. 어쨌든 사드는 바스티유 감옥이 습격 당하기 며칠 전에 다른 곳으로 이송되었다. 그렇게 사드가 이송되고, 바스티유 감옥이 습격당하는 과정에서 소돔 120일의 원고는 실종되며 사후에나 재발견되었다. 이렇게 실종된 뒤 여러 수집가 손을 거치며 이리저리 매매되다가 2017년 다시 경매에 나왔는데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의 중요 국가 문화유산이라는 이유(!)'''로 경매를 중단시켰다. 국제 시세대로 나랏돈을 주고 구입할 것이라고.# 참고로 가격이 70억 원이 넘는다.
1790년 이후 자유를 찾은 사드는 사실상 빈털털이에 무일푼 신세가 된다. 아내와는 이혼하였으며 머물 집조차 없었다. 잠시 연예계를 기웃거리며 소설 <쥐스틴>을 익명으로 간행했지만 어떤 작품도 무대에 올리지 못하고 악평만 얻었고, 민주주의자를 자청하면서 공무에 임하기도 했는데 1793년 반혁명분자란 죄목으로 또다시 투옥되어 이듬해 테르미도르 반동덕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
이후 그는 생계를 위해 주요저서들을 실명 혹은 익명으로 간행하지만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1801년 또다시 음란물 유포 혐의로 투옥되었으며, 1804년 그의 악명에 진저리가 난 자녀들에 의해 파리 근교의 비세트르 병원(Bicêtre Hospital)[4] 폐쇄병동에 수감되고 만다. 이 상황에서 그의 원고들이 유실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사드는 이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을 데리고 아마추어 극단을 조직해서 공연을 가졌으며, 이는 훗날 페터 바이스의 희곡 마라와 사드(1963)의 소재가 되어 유명해졌다.
그리고 1814년 12월 2일 사드는 결국 이 정신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무덤 위에 여러 과실수를 심어 무덤의 흔적조차 없애 줄 것을 당부하며 “사람들의 뇌리로부터 나에 대한 기억이 깨끗이 사라지는 게 더없이 기쁠 따름이다.”란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세월이 갈수록 더 큰 악명을 얻을 뿐이었다.
그가 죽은 후 자손들은 그를 부끄러워하여 오랫동안 사드 후작이라는 작위를 쓰지 않았으나, 사드가 재평가되면서 근래부터 그의 작위를 다시 쓰기 시작하였다. 기사
사드의 소설은 무려 230년 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에서 봐도 충격적인 전개가 굉장히 많은데 실제로 이 분야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보면서 선인의 지혜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포르노에 가까운 내용과는 대조적으로 자유주의, 유물론, 무신론, 아나키즘적 요소도 있어 20세기 들어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정신분석학자들에게서 예술적, 학술적 평가를 받아 지금에 이른다. 이 외에도 ''''인간의 사악함에 대한 묘사를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의 극한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언급되곤 한다. 그 예가 <쥬스틴>으로 이 소설에서는 선인들은 겁탈당하고 모욕 당하지만 조금만 악에 치우쳤던 쥬스틴의 언니는 오히려 인생이 활짝 펴서 선행이 가능한 상태가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문화 이론이나 문학 창작을 배우고 있다면 그의 이름은 꼭 한 번씩은 만나게 된다.
가장 정상적인 작품으로 <사제와 죽어가는 이의 대화>가 있다. 그의 초기 작품이자 습작에 가까운 작품인데 내용도 엄하지 않으면서 사드의 사상이 잘 드러났다.
사드의 작품은 어느 나라에서건 한 번쯤은 '외설 시비로 법정에까지 오른다'는 징크스 같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나라의 문화적 토양과 성숙성을 가늠하는 데에도 그의 이름은 늘 언급된다. 2012년 9월 19일 우리나라에서 음란성을 이유로 판매금지 가처분을 받았으나, 훗날 다시 복간되었다.
