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스톨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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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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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습.
Richard Stallman
미국의 프로그래머. 1953년 3월 16일생으로서 Emacs, GCC, GDB 디버거 등의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GNU 프로젝트와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의 설립자이자 카피레프트란 개념을 만든 사람이다. 우리가 공개된 수많은 코드나 프로그램들을 자유롭게 쓰고, 더욱이 이 나무위키의 바탕인 위키위키를 통해 자유롭게 위키질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사람의 영향이 크다. 현재는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중심 인물로서 세계 각지를 돌며 세미나 등을 하고 있다.
GNU 내에서나 각종 영문 프로그래머 커뮤니티에서는 풀 네임보다는 이니셜을 딴 RMS라고 언급되니 참고할 것.
히피 이미지 때문에 간과하기 쉬운데 타고난 엘리트다. 하버드 물리학과 학사 졸업과 MIT 물리학과 박사 졸업을 했으며, 하버드의 'Math 55'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악명높은 신입생 강의[1] 에서 높은 성적을 받은 것은 유명하다. 물리학과지만 1학년을 마친 후 MIT AI 연구소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으며, 졸업 후에는 MIT 연구소 시스템 관리자 역을 맡았었다.
스톨먼은 오픈 소스 주장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급진적이고 과격파에 속한다.[2] 스스로는 오픈 소스를 거부하며,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 쪽이 맞는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다소 심하게 도덕주의적이고 개인적인 철학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고, 타인과 타협이나 의견 절충이 잘되지 않는 편이다. 본인의 성격도 타인의 입장에 둔감하다는 평이다. 다만 이러한 고집스럽고 타협하지 않는 스톨먼의 성격이 그가 하바드 물리학과 학사[3] , MIT 물리학과 박사, MIT AI 연구소에서 시스템 관리자를 맡을 정도로 화려한 학력을 가진 천재 엘리트임에도 당대 IT 대기업들의 소스코드 비공개 계약(discloure agreement) 조건에 사인하지 않고, 1983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40년 가까이 변함없는 자세로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펼칠 수 있었던 힘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출세욕이 조금이라도 있는 평범한 사람이 앞다퉈 스카웃하려는 IT 대기업들의 러브콜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기란 매우 어렵다.
Free Software라는 단어를 보고 많은 이들이 (특히 영미권의 사람들) 자유 소프트웨어(Free Software)와 프리웨어(Freeware)를 혼동하기 쉽지만, 그의 1998년 에세이에서 자유 소프트웨어를 유료로 판매하는 것이 모순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것으로 보아, 소프트웨어의 유료 배포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개발자가 의식주를 해결하려면 수입이 있어야 하니, 약간의 대가를 받고 소프트웨어를 배포할 것을 권장한다. 만약 자유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수익을 얻었다면, 자유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수익의 일부를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나, 해당 자유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기부해줄 것도 권장하고 있다.
리처드 스톨만은 거의 모든 강연에서 Free Software에서 Free는 자유(Freedom 혹은 Liberty)의 Free를 의미하는 것이지 공짜 맥주(Free Beer)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판매와는 별개로 모든 소프트웨어의 사용자들에게 자유를 존중해야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상업성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상업성을 위해 사용자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그가 흔히 사용하는 요리 레시피 책에 비유하면, 한 요리사가 자신의 요리 레시피 책을 대가를 받고 팔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 누군가가 그의 레시피를 배웠다면, 그 누군가는 자신이 배운 레시피에 무언가를 더 첨가하거나, 세부적인 요리법을 바꿀 자유도 있고, 또 다른 제 3자에게 원본의 레시피 또는 자신이 수정한 레시피를 공유하거나, 대가를 받고 팔 자유가 있다.
그 또한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 초기 Emacs를 150달러씩 받고 배포했다.
리처드 스톨먼은 미국 지디넷 스티브 보간 니콜스 컬럼니스트에 보낸 메일에서 "오픈소스란 용어에서 흔한 오류가 나, 나의 일, 혹은 자유 소프트웨어와 연결되고 있다"며 "1998년 오픈소스 슬로건은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철학을 거부한 사람들에 의해 채택됐다"고 밝혔다.
