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오하이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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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중국의 前 축구 선수로, 다롄 스더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1990년대 중국을 이끌던 대표 공격수다.
2. 커리어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선수였으며,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아시아 예선 한국전에서는 0:3으로 뒤지는 상황에서 1골을 넣어 팀의 체면을 세우기도 하였다.
AFC 아시안컵,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많은 활약을 했던 선수였으며, 자국에서는 "수비진을 철저히 궤멸시키는 공격수"로 큰 기대를 받았다.[2]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중국 축구의 성적이 별로 신통치 않았을 때라 한국 팬들에겐 그리 인지도가 없었지만, 유독 한국팀과의 시합에서 실력을 발휘, 점차 여러 면모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결정적으로 인지도를 올리게 된 계기는 2003년 A3컵 대회. 당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성남 일화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다롄 스더의 3-2 승리를 이끈 것이다. 하지만 활약상만으로 주목받은 건 아니었다.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한국 클럽과 중국 클럽 사이에 실력 차이는 없다"는 발언을 하며, 한국의 축구 팬들을 자극한 것. 하지만 뒤이어 벌어진 성남과의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골을 기록하며 성남에게 또 다시 패배를 안기며 팀을 준결승까지 올려놓았으며, A3대회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모두 득점왕을 기록했다.
2005년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셰필드 유나이티드 FC와 이적료 '''1파운드(당시 우리 돈으로 1800원 정도)'''[3] 로 이적해서 세간의 화제를 모았으나 2년 넘게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이적당시 이미 35세의 노장이었고 그저 마케팅 용도로 영입했다는게 중론이다.
은퇴 후에는 세간의 예상과는 달리 행정가로 활동했다. 당시 2부리그 팀이었던 텐진 송지앙(현재 톈진 취안젠)의 경리[4] 직책으로 합류해서 팀이 안정적인 운영을 하는데 기여했다. 이후 칭다오 하이니우로 이직해서 계속 행정가로 활동했다.
2016년에는 중국 시티 리그[5] 의 총괄 관리를 맡았다.
3. 공산당 비판
'''2020년 6월, 하오하이둥은 천안문 사태, 코로나 19 사태 등에 대해 공산당을 비판하고 중화민국을 지지하며 민국이 중국을 연방국가로 재통일해야 하고 공산당 정부는 물러나라는 영상을 올렸다.'''[6] 이 영상은 얼마 안 가 삭제됐고, 하오하이둥의 웨이보 계정도 삭제됐다. 또한 중국축구협회에서는 하오하이둥의 모든 출전, 득점 기록과 중국 국가대표 최다골 기록을 삭제하는 것은 물론, 아예 없었던 선수로 처리했다. 기사. 반면 한국 네티즌들은 그 동안의 혐한 발언과는 별개로 이번엔 개념 발언을 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오하이둥 실종 기사가 나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일단 본인과 본인의 부인이 현재 스페인에 거주 중인 관계로 신변에는 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7]
하오하이동이 이번에 공산당을 비판한 것에는 현재 시진핑이 진행하는 축구굴기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현재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월드컵 진출을 위한 전력 증강 목적으로 다수의 외국인 선수를 귀화시키고 있는데, 하오하이동은 이런 귀화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 당장 중국 국내 선수의 입지가 좁아지는 문제도 있고, 귀화 정책이 장기적으로 중국 국내 축구 발전에도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8][9]
그간의 행적과는 대비되는 소신발언을 살펴 보면 중국인 중심의 민족주의인 중화사상을 가지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총칼로 억압하는 전체주의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1970 ~ 1980년대 한국 독재 정권과 흡사한 강압적 전체주의와 자본주의가 짬뽕된 중국의 현실에서 역사적인 기록까지 가진 사람이 저런 비판을 하는 것은 자신의 커리어 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보면 '''진정한 애국자'''라고 할 수 있다.[10]
이 사태 하나 때문에 자칫하면 중국축구협회가 FIFA에서 제명될 수도 있다. '''피파에서는 축구에 정치가 관여하는 걸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 소신껏 발언한 선수를 제명 처리했으니 중국 정부가 협회에 간섭을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만약 피파에서 이를 모른 척 하고 넘어간다면 피파 역시 WHO처럼 중국의 자본에 굴복한 비열한 조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중공 정권은 하오하이동의 아들 하오런지가 속한 세르비아 프로축구팀 FK 라드니츠키 니슈를 압박해 그를 방출시켰다고 한다.#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는데 묵묵부답인 피파는 그저 가관일 따름.
