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빈 윌리엄스
1. 소개
은퇴한 미국의 농구선수로, 포워드 포지션을 담당하였다.
2. 플레이 스타일
기본기에 굉장히 충실한 선수다. 수비 리바운드, 포스트업, 가끔씩 나오는 인사이드 침투가 굉장히 준수한 편이다. 또한 유타 재즈 시절 이후부터는 스트레치 포 답게 3점슛 성공률이 쏠쏠하다. 그러나 단점이라 하면, 뭐 하나 특출나게 잘하는게 없다는 것이다.
3. 커리어
3.1. NBA 입성 전
3.1.1. 고등학생 시절
워싱턴 브레머튼 주 브레머튼 고교에서 마빈은 주니어 시즌에 23.9 득점-14 리바운드, 시니어 시즌에 28.7 득점-15.5 리바운드-5 블락-5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전미 고교 랭킹 1위에 등극하게 된다.
3.1.2. 대학생 시절
고교 시절 대기록 덕분에 2004년 그는 맥도날드 올-아메리칸과 미국 잡지인 퍼레이드에서 발표한 퍼레이드 올-아메리칸 퍼스트 팀에 선정되었으며, 이와 더불어 농구 명문인 UNC에 입학한다.
UNC에 입학한 마빈은 즉시 주전 식스맨으로 기용되기 시작했다. 카멜로 앤써니처럼 입학하자마자 완전체의 모습을 보이며 활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레이먼드 펠튼 등 기라성 같은 대학 선수들 속에서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플레이하는 모습은 많은 스카우터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마빈 윌리엄스에게 영광의 시대는 위 영상인 2005년 3월 6일 듀크대와의 경기였을 것이다. 당시 UNC는 듀크대와 2월에 한번 만났었고 1점차로 석패를 했던 기억이 있었다. '3월의 광란'을 앞두고 열린 이 경기는 두 라이벌 팀간의 자존심 싸움이었기에 그 열기는 NCAA 결승 이상이었으며, 당시 관중만 23,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타 힐스의 홈에서 열렸던 경기는 마지막 2분을 남겨놓고 당시 대학 최고 스타였던 J.J. 레딕이 이끄는 듀크대가 9점차로 앞서가면서 패색이 짙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야전 사령관 레이먼드 펠튼을 필두로 한 UNC는 빅라인업으로 상대를 압박했고 그 결과 1분 30초를 남겨두고 73대 71까지 점수차를 좁히기에 이른다.
다급해진 듀크대는 레딕의 손에 공을 맡겼지만 그가 쏜 2번의 3점슛은 림을 외면했다. 양팀이 소강상태에 빠질 찰나, UNC가 압박을 통해 루즈볼 턴오버를 유발하고 그 결과 펠튼은 과감한 공격을 통해 자유투를 얻어낸다.
펠튼이 2구를 모두 성공시킨다면 경기는 동점이 되는 상황이었지만, 안타깝게도 2구를 놓치고 만다. 하지만 그 순간, 공을 다투던 선수들 사이에 마빈이 재빨리 공을 낚아채 슛을 던지고, 이는 백보드를 맞고 떨어지며 결승골이 된다. 경기장은 승리의 도가니 속에서 아수라장이 되고, 마빈은 타 힐스의 영웅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후 UNC는 NCAA 토너먼트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면서 1993년 이후 처음으로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된다. 만화와도 같은 대학에서의 첫 시즌 이후, 마빈은 NBA 입성을 선언한다.
3.2. NBA 입성 후
3.2.1. 애틀랜타 호크스
드래프트 컴바인에서 측정된 마빈의 신체능력은 실로 엄청났다. 6'8"로 스몰포워드로써는 이상적인 프레임과 7'3"에 이르는 엄청난 윙스팬, 그리고 9'0"에 이르는 리치까지. 여기에 준수한 운동능력과 미드레인지 게임을 보유하고 있었던 그의 모습은 많은 스카우트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언론은 그를 '스몰포워드계의 마이클 조던', '최소 올스타 레벨' 등이라고 부르며 NBA 팬들의 기대감을 높여주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마빈의 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2005년 드래프트에서 애틀랜타는 마빈을 앤드류 보것에 이은 2픽에 지명했다. 사실 드래프트에 참가한 마빈은 완성된 선수가 아니었다. 훌륭한 신체조건과 대학시절 보여줬던 가능성에 일종의 도박을 한 셈이다. 당시 애틀란타는 정통 포인트가드가 부재했던 터였지만 새로이 영입했던 조 존슨을 PG로 활용할 심산이었기에 마빈을 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빈은 생각보다 더 거친 원석이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신체적인 축복에 비해 운동능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으며 미드레인지는 괜찮았지만 슛레인지가 깊은 편이 아니었다. 그의 루키 시즌 성적은 8.5 득점-4.8 리바운드로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렇다고 마빈이 정체되거나 부상으로 시름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마빈은 매년 자신의 기록을 향상시켜나갔고, 리그 3년차에는 자신의 커리어 하이 평균득점과 야투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그 사이에 3픽이었던 데론 윌리엄스와 4픽 크리스 폴은 올스타 레벨 선수가 되었지만...
