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

 



'''알렉스 퍼거슨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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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스코틀랜드'''}}}
{{{-2 14대



'''클럽'''
'''맨유'''}}}
{{{-2 21대




'''알렉스 퍼거슨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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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1993 · 1999 · 2007 · 2008
1993-94 · 1995-96 · 1996-97 · 1998-99 · 1999-00 · 2002-03 · 2006-07 · 2007-08 · 2008-09 · 2010-11 · 2012-13




'''베스트팀'''
2007 · 2008

'''2011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펩 과르디올라
2위
'''알렉스 퍼거슨'''
3위
주제 무리뉴
'''2013 FIFA 올해의 감독상'''
수상
유프 하인케스
2위
위르겐 클롭
3위
'''알렉스 퍼거슨'''

'''알렉스 퍼거슨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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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hester United Football Club'''
<colbgcolor=#da020e> ''' 이름 '''
'''알렉스 퍼거슨 경'''
'''Sir Alex Ferguson, Knight Bachelor'''[1]
''' 본명'''
알렉산더 채프먼 퍼거슨
Alexander Chapman Ferguson
''' 출생'''
1941년 12월 31일 (82세) /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시
''' 국적'''
[image] 스코틀랜드
''' 신체'''
180cm
''' 직업'''
축구선수(공격수[2]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colbgcolor=#da020e> ''' 선수 '''
퀸즈 파크 FC (1957~1960)
세인트 존스턴 FC (1960~1964)
던펌린 애슬레틱 FC (1964~1967)
레인저스 FC (1967~1969)
폴커크 FC (1969~1973)
에어 유나이티드 FC (1973~1974)
''' 감독 '''
이스트 스털링셔 FC (1974)
세인트 미렌 FC (1974~1978)
'''애버딘 FC (1978~1986)'''
스코틀랜드 대표팀 (1985~198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86~2013)'''
''' 가족 '''
아들 대런 퍼거슨
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과 축구 선수 시절
3. 감독계에서의 위상
4. 그의 어록
5. 에피소드
5.1. 올드 트래포드
5.2. 장수감독
5.3. 자서전 발간
5.4. 감독빨
5.5. 진화하는 감독
5.6. 상왕
5.7. 퍼기타임
5.8. 껌거슨
5.9. 박지성과의 관계
5.10. 헌사
6. 은퇴 후 행보
7. 이야깃거리
8. 기록
8.1. 선수
8.2. 감독
8.3. 개인 수상
8.4. 수훈

[clearfix]

1. 개요


'''유나이티드의 전술 마스터 (United's master tactician)'''

유럽 축구 연맹에서 축구계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명감독 10인을 꼽으며 남긴 평.

영국(스코틀랜드)축구선수 출신 전 감독. 1986년부터 2013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감독을 맡아 맨유를 명문 구단으로 성장시키는 데에 앞장섰으며, 영국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꼽히는 전설적인 명장이다. 맨유에서 약 28년간 감독직을 수행하며 얻은 우승컵이 무려 38개이고, 전체 감독생활까지 따지면 총 49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로 인해 퍼거슨은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린 감독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1999년 트레블을 이룬 업적으로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아 알렉스 퍼거슨 경이 되었다. 참고로 Knight Bachelor는 '최하위 훈작사'로 번역되고는 하지만, 3등급 CBE나 4등급 OBE 등 기사작위급보다 아래인 훈장'만' 받은 사람을 '훈작사'로 칭하는 경우도 또 많기 때문에 이는 혼란을 부르는 번역이다. OBE가 훈작사인데 Knight Bachelor가 최하위 훈작사라는 그 말대로라면 CBE > OBE >>> Knight Bachelor 라는 말도 안 되는 꼴이 만들어 진다. '훈작사'로 구글링을 해서 조금만 살펴보면 그때그때 다른 개족보를 확인할 수 있다. 훈작사라는 단어 자체도 영국 정부로부터 공인된 것인지 출처가 불분명한 단어이고, 훈장의 훈(勳)과 작위의 작(爵), 기사의 사(士) 세 단어를 짬뽕시켜 만들어진 한자어다. 제도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이 훈장과 작위를 아예 뭉뚱-그려서 하나로 퉁쳐버리게 하는 단어라 할 수 있다. 기사작위는 아무나 받는 게 아니냐는 잘못된 인식에 이런 혼란스런 번역이 상당한 공헌을 했다. 따라서 여기서는 원어 'Knight Bachelor'를 그대로 밝혀 적는다.
[image]
이 사진은 대영제국 훈장 3등급(CBE)을 받을 때이며, 아래쪽 사진이 기사작위를 받는 장면이다.[3]

2. 생애



2.1. 어린 시절과 축구 선수 시절


[image]
퍼거슨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고반이라는 곳에서 알렉산더 비튼 퍼거슨(Alexander Beaton Ferguson)과 엘리자베스 하디(Elizabeth Hardie)의 아들로 태어났다. 둘은 퍼거슨의 고모, 알렉산더 비튼 퍼거슨의 동생의 소개로 만났다고 하는데 속도위반 결혼을 했기에 어린 퍼거슨에겐 어떻게 결혼하게 된건지 자세한 사정은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항구 노동자로 가난했고 주변 환경의 치안이 딱히 좋은건 아니었지만 노동자촌 특유의 끈끈한 의리는 마음껏 만끽하며 지낼 수 있었고, 그것이 자기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그는 자기 자서전에서 어린 시절을 이야기했다.
실제 4살, 5살 때 사귄 친구들과 환갑을 넘어 70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친하게 지낼 정도로 그때의 인간관계가 그에 미친 영향이 컸으며 고집스런 성격도 그때부터 변함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보통 그러하듯 축구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유소년 축구 클럽에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다니곤 했다고 한다.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축구부로 활동했으며 그렇게 축구에 미친 결과 학업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아 교장선생에게 학업보다는 기술을 배우는게 좋겠다는 충고를 받기도 했다.
고교 졸업 후 그는 조선소의 연습공으로 취직했으며 동시에 파트타임으로 당시 유명한 아마추어 클럽이었던 퀸스 파크, 세인트 존스턴 등에서 활약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 그는 평생의 반려이자 세아들의 엄마가 되는 캐시 홀딩을 만나기도 하였다.[4]
[image]
알렉스 퍼거슨과 캐시 홀딩
이후 그는 덤퍼린으로 이적해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좋은 성적을 내었다. 비록 감독과 마찰이 있어 컵대회 결승전에 나가지 못하는 등의 일이 있긴 했지만 그는 그때 열심히 뛰었고 1965-66 시즌엔 51경기 출장 45골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남기기도 했으며 스코틀랜드 리그 공동 득점왕도 차지했다. 초특급 선수는 아니었어도 충분히 일급 선수였다.
또한 덤퍼린에 있었던 1966년 5월 12일 캐시 홀딩과 결혼식을 올렸으며 그 후로 현재까지 행복한 부부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퍼거슨은 덤퍼린에서의 활약으로 당시, 그리고 지금도 셀틱과 더불어 스코틀랜드 최고의 클럽인 레인저스로 이적했으나 레인저스에서 그는 의외의 암초를 만나게 되는데 그건 다름아닌 종교 갈등이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가톨릭개신교 간의 종교 갈등이 매우 극심했고 셀틱은 가톨릭을, 레인저스는 개신교를 대표하는 클럽이었다. 퍼거슨의 경우 본인도, 아버지도, 동생도 모두 개신교도였으나 퍼거슨의 아내인 캐시가 가톨릭교도였고, 레인저스의 몇몇 사람은 그것 때문에 노골적으로 퍼거슨을 적대했다.
1968년 9월 18일 퍼거슨은 첫 아이 마크[5]를 얻었는데 그 일마저 퍼거슨이 자기 아들에게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게 했느니 어쩌니 하는 중상모략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후로 구단 보드진의 어이없는 감독 경질과 그로 인한 마찰 등으로 퍼거슨은 어린 시절 꿈의 클럽이었던 레인저스에 환멸을 느끼고 결국 폴커크로 떠나게 된다.
폴커크에 머무를 때부터 퍼거슨은 본격적으로 감독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코치 자격증을 취득한 후 사실상의 플레잉 코치(선수 겸 코치)로 재직하기 시작했다. 덤퍼린 시절의 감독을 다시 만난 그는 덤퍼린 시절처럼 서로 존중하고 때로는 싸우고(...)하면서 첫번째 코치직을 경험했고 이후 에어 유나이티드에서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보낸 후 선수로서 은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편 감독일을 하면서 부업으로 술집도 했고 꽤 장사가 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술집 손님 등을 대상으로 사채놀이도 했으나 이러한 부업이 시간과 정신력 소모가 크다고 느끼게 되었고 또 술집 장사도 조금씩 기울자 모두 그만두고 감독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2.2. 감독 시절


''' '''

3. 감독계에서의 위상


"퍼거슨은 전 세계 모든 감독들의 보스입니다."

주제 무리뉴

영상.
퍼거슨은 "감독은 내가 선수들보다 잘 뛸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선수들도 '''내가 감독하면 더 잘하겠다'''고 생각한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영국의 감독 중에 퍼거슨이 키워낸 선수 출신이 많아서 그를 통한 영향력도 상당하다.

(2008년경) 잉글랜드 전체 92클럽 중에 12%의 감독 자리를 퍼거슨의 제자들이 지휘했었다.

Premiership: Birmingham - Steve Bruce / Reading - Steve Coppell / Sunderland - Roy Keane / Blackburn Rovers - Paul Ince

League One: Huddersfield Town - Andy Ritchie / Rotherham United - Mark Robins / Sheffield United - Bryan Robson

League Two: Bury - Chris Casper / Morecambe - Sammy McIlroy / Peterborough - Darren Ferguson / Wrexham - Brian Carey

"요즘 나의 예전 선수들은 나에 대항하기 위해(타 클럽 감독을 의미) 단체로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이 클럽에 있었던 것이 그들의 향후 커리어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것은 전염과 같다. 그들은 경기장을 떠나기를 원하지 않을 것. 그들은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경기를 계속하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

[image]
(▲퍼거슨이 키운 제자들)

(알렉스 퍼거슨 경이 감독이던 시절 함께 했던 맨유의 선수들 중 감독이 된 사람들 명단- 31명)

Viv Anderson, Michael Appleton, Henning Berg, Clayton Blackmore, Laurent Blanc, Steve Bruce, Chris Casper, Peter Davenport, Simon Davies, Darren Ferguson, Ryan Giggs, David Healy, Gabriel Heinze, Mark Hughes, Paul Ince, Andrei Kanchelskis, Roy Keane, Henrik Larsson, Pat McGibbon, Gary Neville, Paul Parker, Mike Phelan, Bryan Robson, Mark Robins, Teddy Sheringham, Ole Gunnar Solskjaer, Jaap Stam, Frank Stapleton, Gordon Strachan, Chris Turner, Neil Webb. 본 명단은 퍼스트 팀의 감독들만 포함한 것이며 코치나 부감독은 제외되었다.