한편으로 그가 시진핑에 대적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하여 과거 몸 담고 있던 구단 다롄 스더의 구단주 보시라이와 관계 있는 것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보시라이가 몰락하면서 스더 그룹은 파탄났고, 그와 함께 하오하이둥이 몸담았던 다렌 스더 역시 어이없이 해체되었다#. 정치적인 일들로 중국 슈퍼 리그 8회 우승, FA컵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운 명문팀이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이다.
터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을 비판해 미국으로 망명한 하칸 쉬퀴르와 비슷한 케이스. 이쪽은 없는 사람 취급까진 아니지만 사실상 없는 사람마냥 취급당하는 건 똑같다. 그 잘나가던 터키의 축구영웅이 미국에서 우버 운전수나 하고 있는 처지가 되었다.
4. 여담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이었던 판즈이와 상당히 사이가 안 좋았다고 알려져 있다. 북부 출신의 하오하이둥과 남부 출신의 판즈이는 평소 불화가 잦았는데, 심지어는 판즈이가 하오하이둥의 월급이 1000위안 정도였을 때 하오하이둥의 돈 2000위안(20만원)을 훔친 적이 있었고, 그 때문에 하오하이둥이 판즈이를 폭행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성깔이 꽤 다혈질인지 중국 리그에서는 심판 판정에 항의하여 난장판을 저지르기도 하였고,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는 한국인 주심에게 침을 뱉어 출장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과거에 세 번이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폄하해서 한국인들에게는 엄청난 비난을 받아왔다. 먼저 2004년에는 "수준 낮은 한국축구는 더 이상 거론할 가치도 없다."고 발언했고, 2010 남아공 월드컵 한국의 그리스 전 승리에 대해서는 전세계의 언론이 한국의 경기력을 칭찬하는 가운데 이 인간만큼은 '한국이 잘해서 이긴 게 아니라 그리스가 너무 못했다.'고 평가절하하는 칼럼을 썼다. #, ## 해당 칼럼은 당연히 한국인들뿐 아니라 중국인들로부터도 거세게 비판받았는데 "문맹인 줄 알았는데 축구맹이다.", "하오하이둥은 폐급 인간이다.", "넌 한국팀을 이겨 본 적도 없다.", "컴플렉스에 의한 변명, 쓰레기다." 등 한중 양국 국민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후에 예언자 문어를 어마어마한 몸값으로 사겠다는 제안이 들어오자, "하오하이둥, 저 놈은 문어만도 못한 놈이다."라고 조롱받기도 했다. 또 2017년에는 '돈만 보고 중국 오는 한국 선수들은 창녀'라 발언해 비판받았다.
게다가 하오하이둥은 한국 축구는 폄하하면서 일본 축구는 중국이 무조건 배워야할 모범이라면서 엄청나게 띄어준다. 일본축구 찬양하는 하오하이동 거기에 틈만 나면 잉글랜드 축구는 기술이 형편없다면서 깍아내리고 스페인과 브라질 선수들의 테크닉을 무한찬양한다. 브라질과 일본을 꾸준히 띄우는 것을 보면 남미와 히스패닉 선수들의 유려한 개인기와 패싱게임에 대한 로망이 있는 듯한데, 문제는 그것이 다른 스타일에 대한 감정적인 비하와 인신공격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아시아 레벨에서 조차 소림축구 소리를 들을 정도로 거칠기만 한 자국 축구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어 보인다.
한국에서는 태진아와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중국 피파 온라인 3에서 전설로 출시되었다. 중뽕을 맞았는지 스탯이 심히 괴랄하다.
그의 아들 하오룬제는 중국인이 구단주로 있는 스페인 리그 그라나다 CF의 2군 팀에서 뛰고 있는데, 입단한지 2년이나 되었는데도 4경기 밖에 뛰지 못했다. 이후에는 세르비아의 FK 라드니츠키 니슈에 입단했으나, 상술했듯이 중공정권의 의한 압박으로 소속팀에서 방출당했다.
