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 앳킨슨

 

'''론 앳킨슨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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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로널드 프레데릭 "론" 앳킨슨
(Ronald Frederick "Ron" Atkinson)
생년월일
1939년 3월 18일
국적
[image] 잉글랜드
출신지
리버풀
포지션
윙 하프
소속 클럽
아스톤 빌라 (1956-1959)
옥스포드 유나이티드 (1959-1971)
스태프
케터링 타운 (1971-1974)
캠브리지 타운 (1974-1978)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1978-1981/1987-198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81-1986)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88-1989)
셰필드 웬즈데이 (1989-1991/1997-1998)
아스톤 빌라 (1991-1994)
코벤트리 시티 (1995-1996)
노팅엄 포레스트 (1999)
1. 개요
2. 축구인 생활
2.1. 선수 경력
2.2. 감독 경력
2.2.1. 감독 데뷔 ~ 맨유
2.2.2. 그 이후
2.3. 은퇴 이후


1. 개요


영국축구선수 출신 감독.
별명은 '''빅 론(Big Ron)'''.

2. 축구인 생활



2.1.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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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포드 선수 시절의 모습.
1939년 3월 18일에 리버풀에서 태어나 얼마 후에 워윅셔로 이사해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956년에 아스톤 빌라에서 데뷔한 후 1959년부터 당시 하부리그 팀인 옥스포드 유나이티드 FC에서 1971년 은퇴시까지 선수로 뛰었다.

2.2. 감독 경력



2.2.1. 감독 데뷔 ~ 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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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엣킨슨 감독의 WBA 시절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상.
1971년에 은퇴하자마자 하부리그 팀인 케터링 타운의 감독으로 시작하여 3년 뒤에 캠브리지 타운 감독을 거쳐 1978년에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의 감독으로 1부 리그에서 감독생활을 시작하여 그럭저럭 팀을 이끌다가 1981년에 맨유에서 데이브 섹스턴 감독의 후임 자리를 제안받고 맨유로 옮겼으며, 이때 맨유 역사상 최장기간 주장이 될 브라이언 롭슨을 웨스트 브롬위치에서 영입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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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맨유 부임 첫 시즌에 앳킨슨 감독은 한 때 팀을 리그 1위에 올려놓는 등 선전하지만 결국 밥 페이즐리 감독이 이끄는 리버풀에 밀려 3위로 마감해야 했다. 그 다음 시즌인 1982/1983 시즌에도 리그 선두를 차지했지만 막판에 리버풀에 밀려 4위에 그쳤다. 1982년부터 1984년까지 그 당시 리그 끝판왕이었던 리버풀에 밀려 리그우승은 하지 못했지만 론 앳킨슨 감독은 대신 FA컵에서 자신의 진가를 보여줬다.
1982/1983 시즌 리그컵과 FA컵 결승에 모두 진출한 맨유는 1983년 3월 26일에 열린 리버풀과의 리그컵 결승전에서 1-2로 패해 리그컵 우승을 내줬지만 5월 26일에 열린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과의 FA컵 결승전 재경기에서는 4-0으로 압승을 거두고 FA컵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주장인 브라이언 롭슨은 결승전에서 두 골을 넣어 팀의 우승을 견인했다. 그리고 신예 공격수 마크 휴즈가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며 맨유의 주포로 떠오른 1984/85 시즌에 맨유는 2시즌만에 FA컵 결승전에 진출해 5월 18일 애버튼과 맞붙어 후반 33분 수비수 케빈 모런이 퇴장당했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연장전에서 노먼 화이트사이드의 골로 1-0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정작 리그에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재임기간 5년동안 리버풀에 번번히 밀려 리그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 결국 그는 더 큰 성적을 원했던 맨유 수뇌부들에 의해 감독직을 알렉스 퍼거슨에 넘겼다.

2.2.2.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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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필드 웬즈데이 시절.

아스톤 빌라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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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벤트리 시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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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생활의 종착역인 노팅엄 시절.
맨유를 떠난 이듬해에 당시 2부 리그 팀인 WBA와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거쳐 1989년에 셰필드 웬즈데이의 감독으로 부임, 첫 시즌에는 성적이 부진해 1989/90 시즌에 18위로 강등되었으나 다음 시즌인 1990/91 시즌에 풋볼 리그 컵(당시 럼벨로우즈 컵)에서 우승함과 동시에 1부 리그로 단숨에 복귀시키고 난 뒤 바로 아스톤 빌라로 팀을 옮겨 드와이트 요크, 우고 에히오구, 나이젤 스핑크, 토니 달리 등을 필두로 팀을 리빌딩시켜 1992/93 시즌에 파죽지세로 리그를 씹어먹다 후임인 퍼거슨이 지휘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1위 경쟁에 미끄러졌고, 1994년에 리그컵 우승을 달성하나 인내심 없이 단기적인 성적에 집착하던 덕 엘리스 회장에 의해 1994/95 시즌 도중에 해임되었고, 이후 코벤트리 시티와 셰필드 웬즈데이를 거치고 1998/99 시즌 막판에 강등 위기에 처한 노팅엄 포레스트의 감독으로 부임해서 뭔가 해 보려고 했으나, 1999년 4월 24일에 아스톤 빌라에게 진 게 결정적인 타격이 되어 결국 5월 16일에 강등을 면치 못하고 그는 은퇴를 하게 된다.

2.3. 은퇴 이후



론 엣킨슨의 인종차별 발언에 대해 다룬 BBC 다큐멘터리 (2004)
은퇴 뒤에 ITV에서 축구해설가로도 활동했으나, 2004년 4월 20일 챔스 4강 첼시-모나코전 중계방송 때 첼시 FC의 주전 마르셀 드사이에 대해 녹화 상태에서 "게으른 깜둥이 X끼"라고 했다가 자신이 진행한 프로그램에서 하차당하는 수모를 겪었고, 2005년 1월 19일에 셰필드에서 열린 모 행사에서 "중국인들은 최고의 피임 비법을 갖고 있다. 중국 여자들이 그렇게 못생겼는데도 인구가 많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바람에 당시 셰필드 유나이티드 입단을 앞두고 있던 하오하이둥은 중국 <티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앳킨슨이 얼마나 구시대적인지 알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멍이 들도록 패줘야 한다"고 분노를 드러낸 바 있다.
그 외에도 2002년에 크리스마스 캐롤 앨범을 낸 바 있다.
[1] 맨유가 그의 영입을 위해 지불한 돈은 150만 파운드로 이 기록은 6년간 깨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