상대팀 감독들도 퍼거슨이 감독 모임 자리에 가거나, 만찬장에 들어서면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보고 인사한다고. 주제 무리뉴는 전술했듯이 퍼거슨을 존경하며 실제로 자기도 그를 맨유의 구단원들이 하듯이 BOSS라는 표현으로 부른다고 밝힌 바 있다. 심지어 로베르토 마르티네스는 퍼거슨이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영국 축구계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신랄하게 깐 적이 있는데 얼마 안 있어 자기가 한 말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image]
▲ UEFA 앰버서더 및 엘리트 감독 포럼 회장을 맡게된 퍼거슨
맨유 감독 은퇴 후, 퍼거슨은 유럽 축구 연맹 엘리트 감독 포럼의 회장을 맡고 있다. UEFA에게 유럽의 각국 축구협회가 감독들을 가르칠 사람이 필요하다고 요청했기 때문. 매해 9월 개최되는 UEFA 엘리트 감독 포럼은 유럽 구단 감독 중 초청받은 감독들만 참석해 전략을 연구하는 모임이다. 이 포럼에서 퍼거슨은 젊은 감독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으며, 축구 스포츠의 변화를 논하고 있다. 축구 발전에 있어 좋은 여러 아이디어가 감독들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아르센 벵거, 무리뉴, 카를로 안첼로티 등 여러 경험 많은 감독들과 젊은 새로운 감독들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1 출처2 출처3 출처4 출처5
[image]
(▲ 감독으로서의 우승 횟수)
은퇴 후 6년이 지난 2019년 5월 현재, 그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이 사진 하나로 알 수 있다.

4. 그의 어록


영상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

팬이 루니를 자극. 루니가 왈 '훈련장으로 와라 10초안에 때려눕혀줄께' 시전하고 FA에 경고를 받음.

이에 퍼거슨이 루니에게 트위터를 할 시간에 책을 읽으라고 인생 조언.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것은 일개 클럽이 아니라 '''리그를 세계 정상에 다시 올려 놓는 것이다'''."[6]

1999년 맨유의 트레블은 맨유 우승만이 아니라 잉글랜드 리그를 침몰에서 다시 구해놓은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하다.[7]

나는 항상 클럽과 팬들 사이의 다리가 되려고 노력한다. 나는 팬들이 행복한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즐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팀보다 큰 선수는 필요가 없다.

상대 진영으로의 침투가 되지 않은 채 점유율만 높은 것은 시간 낭비다.

(2002년 당시 한국 국대에 대해) 월드컵에서 한국의 경기는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면서 열정적이고 힘이 넘치는 경기를 펼쳤죠. 그러나 이것이 K리그를 희생하면서 얻은 결과라는 측면을 결코 잊어선 안 됩니다.

(루니에게) 난 감독이고 넌 선수야

2010년에 루니가 나한테 외질 사달라고 했는데 루니한테 '선수의 역할은 경기를 뛰는 것이고 감독의 역할은 적절하게 팀을 짜는 것이다. 넌 니 할일이나 해라'라고 했어. 출처

진정한 챔피언이란 패배했을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 우리들 또한 그러고 싶다.

나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빈곤했던 것은 아니다. TV나 자동차, 전화는 없었을지 몰라도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 생각했고, 실제로 나에게는 축구가 있었다.

리그 우승 없는 챔피언스리그, 아무런 의미 없다.

전술은 중요한 것이지만 전술이 시합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다. 시합에서 이기는 것은 인간이다.

천번, 아니, 백만번을 다시 해보라고 해도 그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아직 현역이다. (걷어찬 운동화가 베컴의 얼굴을 직격한 일이 고의가 아니었음을 언급하며)

우리들은 언제나 이 클럽을 '버스'에 빗댄다. 버스를 놓쳐버린 사람이 나온다해도 '미안!'이라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타지 못한 사람을 주우러 되돌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가 챔스에서 맨유를 이길 확률은 메시가 헤딩골을 넣을 확률과 같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레알 마드리드는 두렵지 않다. (챔스 8강 2차전을 앞두고)


5. 에피소드



5.1. 올드 트래포드


[image]
알렉스 퍼거슨 경 스탠드
재임 시절, 2011년 11월 5일,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맨유 부임 25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북쪽 스탠드의 이름을 올드 트래포드 맨체스터(Old Trafford Manchester)에서 알렉스 퍼거슨 경 스탠드(Sir Alex Ferguson Stand)로 개명했다. 기존의 명칭은 남쪽 스탠드로 옮겨놓았다가 보비 찰튼 경 스탠드로 개명 이후 철거했다.
퍼거슨 경 동상 오픈 행사. 영상
맨유에서의 이룬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올드 트래포드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고, 2012년 11월 23일 공개되었다. 이 행사에 그의 제자들인 에릭 칸토나, 피터 슈마이켈, 에드윈 반 데 사르, 올레 군나르 솔샤르. 뤼트 판 니스텔로이, 드와이트 요크, 앤드루 콜, 라이언 긱스, 개리 네빌, 필 네빌이 참석했다. 출처
[image] [image]

● 매우 자랑스러운 순간이야.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죽은 후에야 동상이 세워지잖아. 근데 난 살아있네!

● 와이프는 날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약속했어요, 매주 토요일마다 동상에 절을 한다고 했어요!

[image] [image]
2013년엔 퍼거슨의 공헌을 기념하여, 그의 이름을 딴 길도 생겼다. 원래 이름은 워터스리치(Waters Reach Road)로 트래포드시에서 자치구 의회의 승인을 얻어 길의 이름을 바꿨다. 알렉스 퍼거슨 경 길(Sir Alex Ferguson Way)은 맷 버스비 경 길(Sir Matt Busby Way)과 연결되어 있다. 맨유의 감독, 스탭들, 선수들은 OT에 출근할 때마다 이 두 길을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1986년에 올드 트래포트에 도착했을 때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여정들을 생각하지 못했다. 명예훈장을 받고 내 이름을 딴 도로가 생긴다고 하니 영광스러울 따름이다. 지난 27년 동안 위대한 클럽에서 역사를 만들었고 믿을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5.2. 장수감독


[image]
1985년 7월 존 홀린스가 첼시 FC의 감독으로 부임한 이래, 2013년 라파엘 베니테즈까지 총 18명의 감독이 다녀갔다. 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알렉스 퍼거슨, 단 한 사람으로 설명할 수 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EPL에서 축구 감독의 목숨은 파리 목숨보다 짧다는 얘기가 있다. 2006년 영국 워릭 경영대학원(Warwick Business School)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05년까지 잉글랜드 감독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약 2년이었다. 허나 퍼거슨 감독(스코틀랜드 출신)은 무려 27년간 재임하고, 성공신화를 썼다.
[image]
퍼거슨이 재임했던 27년 시절 중 25년만 보더라도 레알 마드리드는 24명, 인테르는 19명, 첼시는 15명, 유벤투스 뮌헨 맨시티는 14명, AC밀란은 13명, 바르사는 11명이 감독으로 거쳐갔다.
그리고 은퇴 후, 후임 감독들의 행보로 인해 그 존재감이 끊임없이 재평가되고 있는 명장이다.

5.3. 자서전 발간


에브라가 전화로 알려줬는데, 브라질 월드컵 준비과정의 일환으로, 프랑스 국가대표팀 데샹 감독이 선수단 전원한테 내 자서전을 읽도록 했다고 했다더라. 선수들이 책을 편 지 5분 만에 숙면을 취했다고 숙면에 효과가 좋았대(...).

[image] [image]
(▲ 자서전을 인증한 제자 피케)[8]
[image]
(▲ 어렸을 때 아버지 따라서 퍼거슨과 사진찍었던 소년은 훗날 장성하여 자서전을 사러왔다.)
[image]
그리고 이 자서전의 발간식에서 논란의 월드클래스 발언이 나오는데...

(기자) 질문하겠습니다. 당신이 여태 봐온 최고의 선수들은 누구죠?

(퍼거슨) 펠레, 디 스테파노, 마라도나, 크루이프.

(기자) 순서대로입니까?

(퍼거슨)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즘 언론을 보면 '월드클래스'라는 수식어가 너무 남발되고 있어. 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지도 했던 선수들 중 '월드클래스' 선수는 4명 뿐이야. 폴 스콜스, 라이언 긱스, 에릭 칸토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지. 그들은 차이를 만들어 냈고 그것이 그 증거지. 칸토나는 프리미어리그 첫 우승의 기폭제가 되었지. 스콜스와 긱스는 어릴때부터 환상적인 선수였으며, 두 선수 모두 오랫동안 활약했지. 프리미어리그 전체를 통틀어 그들 만큼의 레벨에서 계속 활약한 선수가 있을까? 없다, 절대로 없지.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는 완벽한 천재 플레이어지. 가장 재능있었던 제자는 호날두야. 또한 현재 월드클래스라고 칭할 만한 선수는 오직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뿐이야.

이 발언에 대해 베컴은 '''"응. 나 월클 아닌거 맞아"'''라며 쿨하게 반응했지만 퍼디난드는 본인의 페이스북에 "월드클래스의 기준이 무엇인가? 그것은 상당히 애매모호하다. 선수의 평가 기준이 될 수있는 요소는 다양하다. 예를 들어 훌륭한 골잡이, 훌륭한 골키퍼, 훌륭한 태클러, 팀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정신적 지주 등이 있다. 누가 월드클래스 선수이며 월드클래스란 대체 무엇인가?"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참고로 해당 자서전에서 퍼거슨은 베컴에 대해 '베컴은 훌륭한 축구 선수보다도 패션계의 아이돌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때문에 맨유에서 나간 이후로는 톱 플레이어라 불리울 수 있는 영역에 단 한번도 다다르지 못했다.'라고 일침.
일반적으로 정점을 기반으로 꾸준함을 +@로 치는데에 반해, 퍼거슨경 같은 경우는 꾸준함을 중점에 두고 선수를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감독 입장에서는 꾸준히 일정수준을 유지해주는 믿을 수 있는 선수가 더 선호되기 마련이다.
● 은퇴 후에도 영감님의 판독기는 여전히 가동중이다. 프리미어리그는 이달의 감독상, 선수상, 그리고 이달의 골 수상자를 매달 발표하는데, 수상자 선정에 참여하는 전문가 패널 구성단에 알렉스 퍼거슨 경과 퍼디난드가 포함되어 있다. 참고로, 사상 처음으로 16/17시즌에는 일반 팬들의 투표도 반영되고 있다. 팬 투표는 전체 결과에 10%로 반영. 또한 이달의 선수상에 한해서는 프리미어리그 20개 클럽의 주장들 역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5.4. 감독빨


