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호크스
1. 개요
NBA의 프로농구팀. 동부 컨퍼런스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애틀랜타.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역시 은근히 안습한 역사를 가진 팀이며 특히 애틀랜타에서는 야구와 대학 풋볼에 밀려 인기도 많지 않다. 팀명인 호크스는 블랙호크 추장이 이끄는 수우 족과의 전쟁 중 하나인 블랙호크전쟁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2. 역사
2.1. 2013년 이전
1946년 미주리 주 출신 사업가 벤 커너(1913~2000)의 주도로 버팔로 바이슨즈로 창단했다가, 바로 다음해에 연고지를 옮겨 트라이시티 블랙호크스가 되었다. 이 트라이시티가 바로 미국 원주민 수족과 미군과의 전쟁이 벌어진 지역이라서 팀명은 해당 전쟁 당시 수족 추장이던 블랙호크에게서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그 뒤 1951년에 다시 연고를 옮겨서 밀워키 호크스로 팀명을 변경한 뒤 1953년에 로체스터 로열스의 스타 레드 홀즈먼을 플레잉감독으로 모셨으나, 그가 지휘하던 2년 간 5할도 못 넘었다. 다만 1954년에 부임한 마티 블레이크 단장은 드래프트 때 LSU 출신 밥 페팃을 전체 2번으로 뽑아 역사를 바꿨다.
페팃은 첫 시즌 때부터 탁월한 득점능력을 자랑해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성장 가도를 달렸으나, 연고지 밀워키에선 농구 붐이 일지 않아 1955년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로 이전해 '세인트루이스 호크스'가 됐고, 1956/57 ~ 1960/61 시즌까지 4회 연속 웨스턴 컨퍼런스 우승을 차지하며 1958년 파이널 우승을 달성했다. 다만 이들의 전성기는 '셀틱 다이너스티' 보스턴 셀틱스의 전성기와 정확하게 겹쳐 불행했다. 특히 1956년 드래프트 때 샌프란시스코대 출신 빌 러셀을 2번으로 지명했지만 러셀은 보스턴을 선택했고, 팀은 울며 겨자먹기로 켄터키 대학교 출신 스몰포워드 클리프 헤이건을 뽑으며 연고지 출신인 에드 매카울리를 사들였다.
세인트루이스에서의 황금시대는 불행하게도 이어지지 못했다. 1965년에 페팃이 은퇴하자 리치 게린 플레잉감독은 1966년 드래프트에서 미네소타대 출신 슈팅가드 루 허드슨을 전체 4번으로 뽑아 팀을 다시 짰고, 1968년에 커너 구단주는 애틀랜타 향토사업가 톰 커즌스와 칼 샌더스에게 판 뒤, 팀은 남부의 대도시 애틀랜타로 이전해 현 명칭이 됐다. 그 뒤에도 플레이오프엔 종종 올랐지만 이미 그들이 NBA를 주도하던 시대는 끝났고, 페팃을 능가할 만한 슈퍼스타가 없어 흥행이 부진했다. 설상가상으로 1970년대 후반에는 아예 PO에서도 멀어졌다. 반면 1977년에는 터너 브로드캐스팅 시스템 창업주 테드 터너가 팀을 샀다.
그래도 망하라는 법은 없는지, 1979년부터 부임한 스탠 카스텐 단장은 1982년 드래프트 때 유타 재즈가 지명한 조지아대 출신 2픽 도미니크 윌킨스를 받아오면서 역사를 바꾸기 시작했다. 1983년에 부임한 마이크 프라텔로 감독은 윌킨스를 받쳐줄 멤버를 물색하여 1983년 닥 리버스(마케트대)를 비롯해 1984년에 케빈 윌리스(MSU), 1985년에 스퍼드 웹(NCSU)과 존 콘칵(SMU) 등을 각각 드래프트에서 뽑고, 같은 시기에 클리프 리빙스턴까지 트레이드로 사들여 팀을 꾸렸다. 이들이 뭉친 팀은 1985/86 시즌부터 1988/89 시즌까지 4시즌 연속으로 50승 이상의 성적을 찍었고, 특히 1986/87 시즌 때 디비전 우승도 차지하면서 동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군림했다. 다만 동부에는 래리 버드를 축으로 한 보스턴 셀틱스와 '배드 보이스'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의 위세에 밀려 컨퍼런스 파이널조차 못 가 불운만 가득했다.
