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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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 복장을 한 뚱이스폰지밥

히피 운동을 상징하는 비틀즈의 명곡 <All You Need Is Love>[1]
1. 개요
2. 배경
3. 미국 이외의 사례
4. 대중문화
4.1. 히피인 캐릭터
5. 같이보기


1. 개요


'''히피'''(Hippie/Hippy)란 1960년대 미국을 위시한 서양권에서 10~30대 위주로 발생한 하나의 문화풍조 및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의 총칭이다.

2. 배경


1960년대 중후반, 베트남 전쟁의 교착 상태와 불안한 미국 사회의 영향으로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고 실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에 기존 사회의 질서를 부정하고, 자유평화를 사랑하며, 정신적 가치에 무게를 두고 인간성을 중시하면서 물질 문명을 부정하는 운동이 미국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히피이다.
히피의 뿌리는 비트닉[2]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데, 비트닉 자체가 보헤미안적 태도를 지닌 반항아 문학청년들이었다. 잭 케루악과 앨런 긴즈버그를 비롯한 일군의 젊은 작가들은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자유를 숭배했다. 이 흐름은 훗날 모드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점점 '''요란한 패션과 약물문화, 자유, 평화의 사상'''이 합쳐지면서 히피 문화가 도래하게 된다. 히피는 대략 1966년경을 기점으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자유분방한 의상과 헤어스타일, 정신적 해방을 위한 마약 사용, 집단 난교와 공동생활 등이 대표적인 상징이다. 이들의 상징적인 모습들은 사실 미국 원주민(인디언)들의 생활양식을 많이 따라하였다. 자유분방한 복장은 미국 원주민들의 복장을 어레인지한 스타일이고, 마약을 통한 정신해방은 미국 원주민들의 연기 흡입을 통한 명상이고, 떠돌아다니는 공동생활 역시 미국 원주민들이 거주지를 자주 옮긴 것과 같다. 백인계 미국인들과 다르게 보이려고 선택한 것이 바로 이색적으로 보인 미국 원주민식의 생활양식이었던 것이다.
히피는 당시 베트남 전쟁 반대로 큰 호응을 얻던 반전 사상의 아이콘격으로 떠올랐다. 심지어 당시 학생운동이나 청년운동이 힘을 얻던 시대였고, 이들은 종종 폭력투쟁으로 발전했는데, 히피는 철저히 무대응 무저항을 원칙으로 행동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초기에는 히피가 새로운 문명을 개척할 집단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심지어 아무것도 안 하는 행동을 연좌시위(sit-in)을 넘어선 행동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를 Be-in이라고 불렀다. 당시 Human Be-in의 영상
히피 이전의 서브컬처 집단들도 약물을 사용했지만, 그 전까지 약물은 괴팍한 재즈 뮤지션이나 거친 사나이들만 사용하는 것으로 여겨지곤 했다. 하지만 LSD의 구세주라 불리는 티머시 리어리[3]가 "Turn On, Tune In, Drop Out"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면서 약물사용을 통한 정신구조의 확장 및 해방을 주장하면서 약물은 히피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이때 생긴 단어가 바로 마약을 통한 정신세계의 탐험을 뜻하는 "Trip"이다. 이 단어는 지금까지도 마약을 경험했다는 은어로 쓰이고 있다.[4] 이 때문에 히피는 단순한 서브컬쳐를 넘어서 "반문화 운동"(Counter-Culture movement)라는 칭호를 얻는다.
모 대학 교수가 히피를 연구하겠다고 히피에 들어갔다가 눈이 풀려서 자기도 히피가 되어서는 we are the world라는 노래를 불렀다는 일화가 있다
1967년 사랑의 여름으로 대표되는 주로 자유분방함이 넘치는 도시 샌프란시스코가 그 운동의 중심지였으며,[5] 몇몇 히피는 아예 인도일본 등으로 직접 여행가서 전통무술과 요가, 불교동양 종교철학을 배우기까지 했다. 이렇게 동양문화에 심취한 인물 중 스티브 잡스조지 해리슨이 유명하다. 다만 그 부작용으로 인해 와패니즈들과 인도 여행에 대한 이상한 환상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당시 앨런 긴스버그를 위시한 진보적인 지식인과 작가들도 히피 무브먼트에 대거 참여했다. 흑인들의 민권운동, 아니 그 이상을 넘어선 '''무장투쟁운동'''도 이 대열에 합류했는데 그게 바로 유명한 흑표당(Black Panther Party)이다. 이에 대한 묘사가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짧지만 자세히 등장한다. 히피인 제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길거리 생활을 하거나, 마약을 통해 정신세계 체험을 하거나 흑표당의 아지트에서 트러블을 일으키는 등이다.
