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사건 전개

 



1. 읽기 전에
2. 사건 전개: 그때 그 리그베다 위키는 어떻게 터졌나
2.1. 네버랜드로 시작된 한국어 위키백과와의 분쟁
2.2. 오프 모임 이후,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의 본격적 시작
2.3. 리그베다 위키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3. 리그베다 위키 폭파 이후 복구까지의 길
4. 정상화(?)의 시작
5. 리그베다 위키의 폭파까지 간단히 요약한 사건 전개
6. 같이 보기


1. 읽기 전에


현재,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이 사유화 사태로 인해 완전히 터져나가면서, 과거 게시판에 있던 글들이 모조리 사라졌다. 리그베다 위키 측에서는 사라졌던 게시글들을 복구 중이라고 주장하지만 작업이 언제 완료될 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유화 사태 당시 리그베다 위키 게시물들은 출처를 제시할 수 없는 상황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리그베다 위키 사태 이후 몇 개월 후에 작성된 이 문서는 당시 게시물을 제시할 수 없어 작성자들의 기억이나 다른 위키에 기록된 서술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므로 일부 부정확한 서술이 있을 수 있다.

2. 사건 전개: 그때 그 리그베다 위키는 어떻게 터졌나



2.1. 네버랜드로 시작된 한국어 위키백과와의 분쟁


2015년 3월,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에서 네버랜드 문서를 영문 위키백과에서 번역해 등재하려 하며, 번역을 검토해 달라는 게시물(아카이브)가 올라왔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에 대한 위반인데, 리그베다 위키는 CC BY-NC-SA 2.0 KR을 사용하는 반면 위키백과의 경우 CC BY-SA 3.0이기 때문에, 조항이 달라서 위키백과의 문서를 가져오는 것은 CCL을 어기는 것이다.[1] 그러나 당시, 'CCL을 위반하겠다' 라고 읽히는 이 게시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용자가 얼마 없었는지, 영문 위키백과의 번역문은 그대로 리그베다 위키에 올라갔다. 영문 위키백과를 무단 번역한 버전[2]
이것을 한 이용자가 한국어 위키백과 측에 '''라이선스를 위반한 무단 번역'''이라는 말을 제기했고, 3월 17일에는 아리울[3]이라는 사용자가 리그베다 위키가 상습적으로 무단 사용을 통해 저작권 라이센스를 위반한 것과 함께 저작권을 운영자의 것으로 사유화한 다음 영리를 추구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한편 다른 사용자 shyoon1은 자신이 주된 기여를 한 강희제 등의 역사 문서와 나카모리 아키나 등의 일본 음악 문서를 리그베다에서 퍼갔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위키백과 문서 뿐 아니라 위키미디어 공용의 이미지를 무단으로 가져다 쓰는 일이 간간히 있었기 때문에, 한국어 위키백과 회원들은 국내법상 고발을 하는 한편 위키미디어 재단 본사에 리그베다 위키의 행태를 제보하여 '''법으로 해결하겠다''' 라고 할 정도로 강경하게 나섰다.[4]
그러나, 청동도 '앞으로는 좀 더 강하게 모니터링 하겠다' 라고 수그렸고, 리그베다 위키 출신의 한 사용자는 리그베다 위키에 대한 강경 발언을 주도한 두 사용자[5]가 한명의 다중계정이라는 의혹을 제기했고 의혹에 따라 차단이 되면서 논란은 소강 상태에 들어가게 됐다. 몇몇 사용자는 문서에 대해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강력히 반발했지만 논란이 가라앉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사랑방(2015년 11주), '네버랜드' 목차가 이번 사태에 대한 토론이다.
청동은, 이 문제를 계기로 현재 리그베다 위키의 운영상황을 밝히고 기타 문제를 해명하기 위한 (아카이브)오프라인 모임을 개최 하겠으며 참석할 사람을 모집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 모임이 무슨 결과를 불러올지는 아무도 몰랐다.'''