참고로 영국 출신의 아웃사이더의 저자인 콜린 윌슨은 사드의 중2병을 제대로 까버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쾌락에도 수확체감의 법칙이 성립되니 병신 소리는 말라'는 교훈 되겠다. 근데 정작 사드는 자신의 작품만이 아니라 생활상 자체가 이러했으니 중2병보다는 차라리 정신병이 어울린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입만 산 애송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
움베르토 에코는 패러디 작품 모음집인 Misreading에서 '고전 작품들을 현대의 출판사들이 본다면...' 하는 내용의 작품을 썼었는데 거기서 출판사는 사드 후작의 작품을 "처음 펼친 곳에선 철학 얘기가 나오고 2번째도 그렇다가 3번째로 펼쳤을 때나 섹스가 나왔다. 독자들이 원하는 건 섹스지 철학이 아니다"라면서 퇴짜를 놓는다.
래디컬 페미니즘의 거두 안드레아 드워킨(A.Dworkin)은 자신의 저서 "포르노그래피: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에서 사드를 음란물과 자신의 삶을 일체화한 인물로써 후대의 (남성) 문인들과 전기 작가들에게 추앙 받고 있다고 맹공격했다. 반면 같은 급진적 계보에 속하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의 경우는 사드의 삶에는 질색하면서도 그의 문학적 공헌에는 썩 호평했다.
정신의학이나 BDSM 계열에서는 사드의 성향에 대한 재평가 작업도 이루어 지고 있다. 사드 후작이 사디즘의 어원이 되었지만 그의 소설이나 실제 일화를 분석하면 단순히 편향된 새디스트로만 볼 수 없는 면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직계 후손인 자비에르 드 사드(2010년 타계)와 티보 드 사드 또한 사드 후작에 대한 재평가 작업과 사드 후작의 라코스테 성의 복구작업을 위해 노력 중이다. 피에르 가르뎅이 이 성을 매입했다고 한다.
워크룸 프레스는 번역가 성귀수가 "필생의 기획"으로 내놓은 사드전집 한국어 완역계획을 받아들여 2014년부터 전집을 출간했는데 1권 <사제와 죽어가는 이의 대화>를 2014년 12월에 출간한 후 3년 넘게 책이 안나왔다. 그래서 다들 안팔려서 엎어졌다고 생각했는데...2018년 7월, 약 3년 8개월만에 시리즈 2권 소돔의 120일이 출간되었다.
소설 작품으로 소돔의 120일(Les 120 Journées de Sodome, ou l'Ecole du libertinage)이 유명하다.
수도원에서 교육받은 쥐스틴과 쥘리에트는 부모님의 유산을 나눠갖고 헤어지게 된다. 쥐스틴은 '내면의 미덕에 충실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지만 그녀가 도덕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항상 불행만이 따라다닌다. 가는 데마다 온갖 험한 꼴을 다 당하고 결국 온갖 누명 끝에 사형선고까지 받게 되지만 극적으로 상봉한 자매 쥘리에트와 만나게 되어 사형을 면한다. 하지만 부자가 된 언니를 만나 이제서야 인생을 피나 싶더니 얼마 뒤 한밤중에 벼락을 맞고 사망한다.(...)
2010년 한국의 '열린책들'에서 미덕의 불운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159번. ->당연히 세계 명작이다!
그리고 2011년 11월 한국 동서문화사에서 그 언니 쥘리에트의 이야기를 다룬 악덕의 번영이 출간 예정이다. 미덕의 불행의 도입부는 쥘리에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녀의 번영(?) 과정이 살짝 언급된다. 쥴리에트는 높으신 분들과 적당히 즐기다가 이를 동앗줄 삼아 상류계층으로 올라간다. 결국은 쥐스틴의 비참한 죽음을 보고는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지만.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에 등장하는 저스틴은 여기서 따온 것이다.