1990년에 프라텔로 감독이 NBC 해설위원으로 이직했고, 카스텐 단장도 사장으로 승진했다. 대신 덴버 너기츠에서 온 피트 밥콕 단장은 베테랑 지도자 밥 와이스를 감독으로 불러 무키 블레이록을 비롯해 스테이시 오그먼, 트래비스 메이스, 듀안 퍼렐 등 젊은 선수들을 등용해 새 도약을 시도했다. 1993년 오프시즌 때는 친정팀 출신 명장 레니 윌킨스를 감독으로 복귀시켜 섬세한 공격을 바탕으로 한 우승전력으로 만들려 했으나, 1993/94 시즌 도중에 구단은 윌킨스가 노쇠해졌다는 이유로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로 팔았다. 이게 치명적인 실수로 작용하면서 애틀랜타는 또 다시 1970년대처럼 플레이오프 컨텐더이지만 스타가 별로 없는 팀이 됐고, 인기도 점차 떨어졌다. 1996년에는 덴버 너기츠로부터 디켐베 무톰보를 사서 크리스찬 레이트너, 스티브 스미스, 타이론 코빈, 무키 블레이락, 앨런 핸더슨 등으로 수비진을 짜서 선수진을 개편했으나, 당대 천하무적팀 불스를 넘지 못했다.
2000년대 접어들어서는 마치 역사의 반복처럼 아예 중하위권 팀으로 전락했다. 1999-00 시즌부터 2006-07 시즌까지 8년 연속으로 플옵에 못 나갔고, 2002/03 시즌 때 샤리프 압둘 라힘-제이슨 테리-테오 래틀리프-글렌 로빈슨 라인업으로 플옵 진출을 하려 했으나, 디비전 5등으로 플옵에 못 갔으며 광고대로 팬들에게 티켓값을 환불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여기서 호크스의 불운과 악재가 겹치게 되는데 참 안습할 만한 행보를 보여주며 많은 팬들을 좌절시키게 했다. 2001년에 샤리프 압둘라힘을 가져오기 위해 2001년 드래프트에서 뽑은 3위 픽을 넘겨주는데 이게 바로 파우 가솔 (...). 2003년에 보리스 디아우를 건졌지만 조 존슨 과 맞트레이드했는데, 호크스를 떠난 디아우는 그 해애 "올해의 기량발전상" 을 받으며 또 한명의 인재를 날렸다.
물론 조 존슨이 그 당시 훌륭한 선수였고 호크스에서도 올스타 기량을 보여줬기에 결과론적이고 실패라고 까지 부르기는 이르지만 조 존슨의 상당히 큰 연봉을 떠맡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딱히 좋은 트레이드는 아니었다. 다만 존슨의 첫번째 계약, 즉 이 당시 계약으론 분명 돈값을 해주는 선수였고 디아우보다 존슨이 훨씬 좋은 선수였다는 점에서 분명 실패한 트래이드는 아니었다. 디아우가 이적 첫해 날리긴 했지만 그는 엄연히 한계가 있는 롤플레이어였고 이 트래이드로 호크스는 몇년간 팀을 이끌 에이스를 얻었다. 선즈 입장에서는 이미 내쉬와 스타더마이어에 숀 매리언까지 있어 스코어러가 필요없었고 디아우처럼 다방면에서 활약을 해줄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기에 존슨의 공백이 별로 티가 나지 않았을 뿐 존슨같이 에이스급 선수는 분명 그만한 돈을 주고, 자산을 주고 영입할 가치가 있었다. 반대로 호크스는 디아우처럼 볼을 몰아줘도 득점력에 한계가 있는 선수보다는 확실한 에이스가 필요했다. 문제는 이때 존슨의 좋은 활약 이후 재계약할 때 그야말로 메가톤급 액수를 안겨줬는데, 돈은 더 받는데 반해 이때부터 하락세가 완연해서 먹튀가 됐다는 점. 즉, 트래이드 자체는 잘했지만 재계약이 문제였다.
그리고 이후에 이어진 드래프트는 정말 병림픽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처참한 결과를 보여주었는데 가장 필요한 센터와 포인트 가드 포지션은 신경을 안쓰고 이상하리만큼 포워드 포지션에만 집착하는 행동을 보여줘서 팬들을 질리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스탠 카스텐 사장과 피트 밥콕 단장이 동시에 물러났다.