2.2. 오프 모임 이후,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의 본격적 시작


2015년 4월 6일, 리그베다 위키의 운영진은 계획한 대로 오프 모임을 가졌다. 이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리그베다 위키 측에서 '''보안각서를 작성하게 하고 발설하지 않는 데 동의하도록 하면서'''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외부 소통 담당 관리자 '사채꾼'이라는 사람이 제시한 속살글(아카이브)이 어느정도 그 당시 있었던 내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요약하자면
  • 리그베다 위키는 심각한 재정 적자를 겪고 있다.
  • 이것 때문에 광고가 달렸다.[6]
  • 그리고 엔하위키 미러와 2년 전부터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엔하위키 미러는 이것저것 다 합해서 20여 가지의 위반을 저질렀다. 엔하위키 미러는 리그베다 위키의 컨텐츠로 광고비를 벌지만 단 1원도 본관에 기여하지 않고 있다.
정도다.
그러나 이 속살글은 기존의 오해를 해명하기는커녕 오히려 리그베다 위키 멸망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 속살글로 인해 '''결론은 광고를 달아서 돈을 벌고 싶다는 것이냐!''' 라는 반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때마침, 아무도 주목하고 있지 않던 리그베다 위키의 저작권 기부 약관이 화두에 오르면서 리그베다 위키는 엄청난 질타를 받게 되었다. 분명히 한참 전부터 '당신이 편집한 내용의 저작권은 위키에 기부된다' 라는 조항이 있었지만, 그러한 약관이 있었는지를 '''아무도 알지 못했고''', '''제대로 된 공지도 없었던''' 터라, 우선 '이용자를 우롱한 불공정한 약관 개정'이 1차적인 공격 의 목표가 되었다. 게다가, 이 약관 자체가 위키계에서 사실상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웬만한 위키들 중에 '당신이 쓴 글의 저작권은 제가 가져갑니다' 라고 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7] 하지만 위키의 문서로 인해 법적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는 '그 책임은 이용자에게 있다' 라고 되어 있어, 이용자는 자기가 쓴 글의 저작권을 리그베다에 '수탈'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다들 알고 있던 내용''' 이면 모르겠지만,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 이후에야 '''리그베다 약관은 저작권 기부 조항이 있다''' 가 알려졌던 것을 보면 청동 및 극소수만 알고 있던 조항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엔하위키 미러를 들먹이는 내용에서도 당연히 반발 여론이 날아왔다. 우선, '리그베다 위키와 엔하위키 미러가 소송 중이다' 라는 것 자체가 엄청난 뜬금포였다. 두 사이트 운영자들이 평소에도 서로 막말을 하며 싸웠다 하더라도 고소 이야기가 나왔다면 깜짝 놀랐을 텐데, 2013년에 리그베다 위키와 엔하위키 미러는, 상호 간에 공동 공지문을 통하여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겠다.' 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바로 그 해에 소송을 했다는 것은 기존의 공동 공지문 발표가 완전히 무효화되었다는 것이 '''2년이나 지나서야''' 알려졌던 셈. 게다가, 어찌 되었던 간에 옛 엔하위키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툭하면 터져나가고 터져나갔던 엔하위키를 그나마 멀쩡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줬던 수단이 엔하위키 미러였는데, 어느 정도는 엔하-리그베다가 엔하 미러로부터 도움을 받은 게 있다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소송으로 보답했다는 것이 너무했다는 주장도 있다.[8] 게다가, 리그베다 위키는 사유화 당시까지 검색엔진에 스스로를 노출시키지 않았는데, 검색 엔진에 개방되어 있던 엔하위키 미러가 당연히 더 많은 이용자가 유입되고, 엔하위키 미러도 광고를 달았으므로 더 많은 수익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이걸 두고 '''누가 돈을 벌고 있을까요?''' 라고 묻는 것은, 사실상 '엔하위키 미러는 우리의 '''돈벌이를 침해''' 한다!'고 읽히기 마련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리그베다 위키는 ''''돈을 벌고 싶다는 거냐!'''' 라는 반응이 폭주했고 .'이용자들의 기여를 사유화하여 자기의 돈벌이 수단으로 쓴다.' 라는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갔다. 갑자기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은 평소의 몇 배나 많은 인원들이 유입되게 되었다. 이들은 비교적 온건하게는 '''불공정한 약관을 철회하라''' 부터 시작해서 과격하게는 '''리그베다 위키는 즉시 자폭하라'''(...) 같은 여론까지 나왔고, 이 와중에 청동은 유일한 최고 관리자로서 오직 본인만이 사태를 책임질 의무와 책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4월 15일에 있을 법무법인의 요약 자문서를 기다려 달라''' 는 말 이외에는, 반쯤 외부 유입 인원들의 수용소(...)에 가까운 '건의 게시판'을 만든 것을 빼면[9] 문의 게시판에 적극적인 해명이나 사죄를 하지 않았다. 리그베다 위키가 불공정한 약관과 사유화로 논란을 겪던 도중 리그베다 위키에 불만이 많던 사람들은, 기존 리그베다 위키 운영상의 불합리한 점을 끄집어서 공격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 그런 불합리한 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고정닉''' 계층을 싸잡는 청위병 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여담이지만 이때 수많은 인원들이 리그베다 위키를 성토하는 글로 게시판을 뒤덮었음에도 불구하고, 유희왕 편집지침 관련 토론[10]은 공지사항 자리에서 천천히나마 갱신이 되고 있었는데. 훗날 이를 두고 '''세기말 듀얼리스트'''라 카더라
한편, 이 사태를 촉발시킨 사채꾼은, 리그베다 위키 트위터 계정에서 '''만우절 장난'''을 했다가, 그대로 리그베다 위키 외부 담당 관리자직에서 사퇴해버렸고, 그 후폭풍은 청동 혼자서 감당하게 되었다.
청동이 4월 15일에 법무법인의 자문서를 받아오겠다고 했으므로, 일부 온건한 비판자들과 리그베다에 우호적인 사람들은 '그날 있을 법무법인의 자문서'에 마지막 희망을 걸기도 했다.