쥐스틴느에서는 여동생이 벼락맞아 숨진 걸 보고 수녀원에 들어가 엄격한 품행으로 이름높아진다고 마무리되었지만, 도리어 쥘리에트에서는 여동생 쥐스틴느가 벼락을 맞도록 유도한 뒤 수녀는커녕 더한 악덕으로 빠져든다고 결말지어진다(...). 전반적으로 야설이고, 중간중간 휴식처(...)로 철학 얘기도 나온다.
국내 번역본은 동서문화사판 밖에 없는데 중역본에 발췌역이라 번역서로서 가치가 없다. 현재로선 성귀수의 사드전집에 기대해볼 수밖에 없는데 2020년까지 겨우 2권 나왔고 한권 나오는데 3년 넘게 걸리는 진행속도의 이 전집에서 악덕의 번영은 7번째로 기획되어 있다....성귀수가 중간에 급사하거나 안팔려서 엎어지지 않아도 10년 이상 걸린다는 결론이 나온다.
1967년 피터 브룩 감독으로 마라, 사드라는 영화가 나왔다. 페터 바이스가 각본을 쓴 동명의 연극을 영화로 각색한 것으로 사드가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연극을 지도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토대로, 사드의 연출 아래 연기 지도를 받은 정신병자들이 장 폴 마라의 죽음을 재현하는 일종의 사이코드라마 형식을 띤다.
또 같은 2000년에 나온 브누아 자코 감독의 <사드>와 필립 카우프만 감독의 영화 퀼스가 있다. 퀼스는 한국의 OCN에서도 자막 방영했던 적이 있다. 배우는 제프리 러시[5] . 이밖에도 케이트 윈슬렛이나 호아킨 피닉스 등 은근히 네임드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는 광경을 지켜보고 난 뒤에 샤랑통 정신병원에 감금된 사드가 온갖 음란소설을 써서 바깥에 보내고 이를 당시 높으신 분들은 골칫거리로 생각하는데 이를 교정한다는 명목으로 쿨미어라는 젊은 신부가 파견되어 사드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아마 감독의 의도는 사드를 당시의 검열과 탄압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추구한 시대를 앞서 간 선구자 정도로 그리려고 한 듯(...)하다. 음란물 말고 성경도 문학적이니 한 번 읽어보라며 신부가 내민 성경을 더럽다는 듯이 침을 뱉고 집어던지면서 "'''나는 신을 증오해. 자기 아들도 매달았는데 나한테는 더할 거 아냐?'''"라며 고함친다거나, 작중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글을 계속 쓰려고 하는데 펜을 빼앗았더니 닭뼈를 와인에 찍어 휴지에 쓴다거나, 결국 알몸으로 지하실에 갇혀서 자기 대소변을 찍어서(...) 벽에 글을 쓰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징하다 못해 경탄스럽기까지 하다.
퀼스 작중 쿨미어 신부(호아킨 피닉스 분)의 이상과 현실 속에서 괴리를 느끼면서 차츰 미쳐가는 장면 묘사가 볼만 하다. 국가도 포기하다시피한 사드를 갱생시키라는 사제의 명을 받고 선의로 대하면 통하게 되어 있다고 믿고 사드를 달래보려 하지만 사드가 그걸 들을 리가 있나. 동시에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뻔히 보이는 정신병원 소속 하녀(케이트 윈슬렛 분)를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멀리하면서 자기를 기만하는 와중에 고통을 느끼지만 결국 그녀가 죽어가면서 자기를 사랑하냐고 물을 때도 끝내 이성으로써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교정 치료 중(예를 들어 방화 충동으로 들어 온 환자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다거나)인 환자들을 대할 때 보면 꼭 "어때, 불 지르는 것보다 더 낫지?" 식으로 물어보며 다니는 등 은근히 자기만족이 눈에 보인다.