2004년에 모기업 타임 워너가 투자그룹 애틀랜타 스피릿으로 팀을 팔았고, 드래프트에서 조쉬 칠드레스, 조쉬 스미스 (알 제퍼슨 을 뽑을 기회가 있었다.) 를 뽑은 걸 시작으로 2005년에 2번 픽을 받아내고도 데런 윌리엄스 와 크리스 폴 (!) 을 뽑을 수 있는 상황에서 마빈 윌리엄스라는 또 한명의 포워드를 뽑으며 팬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다만 지금 봤을때에는 이런 바보짓이 있나 싶겠지만 당시 기준으로 마빈 윌리엄스가 먼저 뽑힌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윌리엄스는 노스캐롤라이나 1학년 시절을 NCAA우승을 이끌어낸 선배들의 존재로 인해 벤치에서 보냈지만, 당시 기준으로 '''역대급 재능'''이란 평가가 있었다. 당시 05드래프트엔 확실한 1순위감이 없었다. 폴이나 데론 윌리엄스 둘 다 이 정도까지 성장하리라는 예측은 없었고, 특히 폴이 "즉시전력감" 중 최고로 평가받던 앤드류 보거트를 묻어버리는 루키시즌을 보낼 거라는 예상은 더더욱 없었다. 실제로 PG 둘 중에선 사이즈와 운동능력이 더 좋은 데론이 더 높이 평가받았고, 3-4번의 PG라인은 지명순위대로의 기대치였으며, 오히려 보것과 윌리엄스가 "즉시전력이냐 미래의 잠재력이냐"를 놓고 잠깐 경쟁했다. 데론과 폴은 오히려 5순위 레이먼드 펠튼의 기대치와 비교할만했다.
즉, 마빈 윌리엄스의 지명은 호크스의 입장에선 1984년 당시 짐 팩슨이란 좋은 SG와 클라이드 드렉슬러란 대형 유망주를 데리고 있던 포틀랜드가 겪었던 딜레마, "팀에 필요한 포지션을 뽑느냐, 남아있는 최고의 재능을 뽑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전자를 택한 포틀랜드와 반대로 후자를 택했을 뿐. 문제는 윌리엄스의 재능은 당시 기대받던 수준이 아니었고, 그들이 지나친 데론 윌리엄스와 폴의 재능이 생각보다 너무 컸던 것. 즉, 결과적으로 보면 오류이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여담으로 이는 84년 포틀랜드가 마이클 조던을 거르고 샘 부위를 뽑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단 그 점을 고려해도 그 선택이 어리석었던 것이 이미 팀에는 조쉬 칠드레스, 그리고 조쉬 스미스라는 유망주 포워드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인트 가드는 스피디 클락슨이라는 그런저런 단신의 포인트 가드를 데리고 있었다. 포워드가 넘쳐나는데 포워드를 또 뽑는 행동을 한 것.
게다가 팀의 미래를 책임질 만한 인재인 제이슨 콜리어마저 아깝게 요절하고 말았다.
2006년에는 분명 조 존슨을 도울 다른 가드나 센터가 필요한 시점인데, 카일 로우리, 브랜든 로이[8] , 라존 론도, J.J. 레딕이라는 좋은 가드 자원들을 모조리 거르고 또 쉘던 윌리암스라는 B~C급 포워드를 뽑는 행보로 있던 팬도 다 떠나갔다.
2007년 드래프트 때 플로리다대 출신 알 호포드를 뽑음으로써 '드래프트 징크스'를 마치고, 드디어 2007-08 시즌에 5할 승률은 달성하지 못했어도 PO 진출에는 성공했다.[9] 그리고 빅3가 군림하던 보스턴 셀틱스를 7차전까지 물고 늘어졌다. 자신감을 얻은 애틀랜타는 조 존슨, 조쉬 스미스, 알 호포드로 이어지는 나름대로 튼튼한 라인업을 구축하며 PO 단골손님이 되긴 했지만 또 예전처럼 컨퍼런스 4강 쯤에서 늘 탈락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2011/12 시즌에 트레이시 맥그레디가 잠깐 들어오긴 했으나 별 활약은 없었다.
2012년에 릭 선드의 후임 대니 페리 단장은 팀의 리더였던 조 존슨을 브루클린 네츠에 넘기고 선수 다섯과 2013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을 가져오는 등 팀을 대규모로 갈아엎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플레이오프는 진출한 다음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만나 탈락했다. 이로 인해 래리 드류 감독이 해임되고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17년간 코치를 맡았던 마이크 부덴홀저가 감독직에 취임했다.