2.3. 리그베다 위키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4월 15일, '''이용자들을 납득시킬 만한 자문서, 그런 것은 나오지 않았다.'''[11]
이용자들에게 해명을 해주고 납득시킬 마지막 보루인 '''자문서''' 마저 알 수 없는 이유로 나오지 않자, 이미 과격해져 있던 반 리그베다 여론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4월 15일부로 '''폭발했다'''. 특히, 4월 15일 전부터 '나는 이런 위키에 문서를 기여하고 싶지 않다. 기여를 철회하고 싶다. 내가 쓴 글 지운다!' 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4월 15일 오후 3시 경 '리그베다 위키 자유 선언'이 발표되면서, 폭발한 것이다.
자문서는 결국 4월 22일에 되어서야 나왔지만. 그 때는 이미 아무도 설득할 수 없었다. 자문서가 설득력이 있었는지는 논외로 하고. 링크(아카이브)
그리고, 사람들은 리그베다 위키의 문서를 돌아다니면서 영리화 틀을 달고 다니면서 청동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2015년 리그베다 영리화 사태라는 문서를 리그베다 위키에 만들기도 했다.[12] 기여를 철회하겠다는 이유로 문서의 일부 내용을 삭제하거나 지우기도 했다. 일부 유저들이 이러한 행위를 되돌리기도 했지만, 정작 청동은 이 당시 '이러지 마세요' 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기타 여러 항목들에 야짤과 혐짤을 심어놓거나 무의미한 쓰레기 문서들을 생성하는 등등. 평범하게 문서를 수정중이던 다른 선량한 위키러들은 이를 보고 '반달러=사유화 항의자'라고 착각하여 도리어 항의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저 영리화 틀에도 쇼크 사이트로 연결되는 링크가 걸린 적이 있었다. 대신 이때 영리활동 틀이 부착되는 것을 보고 사태를 파악한 사람들이 사유화 항의에 동참하기도 했다. 이 때의 상황은 그야말로 혼파망 그 자체.
'''그러다가...'''
전설의 짤방
2015년 4월 15일, (누군가의 해킹으로 추정되는 행위에 의해) '''리그베다 위키가 터졌다.''' 저렇게만 뜨고 위키 자체가 접속불능이 된 것.
2015년 4월 16일, 리브레 위키가 엔하위키라는 이름으로 개장했고[13], 바로 다음 날, 당신이 이 문서를 보고 있는 나무위키가 개장했다. 특히 나무위키의 개장은 리그베다 위키에 치명적인 직격탄을 날린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더 이상 리그베다 위키를 이용하지 않아도, 문서의 저작권을 '''기여자에게 돌려주고''', 사유화를 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리그베다 위키의 문서를 거의 다 가져온 대체재'''(포크 누락 문서가 있기 때문에 '''모두''' 가져온 것은 아니다)가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14]
4월 18일 새벽, 관리자 청동이 다시 돌아와 해킹을 복구하고 위키를 4월 15일 상태로 되돌렸다. 반달과 대규모 항목 삭제를 막기 위한 조치로 위키를 전부 동결시켰고, 잡담게시판을 회원제로 묶었으며, 운영개편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공지를 올렸다. 위키가 막혔어도 게시판에선 계속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으나, 오후 10시 41분경 게시판마저 터져 버렸다. 결국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에 보존되어 있던 게시물들은 모두 사라졌다. 며칠 뒤에 '''임시''' 위키 게시판을 만들기는 했으나, 그 게시판마저 리그베다 위키가 2차 폭파될 때 소멸되어 버렸다.