영화 아가씨에는 사드풍의 가상 작품 '채찍은 말한다'를 낭독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낭독하는 내용과, 설정상 여주인공의 이름이 '공작부인 쥘리에트'로 나오는 것을 볼 때 <쥘리에트, 악덕의 번영>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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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기가 배경인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에서도 등장하는데, 첫 등장부터가 범상치 않다. 창밖을 향해 간수들이 죄수를 학살한다며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데 카메라 시점이 바뀌자 알몸인 것이 드러난다(...). 간수들이 미친놈 또 저런다(...) 식으로 욕하자 진짜 미친듯이 웃는다. 그러나 그 뒤로도 파리의 권력자들이 아르노에게 쓰러지는 것을 보고 싶다는 이유 + 그들이 죽으면 재산을 훔쳐낼 생각으로 주인공인 아르노에게 정보를 준다. 엘리제와의 첫 만남에서 엘리제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데, 이때 하필이면 아르노에게 묻는 질문이...사드가 누군지 모르는 엘리제도 그 순간 이놈이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대충 눈치 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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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작의 DLC인 데드 킹즈에서도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역사대로와 달리 제법 부유해졌는지 비싼옷을 입고 살도 좀 쪘다. 물론, 아르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지 않았냐고 묻는 장면이나 나폴레옹이 부하장수로 부터 사드 후작이 유적을 알아내고 있다는 소문에 대해서 가난한 사람에다가 현재 감옥에 있다고 하고 있다. 즉, 역사적 사실은 소문이라는 뜻...엘리즈의 죽음으로 방황하던 아르노에게 4일 후, 마르세유에서 이집트로 가는 뱃편을 제공하는 대가로 프랑스 혁명시기에 활동했던 자코팽파의 정치인이자 철학자 및 수학자였던 콩도르세가 도망중에 행방이 묘연한 이틀동안 생 드니에 있는 루이 9세의 무덤에 숨긴 필사본을 찾아줄 것을 요청한다. 결국 아르노로부터 필사본을 받으며 웃는다. 그러면서 독백을 하는데 제법 사상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다음은 데드킹즈의 엔딩을 장식한 사드 후작의 독백.
1. 개요
1740년 6월 2일 ~ 1814년 12월 2일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 '''사디즘'''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원조 중의 원조. 사디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 사람의 이름에서 나왔다.
2. 생애
사드 후작(Marquis de Sade)[1] .
본명은 도나시앵 알퐁스 프랑수아 드 사드(Donatien Alphonse François de Sade). 1740년 6월 2일에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에서 명성있는 귀족 가문의 유일한 상속자로 태어났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백작이었다. 1772년 그의 봉지가 후작령으로 격상[2] 되었고 1787년 바스티유 투옥때도 후작명으로 투옥되었다. 그러나 1789년 사드 백작이란 명의로 투옥된 기록이 있으며 1814년 사망시에도 사드 백작으로 기록되었다.
사드는 10세에 루이 르 그랑 중등학교에 입학해 4년간 공부했고, 이후 기병대에 입대하여 7년 전쟁을 경험하고 가문의 입김으로 대위까지 진급한 뒤 종전후 퇴역한다. 같은 해 돈 많은 부르주아 가문인 몽트뢰유 집안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은 군주의 권한 아래 있는 파리 고등법원의 총재였고, 훗날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 장모는 상당한 정치수완을 가진 수완가였다. 그는 아내와의 사이에 두 아들 루이 마리와 도나티앵 클로드 아르망, 그리고 딸 마들렌 로르를 두었다.
사드는 이미 10대 후반부터 난봉꾼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결혼 직후부터 그 특유의 사디즘적 면모를 보여왔으나 귀족이란 신분 덕분에 별 탈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사디즘으로 그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176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부활절 사건'이 터지면서 부터이다. '부활절 사건'은 사드가 매춘부 로즈 켈러를 학대한 사건으로써 당시 온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사드는 서둘러 피해자와 합의를 보려고 했지만 결국 투옥되고 말았다. 이 사건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며 그의 악명을 온 프랑스로 퍼지게 만들었다.