그러나 1970년대가 되면서 여러 가지 사건이 터지고, 히피의 신화와 이상은 점점 흔들리기에 이른다. 특히나 찰스 맨슨이 일부 극단적 히피들의 컬트 교주로서 군림하며 살인을 사주하고 그들을 세뇌하여 착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미지에 심한 타격을 입게 되고, 당시 불길처럼 번지던 크랙 코카인 등 마약의 범람 등으로 인해 히피들에 대한 내외부적인 인식이 변하게 된다. 히피 운동이 사회적인 변혁을 일으켜 줄 것이라 기대하고 동조했던 소위 운동권들도 그들의 무능함에 학을 떼고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된다.[6]
베트남전이 끝나고 펑크가 떠오르던 1970년대 중반 쯤에 이르러선 히피 무브먼트는 사실상 와해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히피들은 1969년 우드스톡 페스티벌 등을 개최하면서 이제 1969년이 지나고 1970년대가 되면 사랑과 평화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시대가 펼쳐지리라는, 지금 돌이켜보면 터무니없는 이상향에 젖어 있었다.[7] 하지만 알타몬트 공연의 헬스 엔젤스 사건 같은 것이 터지고, 베트남전이 종결되면서 급격히 세력을 잃는다. 이들 사상의 주요한 모토였던 록 음악[8]도 1970년대를 넘어가며 히피 신비주의를 버리고 급격히 세속화된다. 1980년대쯤 되면 이제 시대의 유물처럼 취급받게 된다. 이런 흐름을 잘 보여주는 소설로는 토머스 핀천의 바인랜드가 있다.
히피 세대를 대변한 록 아티스트를 들자면 도어즈, 제퍼슨 에어플레인, 그레이트풀 데드, 빅 브라더 앤 홀딩 컴퍼니,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크림, 모비 그레이프 등등이 있고, 비틀즈조차도 당시의 히피 세대의 사조를 따랐다.[9]
히피 세대의 "무사안일", "막연한 평화주의"는 훗날 펑크 무브먼트에게 미친듯이 까이게 된다.[10] 섹스 피스톨즈의 유명한 말을 상기해 보자. "난 히피가 싫고 걔들의 가치관도 싫다." 그들의 자식뻘인 X세대도 히피들을 그리 좋게 보지 않았다.
사회학적으로는 히피들의 공동체는 '''공유지의 비극''' 이론을 방증하는 결과밖에 되지 못했으며 공동분배를 주장하던 수많은 히피집단들은 사실상 딜레마에 당착하여 내부적으로 붕괴되었다.
거기다가 '''돌+I는 뭘 해도 돌+I'''라는 공식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히피들 중 극단적인 쪽은 80년대에 반대쪽 극단인 '''신비주의 기독교'''로 빠져서 반대방향으로 신나게 역주행하며 삽질을 하기도 했다. 물론 기독교계는 이를 고깝게 보았고, 대다수의 히피들은 신비주의적 색채가 강한 자신들만의 교단을 만들어 분리하기에 이른다. 한편 왕년의 히피들 가운데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계층의 자녀들 중 80년대에 이르러 '여피족'으로 진화한 경우도 있는데 이들은 70년대 젊은 시절에는 히피 문화에 빠져 흥청망청 보내다가 취직을 걱정할 30대가 되자[11] 다시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화해한 뒤 부모님에게 회사 고위직 혹은 이사 자리와 회사 주식을 물려받고 돈 걱정 하지 않고 자신들을 온갖 명품으로 치장한 채로 낮에는 정작 주어진 직책에 맞는 일은 하지 않은 채 어쩌다 체면 치레로 회사에 얼굴만 좀 내미는 거 외엔 대개 헬스 클럽에서 몸을 만들면서 소일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코카인을 하면서[12] 연예인 혹은 모델들과 원나잇 스탠드를 즐기는 등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했다. 이런 여피족들의 생활상은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에 잘 묘사되어 있다.
위와 같은 모순과 문제점에다 히피문화를 즐겼던 부머 세대들이 나이 먹고 꼰대로 돌변하면서 오늘날 자식뻘, 손자뻘인 Z세대들과 갈등이 빈번한 편이다. 반대로 꾸준히 유연한 사고를 유지하려고 했던 부류도 있는데, 이들은 대체로 젊은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진보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3. 미국 이외의 사례