[image]
맨유 스쿼드
[image]
▲ 이 말만 몇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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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은 우승. 그것도 11점차
[image]
▲ 축구는 감독놀음. 감독이 퍼거슨이야
재정적인 악조건 속에서도 감독빨로 우승시켜주신 퍼거슨 영감님 덕분에 맨유는 PIK부채를 모두 정리할 수 있었다. 글레이저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하는데 사용한 대부분의 자본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의 자산을 담보로 잡고 빌린 차입금으로부터 나왔고, 이것은 연간 6천만 파운드의 이자를 발생시켰다. 나머지 금액은 PIK 대출로 부터 나왔는데, PIK에 대해서는 맨유 구단은 이에 대해서는 갚을 책임이 없고, 이 대출은 모기업 Red Football이 가진 맨유 구단의 지분을 담보로 잡고 빌린 것이다. 이 PIK 대출의 이자율은 연간 14.25%이다. 글레이저 가문은 PIK 대출을 맨유를 인수한 첫 5년 동안 원금을 상환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0년 1월 맨유는 5억 파운드(7,500억원)에 달하는 채권 발행에 성공하였으며, 2010년 4월까지 PIK 대출은 2억 파운드(3,400억원) 가량 남았고, 이것은 2010년 알려지지 않은 방법으로 모두 상환되었다.
'''그리고 도래한 황금빛 엘도라도 맨유 시대.'''
실제로 퍼거슨 경이 은퇴하고나서 매 시즌 1위를 다투며 챔스권 밖으로 나가본적이 손에꼽는 맨유가 2020년 기준으로 현재 챔스권 경쟁을 하고있다. 모예스, 반할, 무리뉴를 거쳐 솔샤르가 감독직을 맡으나 아직 이렇다할 성과는 없다. 무리뉴 감독 시절 유로파리그 우승이 있긴 하지만...
퍼거슨 경이 은퇴한 이후로 맨유는 선수를 영입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퍼거슨경이 유스에서 선수를 기용하고 발굴해내고 같은 리그 하위권 팀에서 영입을 주로 하던것과 대조되게 레알 마드리드의 챔스 우승 주역인 디 마리아, 네덜란드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했던 유망주 멤피스 데 파이, 도르트문트에서 좋은 활약을 하던 헨리크 미키타리안 등 이름값 있는 선수들을 꽤 많이 영입했으나 모조리 실패했다.
미키타리안과 스왑딜로 데려온 알렉시스 산체스마저 실패함과 동시에 감독들마저 우승권은 커녕 챔스권도 간당간당한 성적을 유지하면서 암흑기에 빠져들 기색을 보였다. 무리뉴가 유로파리그 우승을 일구어 냈으나 팀 성적이 추락하며 경질당했다. 이후 퍼거슨 감독 밑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누구보다 맨유를 잘 아는 올레 군나르 솔샤르 감독이 부임하며 이름값이 아닌 맨유에 필요한, 맨유에서 진심을 다해 뛸 선수를 영입하는 정책으로 바꾸면서 다시 재건의 기미를 보이고 있기는 하다만, 당시 클레버리, 조니 에반스 등을 데리고도 우승을 일구어내던 퍼거슨경의 위상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퍼거슨 감독 은퇴 이후 큰 영입 없이 팀을 이끌다가 성적부진으로 경질당한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이 사실 명장이 아니냐 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퍼거슨이니까 그 스쿼드로 우승했지 그 스쿼드로 그만큼 한것도 기적이라는 얘기.

5.5. 진화하는 감독


알렉스 퍼거슨이 갱신해왔던 신화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으며, 그는 유럽 축구에서 나타난 전술적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잘 취합하여 완성된 형태로 선보이는 감독이다. 그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마지막 시즌의 전술 변화, 이전까지 주 포메이션으로 사용하던 442에서 4-2-3-1 내지는 4-5-1로 포메이션을 변경하고 테크닉있는 공미를 위주로 한 점유율을 중시하는 전술을 도입하면서 세계적인 트렌드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또다시 딱히 강해보이지 않는 스쿼드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거뒀다. 계속 현역이었다면 전방압박과 라 볼피아나와 센터백들을 통한 후방 빌드업도 흡수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스리백도 성공적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셀틱 FC의 10분의 1도 안되는 금액으로 수십 년간 이어진 셀틱 FC레인저스 FC 양강 체제를 무너뜨렸다.

UEFA 클럽 랭킹 106위였던 애버딘 FC을 6위로 올렸다.

● 13살에 데이비드 베컴을 스카우팅. 이후 베컴은 맨유를 넘어 잉글랜드를 상징하는 세계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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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 올림픽 홍보대사, 베컴

헤이젤 참사UEFA 리그 랭킹 3위였던 영국 리그가 한 순간에 29위까지 밀려나며 추락. 헤이젤 참사로 잉글랜드 전체 클럽들이 5년간 유럽 무대를 금지당했고 우수한 용병도 떠났다. 캄프 누의 기적을 일으키며 트레블을 달성, 박살나버린 영국 리그를 캐리했다. 팀의 핵심으로는 7명이나 되는 유스 출신이 뛰고 있었다.

캄프 누의 기적으로 가장 극적인 트레블을 달성했다. 경기 종료 직전 3분 안에 그것도 교체선수들이 들어와서 2골이나 넣으며 역전하는 드라마틱한 경기 스토리를 만들었다.

● 슈퍼스타 베컴의 탄생으로 클럽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거부들이 영국 리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글레이저가[9]

맨유를 2005년에 인수했다.[10] 그러나 대부분 인수자금은 구단자산을 담보로 빌린 것으로 부채가 없었던 맨유의 재정이 단기적으로 악화되었다. 이러한 재정적인 상황 속에도 '로테이션' 신공과 감독빨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지금 맨유의 재정은 안정된 상태로 최근 폴 포그바로 월드레코드, 리그레코드, 클럽레코드를 동시에 갱신해 화제를 모았다.

퍼거슨이 26년간 만들어낸 브랜드 이미지는 오늘날 몬스터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있게 했다. 맨유는 미국 자동차 회사 GM의 쉐보레와 유럽축구 스폰서십 역사상 최대 금액의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는데 2014-15 시즌부터 7년간 무려 5억 5900만 달러(한화 약 9000억 원)에 달하는 대형 딜이다.

5.6. 상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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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든 경기장 스텝, 연습생, 어린이들, 그리고 저를 포함한 모든 코칭 스텝, 심지어 '''구단주'''까지도 아침 6시에 불러내 경기장 눈을 치웠습니다.

● I am comfortable with the Glazers. They have been great. They have always backed me whenever I have asked them. I have never faced any opposition. 난 글레이저 가문과 함께 하는 게 편했어. 그들은 아주 잘 해줬지. 그들은 내가 언제 무엇을 요구하든 지지해줬어. 반대에 부딪힌 적은 한번도 없었지.

● 2010년 글레이저와 데이비드 길(전 맨유단장)이 루니의 급여를 엄청 올리기로 결정하면서, 내 기분이 어떤지 알고 싶어했어. 난 솔직히 루니가 내가 받는 돈의 2배를 거머쥐는 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지. 암튼 그걸 그대로 말하니까 조엘 글레이저가 바로 말하더군. '나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쩔수 있나요' 간단했어. 나보다 더 많은 선수가 있으면 안될거라고 합의를 봤지. 참고1 참고2

퍼거슨 감독은 재임시절, 구단주와 단장 위의 존재로 상왕과 마찬가지인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2011년경) 맨유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식되는 브랜드에 Google, Apple, BBC, Dyson, Facebook에 이어 6위를 차지한 바 있다. 이 조사를 한 Brand Finance의 스포츠 브랜드 평가팀장인 David Chattaway는 글레이저의 이 같은 성공 비결의 핵심요인 중 하나는 클럽의 궁극적인 브랜드 매니저(the club's ultimate brand manager)인 퍼거슨 감독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EPL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선정되기도 한 퍼거슨 감독이 은퇴한 뒤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맨유의 주가가 꾸준히 하락세이자, 영국 경영컨설팅 회사 A.T.커니의 이매뉴얼 험버트 스포츠 담당 전문가는 "애플이 스티브 잡스를 잃었던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평했다.
은퇴 후의 행보를 통해 '''상왕'''의 위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은퇴 후 데이비드 모예스, 루이 판 할 그리고 조제 무리뉴의 경기를 볼 때마다 불안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물론 무리뉴가 맨유 감독 초중반에는 유로파리그를 우승하게 만들어 챔피언스리그에 복귀할때는 기쁜 감정을 내비췄으나 퍼거슨의 못마땅한 표정 및 불안함은 후임감독의 선수 운영 및 전략, 전술에 불안함을 암시한다. 후임 감독에 대한 그의 불신으로 이어지며 결국 경질될 확률이 높아진다.

5.7. 퍼기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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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기 타임 (Fergie Time)'''
이기고 있는 경기 혹은 뒤지고 있는 경기에서 추가 시간에 심판에게 자신의 시계를 가리키는데, 이는 주심 및 심판진들에게 쉽사리 경기 종료를 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와 추격하는 상대팀에게 부담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퍼거슨 맨유시절 후반 추가시간에 역전골 혹은 동점골이 유독 많이 나오기도 했으며 과거 2009-10 시즌 OT에서 열린 맨체스터 더비에서 마이클 오언의 역전골로 4-3으로 승리한 경기 또한 후반 추가 시간의 추가에서 나온 골이다. 이 경기는 퍼기타임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캐릭의 교체투입과 벨라미의 골세레머니로 시간이 좀 흘러서 합당한 비공식 추가시간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 행동은 이른바 "퍼기 타임"이라고 불린다. 훗날 은퇴 후 인터뷰에서 실제로는 시간이 어느 정도 남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며, 심판과 상대팀에게 압박을 가하는 심리적인 트릭이였다고 한다. 일부러 시계를 보면서 심판이 과감하게 경기를 끝내지 못하게 한다고...실제로 시간적 이득을 많이 보았고 12-13시즌 한정 BBC는 맨유가 지고있을 때 평균 79초라는 비공식 추가시간이 주어졌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영국 언론들의 입방아에도 자주 오르는데 심판을 압박해 판정에 이득을 받는다는 것이 논란이 되는 대목.

5.8. 껌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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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거슨이 마지막으로 씹은 껌. 이 껌은 39만 파운드(한화 약 5억 8,000만원)에 낙찰되었다.
거슨이란 별명이 있는데, 경기 중에 보면 항상 껌을 씹고 있기 때문이다. 껌 씹는 속도는 그 날 경기력에 따라 다르다.(...) '껌영감' 대신 '껌거슨'이라고 더 많이 불린다.

5.9. 박지성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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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은 2~3년 내로 맨유맨이 될 것이다. 그를 믿기에 데리고 왔고 또 그만큼의 활약을 할 수 있는 선수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생각에 의아해했지만, 2~3년 내로 분명히 사람들은 나의 결정에 동의할 것이다.

(박지성 QPR 이적시, 퍼거슨 경이 쓴 편지) 지성이에게. 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네 충성심에 감사하고 새로운 구단에서의 행운을 빌어주며, 널 보내야 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편지를 일찌감치 네게 보내지 못했던 걸 부디 용서해라.[11]

네가 원했고, 필요했던 출전 수를 제공하지 못했던 게 안타깝다. 내가 널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니야. 프로 정신, 충성심, 그리고 결단력 같은 면에서 너만큼 신뢰를 할 수 있었던 선수는 없었단다. '''난 네 무릎 수술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너의 건강한 모습을 항상 유지하고 싶었다.''' 물론 이런 말도 네게는 부당했을 테고, 아마 그 결정이 달갑지 않았을 게다. 특히 내 손자는 가장 좋아했던 선수인 널 다른 팀으로 보낸 이후로 아직도 나에게 말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마음에 걸리고 있지만, 너를 보낸 결정이 얼마나 어려웠던 건지 네가 이해해주길 바란다. 유나이티드 소속이던 시절 네 돋보이는 능력을 신뢰했고, 내 코치진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넌 내가 보유한 선수들 중 가장 충성심있고 정직한 선수 중 하나였고, 우리 팀에 너처럼 예의가 바른 선수가 있어 자랑스러웠다. 의심의 여지 없이, 넌 축구계의 환상적인 대표 인사이며, 영어에 그렇게 빨리 적응하며 안착하는 걸 보면, 네 결의력과 열정이 축구 뿐 아니라 삶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구단의 모든 이들을 대표해 새로운 구단에서의 성공을 빈다. 지성아, 난 언제까지나 너를 내 선수 중 하나로 여길 것이고, 언제고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날 찾아와라. 마지막으로 너와 네 가족이 언제나 행복하고 행운이 깃들길 바란다.