석방 뒤 한동안 자신의 성에서 생활하던 사드는 1772년 여름, 돈을 구하기 위해 방문한 마르세이유에서 매춘부를 상대로한 최음제 오용으로 살인미수 혐의를 받게 되어 외국으로 도피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때 애인을 동반했는데 그 애인이 자신의 처제(!)인 로네 수녀(!!!)였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그는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까지 받는다. 이 일로 그의 장모는 몹시 격분하였고 이것이 나중에 큰 화근으로 작용하게 된다. 몇 번의 도피 생활 이후 사드는 1774년 부인과 함께 자신의 영지에 칩거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기행은 오히려 악명을 더해갔고 여기에 그의 부인까지 가담하게 된다.[3]
결국 1776년 미성년자 시종들을 상대로 한 음란행위가 폭로되었고 1777년 2월 13일 국왕 루이 16세의 봉인장을 소지한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수감되고 말았다. 그의 장모가 수를 써서 국왕에게 사면없이 무기한 구금명령을 받아 낸 것이다. 이후 그는 1790년 왕정이 무너지고 봉인장의 효력이 상실할 때까지 13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집필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1789년 7월 즈음엔 유명한 바스티유 감옥에 있었는데, 일설에 따르면 감옥 밖의 시민들을 향해 간수들이 죄수들을 학살하고 있다며 선동하는 고함을 질러서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의 빌미를 제공했다고도 한다. 어쨌든 사드는 바스티유 감옥이 습격 당하기 며칠 전에 다른 곳으로 이송되었다. 그렇게 사드가 이송되고, 바스티유 감옥이 습격당하는 과정에서 소돔 120일의 원고는 실종되며 사후에나 재발견되었다. 이렇게 실종된 뒤 여러 수집가 손을 거치며 이리저리 매매되다가 2017년 다시 경매에 나왔는데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의 중요 국가 문화유산이라는 이유(!)'''로 경매를 중단시켰다. 국제 시세대로 나랏돈을 주고 구입할 것이라고.# 참고로 가격이 70억 원이 넘는다.
1790년 이후 자유를 찾은 사드는 사실상 빈털털이에 무일푼 신세가 된다. 아내와는 이혼하였으며 머물 집조차 없었다. 잠시 연예계를 기웃거리며 소설 <쥐스틴>을 익명으로 간행했지만 어떤 작품도 무대에 올리지 못하고 악평만 얻었고, 민주주의자를 자청하면서 공무에 임하기도 했는데 1793년 반혁명분자란 죄목으로 또다시 투옥되어 이듬해 테르미도르 반동덕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다.
이후 그는 생계를 위해 주요저서들을 실명 혹은 익명으로 간행하지만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1801년 또다시 음란물 유포 혐의로 투옥되었으며, 1804년 그의 악명에 진저리가 난 자녀들에 의해 파리 근교의 비세트르 병원(Bicêtre Hospital)[4] 폐쇄병동에 수감되고 만다. 이 상황에서 그의 원고들이 유실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사드는 이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을 데리고 아마추어 극단을 조직해서 공연을 가졌으며, 이는 훗날 페터 바이스의 희곡 마라와 사드(1963)의 소재가 되어 유명해졌다.
그리고 1814년 12월 2일 사드는 결국 이 정신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무덤 위에 여러 과실수를 심어 무덤의 흔적조차 없애 줄 것을 당부하며 “사람들의 뇌리로부터 나에 대한 기억이 깨끗이 사라지는 게 더없이 기쁠 따름이다.”란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세월이 갈수록 더 큰 악명을 얻을 뿐이었다.
