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장군 소총
[clearfix]
1. 개요
[image]
중국에서 개발된 스트레이트-풀 볼트액션&반자동 겸용 소총. 1914년 전후에 개발되었다. 이름인 류 장군은 이 소총의 개발자인 류칭언(劉慶恩, 유경은, Liu Qing-Ēn)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다.
2. 설명
개발 시기가 놀랍도록 이른데, 청나라가 멸망한지 10년이 채 안됐고 유럽은 막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려던 때라서 자동장전소총(Self-Loading Rifle)은 손에 꼽힐 정도로 희귀했던 시기였다. 그 중에서도 제식 소총탄을 쏘는 현역 반자동소총은 아직 몬드라곤 소총밖에 없던 때였으니 당시의 중국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선진적인 소총. 작동 방식은 후대의 게베어 41이나 시제형 M1 개런드와 비슷한 가스 트랩식으로, 비슷한 시기엔 덴마크인이 설계한 방 소총(Bang rifle)의 시제품이 같은 방식을 쓰고 있었다. 급탄 방식을 볼트액션-반자동으로 변환하는 방법은 총구에 위치한 실린더를 돌리는 것으로, 반시계방향은 볼트액션, 시계방향은 반자동이다.[1]
3. 역사
- 1914년 초, 류칭언 장군은 한양 조병창에서 쓸 공작기계들을 구입하기 위해 미국의 프랫&휘트니와 접촉했고, 4월 11일에 1,082,500달러 어치의 기계들이 24개월 내에 조달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 해 9월에 장군과 그의 가족, 7명의 부하 직원이 공작기계들에 미리 익숙해지기 위해 프랫&휘트니 사의 본사 지역인 하트퍼드(Hartford)에 도착해 다음해 중순인 1915년 6월까지 머물렀다.
- 1916년 9월 8일, 2종류의 시제 소총이 베이징의 난유안 시험장에서 테스트를 받았으며, 각각 한양 조병창에서 만든 수제 스프링과 프랫&휘트니 사의 기계로 만든 절삭 스프링을 사용한 소총이었다. 여기서 앞서 말한 공작기계 계약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듯이, 한양 조병창의 스프링은 급탄 사이클을 안정적으로 반복하기엔 너무 힘이 약해 부적합 판정을 받았고 당연히 프랫&휘트니의 스프링은 그런 문제가 없어서 채택되었다. 그럼 이제 기계만 중국에 도착하면 되는데, 시기가 시기다 보니 기계의 준비, 조달이 늦어졌고, 당연히 자국엔 없는 외제 기계에 생산을 의존해야 했던만큼 개발 속도도 느렸다. 계약대로면 기계가 진작 도착했어야 할 시기에 부품 품질이나 비교하는 테스트를 한 것도 그 이유.
- 결국 전쟁이 끝난 후인 1919년 여름, 드디어 기계들을 실은 배가 출발하나 싶더니, 중국으로 가는 도중 배가 가라앉아버렸고 설상가상으로 개발자인 류 장군마저 군 회의 도중 뇌졸중으로 쓰러져버려[2] 몸의 절반이 마비되는 바람에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계들이 다시 준비되어 상하이에 도착했지만 개발자가 그 지경이 되었으니 혁신적인 소총 제작을 밀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쓸모없어진 공작기계들은 1921년까지 창고에 처박혀 있다가 새로 설립된 공시앙 조병창으로 전달되어 게베어 1898의 복제품을 만드는데에나 쓰였다. 남은 시제품들은 희귀 총기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신세가 되었고, 그 수량조차 10정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4. 한계
총기 자체는 당시 기준으론 성능도 좋고 신뢰성도 큰 문제가 없었다고 알려져 있으나[3] 중국 혼자 힘으로 양산해내기엔 벅찬 기술력과 설비를 요구하는 것이 유일한 흠이었고, 그 유일하지만 중대한 문제 때문에 질질 끌리다가 뜻하지 않은 사고가 겹치며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넌 비운의 소총. 만약 침몰 사고만 없었다면, 혹시 침몰 사고가 생겼어도 개발자가 건강한 몸으로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할 수 있었다면 양산-배치되어 중국군은 '''세계 최초로 반자동 소총을 제식화한 정규군'''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더 강한 힘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중일전쟁에서 피를 덜 흘렸거나 현대까지도 풀리지 않은 앙금의 원인인 각종 학살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니 근대 역사의 흐름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지도 모른다.
5. 매체에서
In The Name of Tsar DLC에서 의무병의 주무기로 추가되었다. 6발 클립 때문에 젤프스트라더 1906의 상위호환으로 여겨지는데다가, 반자동 모드와 볼트액션 모드를 전환하는 기능도 갖추었다. 반자동 모드와 볼트액션 모드의 탄환 대미지가 다른데다가, 6발은 반자동소총으로는 너무 적은 장탄수라 의무병으로 볼트액션 뽕을 느끼려는 소수 유저들이 주로 들고 다닌다.
6. 둘러보기
[1] 현재 남아있는 시제품에는 실린더에 이를 각각 普/自(각각 普通/自動의 의미)로 표기하고 있다. 당시에는 수동으로 장전해야 하는 볼트액션 방식이 보편적이었으니 볼트액션 방식이 '보통'이고, 자동으로 장전되는 방식이 '자동'인 셈.[2] 배 침몰 사건이 유력한 원인으로 추측된다. 안습[3] 대량 양산/배치에 결국 실패했고 제대로 된 시험 평가 기록도 없어서 신뢰성을 논할 상황 자체가 아니긴 하다. 단, 가스 트랩 작동 방식과 볼트액션 겸용에 사용탄까지 같았던 총기인 후대의 G41(M)이 신뢰성과 관련된 온갖 악평에 시달렸음을 감안하면 글쎄..... 초기형 가스 작동식 총기 중엔 가스 트랩 방식이 종종 보이지만, 작동 동력이 부족하단 문제 때문에 빠르게 사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