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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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머지사이드 주에 위치한 공업 도시이자 항구 도시. 영국에서는 5번째로 큰 도시이다. 사실 외국인들에겐 그런 것보다 비틀즈와 축구의 도시로 더 유명할 것이다.'''There are places I'll remember, All my life'''
'''지금까지 살면서 기억나는 장소들이 몇 군데 있어요'''
'''Though some have changed.'''
'''몇 곳은 변해 버렸지만'''
'''Some forever not for better,'''
'''몇 곳은 영원하죠, 더 나아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Some have gone and some remain.'''
'''몇 곳은 사라졌지만 그대로 남아 있는 곳도 있죠'''
'''All these places have their moments'''
'''이 모든 곳은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With lovers and friends I still can recall.'''
'''지금도 생각나는 친구들과 연인들의 기억과 함께'''
'''Some are dead and some are living,'''
'''몇 사람은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In my life I've loved them all.'''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나는 그들 모두를 사랑했어요'''
2. 역사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맨체스터가 면직물을 시작으로 기계, 식품, 화학, 전자 등 전세계 상공업에 중심도시로 성장, 바다를 둔 인접도시 리버풀이 그 외항으로 사용되면서 함께 성장하였다. 19세기에는 세계 물동량의 절반이 리버풀 항구를 거쳤을 만큼 세계적인 무역항[5] 을 갖춘 도시였다.[6] 이 당시 리버풀은 런던보다 부유한 도시여서 “대영제국은 리버풀 덕에 가능했다”는 말까지 돌았을 정도로 찬란한 역사를 가진 도시였다.[7]
인구는 1931년 84만 명을 찍었으나, 이후 계속 줄어들어 2007년엔 44만 명까지 떨어졌다. 산업혁명 때부터 영국 공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2차대전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시설이 많이 파괴되었고 전후 복구도 더뎠으며,[8] 공업의 대세가 석탄에서 석유로 옮겨간 20세기 중반부터 급속하게 쇠퇴했다. 공업물자의 수송을 담당한 것은 리버풀과 맨체스터를 잇는 '리버풀-맨체스터 철도'였는데, 이 노선은 세계 최초로 전 구간에 기관차를 이용한 여객 및 화물 운송을 수행, 근대적인 철도 운송 시스템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운송비용을 줄이기 위해 맨체스터가 직접 바다로부터 운하를 판 이후로는 운송이 중단.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두 도시간의 지역감정은 꽤나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맨체스터를 연고로 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리버풀을 연고로 하는 리버풀 FC가 잉글랜드 내 최고의 라이벌로 꼽히는 것도 그러한 지역감정에 기반한 점이 있다.[9]
상기했듯 주요 산업이 쇠락하면서 20세기 후반엔 잉글랜드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중 하나로 꼽혔을 정도로 처량한 암흑기를 보내기도 했는데,[10] , 당시 이런 상황을 주도한 것이 대처 정부였기 때문에, 많은 리버풀 사람들은 지금도 대처하면 치를 떤다.[11] 덤으로 힐스버러 참사도 이 시기에 일어났기 때문에 리버풀 FC 팬덤은 독자적으로 대처를 싫어한다.[12] 위에 시 의회가 대부분 노동당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하여튼 도시가 쇠락했을 땐 슬럼가도 생겨나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악동계의 끝판왕 조이 바튼이 회고하기를,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공격성이 있어야 된다고 했을 정도.[13]
리버풀이 이런 암흑기를 벗어난건 21세기 들어서로,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문화 유산을 포기하면서까지 도시 재생 사업을 진행하여 2천년대 이후 인구도 늘었고, 경제도 50% 가까이 성장하게 되었다. 현재는 유럽에서 문화 관광 도시로 자리잡았으며, 'Liverpool One'이란 시티 센터가 생기면서 영국 내 치안도 손꼽힐 정도로 좋아졌다. 과거의 악명과 비교하면 말 그대로 환골탈태 수준. 다만 외곽 지역인 스피크(Speke)나 크록세스(Croxteth), 안필드(Anfield) 지역은 지금도 치안이 조금은 불안한 편이다.
3. 문화
리버풀 사람들을 놀릴때 랍스카우스(lobscouse)라고 부르기도 한다. 랍스카우스는 영국 선원들이 배에서 해먹었던 요리로, 염장고기에 건빵을 갈아 넣어 섞고 끓인 죽 비슷한 것이다. 당연히 맛은 최악을 달렸고, 당시나 지금이나 영국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인 리버풀 시민들을 '배 타고 다니면서 저런 괴식이나 해먹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 랍스카우스라고 부르게 된것.