그가 죽은 후 자손들은 그를 부끄러워하여 오랫동안 사드 후작이라는 작위를 쓰지 않았으나, 사드가 재평가되면서 근래부터 그의 작위를 다시 쓰기 시작하였다. 기사
3. 작품 평가
사드의 소설은 무려 230년 전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점에서 봐도 충격적인 전개가 굉장히 많은데 실제로 이 분야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보면서 선인의 지혜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포르노에 가까운 내용과는 대조적으로 자유주의, 유물론, 무신론, 아나키즘적 요소도 있어 20세기 들어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정신분석학자들에게서 예술적, 학술적 평가를 받아 지금에 이른다. 이 외에도 ''''인간의 사악함에 대한 묘사를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의 극한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언급되곤 한다. 그 예가 <쥬스틴>으로 이 소설에서는 선인들은 겁탈당하고 모욕 당하지만 조금만 악에 치우쳤던 쥬스틴의 언니는 오히려 인생이 활짝 펴서 선행이 가능한 상태가 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문화 이론이나 문학 창작을 배우고 있다면 그의 이름은 꼭 한 번씩은 만나게 된다.
가장 정상적인 작품으로 <사제와 죽어가는 이의 대화>가 있다. 그의 초기 작품이자 습작에 가까운 작품인데 내용도 엄하지 않으면서 사드의 사상이 잘 드러났다.
사드의 작품은 어느 나라에서건 한 번쯤은 '외설 시비로 법정에까지 오른다'는 징크스 같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나라의 문화적 토양과 성숙성을 가늠하는 데에도 그의 이름은 늘 언급된다. 2012년 9월 19일 우리나라에서 음란성을 이유로 판매금지 가처분을 받았으나, 훗날 다시 복간되었다.
참고로 영국 출신의 아웃사이더의 저자인 콜린 윌슨은 사드의 중2병을 제대로 까버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쾌락에도 수확체감의 법칙이 성립되니 병신 소리는 말라'는 교훈 되겠다. 근데 정작 사드는 자신의 작품만이 아니라 생활상 자체가 이러했으니 중2병보다는 차라리 정신병이 어울린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입만 산 애송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
움베르토 에코는 패러디 작품 모음집인 Misreading에서 '고전 작품들을 현대의 출판사들이 본다면...' 하는 내용의 작품을 썼었는데 거기서 출판사는 사드 후작의 작품을 "처음 펼친 곳에선 철학 얘기가 나오고 2번째도 그렇다가 3번째로 펼쳤을 때나 섹스가 나왔다. 독자들이 원하는 건 섹스지 철학이 아니다"라면서 퇴짜를 놓는다.
래디컬 페미니즘의 거두 안드레아 드워킨(A.Dworkin)은 자신의 저서 "포르노그래피: 여자를 소유하는 남자들"에서 사드를 음란물과 자신의 삶을 일체화한 인물로써 후대의 (남성) 문인들과 전기 작가들에게 추앙 받고 있다고 맹공격했다. 반면 같은 급진적 계보에 속하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의 경우는 사드의 삶에는 질색하면서도 그의 문학적 공헌에는 썩 호평했다.
정신의학이나 BDSM 계열에서는 사드의 성향에 대한 재평가 작업도 이루어 지고 있다. 사드 후작이 사디즘의 어원이 되었지만 그의 소설이나 실제 일화를 분석하면 단순히 편향된 새디스트로만 볼 수 없는 면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직계 후손인 자비에르 드 사드(2010년 타계)와 티보 드 사드 또한 사드 후작에 대한 재평가 작업과 사드 후작의 라코스테 성의 복구작업을 위해 노력 중이다. 피에르 가르뎅이 이 성을 매입했다고 한다.
워크룸 프레스는 번역가 성귀수가 "필생의 기획"으로 내놓은 사드전집 한국어 완역계획을 받아들여 2014년부터 전집을 출간했는데 1권 <사제와 죽어가는 이의 대화>를 2014년 12월에 출간한 후 3년 넘게 책이 안나왔다. 그래서 다들 안팔려서 엎어졌다고 생각했는데...2018년 7월, 약 3년 8개월만에 시리즈 2권 소돔의 120일이 출간되었다.
소설 작품으로 소돔의 120일(Les 120 Journées de Sodome, ou l'Ecole du libertinage)이 유명하다.