4월 20일이 되자마자 무섭게 청동이 위키 게시판에 새로운 공지를 작성했다.[15] 일단 저 글의 내용에 따르면 청동은 기존의 리그베다 위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복수의 운영자를 선출하고 자신은 일선에서 물러나는 등 여러 가지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사태를 만든 근본적인 원인인 CCL과 저작권, 그리고 사유화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의견 표명이 없다는 것. 저작권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는 말은 써있지만, 정작 구체적인 내용들은 '게시판을 앞으로 어떻게 관리할지'에 중점을 맞추고 있는 공지에 불과해서 문제 삼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 동결되어 있는 리그베다 위키가 언제쯤 정상화 될지에 대해서도 확답을 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4월 23일, 청동은 모든 문서의 동결 조치를 해제하고 편집권을 개방했는데, 이것 때문에 '''리그베다 위키의 멸망이 가속화''' 되었다. 이미 이 시점이 되면 리그베다 위키의 편집은 '''기여철회와 문서 삭제'''로 도배되었기 때문. 정상적으로 문서 내용을 추가하거나 새 문서를 만드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저 삭제, 기여철회 뿐이었다. 그나마 잠깐 동안은 기여자 본인의 기여철회로 보이는 행동들이 많이 있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기여철회고 뭐고 '''그냥 문서를 삭제, 백지화하는 반달'''만 남아있었다.
그 당시 리그베다 위키에 정확히 몇 개의 문서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대략 281,000개에 미치지 못하는, 280,700건의 문서가 있었으나, 사람들이 문서를 삭제하던 끝에 2차 폭파되기 이전에는 27만 4천 대까지 떨어졌다. 이 기세가 그대로 지속되었다고 가정한다면, '''3주'''만에 리그베다 위키에서 지울 수 있는 문서는 다 지워졌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4월 25일, 최근 변경내역이 삭제(공백으로만 표시됨)된 것을 끝으로 리그베다 위키의 서버가 내려가 버렸다. 이 당시에는 리그베다 위키가 아예 사라진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시 열리기는 했지만. 모니위키의 최근 변경내역 문서는 일반적인 방법으론 수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또 다른 해킹 공격으로 폭파되었을 것 같다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모니위키 개발자의 트윗에 따르면 청동 본인이 서버를 내린 것 이라고 한다. 어쨌든 리그베다 위키가 이때 폭파되어 한동안 이용할 수 없게된 것은, 현재 리그베다 위키가 재개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위축된 것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결국 그 당시 위키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기여하던 사람은 나무위키나 리브레 위키로 갔기 때문.
한편, 당시 NTX 운영자[16] 함장(인물)사죄문을 NTX 공지사항으로 발표했다. 왜 리그베다 위키가 아닌 자기 사이트에 올렸냐면, 그때는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이 폭파되어서 거기다 글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가장 논란이 되었던 '''저작권 기부'''는 사실 자기가 엔하위키를 운영하던 시절에 계획된 것이며 당시 엔하위키 회원들의 동의를 받기는 했다는 것. 하지만 이 사과문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약관 개정이 아니었다' 라는 비판이 있다.[17]