60년대 서유럽에도 많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68운동의 직접적 주역이 되기도 했다. 이들 또한 베트남 전쟁 반전운동에 나섰다.
일본에서도 서양과 비슷한 시기에 '후텐족'(フーテン族)이란 명칭으로 히피 풍조가 널리 퍼졌었다. 주로 신주쿠역 근처 광장에서 시너를 흡입하고[13] 몽롱해진 채로 여기 저기 기웃거리거나, 혹은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이상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댄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중앙일보 1968-07-11 《[후뗑…일본의「히피」족》] 캔(밴드)의 보컬이었던 다모 스즈키가 후텐족 출신으로 유명하며, 나가시마 신지의 만화 후텐은 이런 일본 후텐족을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는 1970년대 초반 쎄시봉으로 대표되는 통기타 청년 문화가 히피 문화에 일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유신 정권과 대마초 파동으로 탄압을 많이 받아 사회적으로 확산되진 못했다.

4. 대중문화


대중문화내에서는 히피들의 입지가 매우 나쁜데 사우스 파크에서는 히피들을 엄청나게 깐다. 에릭 카트먼 평생의 숙원은 세상의 히피들을 다 죽이는 것이고 스탠 마시가 '''"이렇게 모여서 노래듣고 마약이나 하고 있느니 좀 세상에 도움되는 일을 찾으라."'''고 할 정도이며 하다못해 스폰지밥에서도 집게사장의 식당에서 히피가 찾아와서 민폐를 끼치는 모습으로 묘사가 될 정도로 히피를 비판했다.
근래에 들어서 히피라는 말은 철부지 정도의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니면 좋게 말해서 예술적이고 자유분방한 사람이라든가[14] 때문에 서양 대중매체에서 히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묘사되는 경우가 잦다.[15] 텀블러 같은 데 보면 자기가 능력 없어서 감당 못하는 애완동물들을 잔뜩 끌어안고 팔로워들에게 내 펫 아프니까 크라우드 펀딩에 돈 넣어달라고 호소하는 부류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으며 실제로도 막연한 무사안일주의와 노동경시, 마약중독이 결합된 경우가 허다했다.
이들의 자유분방함은 이름 짓는 데에도 영향을 미쳐서 서양인들 중에 종종 '프리덤', '스타', '리프', '아시아'나 '아메리칸'[16], '페어루자' 등등 상식적으로 보아 사람 이름으로 쓰지 않는 영단어나 영어가 아닌듯한 단어를 이름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경우 부모가 히피일 가능성이 크다.
연예인들 중에서 예를 들자면 배우 호아킨 피닉스요절한 유망주 배우이자 호아킨의 형인 리버 피닉스의 부모님도 히피다. 5남매 중에 호아킨만 빼면 나머지 이름은 다 병맛이 철철 넘쳐 흐른다. 심지어 성씨인 피닉스도 바꾼 거다. 원래 성씨는 바텀이었는데, 부모님이 바닥을 뜻하는 바텀보다는 피닉스가 멋있다면서 바꿨다. 그리고 히피 부모님답게 애들 학교는 안 보냈다. 배우 위노나 라이더의 부모도 히피였다고 하며, 위노나란 이름도 그녀가 태어난 도시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런데 비(非)히피인 시점에서 보면 이런 이름들은 대개 창녀콜걸 닉네임 수준으로 이런 사람들을 진지하게 대하기 힘들다는 투로 인식한다.
폴아웃 시리즈에서도 히피가 존재하긴 했으나, 타국민은 물론 자국민들도 우습게 알던 당대의 미국 정부답게 히피들에 대한 처우도 끔찍하기 그지 없었다. 론섬 로드에 등장하는 전쟁전 기록에 따르면 한번은 히피들이 디바이드에서 시위를 했는데, 정부는 이에 제11장갑기병연대[17]를 보냈다. 그런데 이들의 무장 수준이 좀 후덜덜한데 방어구는 폭동 진압복이고 무장은 폭동진압용 산탄총을 사용하는 집단이였다. 폭동 진압복은 당시 처음 시범제작된 물건으로 반은 실전 테스트를 겸해서 보낸 건데, 시리즈마다 나오는 전쟁전 미군 제식 방어구인 컴뱃 아머보다 좋게 나온다. 폭동 진압용 산탄총은 드럼 탄창에 개머리판이 없는 짦은 반자동 산탄총. 그때 미국의 인권수준으로 볼때 '''시위대를 산탄총으로 갈아엎었을 것으로 보인다.'''
마다가스카의 펭귄스키퍼는 특수부대 출신이라 그런지 히피를 매우 싫어한다. 부하인 리코가 잠깐 히피가 되기도 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는 막장 행각을 일삼는 메인 악역들로 나온다. 물론 주연인 브레드 피트가 히피들을 신나게 두들겨 패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한술 더 떠서 화염방사기로까지 지져댄다.
몇몇 매체에서는 전투광이나 공리주의 입장의 캐릭터들이 평화주의자를 히피로 보는 성향이 강한 듯 하다. 상술했듯 실제 미국에서도 한 때나마 히피 = 평화주의자라는 인식이 있긴 있었으니 이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이 글의 본 문단에서 서술했듯이 이들이 실제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낸 적은 별로 없는 바 함부로 히피로 규정하는 것은 별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물론, 캐릭터의 차림새나 행동거지[18]스테레오타입을 대놓고 집어넣은 경우라면 확인사살.
요새는 자유로운 영혼이나 스타일을 '히피'라는 말보단 '보헤미안'으로 돌려쓰는 듯.