리처드 스톨먼은 "나는 자유의 사상인 자유 소프트웨어를 감추려는 의도기 때문에 오픈소스를 거부했다"고 강조했다.
리처드 스톨먼은 "우리 자유소프트웨어 운동가들은 바꿀 수 없고 공유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는 잘못된 것이니 자유 반환을 위해 자유로워지자고 말한다"며 "오픈소스는 단지 '당신이 당신의 코드를 사용자가 변경하게 한다면, 그들은 버그를 고칠 것'이라고 말한다"고 비교했다. 이어 "그게 잘못된 말은 아니지만 더 깊숙한 지점을 짚는 걸 피하는 연약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픈소스 20년...일상에 물처럼 스며들다 2018.02.06.
과거엔 자유 오픈 소프트웨어를 표절해서 거의 똑같이 만드는 동시에 원본과 호환되지는 않는 비자유 독점적 기능을 넣고, 불공정 계약으로 사용자를 제약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독점하는 전략을 사용하던 마이크로소프트를 대표적으로 싫어했으나, 이는 다소 과거 이야기이고 최근엔 아마존,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새로운 IT 거대기업들이 떠오르며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보다 이들에 대한 언급이 더 많아졌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EULA 등 불공정한 계약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소프트웨어 사용 권리를 제약하여 독점적 권력을 얻고 이를 이용해 더 많은 사용자에게 더 많은 소프트웨어 카피를 팔아 이익을 창출했다면, 현재는 IT 대기업들은 사용자의 이용 정보를 수집하여 쌓은 빅데이터를 이용해 마케팅, 서비스 상품 개발, 맞춤광고 노출, 트랜드 분석, AI 딥러닝 등의 새로운 분야에서 이용하기 위해 사용자의 사적인 정보까지 수집하며 사용자들의 사생활 보호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스톨먼은 비자유 사유 소프트웨어는 사용자의 정보를 수집하는 백도어나 멀웨어를 심어도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라는 굉장히 전문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사용자는 이를 심었는지조차 알 수 없고, 근본적으로 이를 막는 방법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유 소프트웨어는 백도어를 심어봐야 소스 코드가 공개되어 있고, 이를 수정할 자유도 있으므로, 자신이 직접하던, 여럿이서 일정 금액을 펀딩하여 전문적 프로그래머를 고용하던 이 기능을 빼버리고 자기가 배포해버리면 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케노니컬은 우분투 16.04부터 사용자 정보를 수집하는 아마존 검색 기능을 넣었지만, 케노니컬이 배포하는 우분투 Unity를 제외한 다른 커뮤니티의 우분투 배포판들은 이 기능을 빼고 배포하고 있다. 지속적인 비판을 의식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케노니컬은 18.04 LTS 버전에서 Unity를 버리고, 20.04 LTS에서 아마존 검색 기능을 완전히 제거 했다.[4]
2019년 미국을 뒤흔들고 있는 제프리 엡스타인 스캔들에 관련된 발언이 논란이 되어 꾸준히 압력을 받았고,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과 MIT 인공지능 연구소에서 사임했다.
제프리 엡스타인의 성폭행 피해자 중 한명인 버지니아 로버츠가 가해자 중 한명으로 인공지능의 권위자인 마빈 민스키 전 MIT 교수를 지목했고관련기사, 스톨먼은 MIT 메일링에 성폭행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으며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피해자가 원해서 관계를 가졌을 것이라는 2차 가해를 저지른 것.