3. 리그베다 위키 폭파 이후 복구까지의 길


모니위키 개발자 wkpark은 을 통해 짤막하게 청동의 근황을 전했다. 엔하위키 미러와의 소송 때문에 위키를 제대로 관리할 수 없어 약 한 달 간 위키를 닫겠다는 것.
그리고 거의 한 달 가까이 지나가도록 리그베다 위키는 그대로 닫힌 상태로 있었지만, 2015년 5월 17일, 다시 리그베다 위키가 재개장되었다. 2015년 4월 15일자의 문서로 롤백했으며, 리그베다 위키의 모든 문서는 '''열람'''만 가능할 뿐 그 누구도 편집할 수 없었다. 이 날에는 또 함장청동의 근황에 대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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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만한 내용은 '''사업자 등록'''과 관련된 것인데, 함장의 대리 발표에 따르면 청동이 사업자 등록을 한 것은 '''납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함(???)'''이며, '''사유화를 위한 사업자 등록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사유화를 시도하여 돈을 벌게 되었기 때문에 사업자가 되었으므로 납세의 의무가 생겼다는 게 순서일 터이니, 설득력이 없는 해명이다. 그 이외의 소식들은 이전에 알려진 것들이라 별로 특이할 것이 없다. 리그베다 위키는 이 상태로 한동안 청동(인물)만 문서를 편집하고 있었다. 그 이외에도 모니위키 개발자와 적극적으로 협력을 하는 것인지, 리그베다 위키에 갖가지 기능이 추가되고 있었다.
대표적인 기능 추가 및 변경 내역을 일부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각주를 클릭할 시 팝업 방식으로 표시되는 것, 미디어위키 기본 사양이다. 모니위키에 원래 있던 기능이기도 하다.
  • 2015년 5월 19일, 기여 내역을 볼 시 비로그인 사용자들의 ip가 모두 가려지고 아무개로 표기되었다. 이후 며칠 뒤 잠깐 복구되기는 하였지만, 다시 아무개로 돌아갔다가, 2015년 10월 현재 아이피의 일부만 보여주고 있다. 최근 변경내역에서는 아이피의 앞 절반까지만 표시하고, 문서 수정 내역에서는 뒷부분을 가려 놓았다. 전자에선 111.222.◇◇◇.◇◇◇, 후자에선 111.222.123.◇◇◇ 같은 식.[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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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색창이 문서 맨 위로 옮겨지고 자동 완성 기능이 추가되었다.
  • 6월 10일, 배달의민족 로고의 한나체 폰트를 사용한 새로운 로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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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혼자 문서를 수정하던 내역
2015년 5월 14일, 리그베다 위키 대 엔하위키 미러 가처분 신청 사건 결정문이 법원에서 공표되었고, 이 가처분에 의해 '''엔하위키 미러는 종말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처분에 불과하고 본 소송은 현재진행형이다.
2015년 6월 15일, 공감버전업 프로젝트로 이용자들의 의견을 받아 약관을 고치겠다던 청동의 계획이 잊혀질 즈음, 뜬금없이 리그베다 위키의 이용약관이 변경되었다. 링크 아카이브[19]. 상세한 내용은 공감버전업 프로젝트 참조.

