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가브리야르게
1. 생애[3]
1.1. 선수 생활
1.1.1. 클럽
루이 가브리야르게는 몽펠리에 출신으로 1931년, 고등학교에 다닐 때 학교팀을 이끌고 국가 축구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다. 하지만 가브리야르게의 팀 선택은 FC 세트였는데 FC 세트는 데뷔 시즌에 더블#s-7을 차지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세트는 가브리야르게의 기량을 인정하고 그를 중용했지만 가브리야르게와 세트의 동행은 1936-37 시즌으로 끝났고, 그는 여러 팀을 옮겨다녔다. 그는 1940년 님 올랭피크에 도착하고 나서야 1943-44 시즌을 제외하면 팀을 더 이상 옮기지 않았다. 가브리야르게가 1942년부터 님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하는 동안 1944-45 시즌에는 님이 디비지옹 2로 강등당하기도 했다. 그는 127회와 9골의 디비지옹 1, 43회와 3골의 디비지옹 2 기록을 남겼다.
1.1.2. 국가대표
세트의 더블#s-7 이후 프랑스 대표팀은 만 19세의 가브리야르게를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팀 멤버로 선발했다. 하지만 그는 본선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팀은 오스트리아에 패했다.
가브리야르게의 대표팀 데뷔는 1934년 12월, 유고슬라비아전에서 이뤄졌으며 프랑스는 3대2로 이 경기에서 승리했다. 그의 마지막 경기는 1937년 1월의 오스트리아전이었으며 가브리야르게는 총 9경기의 대표팀 경기에 출전했다.
1.2. 감독
1942년부터 님 올랭피크의 선수 겸 감독이 된 가브리야르게는 1946년 선수 생활을 마감할 때까지 님의 감독직을 맡았다. 님의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 잠시 라로셸이라는 아마추어 클럽의 감독을 맡았지만 님과의 연봉으로 인한 법적인 분쟁으로 금방 그만 두었다.
그 이후 그는 1956년부터 1963년까지 AAJ 블루아(AAJ Blois)의 감독을 맡았고 1968-69 시즌에는 앙탕테 몽소(Entente Montceau)를 지휘했다.
2. 뒷이야기
- 그는 프랑스 최초의 귀화 축구 스타인 라르비 벤바렉과 생년월일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