박지성이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으로 이적할때 박지성은 아주 소중한 선수고 그가 그리울 것이라며 좋은 매너를 보여주어 박지성이 맨유를 나올때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12]
거기다 QPR과의 경기에서 손수 벤치까지 행차하여 박지성을 찾아가 악수[13]하여 그의 위신을 세워줌으로서 역시 멋진 영감님으로 등극하여 칭찬을 받았다.
이후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앰버서더 위촉식에 퍼거슨 경이 함께했다. 퍼거슨 경이 은퇴 이후 관중석에는 참여했지만, '''올드 트래포드 그라운드에 공식 행사로 입장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 당시 구단 관계자들과 팬들이 많이 흥분했다고 한다.'''
팀 내 주급 순위나 박지성이 출전한 경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퍼거슨은 박지성을 전략적으로 잘 활용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AC밀란에서 피를로를 괴롭혔던 경기가 있는데 주로 상대팀의 주요 선수를 묶어놓는 역할이나 공수를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맡겼다. 대부분 기용되는 경기가 보통 리그 내 강팀과의 경기거나 챔피언스리그에서 중요한 경기였다.

5.10. 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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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퍼거슨의 은퇴에 대한 축구계 인사와 유명인들의 코멘트 출처

'''제2의 칸토나, 스콜스, 긱스, 호날두는 나올 수 있지만, 제2의 퍼거슨은 나올 수 없다.'''

에릭 칸토나

'''알렉스 퍼거슨 경, 당신은 감독계에서 나의 우상이었습니다. 또 앞으로의 모든 세대들에게 귀감이고요. 알렉스 경, 그대는 전설이며 그 위업은 절대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네요.'''

펠레

'''축구계 최고의 우상.'''

우사인 볼트

'''팀을 위해 싸운 위대한 커리어! 위대한 퍼거슨 경. 당신의 새로운 길에 행운을.'''

라파엘 나달

'''퍼거슨이 이룬 성취만 봐도 그는 의심할 여지 없는 위대한 감독.'''

제프 블래터

'''그는 축구계에 엄청난 헌신을 했다. 스코틀랜드에서 뿐만 아니라 잉글랜드, 유럽, 그이상으로 퍼거슨 감독의 영향력은 컸다. 그의 헌신, 세세한 부분까지의 관심, 재능있는 선수들을 향한 안목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애버딘 FC의 감독으로서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대단한 업적을 달성하게 만든 힘이었다. 결과만으로도 놓고 봐도 그의 이력서는 독보적이다. 통상적으로 관심갖는 단기적인 해결책으로 봤을 때만 우수한 것이 아니고 장기적인 비전의 측면에서도 퍼거슨 감독의 업적은 대단하다.'''

미셸 플라티니

'''프리미어 리그는 많은 위대한 선수들과, 감독들 그리고 팀들을 보는 특권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알렉스 퍼거슨 경보다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진 못했어요. 알렉스 퍼거슨 경을 빼놓고는 프리미어리그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그가 있었기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프리미어리그가 진화하여, EPL은 환상적인 무대가 되었습니다.'''

프리미어 리그 협회장, 리차드 스쿠다모어

'''그는 완벽하다. 그의 은퇴로 인해 나의 팀(아스톤 빌라)이 조금은 편해지길 바란다.'''

데이비드 캐머런

'''거의 4번의, 전혀 다른 스쿼드들로 개편해가며, 성공을 이뤄낸 것이 믿을 수가 없다. 아마 역대 최고의 클럽 감독일 것이다.'''

브라이언 롭슨

'''축구계 가장 위대한 감독의 지도를 받은 일이 진심으로 영광스러웠습니다.'''

데이비드 베컴

'''구성과 꾸준함을 볼 때 그의 위업은 기본적으로 오점 하나 없죠. 당연히, 독보적일 정도고요. 알렉스 없는 잉글랜드 축구계를 상상하기가 힘들군요. 하지만 이제 현실이고, 사실이겠죠. 물론 그 자리를 맡는 후임은 그만한 역량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새로 부임하는 인물에게는 큰 도전이 될 거예요. 아직도 할 수 있는 말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상업적, 재정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탄탄한 두세 클럽 중 하나라는 겁니다. 또 새로 부임하는 인물이 좋은 시작을 끊을 수 있는 준수한 기반도 있고요. 선수들, 팀, 잠재성은 그대로일 테니까요. 유나이티드는 아주 잘 성장했고, 직면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말로 강력한 위치에 올랐죠.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어쩔 수 없이 큰 공허감을 느낄 겁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클럽을 지배했던 카리스마와 인물이 갑자기 사라지는 거니까요. 그런 사람을 대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아르센 벵거

'''내 남은 감독 생활에서 큰 후회는 알렉스 경 반대편 덕 아웃에 설 수가 없게 됐다는 겁니다. 축구의 신(football god) 옆에 서 있는 건 대단한 일이었을 텐데. 알렉스 경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싹 다 봤고, 하나는 왜 모든 걸 차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영상이었습니다. 1983년 5월 11일, 컵 위너스 컵 우승을 달성하고 10일 뒤에는 스코티시 컵을 들었는데, 마지막엔 굉장히 씩씩거리면서 '쓰레기 같은 경기력이었다(rubbish performance)'고 하더라고요. 모든 걸 이룬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10일 만에 2개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선수들한테 화를 냈어요.'''

파올로 디 카니오

'''퍼거슨은 맨유의 상징이자 전설, 영웅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겸손하고 아이와 같은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카를로 안첼로티

'''영국 축구의 슬픈 날이다.'''

로이 호지슨

'''퍼거슨은 위대한 감독이기 이전에 위대한 인간이었다.'''

해리 레드냅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할 겁니다. 그리고 제겐 올드 트래포드에 가는 게 힘든 일이 되겠죠. 특히 그런 인물 없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처음 상대하러 가게 된다면요, (왜 퍼거슨이 그렇게 그리울 것 같냐는 질문에 대해) 독보적이고, 아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독보적인 클럽일 테니까요. 감독에게 퍼거슨이 가졌던 그런 조건을 부여하는 클럽입니다. 모두들 퍼거슨도 처음엔 쉽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겠죠. 첫 우승을 맛볼 때까지 3~4년이 걸렸고, 맨 유나이티드는 퍼거슨이 믿기지 않는 업적을 달성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줬어요. 그 이후론 독보적인, 유일무이한 인물이 됐죠. 잉글랜드 축구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쌓은 트로피 수는 정말 놀라울 따름이고 20년 이상 감독직을 유지한 것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퍼거슨과의 만남 중 가장 좋아하는 기억은 뭐냐는 질문에 대해) 하나 골라야 한다면, 첫 만남으로 하겠습니다. 2004년이었죠. 사실 감독으로 잉글랜드 땅을 밟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그게 챔피언스 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대 포르투 경기였고요. 우리가 막판에 골을 넣고 진출했습니다. 근데 그런 상황에서 경기 끝나고 상대방 감독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서는, 축하한다며 자기 사무실에서 와인이나 한잔 하자고 초대한다는 건 나와, 내가 알던 문화에서는 평범한 일이 아니었어요. 분명 엄청, 굉장히 실망하고 있을 순간이었을 테니까요. 거기서 우리의 관계는 꽃을 피운 겁니다. 그 이후 우린 서로 여러 차례 경기에서 만났고, 그 다음 해 전 잉글랜드의 첼시로 가게 됐죠. 그 다음부터 우리 관계는 그런 식이었습니다. 누가 승장이고 패장인지는 무관했어요. 언제나 서로를 존중했죠.'''

주제 무리뉴

'''그는 맨유에서 참으로 오랜 시간을 보냈고, 우린 그의 뒤를 이을 감독이 누구인지 모른다. 우승을 한 다음이 감독직에서 물러나는 이상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그는 분명 맨체스터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대표하는 인물이 될 것이다.'''

오트마어 히츠펠트

'''전설이라는 단어가 요즘에는 지나치게 자주 사용된다는 게 불행이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에게는 진정 축구계의 전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스완지의 감독으로서) 올드 트레포드에서 퍼거슨 감독이 지휘하는 마지막 홈경기에서 상대편 감독으로 나서게 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미카엘 라우드럽

'''퍼거슨 감독을 아는것은 특권이다. 감독으로서 내게 준 모든 조언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퍼거슨 감독보다 더 좋은 도움과 조언의 원천은 없다. 그는 감독으로서 수십년간의 경험을 갖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이다. 그는 맨유팬들에게 영광의 시대를 선사하며 올드 트레포드로 거듭 트로피를 갖고 왔고, 팀을 세계에서 가장 큰 클럽 중 하나로 만들었다. 감독 재임기간 동안 그가 보여준 저력과 헌신은 과소평가 될수 없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강한 성품과 열정, 단호한 정신자세로 그토록 위대한 성과를 이룩했다.'''

닐 레논

'''이번 결정을 예상하지 못했다. 퍼거슨 감독과 최근까지도 여러번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보스, 즉 부인에게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계속했다. 그런 교양과 지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걸 할 수 있다. 이제는 그가 맨유뿐 아니라 축구계 전체의 사절이 되었다고 말하는게 타당하다. 난 영어를 하지 못하는데 사람들은 내게 그의 영어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불어로 의사소통하기 시작해서 좋은 친구가 되었다. 또한 우리는 술을 교환하는 것도 시작했다. 그는 내게 위스키를 보내곤 했고 난 그에게 이탈리아 와인을 보내곤 했다. 우린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성취는 계속해서 팀을 변화 시킨 것과 승리를 이어가는 와중에서도 팀을 현대화시킨 것이라 생각한다.'''

마르첼로 리피

'''본인의 결정이니까요, 제게 있어, 3년 동안 알렉스 경과 맞서 싸운 건 엄청난 영광이자 기쁨이었습니다. 올드 트래포드에서 그를 꺾은 것도 무한한 영광이었고, 그 앞날에 행운을 비는 바입니다. (은퇴)이유는 모르겠지만요. 지금도 최고의 감독이지만, 이 결정은 직접 내린 거고 우린 그걸 존중해야 합니다. (누가 최고의 감독인지 말하는 건)어려운 일이에요. 모두가 각자의 의견이 있는 법이지만 27년간 같은 클럽에서 트로피를 휩쓴 감독이 있다면, 그건 믿을 수 없는 업적입니다. 그와 같은 감독이 다시 나오지 않을 거라 봅니다.'''