4. 정상화(?)의 시작


2015년 6월 26일, 청동은 정상화에 앞선 테스트라는 명목으로 '''편집권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가뭄에 콩 나듯이 몇몇 사람들이 편집권을 신청해서 Bronze와 Alphatest 이외의 아이디들이 최근 변경내역에 보이기 시작했다.
2015년 6월 27일, 함장이 리그베다 위키의 '''운영'''을 맡겠다는 공지를 작성했다. 2015년 4월 20일에, '''복수의 운영자를 선출하고 자신은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말한 것이 이제서야 절반쯤 이루어진 셈, 실제로 함장이 운영자가 된 이후에는 청동이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에서 글을 쓰거나 댓글을 쓰는 일이 없다. 청동은 서버 관리에만 전념하고, 사이트 운영은 함장이 맡는 체제인 듯.
한편, 이날 누군가 나무위키의 나무위키 문서를 복붙해다가 리그베다에 나뮈키 문서를 만들었다가...[20] 함장이 '현재 나무위키 관련 서술은 모두 임시로 작성금지 되었다'라며 지워 버렸다.# 이후 9월 중으로 서술을 허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 9월 말에 회원들이 나무위키 항목의 초안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 10월 중순에 나무위키 문서가 생성되었다. 반면 리브레 위키오리위키 문서엔 이런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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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테스트 알림
2015년 7월 3일, 오픈테스트가 시작되어 '''모든 회원들'''에게 편집권이 개방되었고, 2015년 8월 7일에 '''제한적으로 비로그인에게 편집권을 개방'''했다.[21] 반달 우려 때문에 항목 삭제 권한이 운영자에게만 있는 것 등 아직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았지만, 사유화 사태로 인한 대혼란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왔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이미 리그베다 위키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악화되었고, 리그베다 위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들어 듣보잡이 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1년이 된 2016년 4월 하순 기준으로 리그베다 위키와 나무위키의 단위시간당 편집 횟수는 '''1000배 이상''' 벌어졌다. 2020년 5월 기준으로는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지만 이보다 더 많이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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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기준 나무위키, 리브레위키, 리그베다 위키 순위. 6월 기준으로 나무위키 6,316위, 리그베다위키 27,919위.
2016년 7월 기준으로는 나무위키 1,120위, 리그베다 위키 183,465위로 이제 와서는 비교하는 것이 민망할 수준이다.
사유화 사태가 일어난 지 5년이 된 2020년 4월 기준으로 나무위키는 422위, 리그베다 위키는 367,998위다.