4.1. 히피인 캐릭터


  • 동물의 숲 시리즈 - 파니엘
  • 더 머펫 쇼 - 일렉트릭 메이헴. 비틀즈 등 70년대 이전의 쟁쟁한 뮤지션들을 반영한 밴드라서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코믹스판에 따르면 멤버 중 주민등록이 되어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듯...
  • 리갈 하이 - 혼다 제인. 흠좀무스러운 게 이 인물은 히피 출신이면서 법조인인 캐릭터다. 히피 부모님에게 태어나 줄곧 히피마을에서 자랐다. 나중엔 검사(중간엔 변호사일도 했었다.)가 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 리코(마다가스카의 펭귄) - 프라이빗의 루나콘의 목소리칩이 이식되어 이쁜이 인형이 리코를 잠시 히피로 만들어놓는다.
  • 맘마 미아!, 맘마 미아! 2 - 도나 셰리던
  • 못말리는 비버형제 - 트리플라워: 밴드활동하던 시절 한정.
  • 사이퍼즈 - 드루이드 미아 : 복장도 그렇고 자연의 힘을 사용하여 싸운다
  • : 히피 취급을 받을 요소가 매우 많지만 딱히 히피는 아니다. 그냥 당대의 '노는 애들'의 이미지를 반영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 심슨가족
    • 모나 심슨: 호머가 어릴 때 TV에서 나오는 히피를 보고 한눈에 히피 성향에 반해 히피가 되었다. 그리고 생물학병기를 연구하는 연구소(번즈 사장이 연구원 내지는 책임자였다!)에 소독 테러를 했다가 지명수배를 당한다. 참고로 이때 경비원이 위검 서장이었는데 이 소독제에 천식이 완치되어(!) 경찰이 될 수 있었다고…호머가 어머니를 찾는 에피소드에서 가족들과 식사 중 모나가 나타났다는 걸 알게 된 번즈 사장이 탱크까지 동원(!) 했지만 위검 서장이 몰래 알려준 덕에 도망칠 수 있었다.
    • 호머 심슨: 자신의 미들 네임이 JAY라는 것과 어머니가 히피였다는 것을 알자, 뜬금없이 히피 정신에 각성하여 히피 노릇을 하게 된다. 모나 심슨이 처음으로 언급되는 에피소드.
    • 리사 심슨
  • 라이언킹 - 티몬과 품바
  • 아메리칸 대드 - 헤일리 스미스[19]
  •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아리우라 칸나
  • GTA 산 안드레아스 - 트루스(The Truth)
  • , 카 2, 카 3: 새로운 도전 - 필모어
  • 캐빈은 12살 - 카렌 아놀드[20]
  • ∀건담 - 레드 대. 문 레이스를 선조로 둔 집단. 히피는 아니나 히피의 스타일과 이런저런 모티브가 많이 섞여 있다.
  • 트로피코 시리즈 - 환경주의자 정당 지도자 써니 플라워. 플레이어에게 도움 안 되고 정신나간 히피 여자이다.
  • 파피 - 몬아일
  • 포레스트 검프 - 제니 커렌
  • 포켓몬스터 - 말리화
  • 프렌즈 - 피비 부페이. 전형적인 떠돌이 히피. 심지어 램프의 지니에게 빌고 싶은 세 가지 소원이 세계평화, 열대우림 보호, '더 큰 슴가'라고 한다.