로베르토 만치니

'''실망스럽다. 충격적이다. 슬프다. 오늘이 그날일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20년 넘게 알았지만 그가 항상 말했던 것처럼, 그가 지금 은퇴한다는 사실은 전혀 납득 할 수 없다.'''

피터 슈마이켈

'''언젠가 올 일이었지만 여전히 충격적이고 가라앉질 않는다! 위대한 감독이며 훌륭한 사람!'''

에드윈 반 데 사르

'''Thanks for everything, Boss.'''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퍼거슨 감독이 없는 맨유는 맞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 위대한 인물이 그의 경력을 마감한다. 단연코 세계가 목격한 최고의 감독 밑에서 플레이 했던 것은 대단한 특권이었다. 그의 기록은 좀처럼 넘어설수 없는 경지에 이를 것이다. 그가 감독으로서 이룬 업적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것이다.'''

마이클 오언

'''일어서서, 손을 들고, 다함께 그에게 큰 박수를 보내자! 알렉스 퍼거슨 경이 은퇴한다. 놀라운 커리어에 축하를!'''

라다멜 팔카오

'''내가 은퇴할때 퍼거슨의 아이들 중 한명이었다는 사실에 만족할겁니다. 이건 나에게 더 특별한 일이에요. 이건 대단한 업적이고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상 최고 감독의 선수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자부심을 갖게 합니다. 감독님은 모든사람들을 동등하게 취급하세요. 언제나 다른 이들을 도우시죠. 감독님은 모든 승리에도 불구하고 항상 계속해서 굶주려 하셨고 언제나 경쟁심을 잃으신 적이 없는데 이건 저에게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감독님은 진정한 '위너'이세요.'''

치차리토

'''와우 알렉스 퍼거슨 경이 떠난다. 건강이 괜찮길 빌어. 그는 내 아버지 이후 내 인생에서 가장 파워풀한 사람이었어. 축구의 신에게 거대한 경의를!'''

루이 사하

'''엄청난 커리어! 알렉스 퍼거슨 경에게 코치받았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명예로웠다.'''

주세페 로시

'''Only one BOSS.'''

로니 욘센

'''처음 부임하면서 리버풀을 제치고 정점에 오르고 싶다고 했고, 그걸 실천했습니다. 먼저 하고 나서 '아, 사실 속으로 다짐하긴 했었지'라고 말한 게 아니죠. 약속을 하고, 그걸 달성한 거예요. 걸출한 경력을 쌓으셨죠. 모두가 퍼기를 잃어 슬퍼하고 있겠죠. 위대한 보스고, 위대한 전설입니다.'''

티에리 앙리

'''퍼거슨 감독에 대해서는 감탄사밖에 나오질 않네요. 그 오랜 집권기를 생각하면, 제 기준에서는 역대 최고셨던 것 같습니다, 많은 감독들 – 무리뉴 같은 감독들이죠 – 이 그 (역대 최고의) 자리를 위해 노력하지만, 퍼기(Fergie)만큼 오랫동안 해야겠죠. 믿기 힘든 분이십니다. 클럽을 지휘하는 사람이, 그처럼 선수들을 최고로 만들고 계속해서 팀을 진화시킬 열망이 있었다는 걸 보면, 완전히 유일무이한 분이죠.'''

프랭크 램파드

'''축구계의 전설이 떠났다. 의미있는 일이다, Gracias Sr ALEX FERGUSON.'''

다니 아우베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의 놀라운 커리어에 감사를. 축구의 전설, 놀라운 퍼거슨 경.'''

세르히오 라모스

'''알렉스 경.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명. 당신의 은퇴에 행운을 빕니다.'''

마이클 에시엔

'''위대한 남자의 은퇴. 축구에 있어서 슬픈 날이야. 그는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이자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어.'''

팀 케이힐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한 명입니다. 26년 동안 성공적인 게임을 마친 그에게 우리 모두 존경을 표합니다.'''

뱅상 콩파니

'''역대 최고의 감독 중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에 큰 충격이었고, 우리한테도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나이티드가 잉글랜드 최고의 클럽 중 하나로 계속 남을 거라고 보기 때문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진 않네요.'''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

'''우리가 그에 대해서 말할 때 항상 나오는 말은 그는 승리자라는 것입니다. 저는 그가 그의 선수단을 잘 파악하고 그들로부터 최고의 것을 얻어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렇게 오랜 기간 정상에 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합니다. 맨유의 선수들로부터 들은 바로는, 그는 그 누구보다도 승리에 배고파하며, 늙은 나이에 그렇게 많은 것들을 성취한 후에도 여전히 승리를 갈망한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의 선수단으로부터 최고의 성과를 얻어내는 비결입니다. 맨유 선수들은 퍼거슨경은 감독으로서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했고, 당신은 그것으로부터 그는 영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퍼거슨 감독의 축구 감독으로서의 업적을 알기 때문에, 그의 은퇴는 아쉽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휴식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그의 시간을 완벽하게 수행했습니다.'''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

'''그는 맨유의 통산 20번째 리그 우승을 막 이끌었다. 그래서 아마 지금을 적당한 시기로 본듯 하다. 그와 함께 했던 것이 굉장히 자랑스럽다. 그는 내 선수시절과 지도력의 관점에서 모두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다. 향후에도 그가 상당히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다음에 맨유를 맡을 인물은 엄청난 공백을 채워야 한다.'''

알렉스 매클리시


6. 은퇴 후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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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은퇴 후, 경기를 즐기고 싶었던 퍼거슨.)
[image] [image]
(▲'''현실''': 은퇴 후, 경기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 [14])(19시즌 리버풀 원정에서도 또 졌다.... 거의 3년째 리버풀 상대로 승리를 못 얻었다. 여기서 무리뉴 경질은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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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3년을 넘어 17년도 마지막 경기에서 졸전끝에 무승부 혐짤을 관람한 퍼기경...)
[15][16]
  • 모예스 감독이 초반에 부진하자 벌써부터 퍼거슨 복귀설이 나오지만 그는 9월 들어서 인터뷰로 절대 재복귀는 없다고 못박았다. 자신도 맨유감독이 돼서 몇 해동안 부진했음에도 계속 감독을 맡아서 전설이 된 것이라며 모예스 감독도 몇 해는 더 두고 봐달라고 했다. 위에 나온대로 그의 맨유 초창기 시절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갈 말이다.
  • 2013년 10월 국대감독이 비어있는 호주 측에서 거스 히딩크와 더불어 감독직 제의가 왔다고 한다. 하지만 잉글랜드도 영국 올림픽 대표팀 감독도 모두 거절하고 국대감독직은 어디라도 맡지않겠다고 말하던 점이나 이제 은퇴하고 노후를 즐기고 싶다는 그가 맡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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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한 맨유팬, 후임 감독이 선덜랜드에 패한뒤 긴급전화에 전화해 퍼거슨 바꿔달라 요청. 물론 허락될리 없었다.)
그러나 13-14 시즌에서 맨유의 상태가 영 메롱이라 선수단 정리를 암시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예스의 경우에는 자신의 맨유 감독 초창기를 언급하며 감독 자리를 계속 맡길 것이라고 한다.##[17]
하지만 모예스는 결국 안습한 기록을 남기고 짤렸고, 후임으로 반 할 감독이 맨유를 이끌게 되었다.[18] 하지만 수천억을 들이고도 4위로 끝내는 아쉬움과, 무언가 확립되지 않은 전술 등 아쉬움이 많아 진터라 맨유팬들은 이 돈 영감님께 드렸으면 트레블(...)이라며 아쉬워 하는 중. 사실 이건 비단 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맨유의 전설적인 수비수인 리오 퍼디난드네마냐 비디치도 둘이서 우리가 있을 때 저 돈을 썼으면 얼마나 많은 트로피를 더 들었을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사실 돈은 많이 썼지만 제대로 된 스쿼드 구축은 실패했다. 그나마 건져낸 선수가 안토니 마샬 정도지만 과거 맨유 공격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 유로 2016 결승전 때 경기장을 찾아 우승을 차지한 옛 제자들인 나니와 호날두를 축하해주기도 했다.
무리뉴의 맨유 커리어에서 FA 커뮤니티 실드, EFL 컵 그리고 '''UEFA 유로파 리그'''[19]에서 우승을 하게 되자 퍼거슨이 3년만에 함박웃음을 보여주며 박수를 치고 있다. 주제 무리뉴에 대해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줄 것이라는 그와 맨유의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UCL 복귀에 기뻐했고 주제 무리뉴 체제의 맨유가 바젤과 경합하여 3-0 대승을 거두자 경기 종료 직전에 알렉스 퍼거슨이 모예스가 말아먹어 경직한 표정을 지은 지 3년만에 온화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 지도자로써의 능력은 학계에서도 인정 받아 은퇴 후, 2014년에는 미국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 과정 강의를 했고 2015년에는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최고경영자 코스 강의를 했다.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수업 영상(Practice, Practice, Practice) 영상
  • 무리뉴의 말에 따르면 현재도 경기장에 모습을 곧잘 드러내지만 라커룸에만은 절대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보비 찰튼, 구단주, CEO 등등 모든 관계자들이 라커룸을 제집 드나들듯이 하고 있지만 퍼거슨은 그러지 않는다고. 심지어 맨유의 원정경기가 있을 때는 선수단과 관계자 모두 같은 기차를 타고 가는 와중에 혼자서만 자가용을 타고 가려고 했던지라 무리뉴가 '제발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어요'라며 만류했다는 모양. 고집이라기보단 쑥쓰러워 하는 것 같다(…)는게 무리뉴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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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시각 2018년 5월 6일 오전 경에 현재 알렉스 퍼거슨 경의 건강이 좋지 못하며, 목요일부터 문제가 있었고 결국 응급실로 후송되었다는 The Times의 보도가 있었다. 뒤를 이은 트위터 발 소식들 중에는 뇌출혈로 인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루머까지 돌고 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은 확실해 보이며, 많은 축구 팬들이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감독의 안타까운 소식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 결국 BBC에도 속보가 떴다.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병원에 이송되었고 긴급 수술에 들어갔다고 한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의사가 밝혔고, 다행히 의식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 와중에 아들 대런 퍼거슨의 팀 돈캐스터의 결과가 어땠는지 물어보는 건 덤(...).
  • 이후 건강상태를 회복했으며 다음 맨유 홈 경기를 관람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건강 상태를 회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몸 상태가 예전보다 훨씬 안좋아졌다. 부진에 허덕이는 18-19시즌의 맨유 경기를 관람하려는 퍼거슨 경에게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관람을 자제하라는 주치의의 의견이 나올 정도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구에 대한 열정은 끊을 수 없던 탓인지 2018년 12월, 안필드 원정 나선 무리뉴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보기 위해 직접 관람하였다. 그리고 무리뉴의 저승사자[20]에게 3:1로 대패하였다. 그리고 무리뉴의 경기 상태 및 그 외의 답 없는 상황들을 보고서는 경기 중 우드워드와 심각한 논의가 이어졌고 결국에는 그들은 무리뉴를 경질시켰다.
  • 맨유의 임시감독 솔샤르의 요청으로 맨유 컨설턴트로 복귀할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
  • 하지만 UCL 경기에서 에이전트와 함께 조작을 대가로 시계를 받은 혐의가 나왔지만.링크 한국에서만 호들갑이고 정작 영국 현지에선 그냥 말도안되는 찌라쉬 취급.[21]
  • 허나 위 내용에 대해 영국이 시큰둥한 이유가 있다. 자신이 조작 대가로 시계를 줬다는 에이전트는 이미 일전의 진술이 거짓이었다. 또한 이번 뇌물 관련 진술 역시 퍼거슨 경과 콘테 등 거물급 감독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해당 에이전트가 실제로 퍼거슨, 콘테 등의 감독에게 에이전트를 줬다기 보다 자신의 위상을 높임과 동시에 뇌물을 거부하는 감독들에 대한 회유를 목적으로 한 허풍이라는 것. (실제 뇌물을 받았는지에 대한 증거가 나오지 않을 뿐더러, 퍼거슨이나 콘테 급의 거물 감독들이 롤렉스 하나가 뇌물로 오갔다는 말도 유머.)

