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텔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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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텔 가문의 문장
House of Rethel
1. 개요
2. 기원
3. 성장
4. 역대 레텔 영주


1. 개요


레텔 가문(Maison de Rethel)은 프랑스 북부의 레텔 지방을 영위했다. 레탈 백작령(Comte de Rethel)은 처음에는 독립적인 레텔 백작에 의해 지배 되었지만, 부계가 끊긴 후에는 느베르(Nevers) 백작, 플랑드르(Flanders) 백작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르고뉴(Burgundy) 공작에 의해 지배되었다. 1405년 백작령은 프랑스의 대귀족제(Pairie de France)에 올랐고 1581년에는 공작령으로 자리매김했다.
가문의 문장의 3개의 쇠스랑인지 네기인지 보면 알겠지만 농기구다. 이 가문의 시작은 청지기 역할의 장원을 관리하는 한미한 가문이었다. 무난하던 이 가문은 십자군 시대에 크게 대두됐다. 예루살렘 왕국의 보두앵 2세는 레텔 백작의 4대 영주 위그 1세의 차남으로, 5대 영주 제르베(Gervais de Rethel)와 마틸드(Mathilde de Rethel)와 남매지간이며 막내 자매 베아트리스(Béatrice)는 킬리키아의 아르메니아 왕국 레본 1세와 결혼했다.

2. 기원


레텔 지역은 본래 성 래미 수도원(Abbey of Saint-Remi)의 멀리 떨어진 장원이었다. 이 수도원은 6세기에 건립되었었고, 496년 초대 프랑스 국왕이었던 클로비스 1세를 가톨릭으로 개종을 시켰던 랭스 주교의 성유물을 보존하고 있었다. 중세 시절 왕의 개종은 프랑스의 기독교화와 연결되었기에 이곳은 프랑스 유사 이래 성지로 떠받드려졌다. 프랑스인 한정 콘스탄티누스 1세의 세례식과 비견될 정도의 역사가 기록된 곳으로 드골 역시 '''프랑스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는 프랑크 민족에 의해 프랑스의 왕으로 선택된 클로비스야말로 프랑스 역사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찬양했다. 레텔 가문은 이 수도원 장원의 아드보카투스(Advocatus), 수호자, 변호자 또는 입법자, 관리자로 해석되는 직책을 맡으며 시작했다. 초대 장원의 관리자는 므나쎄(Manassès I de Rethel)였다. 므나쎄의 출생은 분명하지 않다. 가문의 수기에 따르면 당시 알자스(Alsace) 공작의 고티에(Gautier) 아들이라고 하지만 정설은 레미의 대주교 아르토(Artaud de Remi)의 동생이다. 이러한 여러 설이 난무하는데 천년 전 가문이고 부계가 끊겨서인지 후에 여러 방계 가문에서 한미함을 가리려 고귀함을 입맛대로 덧 씌워서인지 정확하게 믿을 수가 없다.
그렇게 10세기 후반에 레텔의 관리자가 되었고 대를 이어가며 지역 유지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귀족 가문이 되었다. 므나쎄 1세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아내[1]가 있었는데 그와 함께 아들 므나쎄 2세를 낳았고 순조롭게 영지를 물려주며 레텔 가문은 시작된다.

3. 성장


레텔의 4대 영주 위그 1세(Hugues I de Rethel) 자식 중에 보두앵(Baudouin de Rethel)이 있었는데, 장남인 므나쎄가 있었기에 영지를 물려받을수 없었다. 당시 십자군 운동이 전 유럽을 뒤 흔들었고, 외육촌 친척 3명이 1차 십자군에 참전하자 같이 끼어든다. 그 세 명이 외스타슈, 고드프루아, 보두앵이었다.[2] 그들과 함께 아나톨리아 반도에 이르러 안티오크 로 가는 갈림길에서 에데사로 향하던 보두앵 드 플랜더스의 뒤를 따랐고, 그 수는 신의 한수가 된다. 훗날 보두앵 드 플랜더스가 2대 예루살렘 국왕으로 지명받아 예루살렘으로 떠나자 보두엥 드 레텔은 에데사 백국의 2대 영주로 임명되었고, 보두앵 1세가 자식 없이 병사하자, 그 당시 성지에서 가장 가까운 촌수였던 보두앵이 예루살렘의 3대 국왕으로 의회에서 추대가 된다. 사실 보두앵 1세의 큰 형 외스타슈가 왕의 유언으로 승계받으러 성지로 오는 길이었는데, 모종의 술수로 왕위를 낚아 채버린다.
레텔 가문은 그렇게 성지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이 되었다. 보두앵 2세는 모르피아 말라티아치라는 현지 에데사 귀족 가문 여자와 결혼했고, 운명인지 딸만 4명 낳았다. 장녀 멜리장드는 앙주 백작 풀크 5세와 결혼시켰고 이 두 사람을 후계자로 삼았다. 차녀 알리스와 삼녀 오디에르나는 각각 안티오키아의 보에몽 2세와 트리폴리의 레몽 2세와 결혼시켰다. 막내딸 이오베타는 왕이 된 후 태어난 자식으로, 그녀는 성 안나 수녀가 된 뒤 훗날 세워지는 베다니의 수녀원의 수녀원장으로 살아간다.
아들 없던 가문은 거기서 멈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운명은 피할 수 없는지 유럽 본국의 레텔 가문도 보두앵 2세의 여동생 마틸드를 끝으로 부계가 끊긴다.

4. 역대 레텔 영주


므나쎄 드 레텔 Manassès I de Rethel (? ~ 989)
므나쎄 드 레텔 Manassès II de Rethel (989 ~ 1032)
므나쎄 드 레텔 Manassès III de Rethel (1032 ~ 1056)
위그 드 레텔 Hugues I de Rethel (1065 ~ 1118)[3]
제르베 드 레텔 Gervais de Rethel (1118 ~ 1124)[4]
마틸드 드 레텔 Matilde de Rethel (1124 ~ 1151)[5]
마틸드 이후로 남편 가문이 상속
[1] 시골 아낙네 같은 평민으로 추측[2] 십자군을 출발하고 보두앵이 에데사 백국의 백작이 되었을 즈음에 큰 형 므나쎄가 후사없이 아버지보다 먼저 죽었기에 원래라면 레텔의 영주가 되었을 터였지만 운명은 그렇게 되었다.[3] 예루살렘 왕국 보두앵 2세의 아버지[4] 위그의 삼남으로 장남이 병사하자, 계승권이 차남 보두앵에게 가야했으나 당시 에데사 백국의 백작이 되어있었기에 레텔의 영주가 된다.[5] 위그의 장녀. 제르베가 자식없이 사망하자 레텔을 계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