3.1. 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행
수도원에서 교육받은 쥐스틴과 쥘리에트는 부모님의 유산을 나눠갖고 헤어지게 된다. 쥐스틴은 '내면의 미덕에 충실한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지만 그녀가 도덕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항상 불행만이 따라다닌다. 가는 데마다 온갖 험한 꼴을 다 당하고 결국 온갖 누명 끝에 사형선고까지 받게 되지만 극적으로 상봉한 자매 쥘리에트와 만나게 되어 사형을 면한다. 하지만 부자가 된 언니를 만나 이제서야 인생을 피나 싶더니 얼마 뒤 한밤중에 벼락을 맞고 사망한다.(...)
2010년 한국의 '열린책들'에서 미덕의 불운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159번. ->당연히 세계 명작이다!
그리고 2011년 11월 한국 동서문화사에서 그 언니 쥘리에트의 이야기를 다룬 악덕의 번영이 출간 예정이다. 미덕의 불행의 도입부는 쥘리에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녀의 번영(?) 과정이 살짝 언급된다. 쥴리에트는 높으신 분들과 적당히 즐기다가 이를 동앗줄 삼아 상류계층으로 올라간다. 결국은 쥐스틴의 비참한 죽음을 보고는 수녀원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지만.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에 등장하는 저스틴은 여기서 따온 것이다.
3.2. 쥘리에트, 혹은 악덕의 번영
쥐스틴느에서는 여동생이 벼락맞아 숨진 걸 보고 수녀원에 들어가 엄격한 품행으로 이름높아진다고 마무리되었지만, 도리어 쥘리에트에서는 여동생 쥐스틴느가 벼락을 맞도록 유도한 뒤 수녀는커녕 더한 악덕으로 빠져든다고 결말지어진다(...). 전반적으로 야설이고, 중간중간 휴식처(...)로 철학 얘기도 나온다.
국내 번역본은 동서문화사판 밖에 없는데 중역본에 발췌역이라 번역서로서 가치가 없다. 현재로선 성귀수의 사드전집에 기대해볼 수밖에 없는데 2020년까지 겨우 2권 나왔고 한권 나오는데 3년 넘게 걸리는 진행속도의 이 전집에서 악덕의 번영은 7번째로 기획되어 있다....성귀수가 중간에 급사하거나 안팔려서 엎어지지 않아도 10년 이상 걸린다는 결론이 나온다.
4. 대중매체에서
1967년 피터 브룩 감독으로 마라, 사드라는 영화가 나왔다. 페터 바이스가 각본을 쓴 동명의 연극을 영화로 각색한 것으로 사드가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연극을 지도하기도 했다는 사실을 토대로, 사드의 연출 아래 연기 지도를 받은 정신병자들이 장 폴 마라의 죽음을 재현하는 일종의 사이코드라마 형식을 띤다.
또 같은 2000년에 나온 브누아 자코 감독의 <사드>와 필립 카우프만 감독의 영화 퀼스가 있다. 퀼스는 한국의 OCN에서도 자막 방영했던 적이 있다. 배우는 제프리 러시[5] . 이밖에도 케이트 윈슬렛이나 호아킨 피닉스 등 은근히 네임드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는 광경을 지켜보고 난 뒤에 샤랑통 정신병원에 감금된 사드가 온갖 음란소설을 써서 바깥에 보내고 이를 당시 높으신 분들은 골칫거리로 생각하는데 이를 교정한다는 명목으로 쿨미어라는 젊은 신부가 파견되어 사드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아마 감독의 의도는 사드를 당시의 검열과 탄압에 맞서 표현의 자유를 추구한 시대를 앞서 간 선구자 정도로 그리려고 한 듯(...)하다. 음란물 말고 성경도 문학적이니 한 번 읽어보라며 신부가 내민 성경을 더럽다는 듯이 침을 뱉고 집어던지면서 "'''나는 신을 증오해. 자기 아들도 매달았는데 나한테는 더할 거 아냐?'''"라며 고함친다거나, 작중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글을 계속 쓰려고 하는데 펜을 빼앗았더니 닭뼈를 와인에 찍어 휴지에 쓴다거나, 결국 알몸으로 지하실에 갇혀서 자기 대소변을 찍어서(...) 벽에 글을 쓰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징하다 못해 경탄스럽기까지 하다.