그래도 마빈의 성장에 기대를 걸었던 애틀란타는 그에게 2009년 8월 7일 5년 $37.5밀이라는 장기계약을 안겨준다. 사실, 마빈이 꾸준히 평균 15-7 정도를 찍어줄 수 있었다면 이 정도 수준의 금액은 적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마빈은 정체되었고 오히려 집중력이 부재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 시작했다. 올스타 레벨의 선수로 성장하기를 바랬던 애틀란타 팀과 팬들의 기대는 점점 실망과 분노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1]
장기계약 이후 실망스러운 그의 모습에 애틀란타 역시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빈이 태만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워크에틱이 나쁘지 않은 선수이기에, 3점도 연마해보는 등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았지만 전체적으로 부족한 골밑 마무리 능력, 그리고 스윙맨을 맡기에는 무거운 몸에 파워포워드를 보기에는 프레임이 얇았던 트위너 기질의 선수가 가질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드러낸 셈이다.
3.2.2. 유타 재즈
결국 마빈은 2012년 7월 11일, 데빈 해리스를 받는 대가로 유타 재즈로 트레이드되고 만다.
유타에서의 첫 해 마빈은 커리어 로우 시즌을 맞이하게 된다. 출장시간도 25분을 넘기지 못했고, 1차 스탯과 2차 스탯 모두 바닥을 찍었다. 비운의 2픽은 이대로 커리어가 저물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준수한 수비력과 외곽능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로테이션 멤버로 전락한 그는 이젠 팬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진 상황이었다.
2012-13 시즌 이후 알 제퍼슨이 샬럿으로 가고 폴 밀샙이 애틀란타로 가면서 빅맨진에 구멍이 생기자 타이론 코빈 감독은 마빈에게 본격적으로 스트레치 4가 될 것을 주문한다. 물론 그 전에도 간혹 4번 롤을 수행하기도 했지만 전문 스트레치 4를 맡은 적은 없었다.
유타의 2013-14시즌은 팀과 팬들에겐 악몽과 같은 해였지만 마빈 본인에게는 일종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프리시즌부터 기존과는 달리 터프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25분 남짓한 플레잉타임 속에서 경기당 평균 3.5개에 가까운 3점을 날리기 시작했다. 리그 최악 수준의 외곽능력을 보유하던 유타로써는 그의 3점과 수비는 약방의 감초같은 존재였다.
3.2.3. 샬럿 호네츠
2014년 7월 21일, 마빈은 샬럿 호넷츠와 2년 14밀에 계약했다.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던 샬럿은 조쉬 맥로버츠의 공백을 빠르게 메꾸고자 했고 시장에 나온 마빈과 재빨리 계약을 체결했다. 일각에서는 평균 30분도 뛰지 못하고 10득점도 하지 못하는 선수에게 연 7밀은 너무 쎈 계약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샬럿 입장에서는 마빈이 예상보다 부진할 경우에 빠르게 대체자를 찾을 수 있는 유동성을 확보했고, 선수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도전과 한두 번 더 체결할 수 있는 계약이였기 때문에 괜찮은 계약이라는 평이 많았다.
마빈은 샬럿에서도 스트레치 4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맡았다. 2013-14 시즌 샬럿은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력을 보여줬지만 외곽공격 등에서는 리그 하위권을 멤돌 정도로 기복이 심했었다. 몇몇 롤플레이어들이 예상외의 활약을 펼쳐줬지만 이는 뒤집어서 말하면 필요할 때 넣어줄 수 있는 고투가이들이 부족했다는 말이다. 마빈은 그런 면에서 조쉬 맥로버츠의 훌륭한 대체자였으며, 리그의 중고참이 된 그는 준수한 수비력과 3점 능력, 이전 시즌 히트 전에서 보여준 클러치 능력으로 알 제퍼슨을 보좌하였다. 또한 당시 갓 리그에 입성한 코디 젤러나 노아 본레같은 유망주들에게도 좋은 멘토로서 활약하였다.
3.2.4. 밀워키 벅스
2020년 2월 8일 샬럿에서 방출된 마빈은 2월 10일 밀워키와 1년 0.9밀의 계약을 체결한다.
2020년 9월 9일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밀워키가 마이애미에게 패배해 탈락한 후 곧바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4. 관련 문서
[1] 사실 2픽은 대대로 불운과 부진의 상징이었다. 하킴 올라주원과 마이클 조던 사이에 끼어 영원히 고통받던 샘 보위부터 시작해서, 2000년대에는 비운의 제이 윌리엄스, 역대 최악의 픽 중 하나로 평가받는 다르코 밀리시치, 대학을 평정하고 왔으나 미완의 대기로 남은 마이클 비즐리, 키만 큰 하심 타비트, 모든 것이 2% 부족한 에반터너, 그리고 데릭 윌리엄스까지. 물론 케빈 듀란트, 라마커스 알드리지나 타이슨 챈들러처럼 결과적으로 성공 혹은 성공중인 선수들도 있으나 실패로 끝난 경우가 많은 정도로 2픽은 '저주'에 가까운 결과를 맛보곤 했다. 2010년 당시 마빈 역시 그런 선수들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