당연히 글을 읽은 사람들은 분노하였고 스톨먼에 대한 비판이 트위터, 미디엄 등에서 나타나게 된다. Remove Richard Stallman 스톨먼은 예전부터 아동성애에 대한 무책임한 발언을 수 차례 하여 아동성애자 의혹을 받아 왔다. 다만 스톨먼은 원래 그로 인해 타인에게 미움을 받게 되더라도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고집스런 성격인데다 상당히 극단적 자유주의자인 점을 감안하면, 평소하던 것처럼 아동성애 문제에 관련한 자신의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타인을 신경쓰지 않고 내놓은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이전 인터뷰에서도 인터넷 상에서 정부 기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 익명성과 보안을 제공하는 토르 브라우저를 사용하지만, 불법적인 웹사이트들은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고 발언한 바가 있다.
결국 스톨먼은 본인의 웹사이트를 통하여 자신은 과거에 그런 생각을 가졌었으나, 이제는 아니라고 해명하였으며, MIT와 FSF의 모든 직책에서 떠난다고 발표하였다.엡스타인을 옹호한 적이 없다는 입장,아동성애에 대한 입장, 사퇴입장 사실 등 떠밀려 사임한 모양새에 가깝고, 이번에 문제가 된 발언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오해라는 입장을 폈기 때문에 정말로 아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바뀌었는지는 의문인 상황.
스톨먼이 사임한 이후 그와 함께했던 적이 있던 사람들이 일화를 하나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평소에 인간적으로 쌓인 것이 많았던 듯. GNOME 창시자 미겔 드 이카자는 한번 그를 집에 초대했던 적이 있는데, 처음 보는 여성을 집에 같이 데려오는 등 갖가지 기행을 부려서 그 이후로 다시는 초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 한국에서도 리눅스 커뮤니티의 초청으로 온적 있었는데, 운영자는 이후 수년이 지나 SNS에서 스톨먼 개인에 대해 실망스런 감정을 내비친 적이 있다.
스티브 잡스의 부고를 접한 뒤에 '죽어서 기쁜 건 아니지만 사라져서 기쁘다'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고인드립을 친 적도 있다.##
쓰고 있는 노트북이 '''Lemote[5] Yeeloong 8101B'''를 쓰는걸로 알려졌다.[6]
백괴사전에 의하면 무슨 사이비 종교 교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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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에 올때 '''자주''' 저러고 나온다. '''셀프 후광'''이 포인트(...)
평생 독신으로 살아왔고, 물질적인 면을 거의 추구하지 않는 히피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 초기에는 1년 중 몇 개월 정도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프로그래밍에 관련한 일을 하는데에 시간을 쓰고, 그 나머지는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했지만, 이후에는 세계의 여러 강연에 초청되고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에 자발적인 후원이 들어오며, 그것만으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더이상 프로그래밍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7] 다만 스스로 말하길 이러한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적은 물질만 가지고 검소하고 살아가는 대학생[8] 과 같은 삶을 산다고 한다.
2006년 방한했었는데, 초청단체 측에서 좋은 호텔방을 잡아줬더니 호텔바닥에 침낭깔고 자고있더라고 카더라. 과연 히피. 처음 방한한 것은 1986년 KAIST 전길남 교수의 초청으로 며칠간 방한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마찬가지로 히피에 배낭을 진 노숙자 패션이었다. 한국 공항에 도착하자 먼저 목욕탕 부터 데려갔다고.
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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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모습.
Richard Stallman
1. 개요
미국의 프로그래머. 1953년 3월 16일생으로서 Emacs, GCC, GDB 디버거 등의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GNU 프로젝트와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의 설립자이자 카피레프트란 개념을 만든 사람이다. 우리가 공개된 수많은 코드나 프로그램들을 자유롭게 쓰고, 더욱이 이 나무위키의 바탕인 위키위키를 통해 자유롭게 위키질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사람의 영향이 크다. 현재는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중심 인물로서 세계 각지를 돌며 세미나 등을 하고 있다.
GNU 내에서나 각종 영문 프로그래머 커뮤니티에서는 풀 네임보다는 이니셜을 딴 RMS라고 언급되니 참고할 것.