퀼스 작중 쿨미어 신부(호아킨 피닉스 분)의 이상과 현실 속에서 괴리를 느끼면서 차츰 미쳐가는 장면 묘사가 볼만 하다. 국가도 포기하다시피한 사드를 갱생시키라는 사제의 명을 받고 선의로 대하면 통하게 되어 있다고 믿고 사드를 달래보려 하지만 사드가 그걸 들을 리가 있나. 동시에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뻔히 보이는 정신병원 소속 하녀(케이트 윈슬렛 분)를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멀리하면서 자기를 기만하는 와중에 고통을 느끼지만 결국 그녀가 죽어가면서 자기를 사랑하냐고 물을 때도 끝내 이성으로써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교정 치료 중(예를 들어 방화 충동으로 들어 온 환자에게 그림을 그리게 한다거나)인 환자들을 대할 때 보면 꼭 "어때, 불 지르는 것보다 더 낫지?" 식으로 물어보며 다니는 등 은근히 자기만족이 눈에 보인다.
영화 아가씨에는 사드풍의 가상 작품 '채찍은 말한다'를 낭독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낭독하는 내용과, 설정상 여주인공의 이름이 '공작부인 쥘리에트'로 나오는 것을 볼 때 <쥘리에트, 악덕의 번영>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추정.
4.1.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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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기가 배경인 어쌔신 크리드: 유니티에서도 등장하는데, 첫 등장부터가 범상치 않다. 창밖을 향해 간수들이 죄수를 학살한다며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데 카메라 시점이 바뀌자 알몸인 것이 드러난다(...). 간수들이 미친놈 또 저런다(...) 식으로 욕하자 진짜 미친듯이 웃는다. 그러나 그 뒤로도 파리의 권력자들이 아르노에게 쓰러지는 것을 보고 싶다는 이유 + 그들이 죽으면 재산을 훔쳐낼 생각으로 주인공인 아르노에게 정보를 준다. 엘리제와의 첫 만남에서 엘리제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데, 이때 하필이면 아르노에게 묻는 질문이...사드가 누군지 모르는 엘리제도 그 순간 이놈이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대충 눈치 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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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작의 DLC인 데드 킹즈에서도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역사대로와 달리 제법 부유해졌는지 비싼옷을 입고 살도 좀 쪘다. 물론, 아르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지 않았냐고 묻는 장면이나 나폴레옹이 부하장수로 부터 사드 후작이 유적을 알아내고 있다는 소문에 대해서 가난한 사람에다가 현재 감옥에 있다고 하고 있다. 즉, 역사적 사실은 소문이라는 뜻...엘리즈의 죽음으로 방황하던 아르노에게 4일 후, 마르세유에서 이집트로 가는 뱃편을 제공하는 대가로 프랑스 혁명시기에 활동했던 자코팽파의 정치인이자 철학자 및 수학자였던 콩도르세가 도망중에 행방이 묘연한 이틀동안 생 드니에 있는 루이 9세의 무덤에 숨긴 필사본을 찾아줄 것을 요청한다. 결국 아르노로부터 필사본을 받으며 웃는다. 그러면서 독백을 하는데 제법 사상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다음은 데드킹즈의 엔딩을 장식한 사드 후작의 독백.
친애하는 아르노에게.
인류가 맞이할 미래에 대한 우리의 희망은 대략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네.
국가들 간의 불평등을 없애는 것.
하나의 국가 안에서 평등을 이루어 내는 것.
마지막은 인류의 진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