7. 이야깃거리


  • 주방 아주머니의 남편이 뭘하는지, 건강은 어떤지 다 알고 있으며 무슨일이 나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지고 지갑을 열었다. 청소 및 주방 아주머니들이 정리해고의 일환으로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자신이 앞장서서, 그들은 클럽의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절대 자르지 말라며 길길이 날뛰어서 막았다고.
  • 승부의 신이란 서적에 보면 애버딘 FC 구단에 부상당한 선수를 위한 다용도 운동기구와 함께 당구대를 같이 놔뒀는데 선수들은 한 명이 운동하면 나머지는 당구를 치는 식으로 기구를 돌아가며 썼다고 한다. 복도에 발소리가 들려 걸릴 일이 없었다고...그런데 어느날 퍼거슨이 용무가 있어 퇴근을 늦게 하면서 기구가 있는 곳에 들렸다. 애버딘 선수들 중 한명이 기지를 발휘해 큐대를 등에 지고 운동을 했다고...퍼거슨은 그냥 웃고 갔다고 한다.
  • 83년 유러피안 컵 위너스컵 결승전 당시 실수한 알렉스 매클리시가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자 그에게 그 유명한 헤어드라이어를 날렸다고 한다. 이후 애버딘은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대회 우승을 했다. 매클리시가 경기 후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면서 실수를 곱씹는데 퍼거슨 감독이 들어왔다. 들어온 퍼거슨은 매클리시를 칭찬하고 나갔다.
  • 언론을 자유자재로 이용할 줄 안다. 또한, 자기 팀 선수를 보호할때는 무슨 수를 써서도 보호하는 감독. 이게 가끔 지나치면 사달이 나는데 대표적인게 독일인 드립. 이 사건으로 바이에른 뮌헨이나 분데스리가 팬덤에서는 심심찮게 까인다. 독일인 드립이 무엇인지 덧붙이자면, 09-10 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에서 3-1로 앞서다가 후반전 하파엘의 퇴장으로 경기력이 밀려 추격골을 먹혀 원정 다득점으로 패한 후, 전형적인 독일인 방식이라고 판정을 비판한 것이다. 그리고 독일발 역풍을 강하게 맞았다. 아스날의 수비수 페어 메르테자커를 독일에 널리고 널린 선수라고 비하하여 논란을 빚기도 했다.
  • 영국 축구계에서 그 위상이 대단한데 역대 감독 순위에서 최소라도 3위를 차지하는 명장일 뿐만 아니라 감독 노조 위원장으로 활동한 것도 있고 그 연륜과 영향력도 발군이다. 심지어는 퍼거슨 감독의 아들과 관련된 정확하지 않은 고발 프로를 내보낸 BBC와 수년에 걸친 신경전 끝에 2011년 8월, BBC의 사장과 북부지역 총괄 디렉터 등이 나서고야 용서해주는 위엄을 보였다. 이때, BBC는 퍼거슨과 화해한 사실을 속보로 내보내기까지.
  • 또한 그 위상을 적극 이용해 심판들에게도 강한 압력을 행사했다. 만약 마음에 안 드는 판정이 나온다면 하프타임이나 경기 종료 후에 심판 대기실에 들어가서 심판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도 징계는 커녕 기사화도 은퇴하고 나서야 되었다. 현역일 때는 한 줄도 기사화되지 않다가 모예스 부임 후에야 모예스는 퍼거슨과 달리 심판 대기실에 들이닥쳐서 난리를 피우지는 못한다는 식으로 은근슬쩍 드러내는 식으로.
  • 또한 위에서 언급했듯이 인터뷰 원칙에 어긋나거나 신경에 거슬리는 기자는 가차없이 인터뷰에서 배제해버리는데 맨유 기사를 싣지못해서는 스포츠 지로 살 길이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인터뷰 금지를 당하는 기자는 스포츠 기자로서 치명타를 입는셈인데 이러한 기자 중 한명이 나중에 투병 생활을 하게되자 이 사실을 알고 위문 화환을 보내면서 다시 인터뷰해도 좋다고 허가해준 적도 있다. 다른 기자는 인터뷰 금지령을 풀기 위해 몇 달 동안 열심히 퍼거슨을 찾아다니며 해명하려다가 번번히 기회를 놓치자 열받은 나머지 크리스마스 무렵에 퍼거슨에게 들이닥쳤는데 거기서 퍼거슨이 의외로 관대하게 대해주는 바람에 감격(?!)해서 문제가 된 기사를 편집한 담당 에디터에게 닥돌해서 퍼거슨 대변인 노릇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래저래 무서운 영감님.
  • 선수 시절 골 넣는 스트라이커임에도 불구하고 감독한테 수비 안 한다고 늘 혼났다고 한다. 이 때의 흑백사진을 보면 준수한 외모의 선수였다는 것을 알 것이다.
  • 남자답고 터프한 성격에 언플의 달인. 한창 주제 무리뉴가 리그에서 날아다닐 땐 불꽃 터지는 설전이 오고 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서로를 높이 평가하는 사이여서 주제 무리뉴도 2010-2011 시즌에서 맨유의 우승이 확정되었을 때 여러차례 퍼거슨을 띄워주는 인터뷰를 했고 퍼거슨도 주제 무리뉴가 엘 클라시코에서 물의를 빚으며 언론과 팬의 공격을 받자 이를 옹호하는 인터뷰를 했다. 퍼거슨 감독의 말로는 무리뉴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킨다고. 그래서인지 주제 무리뉴가 프리미어 리그를 떠난 후에도 종종 연락을 한다.[22] 아, 물론 벵거 감독과도 아스날이 한창 잘 나갈 때에는 신나게 서로 갈구며 싸웠지만 아스날이 요즘 5시즌째 무관인 상태라서 그런지 요즘은 조용하다. 심지어 벵거 감독이 2011년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집중공격당할 때 그를 두둔하면서 쉴드를 쳐주기까지 했다. 영감은 치열하게 싸우던 적을 두둔하던 사례가 없던 건 아니고, 보통 그럴 경우 영감이 판단하기에는 그 적수는 이미 같이 정상에서 경쟁할 힘이 떨어진 상태다. 벵거와 든 정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싸우면서 든 정이 무서운 듯. 08/09 시즌에 리버풀이 한창 잘 나갈때 언플로 리버풀과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을 뒤흔들고 리그 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다. 마찬가지로 95-96 뉴캐슬의 케빈 키건도 언플로 바르면서 우승을 낚은 적도 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선수의 경기 출장에 관하여 팬과 언론에게 떡밥을 던지고 낚는 것은 다반사. 그런데 요즘은 자기가 자기 떡밥에 낚이는 경우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지금은 사이가 나쁜 라파엘 베니테스와도 처음에는 사이가 괜찮았다. 특히 베니테스는 프리미어 리그로 진출하기 전에 영국에 왔을 때 퍼거슨 감독의 안내로 올드 트래포드를 둘러보기도 했고 자신이 젊었을 때 롤 모델이 퍼거슨 감독이라고 인터뷰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리버풀 FC의 감독을 맡으면서 서로 충돌하다보니 지금은 사이가 많이 안 좋은 듯하다.
  • 불세출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리는 감독이지만, 신기하게도 정작 85~86년에 잠깐 스코틀랜드 감독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국대 감독 경력은 없다. 다른 사례도 있긴 하나, 그 명성과 경력을 보면 신기하긴 하다.[23]
  • 가족 관계는 언급된 대로 아내 캐시, 세 아들과 그들의 가족이 있으며 동생 마크 퍼거슨도 유나이티드의 수석 스카우터로 재직중이다. 아내 캐시 여사와의 사이는 아주 좋은 편이며 소문난 애처가로 알려져있다. 프리시즌 경기가 있다고 말했음에도 아내가 어차피 친선경기아님?? 하면서 이삿짐 나르라고 해서 결국 경기장이 아닌 집에서 이삿짐 날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애초에 퍼거슨도 젊었을 때 한 성질머리 했기 때문에 그 성질머리와 함께한 아내의 내공도 만만찮다고 볼 수 밖에 없겠지만...나를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나의 아내 뿐이다 라는 명언도 남겼다. 은퇴를 결심하게 된 최초의 계기 역시 처형이 세상을 떠나면서 아내가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서 자신이 아내 옆에 있어줘야겠다 생각해서라고...
  • 장남 마크는 재무회계 쪽 일을 하면서 아버지의 재정관리를 담당하며 둘째 대런은 축구 선수를 거쳐 감독일을 하고 있다. 셋째 아들은 축구 에이전트 쪽 일을 한다고. 가족을 끔찍히 생각하며 아들들도 모두 아버지 집 근처에 산다고. 특히나 손주들에게 푹 빠져 산다고 한다. 손주중에서 제이크 퍼거슨이 축구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리뉴의 딸 마틸다가 반해서 종이루비(종이학이라고도)를 접어서 선물했다는 그 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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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제이크 퍼거슨
  • 정치적으로는 열렬한 노동당 지지자이며 노동당에서 리더십 관련 조언을 하는 고문으로 활동한 적도 있다. 노동당 지지세가 강한 스코틀랜드 출신이라는 점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맨체스터가 속한 북부 잉글랜드 지역도 스코틀랜드와 비슷하게 노동당 지지자가 많다. 결국 그가 태어난 곳이나 오래 생활한 곳이나 노동당 정서가 강한 곳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조선소 노동조합 위원장까지 했었던 사람이기도 하고, 노동자 계급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니 어찌보면 노동당 지지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한 번은 맨유 구단에서 식당 아주머니와 청소부 등을 해고하려고 하자 감독직을 걸고 막았으며 감독 초창기 시절 데모하는 노동자들의 모금함을 그냥 지나쳤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이 때 퍼거슨이 데모 행렬을 그냥 지나쳤는데 같이 있던 조크 스테인 감독이 가지고 있던 돈을 다 털어 그들의 모금함에 돈을 기부한 것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또한 감독 노조 위원장을 한 적도 있고 타 팀의 감독들이 연락해오면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언론과 팬들의 공격을 받는 감독들의 쉴드도 잘 쳐준다. 앙숙처럼 보이지만 언론을 통해 무리뉴도 변호한 적이 있다. 그외에도 구단의 안내 데스크에서 근무하는 할머니가 정년 퇴직을 하게 되어 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될 위기에 처했을때도 그녀가 계속 근무할 수 있게 도와주고 출퇴근을 위해 택시를 수배해주기도 했다.
  • 퍼거슨 경은 확고한 스코틀랜드 독립 반대론자이다. 때문에 2014년 주민투표를 앞두고 독립 반대 진영의 단체인 베터 투게더(Better Together)를 열심히 지지하였고 직접 기부금을 냈다. 그는 주민투표에서 스코틀랜드에 거주하지 않는 스코틀랜드인의 투표권이 없는 것에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가 독립국이 아닌 탓에 법적으로 '스코틀랜드인'의 범위를 한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부득이 스코틀랜드에 거주하는 영국 국적자+기타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다. 그래서 오랫동안 잉글랜드에서 거주한 퍼거슨 경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독립 반대를 주장하면서 기부금을 내는 정도였고, 실제 주민투표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반면에 스코틀랜드에 살고 있는 잉글랜드인들은 투표권을 얻었다. 예를 들어 작가 J. K. 롤링은 잉글랜드 출신이지만 오래 전에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에 이주했기 때문에(그 유명한 해리 포터 시리즈도 에든버러에서 집필함) 주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었다. 참고로 롤링 역시 퍼거슨 경처럼 스코틀랜드 독립에 반대해 베터 투게더를 후원했다.
  • 퍼거슨 경이 맨유 감독을 은퇴한 뒤 현지에서 영국 국회의 상원인 귀족원(House of Lords) 의원으로 임명해 달라는 청원이 나왔다. 오늘날 정치적 실권은 하원인 서민원(House of Commons)로 넘어가 귀족원 의원은 거의 명예직이 된 상황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귀족원 의원들은 국가에 대한 공로와 전문성을 인정 받은 인물들이 추천을 받아 남작 작위를 받아(세습 불가. 즉 본인만 귀족 신분) 종신직으로 의원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퍼거슨 경은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긴 했으나 ← 대영제국 훈장 중 3등급의 이름이 CBE, 이걸 단순 직역하면 사령관이긴 하다. 그러나 이는 군대 사령관과는 무관하고, 귀족원에 들어가려면 CBE는 물론 그보다 위인 기사작위로도 안 된다. 최소한 남작작위는 갖고 있어야 한다. 퍼거슨이 쓰고 있는 Sir는 준남작 이하 Knight Bachelor 이상에게 부여되는 경칭이다. 남작 이상의 작위를 받으면 그보다 격이 높은 Lord로 불리게 되며 귀족원의 일원이 된다. 상원의 이름이 괜히 House of Lords가 아니다. 다만 그가 정말로 남작으로 서훈이 될지는 미지수. 참고로 지금 귀족원이 너무 비대해진데다가(하원인 서민원보다 의원이 많은데, 상원이 하원보다 큰 나라는 전세계에서 영국 뿐이다.) 이런저런 논란이 많아 의원 정수 축소·제한 주장이나 아예 다른 나라처럼 선출직으로 변경하자는 주장까지 나와 있는 상태이다. 만약 100% 직선제로 바꾸게 되면 퍼거슨 경이 의원이 될 순 없을 듯.
  • 2013년에 월드사커지에서 전세계 73명의 패널들을 상대로 올 타임 베스트 11의 투표를 진행했는데, 총 49표를 받아 46표를 얻은 리누스 미헬스를 제치고 감독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토탈 사커를 창시한 미헬스, 카테나치오의 창시자 엘레니오 에레라, 압박 축구를 고안한 아리고 사키 등 현대 축구의 기반을 다진 명장들과 현재 최고의 감독으로 손꼽히는 주제 무리뉴펩 과르디올라 같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선정된 것이라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링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디까지나 베스트 11이 중점이 된 투표이기 때문에 표에서는 제외했다. 링크
  • KBO 리그김응용 감독과 비슷한 점이 몇 개 있는데, 둘 다 이북 출신에(퍼거슨: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김응용: 평안남도 평원군), 나이도 비슷하고(퍼거슨: 1941년생, 김응용: 1940년생), 팀 컬러가 빨간색인 구단의 감독을 맡은 점, 현재와는 달리 감독으로서의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고 한 팀에서 장기집권하여 많은 우승 커리어를 쌓은 점(퍼거슨: 맨유 27년 EPL 13회 우승, 김응용: 해태 17년 KS 9회 우승), 스파르타식 지도로 유명하지만 경우에 따라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쓰면서 통제한 점, 자기 말 잘 듣고 성실·근면한 선수를 선호한 점, 소속팀의 주축 선수와 불화를 빚어 선수가 이적하게 되었지만 나중에 앙금이 풀린 점(퍼거슨: 데이비드 베컴에게 축구화를 가격해서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하는 단초가 되었지만 추후에 화해함, 김응용: 한대화에게 발길질해서 LG 트윈스로 이적하는 단초가 되었지만 자신을 주전으로 자리잡게 한 공로는 인정해서 훗날 고마움을 느낌),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로 맨유와 타이거즈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한다는 점, 개혁 성향의 정당을 지지한다는 점(퍼거슨: 노동당 열혈 지지자, 김응용: 더불어민주당 당원이자 친문 인사) 등이 있다. 심지어 경기 중에 껌을 씹는 습관도 닮았다(...).