히피 이미지 때문에 간과하기 쉬운데 타고난 엘리트다. 하버드 물리학과 학사 졸업과 MIT 물리학과 박사 졸업을 했으며, 하버드의 'Math 55'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악명높은 신입생 강의[1] 에서 높은 성적을 받은 것은 유명하다. 물리학과지만 1학년을 마친 후 MIT AI 연구소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으며, 졸업 후에는 MIT 연구소 시스템 관리자 역을 맡았었다.
2. 사상
스톨먼은 오픈 소스 주장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급진적이고 과격파에 속한다.[2] 스스로는 오픈 소스를 거부하며,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 쪽이 맞는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다소 심하게 도덕주의적이고 개인적인 철학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고, 타인과 타협이나 의견 절충이 잘되지 않는 편이다. 본인의 성격도 타인의 입장에 둔감하다는 평이다. 다만 이러한 고집스럽고 타협하지 않는 스톨먼의 성격이 그가 하바드 물리학과 학사[3] , MIT 물리학과 박사, MIT AI 연구소에서 시스템 관리자를 맡을 정도로 화려한 학력을 가진 천재 엘리트임에도 당대 IT 대기업들의 소스코드 비공개 계약(discloure agreement) 조건에 사인하지 않고, 1983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40년 가까이 변함없는 자세로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을 펼칠 수 있었던 힘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출세욕이 조금이라도 있는 평범한 사람이 앞다퉈 스카웃하려는 IT 대기업들의 러브콜을 무시하고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기란 매우 어렵다.
Free Software라는 단어를 보고 많은 이들이 (특히 영미권의 사람들) 자유 소프트웨어(Free Software)와 프리웨어(Freeware)를 혼동하기 쉽지만, 그의 1998년 에세이에서 자유 소프트웨어를 유료로 판매하는 것이 모순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것으로 보아, 소프트웨어의 유료 배포를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개발자가 의식주를 해결하려면 수입이 있어야 하니, 약간의 대가를 받고 소프트웨어를 배포할 것을 권장한다. 만약 자유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수익을 얻었다면, 자유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발전할 수 있도록 수익의 일부를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이나, 해당 자유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기부해줄 것도 권장하고 있다.
리처드 스톨만은 거의 모든 강연에서 Free Software에서 Free는 자유(Freedom 혹은 Liberty)의 Free를 의미하는 것이지 공짜 맥주(Free Beer)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판매와는 별개로 모든 소프트웨어의 사용자들에게 자유를 존중해야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상업성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상업성을 위해 사용자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그가 흔히 사용하는 요리 레시피 책에 비유하면, 한 요리사가 자신의 요리 레시피 책을 대가를 받고 팔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서 누군가가 그의 레시피를 배웠다면, 그 누군가는 자신이 배운 레시피에 무언가를 더 첨가하거나, 세부적인 요리법을 바꿀 자유도 있고, 또 다른 제 3자에게 원본의 레시피 또는 자신이 수정한 레시피를 공유하거나, 대가를 받고 팔 자유가 있다.
그 또한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 초기 Emacs를 150달러씩 받고 배포했다.
리처드 스톨먼은 미국 지디넷 스티브 보간 니콜스 컬럼니스트에 보낸 메일에서 "오픈소스란 용어에서 흔한 오류가 나, 나의 일, 혹은 자유 소프트웨어와 연결되고 있다"며 "1998년 오픈소스 슬로건은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의 철학을 거부한 사람들에 의해 채택됐다"고 밝혔다.
리처드 스톨먼은 "나는 자유의 사상인 자유 소프트웨어를 감추려는 의도기 때문에 오픈소스를 거부했다"고 강조했다.
리처드 스톨먼은 "우리 자유소프트웨어 운동가들은 바꿀 수 없고 공유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는 잘못된 것이니 자유 반환을 위해 자유로워지자고 말한다"며 "오픈소스는 단지 '당신이 당신의 코드를 사용자가 변경하게 한다면, 그들은 버그를 고칠 것'이라고 말한다"고 비교했다. 이어 "그게 잘못된 말은 아니지만 더 깊숙한 지점을 짚는 걸 피하는 연약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픈소스 20년...일상에 물처럼 스며들다 2018.02.06.