유럽축구 팬들이라면 이곳에 위치한 리버풀 FC 정돈 알 것이다. 그 외 에버튼 FC의 연고지이기도 한데, 이 두 구단간의 경기는 머지사이드 더비로 불리며 팬들의 관심을 받는다.
세계적인 밴드 비틀즈 멤버들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다만 비틀즈 멤버들도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14] 함부르크와 여러 곳을 전전한 뒤 인기가 많아진 뒤에는 런던으로 진출하여 활동했다.
비틀즈가 최초로 라이브 공연을 했던 캐번 클럽 등을 위시한 관광업은 전세계에서 몰려드는 비틀즈 팬들로 인해 현재도 리버풀에서 제일 잘나가는 수익산업 중 하나다. 2009년 '리버풀 호프 대학(Liverpool Hope University)' 석사과정에 '비틀즈 학과'가 개설되었다. 리버풀 도시 재생 사업 당시 비틀즈 관광 사업이 큰 도움이 된 것은 물론, 노동 계급 출신의 하층민들이 세계적인 음악가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과장하자면 리버풀 내에서 비틀즈 멤버들은 거의 국부 수준의 대우를 받고있다. 오죽하면 영국 교통시설 최초로 사람의 이름이 붙은 시설이 리버풀의 관문인 '리버풀 존 레논 공항'일 정도다. 2006년 리버풀 시의회에서 노예 상인들의 이름이 붙은 거리의 이름을 개칭하는 안건을 통과시켰을때 예외적으로 페니 레인가를 제외시키기도 했다.
다만 근처의 맨체스터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음악이 생겨난 것에 비해 리버풀은 머시 비트라는 특유의 음악이 1960년대 초반 ~ 중반 떴던 이후에는 별 새로운게 없는 도시가 되고 말았다. 오죽하면 1970년대 초반 근처의 위건을 위시한 맨체스터 인근과 영국 북부 지역에서 소울 열풍이 불어 영국 특유의 노던 소울(Northern Soul) 무브먼트가 일어났을때도 조용히 손가락 빨고 있었다.
4. 관광
주요 관광지로는 알버트 독에 있는 '테이트 리버풀', '비틀즈 스토리'[19] '리버풀 박물관'과 성공회에 속한 '리버풀 대성당', 그리고 가톨릭에 속한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있다.
축구팬이라면 리버풀 FC의 홈구장 안필드와 에버튼 FC의 홈구장 구디슨 파크도 방문해볼만 하다. 두 구장이 상당히 붙어있기도 하고.
이곳을 본거지로 하는 관현악단인 왕립 리버풀 필하모니 관현악단 또한 유명하다. 과거에는 이곳에서 도자기 제조업이 성행해 다소 무겁고 불투명한 연질자기를 생산하기도 했다.
또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세계 최초로 열대 지방의 의학을 연구하기 위해 창설된 'Liverpool School of Tropical Medicine'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5. 정치
영국 뿐만 아니라 유럽 내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중 하나다. 이 지역에서 보수당은 15%만 넘겨도 대단히 선전했다는 평을 듣는다. 한국과는 다르게 정치에서는 지역별 투표보다는 세대별, 계급별 투표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영국에서도 80% 이상의 몰표가 나오는 지역[20] 은 리버풀의 몇몇 선거구를 제외하면 없다. 이를 입증하듯 지난 투표에서도 영국에서 가장 노동당 몰표가 많이 나온 지역구 4개가 모두 리버풀에 몰려있었다. 리버풀 월튼('''84.68%'''), 논슬리(80.77%), 부틀(79.44%), 리버풀 리버사이드(77.99%). 거기다가 이정도 나오는 것도 녹색당, 자민당 등 다른 진보정당이 표를 빼앗아가서 그렇지, 범진보로만 따질시 리버풀 선거구는 범진보 후보가 무려 90%를 넘기도 한다. 그나마 리버풀 존 레논 공항이 위치한 가스턴, 스피크, 헤일우드 지역은 보수적이라고는 하지만 이 지역 역시 보수당의 득표율은 13.04%(...)이러다보니 타지 사람들은 리버풀을 빨갱이 동네라면서 놀리기도 한다고.
이는 마거릿 대처 시절때 리버풀을 제대로 무너트린 보수당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원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힐즈버러 참사 당시 대처의 적반하장식 대처 또한 리버풀 사람들의 증오심을 키워, 리버풀 내에서 우파가 전멸해버리는 원인이 되었다.