5. 같이보기



[1] 1967년 사랑의 여름에서 히피들의 대표곡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히피들을 상징하는 긴 머리와 수염 역시 비틀즈에서 기원한 것이기도 하다.[2] 이들의 스테레오타입은 베레모, 검은 폴로셔츠, 봉고드럼이었다. 심슨 가족에 나오는 네드 플랜더스의 부모가 그 당시 전형적인 비트닉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3] 바로 위의 Human Be-in 영상의 서두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였는데, 약물의 사용을 예찬하며 히피가 되었다.[4] 1967년에는 아예 the trip이라는 영화도 나왔다.# 이 영화는 히피 시대의 중요한 영화 중 하나로 꼽힌다.[5] UC 버클리 대학에서 파생.[6] 실제로 1969년~1972년은 히피 살인마의 시대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히피를 더더욱 무시무시한 집단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7] 70년대에 대한 이상적인 낙관론은 사실 60년대 저항운동 전반에 걸쳐 흐르던 정서이기도 했다. 60년대 전공투 학생운동 세대인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자신들이 서른이 넘을 때 쯤엔 전쟁도 인종차별도 없어질 거라 믿었다 한다. 그만큼 60년대가 격변의 연속이었던 것이다.[8] 특히 약물의 힘을 빌린 몽환적인 사이키델릭 록음악. 록 중에서도 사이키델릭 록은 히피들의 지향점이 담긴 장르였다.[9] 비틀즈는 히피로 출발한 아티스트는 아니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아주 부드럽게 타면서 히피 문화를 이끌었다. 저 위에 기술된 찰스 맨슨도 비틀즈를 굉장히 숭상했다.[10] 펑크가 히피에게서 얻어온 것은 공동체 정신 하나밖에 없다.[11] 80년대 미국 사회가 점차 보수적이고 '돈만 있으면 다 되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사회로 변화되어가고 있었다는 점도 여피족의 등장에 영향을 끼친다.[12] 이 때문에 미국에서 코카인은 돈 많은 백인들이 하는 마약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반면 헤로인이나 필로폰은 돈 없는 빈민들이나 갱스터, 레드넥들이 하는 이미지가 강하다.[13] 대마초보다 구하기 쉽고 값이 쌌기 때문. 당연하지만 1980~90년대 한국 청소년들의 본드 흡입처럼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다.[14] 그러나 장르에 따라 진지하게 예술에 임하는 사람들한테 이런 말하면 욕을 먹을 수도 있다.[15] 스폰지밥에서도 히피편이 나오는데 거기 작중 인물들 대사 부터가 '''이 짜증나는 히피들!'''이라고 대놓고 말한다.[16]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게임 제작자 아메리칸 맥기다. 히피였던 어머니가 자식 이름을 '아메리카'라고 짓는 친구를 보고 자신의 아이 이름은 '아메리칸'이라고 지었다고 한다.[17] 참고로 '''실존하는 부대이며,''' 폴아웃 세계관에서는 부대 상징이 빨간색 부분이 노란색으로 바뀐 디자인이다.[18] 생머리에 꽃 달고 다니기, 에스닉한 패션 내지는 봉고 패션, 마약에 취해 늘어져 있는 모습, 원조 히피들이 하던 캐치프레이즈를 입에 달고 살거나(Make love, not war 등) 물담배, 사이키델릭한 배경효과를 늘상 달고 다니는 등의 모습.[19] 주인공인 스탠 스미스의 딸. CIA 직원으로 수꼴 성향을 가진 아버지와 달리 진보적이다.[20] 이 작품 자체가 미국의 6, 70년대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