8. 기록



8.1. 선수


연도
클럽
출장수 (골)
1957-1960
퀸즈 파크[24]
32 (11)
1960-1964
세인트 존스턴
37 (19)
1964-1967
던펌린 애슬레틱
88 (66)
1967-1969
레인저스
41 (25)
1969-1973
폴커크
106 (37)
1973-1974
에어 유나이티드
24 (9)
17시즌
통산
327 (167)

8.2. 감독


연도

경기



승률
1974
이스트 스털링셔 FC
17
9
2
6
52.9%
1974~1978
세인트 미렌 FC
169
74
41
54
43.8%
1978~1986
애버딘 FC
459
272
105
82
59.3%
1985~1986
스코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10
3
4
3
30%
1986~201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500
895
338
267
59.7%
총합
'''2,155'''
'''1,253'''
'''490'''
'''412'''
'''58.1%'''
  • 세인트 미렌 (1974-1978)
    • 스코티시 퍼스트 디비전 : 1976-77

8.3. 개인 수상


  • FWA 공로상: 1996
  • 무사비니 메달: 1999
  • UEFA 챔피언스 리그 올해의 감독: 1998-99
  • BBC 올해의 감독: 1999
  • BBC 올해의 팀: 1999
  • IFFHS 올해의 클럽 감독: 1999, 2008
  • IFFHS 21세기 최고의 감독: 2012
  • LMA 올해의 감독: 1998-99, 2007-08, 2010-11, 2012-13
  • LMA 10년의 감독: 1990년대
  • LMA 특별 메리트상: 2009, 2011
  • 유럽 축구 올해의 감독(알프 램지 어워드): 2008
  • 로레우스 세계 스포츠 어워드 올해의 팀: 2000[25]
  • BBC 올해의 스포츠인 평생 공로상: 2001
  • 잉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2
  • 스코틀랜드 축구 명예의 전당: 2004
  • 유럽 축구 명예의 전당: 2008
  • 옹즈도르 올해의 감독: 1999, 2007, 2008
  • PFA 메리트상: 2007
  • UEFA 올해의 팀: 2007, 2008
  • 프리미어 리그 올해의 감독: 1993-94, 1995-96, 1996-97, 1998-99, 1999-00, 2002-03, 2006-07, 2007-08, 2008-09, 2010-11, 2012-13
  • 프리미어 리그 이달의 감독: 1993년 8월, 1994년 10월, 1996년 2월, 1996년 3월, 1997년 2월, 1997년 10월, 1999년 1월, 1999년 4월, 1999년 8월, 2000년 3월, 2000년 4월, 2001년 2월, 2003년 4월, 2003년 12월, 2005년 2월, 2006년 3월, 2006년 8월, 2006년 10월, 2007년 2월, 2008년 1월, 2008년 3월, 2009년 1월, 2009년 4월, 2009년 9월, 2011년 1월, 2011년 8월, 2012년 10월
  • 프리미어 리그 10년 어워즈[26]: 10년의 감독, 최다 경기 감독
  • 프리미어 리그 20년 어워즈[27]: 최고의 감독
  • 월드 사커 매거진 선정 올해의 감독: 1993, 1999, 2007, 2008
  • FIFA 회장상 : 2011
  • 월드 사커 매거진 선정 역대 최고의 감독: 2013
  • 프리미어 리그 메리트상: 2012-13
  • ESPN 역대 최고의 감독: 2013
  • BBC 스포츠 다이아몬드상: 2013
  • 프랑스 축구협회 역대 최고의 감독 2위: 2019
  • 포포투 역대 최고의 감독: 2020