5. 리그베다 위키의 폭파까지 간단히 요약한 사건 전개


날짜 옆에 ?가 붙어 있는 것은 언제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을 뜻한다.
  • 3월 8일: 모 리그베다 위키 사용자가 네버랜드의 번역을 묻다. 해당 아카이브
  • 3월 9일: 해당 사용자가 네버랜드를 번역해 리그베다 위키에 기록한다. https://namu.wiki/w/네버랜드?rev=2
  • 3월 15일: 한국어 위키백과가 네버랜드 번역에 분노하다. 해당 위키백과 문서 참고.
  • 3월 19일: 청동이 한국어 위키백과 유저들에게 사죄의 뜻을 전했으며, 앞으로 좀더 강도높은 모니터링을 하겠다고 약속하다. (바로 위 링크, 3월 19일발 발언들을 참조.)
  • 3월 22일: 청동은 위키백과 복붙 사건을 계기로 현재 리그베다의 상황을 보고하고자, 비공개 오프라인 모임을 개최한다고 선언하다. 해당 아카이브
  • 3월 25일: 한국어 위키백과에 리그베다의 행보를 고발한 사람이,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악명높은 다중계정인 것으로 밝혀져서 차단되다.#
  • 4월 6일: 서울의 모처 커피샵에서 청동의 지인 '사채꾼'이 리그베다 대리인으로서 비공개 모임을 주최하였다. 상세한 내용은 NDA에 묶여 현재까지도 밝혀진 바 없다.
  • 4월 8일: 사채꾼은 비공개 모임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요약하여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에 게시하다. 여기서 '리그베다 vs 엔하위키 미러' 법적분쟁이 처음으로 밝혀지다. 해당 아카이브
  • 4월 8일 ~: 사채꾼의 게시물은 오히려 리그베다의 저작권 도둑질과 돈독을 비판하는 여론을 불러일으켜 리그베다는 큰 위기에 빠지기 시작한다.
  • 4월 9일? 10일?: 사채꾼은 리그베다 위키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망언을 하였고, 결국 그날로 내빼고 말았다.
  • 4월 11일: 정체불명의 사람이 2015년 4월 11일자 리그베다 위키의 DB를 포킹한다. 훗날 이 사람은 namu라는 사람이 된다.
  • 4월 11일(2): 하루카나소라가 리그베다위키의 db를 포킹한다.
  • 4월 11일(3): 하루카나소라에 의해 enhawiki라는 사이트가 개설되었다. 이 사이트에 모인 사람들은 '리그베다의 문제점을 개선한 대안위키'를 만들기로 서로 뜻을 모은다.
  • 4월 12일: 청동, 공감버전업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리그베다의 운영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 4월 12일?: 청동, 현 상황에 대하여 자신이 도움을 받고있는 법무법인으로부터 요약 자문서를 받아와 발표하기로 선언했다.
  • 4월 11일? ~ 4월 16일?: 청동, 법적 대응의 가능성을 시사하며 하루카나소라에게 경고한다. 하루카나소라는 이를 받아들여 자신이 보유한 리그베다위키의 db를 파기한다.
  • 4월 15일: 본래 법무법인의 요약 자문서가 이 날 게시되기로 했으나,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자문서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가 그날 끝무렵이 되어서 a4 1장짜리 짤막하고 엉성한 문건이 게시되었다. 이용자들의 분노와 리그베다 위키에 대한 문서 훼손행위가 더욱 가속화되다.
  • 4월 15일?: 리그베다 위키에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 라는 문서가 작성되고, 각종 영리 활동 틀들이 위키를 뒤덮기 시작했다.
  • 4월 15일: 리그베다 위키가 '청동님 이게 아니죠, 돌아와서 대화를 하세요' 라는 메시지만을 표시하며 폭파되다. 단,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은 멀쩡했다.
  • 4월 16일: enhawiki가 리브레 위키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첫발을 내딛다. 0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대안위키를 표방했다.
  • 4월 17일: namu가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리그베다 위키의 DB를 기반으로 나무위키를 개설했다.
  • 4월 18일: 김동동이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리그베다 위키의 DB를 기반으로 오리위키를 개설했다. 김동동이 포크한 리그베다 위키 데이터는 언제 날짜분인지 불명확하다.
  • 4월 18일: 이 날 새벽, 리그베다 위키가 복구되었으나, 아무도 편집할 수 없었다.
  • 4월 18일: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이 폭파되었다. 지금까지도 복구되지 않았다.
  • 4월 20일?: 리그베다 위키 임시 게시판이 개설되었다.
  • 4월 20일: 리그베다 위키 임시 게시판에 청동이 각종 개선안을 내세운 공지사항을 제시하였으나, 2016년으로 해가 바뀌고 사태가 일어난 지 1년이 된 시점에서 실현된 것은 하나도 없다.
  • 4월 22일: 법무법인이 작성한 요약 자문서 제 2판이 게시되었다.#
  • 4월 23일: 리그베다 위키의 편집권이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것은 반달가면과 문서 삭제에 불과했다.
  • 4월 23일:함장이 NTX에 사과문을 게시하다.#
  • 4월 25일: 사유화 사태 직전에는 리그베다 위키의 문서가 약 280,700여 개 있었으나, 이 날 오후 5시경에는 27만 4천개까지 떨어졌다.
  • 4월 25일 오후 5시 30분 경?: 최근 변경내역 페이지가 망가지고 몇 분 뒤, 리그베다 위키가 거의 한 달 간 침묵에 들어갔다. 훗날 이것은 리그베다 위키가 완전히 버림받게된 이유로 받아들여진다.
본 사태 관련, 2016년 3월 8일 기준 몇몇 보존된 이미지들