과거엔 자유 오픈 소프트웨어를 표절해서 거의 똑같이 만드는 동시에 원본과 호환되지는 않는 비자유 독점적 기능을 넣고, 불공정 계약으로 사용자를 제약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독점하는 전략을 사용하던 마이크로소프트를 대표적으로 싫어했으나, 이는 다소 과거 이야기이고 최근엔 아마존,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새로운 IT 거대기업들이 떠오르며 오히려 마이크로소프트보다 이들에 대한 언급이 더 많아졌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EULA 등 불공정한 계약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소프트웨어 사용 권리를 제약하여 독점적 권력을 얻고 이를 이용해 더 많은 사용자에게 더 많은 소프트웨어 카피를 팔아 이익을 창출했다면, 현재는 IT 대기업들은 사용자의 이용 정보를 수집하여 쌓은 빅데이터를 이용해 마케팅, 서비스 상품 개발, 맞춤광고 노출, 트랜드 분석, AI 딥러닝 등의 새로운 분야에서 이용하기 위해 사용자의 사적인 정보까지 수집하며 사용자들의 사생활 보호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스톨먼은 비자유 사유 소프트웨어는 사용자의 정보를 수집하는 백도어나 멀웨어를 심어도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라는 굉장히 전문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사용자는 이를 심었는지조차 알 수 없고, 근본적으로 이를 막는 방법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유 소프트웨어는 백도어를 심어봐야 소스 코드가 공개되어 있고, 이를 수정할 자유도 있으므로, 자신이 직접하던, 여럿이서 일정 금액을 펀딩하여 전문적 프로그래머를 고용하던 이 기능을 빼버리고 자기가 배포해버리면 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케노니컬은 우분투 16.04부터 사용자 정보를 수집하는 아마존 검색 기능을 넣었지만, 케노니컬이 배포하는 우분투 Unity를 제외한 다른 커뮤니티의 우분투 배포판들은 이 기능을 빼고 배포하고 있다. 지속적인 비판을 의식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케노니컬은 18.04 LTS 버전에서 Unity를 버리고, 20.04 LTS에서 아마존 검색 기능을 완전히 제거 했다.[4]
3. FSF 및 MIT 사임
2019년 미국을 뒤흔들고 있는 제프리 엡스타인 스캔들에 관련된 발언이 논란이 되어 꾸준히 압력을 받았고,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과 MIT 인공지능 연구소에서 사임했다.
제프리 엡스타인의 성폭행 피해자 중 한명인 버지니아 로버츠가 가해자 중 한명으로 인공지능의 권위자인 마빈 민스키 전 MIT 교수를 지목했고관련기사, 스톨먼은 MIT 메일링에 성폭행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으며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피해자가 원해서 관계를 가졌을 것이라는 2차 가해를 저지른 것.
당연히 글을 읽은 사람들은 분노하였고 스톨먼에 대한 비판이 트위터, 미디엄 등에서 나타나게 된다. Remove Richard Stallman 스톨먼은 예전부터 아동성애에 대한 무책임한 발언을 수 차례 하여 아동성애자 의혹을 받아 왔다. 다만 스톨먼은 원래 그로 인해 타인에게 미움을 받게 되더라도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고집스런 성격인데다 상당히 극단적 자유주의자인 점을 감안하면, 평소하던 것처럼 아동성애 문제에 관련한 자신의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타인을 신경쓰지 않고 내놓은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그는 이전 인터뷰에서도 인터넷 상에서 정부 기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 익명성과 보안을 제공하는 토르 브라우저를 사용하지만, 불법적인 웹사이트들은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고 발언한 바가 있다.