8.4. 수훈


  • 1985년 OBE(대영제국 훈장 4등급) 수훈.
  • 1995년 CBE(대영제국 훈장 3등급)로 훈위 승급.
  • 1999년 기사작위(Knight Bachelor) 서임.
[1] 1985년에 대영제국 훈장 4등급(OBE)을 받은 이후 1995년에 3등급(CBE)으로 승급되었고, 1999년 Knight Bachelor에 서임되어 Sir이 되었다. 은퇴를 계기로 맨체스터 지역 하원 의원들이 퍼거슨을 일대귀족(비세습 남작)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된다면 호칭이 Sir에서 Lord로 바뀌게 된다.[2] 스트라이커[3] 비슷한 빨간 끈 목걸이라 얼핏 보면 구분이 안가는데, CBE 목걸이는 보라색에 가까운 빨간 끈 양측에 하얀색 줄이 있고 기사작위(Knight Bachelor) 목걸이는 진한 빨강색 끈 양측에 노랑색 줄이 있다.[4] 부부간의 사이는 대단히 좋은 듯. 천하의 퍼거슨 감독도 집안에서는 아내에게 수그린다고. 한번은 먼 거리로 친선경기를 가야했는데 아내가 집안청소하고 가라는 한 마디에 대청소를 거드느라 정작 감독인 본인이 그 경기에 가지 못했다고. 2000년대 초반에 은퇴를 고려할 때도 낮잠 자다가 아내 캐시에게 발로 걷어차이고 '남편 은퇴는 내가 결정하는거임.' 말을 듣고 은퇴를 포기했다. ㄷㄷㄷ [5] 당시 퍼기경은 "퍼거슨 집안의 장남은 모두 알렉스(Alex)란 이름이라며 첫아이 이름을 알렉스로 하자"고 주장했으나 퍼기경의 할아버지의 이름이 존이라는 걸 아내에게 들키는 바람에 거짓말이 들통나 마크가 되었다고 한다.[6] 알렉스 퍼거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의 축구 위상 자체를 세계 최고로 끌어올렸다.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더 나아가 EPL, 리그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알렉스 퍼거슨경이 끌어올린 EPL의 전세계적 인기와 그로 인해 얻게 된 엄청난 TV 중계권료는 결론적으로 리그의 중위권팀에게도 기회를 주게 되었다. 중계권료(재정적 윤택)를 바탕으로 리그 중위권 클럽들이 더욱 두터워진 것이다. EPL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리그다. 세리에A가 몰락한 것은 돈 때문이었다. 선수영입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었지만 세리에A의 재정상태는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파르마 FC, 피오렌티나는 파산했다. 스페인도 마찬가지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거듭되며 전체적인 수준이 하락했다. EPL은 다르다. 일각에서는 이런 추세라면 EPL 20위가 라리가 양대산맥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르셀로나의 중계권료를 넘기는 건 시간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7] 그로 인해 프리미어리그는 그 해 다시 UEFA 리그 랭킹 3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33년만에 잉글랜드 리그는 퍼거슨이 말한 대로 UEFA 리그 포인트 1위를 차지하게 된다.[8] 사라고사에서 잘해서 퍼거슨이 리턴 시켰는데, 볼튼전에 이후로도 폼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이후, 바르사로 컴백.[9] 자수성가해 부호가 된 글레이저는 1995년 미국프로풋볼(NFL) 팀인 탬파베이 버커니어스(Tampa Bay Buccaneers)를 인수해 스포츠 사업을 시작했다. 글레이저는 인수전에 뛰어들기 전만 해도 버커니어스는 만년 꼴찌 팀이어서 비용이 적게 들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착수한 것이다. 하지만 인수전 막판에 경쟁자가 갑자기 등장하는 바람에 2억 달러 가까운 자금이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이 거래는 풋볼팀 인수 사상 최고 금액이었다. 글레이저는 인수 후 꾸준히 좋은 선수와 코치를 영입해 팀의 성적을 호전시켰다. 마침내 2003년 슈퍼볼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고 이후 버커니어스의 가치는 8억 달러로 치솟았다. 1억 9200만 달러에 인수한 팀이 10년도 되기 전에 7배 가까이 몸값이 뛴 것이다. 그는 꼴찌였던 팀을 2003년 슈퍼볼 우승팀으로 키우는 능력을 보여줬다. 글레이저는 검소했지만 돈을 쓸 때는 화끈하게 쓰는 사람이었다. 전용기를 구입하기 전까지는 언제나 출장은 이코노미석을 이용했고 대부분 저가항공사만 찾았다. 그는 아들 브라이언을 가리키며 "저 아이가 입고 있는 바지가 보이죠? 저게 200달러(20만원)짜리 휴고 보스 바지야. 난 겨우 20달러(2만원)짜리 바지를 입는데 말이야"라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버커니어스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존 그루덴(당시 오클랜드 레이더스 감독) 감독을 영입하기 위해 2002년 1750만 달러를 쾌척했다. 그루덴은 글레이저 회장의 기대에 부응, 2003년 시즌 우승을 이끌었고 그 자신은 최연소 슈퍼볼 우승감독이란 영예를 안았다. 글레이저는 버커니어스를 인수한 뒤 탬파베이 지역의 팬들을 위한 행사를 많이 열었다. 팀의 선수들이나 코치가 지역사회 이벤트에 나타난 횟수의 연간 합계가 700회를 넘을 정도이니 글레이저가 얼마나 밀어붙였는지 짐작이 간다. 거의 하루에 두 건씩 누군가는 행사장에 나선 것이다. 글레이저는 이와 관련, 2003년 슈퍼볼 우승 뒤 인터뷰에서 "우리가 경기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며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도 우리를 역할모델로 여기고 있는 만큼 건전한 팀과 바람직한 모습의 선수들을 자주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팀 선수들과 지역 팬들이 혼연일체가 되면서 슈퍼볼 우승의 터를 닦았다는 게 팀 안팎의 평가다.[10] 맨유 인수에 관심있던 거부들 리스트
루퍼드 머독 (전 LA다저스 구단주)
●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
●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맨시티 구단주)
하마드 알 타니 카타르 국왕 (PSG 구단주)
● 드미트리 리볼로프레프(AS 모나코 구단주)
맨유가 지속적으로 흑자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다 보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인수하기 위해 눈독을 들이는 거부들이 적지 않았다. 2000년대 초 LA다저스 등 다른 프로 스포츠팀을 사들이려고 했던 글레이저는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눈을 돌렸다. 글레이저가 맨유를 인수하려고 했을 때 맨유팬들이 조용히 넘어갈 리가 없었다. 1990년대 후반에도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맨유를 인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루퍼트 머독은 맨유의 지분을 매입해 인수하려다 소액주주와 서포터 연합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된 적이 있다. 그러나 지난 50여 년간 숱한 비난과 공격에도 개의치 않고 난관을 뚫고 나와 한번 목표를 삼으면 결코 그냥 물러서지 않는 스타일의 글레이저가 여론이 악화됐다고 포기할 리가 없었다. 맨유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포츠팀인 데다 입장권은 거의 대부분 매진이었고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브랜드 가치를 지닌 구단이었다. 그래서 2003년부터 조금씩 맨유의 주식을 사 들이기 시작해 28.1%의 지분을 확보한 뒤 2, 3대 주주에게 공식적으로 매수를 신청, 이를 성사시켰다. 결국, 2005년 글레이저는 맨유의 주식 75%를 인수해 구단주가 되었다. 인수금액은 7억 9000만 파운드(약 1조 3900억 원). 하지만 이 중 2억 7500만 파운드(약 4850억 원)만이 글레이저 가문의 돈이었고 나머지 인수금액 중 2억 7500만 파운드는 IB(투자은행)에서 나머지 2억 4000만 파운드는 이자율이 높은 헤지펀드를 통한 현물출자대출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JP모건 투자은행과 리파이낸싱 과정을 거치며 5억 파운드의 우선순위부채를 가져왔다. 글레이저 가문으로서는 75%의 주식을 보유했을 무렵부터 상장폐지가 가능했지만 소액주주들과 서포터스의 반발로 강제매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 97.5%가 될 때까지 주식을 매입해야 했다. 결국 2005년 6월 22일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맨유 주식은 사라졌다.
[11] 박지성이 QPR 이적 전 팀 내 연봉 순위 3위였다. (루니, 퍼디난드 바로 다음이었으며, 연봉 81억.) 루니가 그때 당시 154억. 박지성이 새로운 팀을 알아보던 와중에 맨유가 인상된 연봉으로 재계약을 제시했으나 박지성이 거절할 정도로 퍼거슨과 맨유는 박지성을 잡고 싶어했었다.[12] 퍼거슨은 빅클럽 맨유에 한국인 선수 박지성을 데리고 옴으로서, 한국에 유럽 축구의 대중화의 계기를 마련해줘 해외축구팬들에게는 고마운 존재이다. 한때 '제한맨'이라 할 정도의 맨유 공화국이었던 축구팬들 사이에서 퍼거슨은 맨유 클럽 감독인지 한국 감독인지 헷갈릴 정도로 최고의 지분을 자랑한 적이 있기도 하다. 한국인 선수를 데리고 있는 빅클럽 감독의 고충을 겪게 된 원조로, 한국인들에겐 최고의 선수인 박지성에게 죄다 궂은 일을 전담시키기에 허구한 날 영감탱이라 불리기도 했다. 박지성과 같은 윙어 포지션이던 동료 호날두, 나니, 긱스도 마찬가지.[13] 그 당시 영상을 보면 퍼거슨이 상당한 용기를 냈다고 할 수 있다. 박지성이 QPR로 이적한 첫 시즌에 맨유와의 QPR 홈 경기에서의 일이다. 경기 시작 전, 퍼거슨이 QPR쪽 벤치에 직접 걸어가서 벤치 앞을 소심하게(...) 서성였는데 이적하게 만든 상황이 미안했는지, 퍼거슨답지 않게 박지성에게 먼저 말을 못 걸고 쭈뼛쭈뼛 서성였다. 벤치에서 서브 멤버로 대기하던 박지성 선수는 이를 퍼거슨 감독이 자신에게 간단한 인사를 하기 위해 다가왔다는 제스처라고 간파하고 벤치에서 일어나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퍼거슨 감독에게 악수를 청했다. 퍼거슨도 흡족한 미소를 띄며 박지성과 악수 및 간단한 안부 인사를 하고 바로 맨유 쪽 벤치로 돌아갔으며, 상당히 훈훈한 장면이기도 하다.[14] 하필 전년도(2018년) 12월 17일에 펼쳐진 노스웨스트 더비에도 패배했다.[15] 자기가 스스로 날린게 아니라 딴 인간들이 날린거라 그 마음은 설명이... 그리고 그 인간들이 맨날 경기마다 크로스 해대는 신기록 감독어그로 끌기 좋아하는 감동님이다...[16] 그리고 그 삭제된 세이브데이터를 찾느라 감독들이 애를 먹고 있다. 과거에는 주제 무리뉴가, 지금은 올레 군나르 솔샤르가 데이터 찾고 있는데 어딜 찾아봐도 안 보인다. 게다가 복구해야할 데이터에 바이러스(맨유 7번의 저주)까지 퍼진 듯하다. 그나마 솔샤르 감독이 부임한 뒤에는 19-20 시즌에는 3위,20-21시즌은 아직 진행중이지만 2위이다.[17] 일부 축구팬 사이에서도 알렉스 퍼거슨이 마지막 임기까지 선수단의 세대 교체를 실패한 것을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꼽고 있기는 하다.[18] 모예스가 경질될 시점에는 시즌 도중이어서 공백을 메꾸고자 라이언 긱스가 임시로 맡았다.[19] 우승하면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권을 준다.[20] 공교롭게도 무리뉴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첼시에서 그리고 맨유에서 경질되기 그 직전의 상대가 하필 위르겐 클롭이었다.[21] 최초의 제보 언론사가 미러라고 한다. 미러 주간지는 공신력이 좋지는 않은 편이다. 축구 관련 뉴스에서의 공신력을 다루는 웹페이지가 있다. [22] 무리뉴 감독은 자신이 첼시에 부임한 초기에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를 이긴 후, 퍼거슨 감독이 포도주를 같이 마시자며 상대팀 감독인 자신을 감독실로 초청해서 환대해 준 것에 감명받았다고 한다. 2007년에도 비슷한 사례로 같이 식사도 했었는데, 무리뉴 본인이 회상하길 혹시 이것이 자신을 후계자로 데려가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잠시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퍼거슨 은퇴 후 그 후계자는 누가 될 것이냐는 의문에 무리뉴 감독의 이름이 많이 올라왔지만, 결국 데이비드 모예스로 결정났다. 그리고 모예스는 경질되고, 후임은 루이 반 할이 되었다. 반 할은 2년간 맨유 감독을 하다 경질되고 2016-17 시즌부터 맨유 감독은 무리뉴가 맡게 되었다![23] 애초에 클럽 감독으로서 잘 나가던 사람이 국대를 맡는 일은 잘 없다. 이 때문인지 클럽 감독들의 위상이 국대 감독들에 비해 높다는 인식이 있기도 하고. 당장 무리뉴, 펩과 뢰브, 데샹을 두고 누가 더 위대한 감독이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전자를 뽑을 것이다.[24] 퀸즈 파크 레인저스와는 전혀 다른 스코틀랜드 팀이다.[2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6] 1992-93~2001-02[27] 1992-93~20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