다만 시의회에서는 2000년대 자민당이 득세하기도 했다. 이는 토니 블레어 시기 심각한 우경화 정책으로 영국판 한겨레라고 할 수 있는 가디언까지 자민당을 지지하던 시절이라 리버풀 시민들이 토니 블레어의 우경화 정책에 크게 반발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리버풀은 브렉시트 투표 당시에도 탈퇴가 앞섰을 정도로 자유주의 좌파가 아닌 정통 사회주의 좌파에 가까운 정치 성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007년 고든 브라운이 총리가 되고 다시 노동당이 좌경화하고, 자민당이 보수당과 연정을 맺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면서 현재는 다시 노동당이 시의회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보이고 있다.
6. 교통
공항으로는 리버풀 존 레논 공항이 있다. 영국 내에서는 처음으로 사람 이름이 공항에 붙은 사례라고 하니, 리버풀 사람들이 얼마나 비틀즈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일이다. 과거에는 망해가던 공항으로 연간 승객 수가 100만명도 안될 정도로(...) 초라한 공항이었으나, 공항 민영화 이후 탑승객 수가 폭등해 개항 이후 처음으로 500만명을 돌파하기도 하는 등 잘나가고 있다. 다만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다시 200만명대로 떨어져 1990년대 이후 최악의 실적을 보였다.
은근히 길거리 이름에 노예 상인들의 이름이 많이 붙어있어 논란이 된다. 당장 비틀즈의 명곡으로 유명해진 페니 레인 거리부터 노예 상인 제임스 페니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이 때문에 BLM 시위가 한창이었을 당시 리버풀 내에서 거리 이름을 바꿔야한다는 여론이 상당수 존재했다고 한다.
7. 기타
호주 남동부에 있는 '그레이트 디바이딩 산맥'의 일부인 리버풀 산맥[21] 이 이 도시의 이름을 따왔다. 정확히는 영국의 수상을 지낸 2대 리버풀 백작 로버트 젠킨슨[22][23] 을 기려 명명되었다. 길이는 약 140km, 평균 해발고도는 1,000~1,200m다.
뉴욕으로 첫 출항했다가 빙산과 충돌해 대서양에 침몰하면서 다시 돌아오지 못한 타이타닉의 모항이기도 하다.
영국에서 지역드립을 많이 당하는 도시 중 하나이다.[24]
8. 억양
리버풀 억양은 괴이하기로 영국 내에서도 유명하다.(스카우스, Scouse) 외국인들은 거의 못 알아들으며 영국의 타지 사람들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심지어 리버풀 사투리는 영어가 아니라 리버풀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26] CNN의 대표 기자 중 한 명인 리처드 퀘스트(Richard Quest)가 그나마 영어를 외국어로 쓰는 사람들도 쉽게 알아들을 만한 리버풀 억양을 구사하는데, 미국인들에게는 굉장히 이질감이 심한 영어 취급받는다. 궁금하면 유튜브에서 검색해 보자.[27]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거나 혹은 영어가 익숙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스코틀랜드 억양[28] 수준의 신세계를 맛볼 수 있다.
한국인 유튜버 KoreanBilly(채널)가 이 지역 억양을 관심있게 다루었다. 아래 영상은 지역 방송국과의 인터뷰.
9. 출신 유명인
상기했듯 비틀즈 멤버들이 가장 유명하다. 케니 달글리쉬도 유명한 편
리버풀 FC의 로컬 보이인 스티븐 제라드와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도 당연히 리버풀 출신.
UFC 파이터 대런 틸도 여기 출신인데 파티에서 칼에 찔린 적이 있다.
1980년대에 주로 활약했던 'Dead or Alive'라는 그룹이 이곳 리버풀 출신이다. 그 외 에코 앤 더 버니멘, 프랭키 고즈 투 할리우드, 레이디트론, 더 라스, 주톤즈, 엘비스 코스텔로, 사이먼 래틀이 이곳 출신이다.
공립대학인 '리버풀 대학교'가 있으며, 노벨상 수상자인 로널드 로스, 찰스 셰링턴 등이 주요 동문이다. 옆 학교인 리버풀 존 무어 대학(Liverpool John Mooores Unicersity)의 총장은 퀸의 기타리스트였던 브라이언 메이이다.
콘웨이의 생명 게임으로 유명한 존 호튼 콘웨이도 리버풀 출신이다.