6. 같이 보기



[1] 위키백과와 같은 라이선스를 쓰는 SCP 재단에서 만들어진 문서의 경우, 리그베다와 옛 나무위키(리브레 위키로 문서를 이동하기 전까지)는 '별도 라이선스 적용'틀까지 만들어서 적용해야 했다. (CCL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서)[2] 실제 나무위키 문서가 아니라, 옛날 버전의 보존된 로그다.[3] Unypoly의 다중 계정이다.[4] 실제로 위키미디어 재단 측에 리그베다 위키의 행동을 제보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위키미디어 재단 측에서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5] 처음 위백에 제보한 사용자와, 3월 17일 영리 사유화 의혹을 제기한 아리울 사용자[6] 참고로 그 당시 화면을 잡아먹는 플로팅 광고가 삽입되었다. 지금은 떨어졌다.[7] 대놓고 영리기업이 운영하는 디시위키도 약관에서 '저작권은 작성자에게 있다'고 명기하고 있으며, 꼭 위키뿐만이 아니라 웬만한 사이트들 중에 그런 약관을 내세우는 곳을 찾기가 힘들다. 참고로 굳이 말하자면, 니코니코 대백과가 그런 저작권 기부 약관을 내세우고 있기는 하다.[8] 그러나, 엔하위키 미러 및 Puzzlet Chung이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Puzzlet Chung은 단 한 번도 엔하위키 미러 이용자들의 문의에 응답하거나 피드백을 수렴한 적이 없다. 그리고 사채꾼이 밝힌 내용에 기초하면 소송이 시작된 이유는, 리그베다 위키가 일시점검을 위해 크롤러를 차단하였는데, 퍼즐릿이 '''차단을 우회하고''' 리그베다 위키를 크롤링했고, 이에 항의하였는데도 '''무시''' 하자 소송에 휘말렸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퍼즐릿의 무책임함이 자업자득인 셈이다. 참고로 퍼즐릿은 한국어 위키백과의 검사관이기도 한데, 거기서도 '나타나지도 않고 도통 하는 일이 없다'는 이유로 권한 박탈 투표에 회부되기도 하였다.[9] 그렇다고 해도 위키 게시판에 청동 및 리그베다를 까는 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10] 리그베다 위키 게시판에는 중요한 토론이라고 판단될 경우, 관리자가 토론을 공지로 올려버리는 일이 있었다.[11] 이미 리그베다가 한번 터진 후에 뒤늦게나마 자문서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리브레 위키나무위키, 그리고 오리위키가 생긴 이후라...[12] 문서가 처음 생성되었을 당시의 제목으로, 리그베다 위키에 접속중인 위키러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화면 우측의 최근 변경 내역에서 짤리지 않는 선으로 글자수를 조정하느라 '위키'가 생략되었다. 나무위키에 있는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 문서의 현재 버전도 당시 리그베다에 작성된 문서에 기반한 것이다.[13] 정확히 말하면 그 전 4월 11일에 포크 위키로서 열렸다가 청동의 요청으로 포크 위키를 닫고 미리 깔려 있었던 미디어위키를 공개한 것.[14] 당시, 리그베다 위키 운영상의 행보는 지적하더라도, 이로 인해 리그베다 위키가 축적하고 있던 약 30만 개의 문서가 소멸되는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소수 있었다. 그런데 나무위키의 탄생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게, 리그베다 위키를 완전히 버리도록 만든 것이다.[15] 당시 위키 게시판이 삭제되어 게시물은 남아있지 않다.[16] 혹시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본래 엔젤하이로라는 커뮤니티 사이트의 컨텐츠의 일부로서 엔젤하이로 위키라는 위키가 출범했는데, 훗날 엔젤하이로 위키가 엔젤하이로라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분리되면서 리그베다 위키로 개명했다. 그리고 기존의 엔젤하이로 사이트는 NTX로 개명된 상태.[17] 그 당시의 엔하위키는 훗날의 리그베다 위키에 비해 훨씬 작은 위키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 이용자들'''이 그때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18] 2015년 8월에 wkpark이 리그베다 위키에 올린 글에 따르면, ip 전체 공개는 개인정보 유출로 위법하다는 이유에서 ip를 가렸다고 하지만, 현직 법조인의 기사에 따르면 이와 같은 상식은 오류가 있다고 한다.[19] 약관 개정의 가능성을 염두하여,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이후 최초로 개정된 약관에 대한 아카이브를 제공한다.[20] 당시 아카이브, 여담이지만 이 문서를 보면 나무위키:엔진모니위키와 얼마나 흡사한지 알 수 있는데, 그냥 복붙해간 문서가 문법이 전혀 깨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21] 2015년 10월 현재 비로그인은 항목의 과거 내역을 최신 내역 30개까지만 볼 수 있고(과거 버전으로 되돌리기는 불가능), 일정 분량 이상의 내용을 수정할 수 없다. 비로그인 제약에 대한 기능은 아직 테스트 단계이기 때문인지, 그 '일정 분량'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까지는 현재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22] 위키스탯에서 시간당 편집횟수 비교가 가능했지만 2017년 8월부터 나무위키는 계속 오류가 뜬다. 그나마 언제부터인가 작동을 하지 않아서 더는 확인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