[1] 중국 축구 국가대표 통산 최다골을 기록한 중국 축구의 전설이자 간판 선수. 그러나 중국 공산당을 비방한 이유로 중국 정부에 의해 모든 기록이 말소되고 제명되었다. 중국 인터넷에서는 아무 것도 검색이 되지 않고, 이름을 언급하는 글도 곧 삭제하여 존재했다는 흔적조차 없앴다. 명백히 정치적 탄압에 의한 제명이므로, 취소선을 치고 제명된 선수에 편입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2] EA SPORTS에서 만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중국 국가대표팀에는 아예 슈퍼스타가 없었는데, 그나마 능력치가 높은 선수가 바로 그였다.[3] 사실상 자유계약이었으며, '''명목상''' 이적료의 성격이었다. 이후 첼시 FC가 PSV 에인트호번에서 알렉스를 영입할 때에도 1유로만을 지불했으며, 시세 상으로 따지면 알렉스 쪽이 좀 더 싼 이적료를 기록했다.[4] 한국 구단의 경리직과 다르다. 중국은 공산국가라서 여러 명이 공동 직책을 맡는 경우가 많은데, 구단 경리도 마찬가지며, 한국 구단의 단장 급의 권한을 갖고 있다.[5] 우리나라 K3~K7급의 아마추어 사회인 리그[6] 영상에 나온 주장은 '''"중화민국이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아 중국 대륙을 수복하여 그들의 주도 하에 중국이 통일되어 중국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갖다 버리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여야 할 것."''', '''"티베트, 만주, 내몽골, 타이완, 홍콩, 마카오 등에 '진정한' 자치권을 넘겨줄 것."'''', '''"코로나 바이러스 19는 중국이 전세계에 퍼부은 생화학 테러."''', '''"중국 공산당은 인류 역사에서 사라져야할 집단."''', '''"중화인민공화국을 없애고 과거 중화민국을 계승한 '중화연방공화국'이 세워져야 한다."''' 등 하나같이 중국 공산당 입장에선 피꺼솟할 주장들이다.[7] 허나 낙관할 수도 없는게, 중공 정권의 입김은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본토인 사회에도 미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당시 중국본토 유학생들이 서울에서 깽판을 친 배후에도 중공 정부가 있었을 정도다. 물론 그 나라에서 국적도 따며 조용히 사는 중화민국 출신 구화교들과는 아무 상관없고 구화교들은 되려 신화교를 자처하는 중국본토 이주민들과 갈등을 겪는다. 한국에서도 구화교는 조선족을 매우 혐오하며 대림동 등 조선족 거주지에 절대 가지도 않고 조선족과는 말도 안 섞는다.[8] 위에 행적에 언급되어 있듯이 하오하이동은 현역 은퇴 후 행정가로 활동했고, 중국축구협회에서 아마추어 리그 총괄 관리를 맡으며 중국 축구의 풀뿌리를 다지는 데 열성적이었다. 100여 년 넘게 발전한 유럽 축구 리그나, 현재 사회인 아마추어 리그 개편으로 쇄신하고 있는 한국 축구의 상황을 보면 이는 멀리가긴 해도 올바른 행보이다. 그런데 국가에서 이를 도와주진 못할 망정 눈앞의 성적에 운운해서 개판으로 만들고 있으니 하오하이동 입장에선 열불이 터질만 할 것이다. 더구나 당장 과거 역사를 봐도 중화민국은 20세기 초중반까지 아시아 축구의 최강자였다. 심지어 좁은 타이완 섬으로 쫓겨난 후에도.[9] 하다못해 인근 한국과 일본은 귀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편이 아니다. 일본은 몇몇 브라질 출신이 귀화한 적이 있긴 하지만 대표팀에 자주 뽑지는 않았으며, 한국은 이제 세징야의 '''일반''' 귀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다.[10] 이웃나라들을 까기도 하고 자기 나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때로는 그게 지나쳐 망언도 하지만 자기 나라에도 쓴소리를 멈추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