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 램버트
1. 클럽 경력
리버풀 출신으로 10살부터 리버풀 아카데미에서 축구를 배웠으나 15살 때 방출당했다. 1998년 8월, 16세에 블랙풀에서 다시 축구를 시작했지만 2년 만에 탈퇴 당했다.
이후 비트 루트 '''공장에서''' 일하다가 매클즈필드 타운 FC, 스톡포트 카운티 FC, 로치데일 AFC, 브리스톨 로버스에서 뛰었고, 브리스톨 로버스에서는 약 3년간 통산 155경기에 출전해 59골을 기록하였다. 특히 2008-09 시즌에는 리그 29골을 기록하고 리그 1(3부 리그)의 득점왕이 되었다.
1.1. 사우스햄튼 FC
2009년 8월 1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당시 3부 리그로 강등당했던 사우스햄튼 FC으로 이적했다. 2009-10 시즌 데뷔전의 리그 컵 노스샘프턴타운 전에서 득점하는 것을 시작으로 FA컵 5라운드의 라이벌 포츠머스 전에서 골을 기록하였다. (2010년 2월 13일) 리그의 밀턴 케인스 돈스 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였으며 (2010년 3월 20일), 풋볼 리그 트로피 결승전 칼라일 유나이티드 전에서 PK로 득점하는 등 (2010년 3월 28일) 리그 30골을 기록하고 이적 첫 해에 모든 대회 통산 36 득점을 올리는 활약으로 2년 연속 리그 득점왕이 되었다, 리그 1의 PFA 팬 선정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었다.
2010-11 시즌 21골을 기록하고 사우스햄튼 FC의 챔피언십(2부 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2011년 1월 1일, 사우스햄튼 FC과 2014 년까지 새로운 계약을 체결했다.
2011-12 시즌 리그 27골을 기록하여 지난 4시즌에서 3번째 리그 득점왕을 기록하였고, 사우스햄튼 FC을 7년 만에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로 이끌었다. 또한 '챔피언십의 판 페르시'라는 별명과 함께 챔피언십 플레이어 오브 더 이어, PFA 연간 베스트 일레븐에 선출되었다. 2012-13 시즌과 2013-14 시즌 연속 두자릿 수 득점을 성공시키며 프리미어리그에서도 그 기량을 인정받았다. 2014년 5월 30일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는 램버트가 리버풀로의 이적이 가까워졌다는 기사를 내놓았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과거 첫 친정팀으로의 감격스러운 복귀. 이적료는 400만 파운드로 알려졌다. 그리고 오피셜로 리버풀로의 복귀가 확정되었다#
1.2. 리버풀 FC
14-15 시즌의 리버풀의 스트라이커진은 다니엘 스터리지, 마리오 발로텔리, 파비오 보리니, 리키 램버트의 4인 구도가 되었다. 보리니는 그렇다치고 13-14 시즌, 엄청난 폼을 보여준 스터리지와 말이 필요 없는 발로텔리의 존재가 리키 램버트의 주전 출전을 가로 막게 생겼다. 비록 원톱을 고집하는 로저스 감독이긴 하지만 인저리 프론인 스터리지, 위험요소 덩어리인 발로텔리, 성장이 정체된 보리니가 상대이니 충분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긴 한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상기했던 스트라이커 경쟁자들의 불안 요소들로 인해 램버트가 리버풀 스트라이커 원톱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EPL 12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전 비록 팀은 3-1로 역전패하였으나 아담 랄라나의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집어넣으며 데뷔골을 신고했고,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5라운드의 2-2로 비긴 루도고레츠 원정경기에서 피지컬을 잘 활용해 헤딩으로 동점골을 집어넣으며 2경기 연속골을 기록. 스터리지가 회복하고 발로텔리가 정신 차리기 전까지 한 동안은 주전 확정.
...이었으나 3백 제로톱 전술이 정착되고 리버풀이 상승가도를 달리면서 2015년 3월 현재 램버트 뿐 아니라 리버풀의 공격진 전체가 주전경쟁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헨더슨, 쿠티뉴, 스털링 등이 돌아가면서 득점을 기록하고 있지만 전통적 의미의 공격수들은 스터리지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할 활약이 보이지 않는 상황. 이런 상황이다보니 당연히 겨울이적시장 때 이적 제의를 받았으나, 램버트는 리버풀이 좋다며 이곳에서 헌신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한 시즌만에 램버트와 리버풀의 재회는 아쉽게 끝나게 됐지만, 램버트 본인에게는 억울할만한 면도 있다. 전방에서 공중볼을 따는 것 말고도 다재다능한 면이 있었던 램버트지만 전봇대로만 활용되는 데 그쳤고, 투톱에서 더욱 파괴적이고 위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발로텔리의 파트너로 선택될 여지가 있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 물론 본인이 부진했던 것이 아쉬운 이별의 결정적인 이유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램버트는 마지막까지 프로답지 못한 태도로 로저스와 팀메이트의 속을 박박 긁고 간 발로텔리와 보리니, 엔리케와는 다르게 15년 여름 있던 아시아 투어까지도 팀과 동행하여 품위있게 리버풀 커리어를 마칠 수 있었다.
1.3.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그러나 7월 31일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으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계약 기간은 2년이며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전 시즌 골기록을 채웠다!!
1.4. 카디프 시티 FC
한국 시간으로 2016년 9월 1일에 카디프 시티와의 2년 계약이 확정됐으며, 등번호는 19번을 배정받았다.
2017년 10월 2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드라마같았던 축구선수 인생의 막을 내렸다.
2. 국가대표
2013년 8월 8일에 31세에 처음으로 잉글랜드 대표팀에 소집되었고, 8월 15일 스코틀랜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웨인 루니의 교체멤버로 투입되면서 데뷔하여 결승골이 되는 A매치 첫 득점을 올렸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최종명단에 포함, 교체로 1경기를 뛰었다.
3.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타겟형 스트라이커다. 다부진 체격을 가진 스트라이커로 뛰어난 제공권을 자랑하며 상당한 활동량으로 박스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2선을 넘나들며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동료들을 지원해주는 연계능력을 보여주는 선수이다. 어느 정도의 발밑 기술 또한 갖추고 있어 중앙 공격수뿐 아니라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활약이 가능하다. 키는 187cm로 여타 잉글리시 타겟맨, 202cm의 피터 크라우치나 193cm의 앤디 캐롤에 비하면 작으나, 크라우치에 비해 피지컬로 수비를 압살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앤디 캐롤에 비해 기복이 적다. 부상으로 인한 결장도 드물다.
인상깊은 것은 페널티 킥 기록. 공식전에서 그가 찬 PK는 모두 60개인데, 그는 그 중 고작 2개밖에 놓치지 않았다. 가장 최근의 실축도 2009년의 일로, 사우스햄튼 이적 이후 맡은 34개의 PK를 그는 모두 득점으로 이끌었다. 05-06시즌부터 13-14시즌까지 9시즌 연속으로 두 자리수 골을 기록한 것과 (12-13, 13-14 2개 시즌 이전은 2, 3부리그의 기록이긴 하다) 사우스햄튼에서 09-10부터 13-14까지의 5시즌간 무려 235경기를 출장한 것 또한 인상깊은 기록. 프로로서의 컨디션 관리가 철저함을 엿볼 수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