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트엉끼엣

 

[image]
[1]
Lý Thường Kiệt / 李常傑 / 이상걸
1019년 ~ 1105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


베트남 리 왕조의 무신. 트엉키엣(常傑)이란 이름은 (字)다. 이름은 뚜안(Tuấn, 俊/준).
이상걸은 송나라의 침공군을 격퇴하여 대월(베트남)의 자주 의식을 만천하에 증명한 명장이다. 리 왕조의 보응우옌잡이라 할 수 있다. 한국사로 치면 쩐흥다오이순신이라면 이 사람은 을지문덕 쯤 되는 위상이라고 보면 된다.

2. 생애


1019년, 수도인 탕롱(Thăng Long)[2]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응오뚜안(Ngô Tuấn, 吳俊), 나중에 그가 황실의 군인으로 일하면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을 기특하게 여긴 태종이 황실의 성씨인 이씨(李氏)를 사성(賜姓)받아서, 본인의 자와 합쳐서, 리트엉키엣(이상걸)이라 부르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거세되어 환관으로 복무하며[3] 왕궁 경비대로 일하다 잘생긴 외모 때문에 임금의 관심을 끌어 장군으로 임명되었다. 위에 있는 수염 있는 초상화는 그가 환관이었다는 것을 잘 모르고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뒤에 베트남에서 그려진 초상화에서도 수염이 있는 걸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한편 1075년, 북송의 재상 왕안석은 대월을 토벌할 준비를 한다. 이를 눈치챈 리트엉키엣은 10만의 병력을 이끌고 송나라 국경으로 쳐들어가서 선제 공격을 감행하여 40일간의 교전 끝에 승리한다. 송나라 측은 당시 대월(베트남)의 적수인 참파크메르 제국을 끌어들였다. 이에 리트엉끼엣은 강바닥 아래에 함정을 설치하여 1000명 이상의 침공군을 몰살시켰고, 결국 지친 대월(베트남)과 송 두나라는 화평조약으로 합의를 보면서 전쟁을 종결짓는다.
이후 그는 참파를 두 번 침공하여 보복을 가한 뒤 1105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1] 위 이미지의 한시는 대월 왕조의 중국에 대한 자주 의식을 표현한 남국산하(南國山下)이다.[2] 지금의 하노이.[3] 베트남의 환관제도는 중국이나 조선과는 좀 달라서, 명문가 출신들만 환관이 될 자격이 주어졌다.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