[1] 2001년 기준 # 영국 5위.[2] 전체 인구에서 아일랜드계 영국인은 단 1.4%에 불과하다. 비틀즈 멤버 전원이 아일랜드계 영국인임을 생각하면 다소 의외인 비율.[3] 전직 시장인 조 앤더슨이 부패 혐의로 구속됨에 따라 웬디 사이먼이 차기 시장 선거때까지 대행을 맡는다.[4] 존 레논이 어릴 적 살았던 리버풀의 향수를 다룬 곡이다. 그 외에 Penny Lane도 리버풀 교외의 거리를 묘사한 곡이다.[5] 21세기 지금의 유럽 최대 물동량 항구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에다 유럽 2위인 독일의 함부르크를 합친 것보다 큰 비중을 차지.[6] 그래서 19세기가 배경인 문학 작품에서는 배로 이동할 때 리버풀을 거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예로 들면,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돌아갈 때, 런던에서 더 가까운 브리스톨이 아닌 리버풀로 가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좋은 예다.[7] 물론 흑인 노예 무역의 메카이기도 했다. 아프리카~유럽~아메리카를 잇는 삼각무역의 성황에서 리버풀은 단언컨대 흑인 노예의 집결지 역할을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도 레트 버틀러는 자신의 재산의 대부분이 이 도시에 있다고 말한다.[8] 당시 리버풀 아동들은 폭격 후 박살난 건물의 잔해 사이에서 뛰어 놀았다고 한다.[9] 물론 지역감정뿐 아니라 빅클럽인 두 팀이 타이틀을 놓고 경쟁했던 경험 또한 두 팀의 라이벌 의식에 한몫했다.[10] 이곳에서 유학한 유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머리를 자를 돈이 없어 바리깡을 구매해 스스로 머리를 깎고 다니는 청소년들을 제법 볼 수 있었다고 한다. [11] 이게 어느 정도인고 하니 2013년 마가렛 대처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녀가 죽었다!"''''라며 환호했을 정도.[12] 이 당시 경찰들이 참사의 원인을 관중들에게 전가하고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훗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공식 사과했을 정도이니 당시 정부에 책임이 없다는 소리는 못한다.[13] 그래서인지 몰라도 리버풀에서 자란 축구 선수들은 대부분 억세고 파워풀한 스타일을 가졌다. 리버풀 FC의 은퇴한 레전드 축구선수 스티븐 제라드는 아예 악동 축구 선수로 유명한 조이 바튼과 동네조차도 똑같은 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역시 로컬 출신인 제이미 캐러거가 태어나고 자란 부틀 지역이나 웨인 루니가 태어나고 자란 리버풀 교외 크록세스 지역 역시 치안 상태가 안좋았다.[14] 사실 비틀즈 멤버들이 모두 전형적인 리버풀 노동계급 가정 출신의 아이들이다. 그래서 깔끔한 외모와 달리 성격은 마초적인 부분도 꽤 있었다고 한다. 링고 스타의 경우 처음 밴드에 나타났을때, 리젠트머리의 테디 보이 패션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링고 스타 스스로가 말하길, "나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체구도 작고 싸움에도 별로여서 강하게 보이지 않으면 리버풀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다."라고. [15]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16]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17]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18]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19] 관람기 #,#[20] 사실 한국에서도 전라도 일부 지역구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하다.[21] Liverpool Range.[22] Robert Banks Jenkinson, 2nd Earl of Liverpool,(1770-1828)[23] 수상재임 기간은 1812년-1827년, 재임 기간 중에 노동운동을 강경진압한 사건인 피털루 사건으로 유명하다.(...)[24] 한 예시로 박지성 개고기 응원가의 가사에서 리버풀 출신들은 쥐고기를 먹는다고 조롱받았다.(...)[25] Yellow Submarine 영화 내의 장면이다. 참고로 비틀즈 멤버들은 전원 아일랜드계이기 때문에 아일랜드 억양도 약간 섞여있다는 점을 감안할 것.[26] 얼마나 심하길래 저러냐는 위키러들께서는 제이미 캐러거의 선수 시절 인터뷰를 들어보자. 독일어나 네덜란드어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랩하는 것처럼 들리는 빠른 속도 때문에 더 알아먹기가 힘들다. 방송인이 된 지금은, 선수 시절에 비하면 그나마 낫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나마'''다.[27] Nostalgia Critic은 배트맨과 로빈을 리뷰해면서 얼리샤 실버스톤이 극중에서 런던에서 대학 다니다온 배트걸 역할을 맡았는데, 억양이 너무 강해서 '리버풀 출신인게 틀림없군!' 이라고 깠다.[28]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스코틀랜드 억양은 매력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뭐라 하는지 알아듣는 건 힘들어한다. 당장에 알렉스 퍼거슨의 인터뷰를 유심히 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