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발렌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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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


Rudolph Valentino.[1]
1895년 5월 6일 - 1926년 8월 23일
'''할리우드 최초의 미남의 아이콘'''
이탈리아 출신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댄서로 화려한 외모와 잘생긴 얼굴, 뛰어난 춤솜씨로 20세기 초반 젊은 여성들을 사로잡았다.

2. 생애


1895년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위로 형 1명이 있었다. 형 알베르토 발렌티노(Alberto Valentino, 1892~1981) 역시 배우였으며 방송인이었다. 그리고 누나 1명과 여동생이 1명 더 있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불우한 사춘기를 보내며 방황하다가 자신의 몫 유산 4000달러를 갖고 미국으로 건너왔으나 이내 거지가 되고, 식당, 댄서 기타 이런 저런 일을 전전하다가 남창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13년 맨해튼의 한 카페에서 탱고 댄서로 활동했으며 이때 귀부인들의 눈에 띄게 되어 사교계에 진출했다. 그러나 송사에 휘말려 1916년 LA로 이주, 이때 한 여배우의 권고로 헐리우드에 진출하게 된다.
이때 루돌프 발렌티노는 이런 저런 단역[2]을 하던 중 영화 감독 준 마티스의 눈에 들어, 이국적인 외모와 춤솜씨를 영화에서 발휘하면서 여성들의 인기를 얻게 된다.
1919년 젊음의 눈, 1921년 영화 족장, 영화 묵시록의 4기사, 족장의 아들, 1922년 피의 모래 등에 출연하였고 모델로도 활동했다. 수려한 외모에 여성들로부터 인기가 많아 역으로 질투를 받기도 했다.
1919년 어머니가 사망하자 그는 결혼으로 위안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첫째 부인인 진 애커(Jean Acker/ 1893~1978)은 레즈비언이었고, 그녀는 발렌티노와의 결혼으로 자신에게 가해지던 동성애자라는 딱지를 떼는데 이용했다.[3][4]
그 뒤 발렌티노는 애커와 6시간 만에 별거하고[5] 3년 뒤 이혼한다. 그리고 두번째 아내 나타샤 람보바(Natacha Rambova/1897~1966)와 1922년 멕시코에서 결혼하였으나 전처와의 이혼처리가 되지 않아 중혼 혐의로 수감, 1만 달러의 보석금을 지불하고 풀려날수 있었다. 람보바는 그에게 모범적인 역할을 강요하였다. 이로 인해 루돌프가 기존의 이미지(꽃미남 역할과 매력적인 유혹자 역할)를 강요당하다 거절하자 영화감독들은 루돌프를 영화에 출연하지 못하도록 압력까지 넣을 정도여서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렇게 일상 생활에서의 스트레스를 받던 루돌프는 애정을 쏟을 대상을 원했던지 아이를 낳기를 바랐는데, 아내 람보바가 아이를 거부하면서 스트레스는 커져만 갔다.
그러다가 1926년 위궤양으로 인한 장파열로 31세 나이로 사망했다.[6] 미인박명. 그의 장례식 인파는 10만 명 가까이 모였었는데, 폭동으로 발전할 우려가 있어 경찰이 파견되었다고 한다. 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여성팬 10여명이 그의 무덤 근처에서 자살했다고.(...)
빚에 시달렸던 그는 죽어서도 묻힐 곳이 없었고, 그를 발탁한 준 마티스가 빌려준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지금도 준 마티스 가족 묘지에 안장되어 있으며, 3년 뒤 준 마티스 역시 죽어서 그의 옆에 묻힌다.[7]
한편 람보바는 그가 죽은 지 얼마안돼 1927년 알바로 데 우르자이즈라는 남성과 결혼했으나 이 사람은 발렌티노랑 차원이 다른 골수 파시스트였다. 이렇다보니 발렌티노랑 다르게 이번에는 정반대로 우르자이즈가 람보바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했고 이에 반발하자 구타도 서슴치 않았다. 결국 재혼 10년만인 1937년 람보바는 우르자이즈랑 이혼하면서 지인들에게 발렌티노가 그립다는 말을 했으나 발렌티노의 지인들은 이제와서 무슨 헛소리냐는 투로 그녀를 외면했다. 람보바는 이후 정신 불안과 여러 모로 이집트풍 사이비 종교 간부가 되어 지내다가 늘그막에 혼자 살던 도중에 정신이상 불안, 망상으로 인하여 어떤 식사도 거부한 끝에 영양실조인 채로 비참하게 죽고 만다.
수려한 외모, 화려한 춤 솜씨 외에 때로는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게 여성들을 대하다가도 때로는 격하게 여성들을 다루기도 하여 여성들을 매료시켰으며, 카사노바와는 달리 진심으로 여성을 존중하였다고도 하는데 그가 고른 여자는 그를 아끼지 않은 듯 하니 아이러니한 일.
그가 활동하던 시절은 무성영화 시절이라 그의 목소리가 들어간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목소리는 특별히 나쁘지도 않았지만 그가 죽고 1년만인 1927년 유성영화가 만들어지면서 그를 무성영화와 같이 한 배우라는 이름으로 국내 영화지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의 목소리는 그가 1923년에 녹음한 "Kashimiri Love Song" 등의 몇 곡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기타


2012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등을 수상한 무성영화 <아티스트>에서 남자 주인공인 '조지 발렌타인'은 발렌티노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1] 본명은 로돌포 피에트로 필리베르토 라파엘로 굴리엘미(Rodolfo Pietro Filiberto Raffaello Guglielmi)[2] 주로 느끼한 라틴계 악당 역할[3] 1920, 3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동성애자는 매장당했고, 공식 활동이 어려웠다. 동성애자임을 밝히고도 매장당하지 않게 된 것은 사실 20여년도 안됐다. 50년대 미남배우 록 허드슨도 동성애자임을 감추기 위해서 소속사에서 강제로 결혼을 시켜버렸다. 94년도에 영화 필라델피아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톰 행크스가 게이에 대한 차별을 없애자고 연설한 것만 보아도 90년도 초반까지도 게이에 대한 차별이 공공연했음을 보여준다.[4] 이렇게 한쪽 또는 양쪽 배우자가 모두 동성애자인 결혼을 라벤더 결혼이라고 한다. 보통 동성애 성향을 대중에게 숨기기 위하거나 단지 자손을 남기기 위한 결혼인 경우가 많으며, 합의 하에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사는 경우에는 위장 결혼으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참고로 진 애커는 이혼 후에 몇몇 고위층 남자와 염문을 뿌리다가 경제 대공황시에 돈을 왕창 잃고 말았고, 이 와중에 한 정치인과의 불륜 스캔들에 연루되었다. 결국 영화배우로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50년대 이후엔 동성 파트너와 함께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5] 아예 침실에도 못들어 오게 하려고 방문을 잠궈버렸다고 한다. 애커와의 육체적 관계는 사실상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6] 아내 람보바와의 결혼생활 중 스트레스를 받아 다량의 약물을 복용한 적이 있었으며, 비소중독이란 설도 있었다.[7] 현재 루돌프 발렌티노의 묘는 준 마티스와 그녀의 전 남편 사이에 있으며 그 아래에는 준 마티스의 어머니, 그리고 새아버지 윌리엄 마티스의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