결국 스톨먼은 본인의 웹사이트를 통하여 자신은 과거에 그런 생각을 가졌었으나, 이제는 아니라고 해명하였으며, MIT와 FSF의 모든 직책에서 떠난다고 발표하였다.엡스타인을 옹호한 적이 없다는 입장,아동성애에 대한 입장, 사퇴입장 사실 등 떠밀려 사임한 모양새에 가깝고, 이번에 문제가 된 발언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오해라는 입장을 폈기 때문에 정말로 아동성애에 대한 입장이 바뀌었는지는 의문인 상황.
스톨먼이 사임한 이후 그와 함께했던 적이 있던 사람들이 일화를 하나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평소에 인간적으로 쌓인 것이 많았던 듯. GNOME 창시자 미겔 드 이카자는 한번 그를 집에 초대했던 적이 있는데, 처음 보는 여성을 집에 같이 데려오는 등 갖가지 기행을 부려서 그 이후로 다시는 초대하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 한국에서도 리눅스 커뮤니티의 초청으로 온적 있었는데, 운영자는 이후 수년이 지나 SNS에서 스톨먼 개인에 대해 실망스런 감정을 내비친 적이 있다.
4. 여담
스티브 잡스의 부고를 접한 뒤에 '죽어서 기쁜 건 아니지만 사라져서 기쁘다'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고인드립을 친 적도 있다.##
쓰고 있는 노트북이 '''Lemote[5] Yeeloong 8101B'''를 쓰는걸로 알려졌다.[6]
백괴사전에 의하면 무슨 사이비 종교 교주다.(...)
[image]
행사장에 올때 '''자주''' 저러고 나온다. '''셀프 후광'''이 포인트(...)
평생 독신으로 살아왔고, 물질적인 면을 거의 추구하지 않는 히피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자유소프트웨어 운동 초기에는 1년 중 몇 개월 정도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프로그래밍에 관련한 일을 하는데에 시간을 쓰고, 그 나머지는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했지만, 이후에는 세계의 여러 강연에 초청되고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에 자발적인 후원이 들어오며, 그것만으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더이상 프로그래밍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7] 다만 스스로 말하길 이러한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최대한 적은 물질만 가지고 검소하고 살아가는 대학생[8] 과 같은 삶을 산다고 한다.
2006년 방한했었는데, 초청단체 측에서 좋은 호텔방을 잡아줬더니 호텔바닥에 침낭깔고 자고있더라고 카더라. 과연 히피. 처음 방한한 것은 1986년 KAIST 전길남 교수의 초청으로 며칠간 방한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마찬가지로 히피에 배낭을 진 노숙자 패션이었다. 한국 공항에 도착하자 먼저 목욕탕 부터 데려갔다고.
5. 관련 문서
[1] 1학기에는 현대대수학(=추대), 2학기에는 복소해석학과 실해석학을 배우는 두 학기 짜리 과목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학부에서 현대대수학은 이전에 선형대수학을 두 학기 동안 배운 후에야, 그리고 실해석학과 복소해석학은 이전에 해석학개론(다만 대부분의 학교에서 실제 과목명은 보통 그냥 단순히 '해석학'이다)을 두 학기 동안 배운 후에야 공부한다. 지식의 깊이와 상관없이 굉장히 비상식적인 속도와 수강시점이니 악명이 높을 수 밖에 없다.[2] 심지어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 공식 홈페이지에는 LGPL 소프트웨어를 GPL로 전환하여 독점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경쟁력을 무력화시키자는 글도 올라와있다.[3] 물리학과지만 1학년을 마친 후부터 MIT AI 연구소 프로그래머가 되었다. [4] https://fossbytes.com/ubuntu-20-04-lts-drops-amazon-web-app/ [5] 중국 창수 시에 위치한 기업이다.[6] 이는 저 노트북이 BIOS로부터 자유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쓰는 것 같다.[7] HTML을 사용해 자신의 웹페이지를 관리할 정도의 수준만 한다.[8]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에서도 대학생들은 학업 때문에 풀타임 직장을 가지기도 어려운데, 부모마저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자기 생계와 학비도 스스로 책임져야 하니 많은 대학생들이 돈에 쪼들리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