2013-14 시즌에 딱 세명 빼고 전부 FA로 풀리게 되어 FA 최대어인 드와이트 하워드와 크리스 폴까지 일거양득할 수 있을 정도로 샐러리 유동성을 높여놨으나 현실은 시궁창, 폴은 잔류하고 하워드는 휴스턴으로 가서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2.2. 2013-14 시즌
폴과 하워드라는 대어를 모두 놓친 호크스는 결국 오프시즌에는 유타 재즈에서 폴 밀샙을 영입해 높이는 낮지만 실력은 괜찮은 골밑 듀오를 만들고 제프 티그, 카일 코버와 재계약하면서 미묘한 라인업을 구성하고 백업 포워드로 밀워키 벅스에서 지명할당 되었던 멕시코출신 포워드 구스타포 아욘을 클레임하면서 마무리. 시즌 초반에는 5할 승률 언저리에서 놀고 있는데 다른 동부팀들이 너무 못해서(…) 동부 3위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리더 호포드가 가슴근육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하면서 팀 일정에 먹구름이 낀다. 아욘 역시 주전급 실력은 보이지 못하던 상황이었지만 우측 어깨 수술을 받으면서 시즌 아웃되어 버렸다. 초반 부진했던 브루클린 네츠 등이 제 실력을 내면서 3위에서 8위까지 미끄러지면서 플레이오프도 좌절되나 싶었지만 막판에 힘을 내면서 8위를 확정지었다. 최종 성적은 38승 44패로 .463의 승률. 서고동저의 극심한 시즌을 보여주는 대목이 되었다.
아무튼 동부 1번 시드인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맞붙게 되었다. 8번 시드와 1번 시드이지만, 맞대결 성적이 2승 2패로 호각세였고 그나마도 한 경기는 밀셉마저 빠졌던 경기였고, 페이서스의 후반기 성적과 팀 분위기로 봐서는 어느정도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되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뻔 했습니다. 상대 팀 가드 랜스 스티븐슨과 조지 힐을 맨붕에 빠뜨려 턴오버를 이끌어내고, 로이 히버트를 식물센터로 만든 채 양궁농구로 5차전까지 3승 2패로 앞서면서 8번 시드가 오랜만에 1번 시드를 무찌르고 2라운드 진출에 성공하는 업셋을 보여줄 뻔 했다.
6차전에서 데이비드 웨스트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면서 패배했는데, 그 경기에서 폴 조지가 마이클 스캇과 조지 힐과의 말다툼 도중 코트를 밟는 실수를 범해 규정대로라면 1게임 출장정지의 징계를 받게 되어 있어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으나, 사무국이 애매한 규정을 이유로 출장정지를 내리지 않았고 결국 7차전 인디애나폴리스 원정경기에서 폴 밀샙이 안좋은 야투율에도 불구하고 난사를 하며 공격을 끊어먹음과 동시에 히버트와 가드들에게 살아날 기미를 제공해 주면서 패배하며 탈락한다.
2.3. 2014-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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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오프시즌 동안 주목받을 만한 영입은 없었으나,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의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이 인종차별 논란으로 쫓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구단주였던 브루스 레벤슨의 이메일에서 인종차별적인 언급이 발견되고 단장 대니 페리도 루올 뎅과 관련해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게 걸려 무기한 휴직을 하게 되는 등 이상한 쪽으로 홍역을 앓았다.
시즌이 시작되자 호포드의 복귀와 함께 부덴홀저 감독의 시스템 농구가 정착되면서 토론토에 이어 동부에서 2번째로 20승을 돌파했다. 예년의 존재감 없는 강팀(…) 포지션을 되찾는가 싶더니, 2015년 1월에는 1997년 이후 처음으로 컨퍼런스 1위를 차지함과 동시에 막강한 팀워크를 과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초반 1위였던 토론토를 제치고 독주중이며 호포드, 밀샙, 티그 삼총사가 모두 올스타전 리저브 멤버로 선발되었다. 그리고 1월 17경기 결과 전승을 기록한 팀이 되었다.
그리고 2월 12일 현재, 카일 코버가 부상을 입은 드웨인 웨이드 대신 올스타 출장이 확정됨으로써 무려 네 명의 선수를 올스타에 배출하는 기염을 토하게 되었다. 후반기에는 패배가 늘어나긴 했지만 전반기 성적이 하도 압도적이라 60승 22패라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동부 컨퍼런스 1위로 시즌을 마쳤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브루클린 네츠와 만나 생각보다 고전하다 4-2로 진출. 2라운드에서는 워싱턴 위저즈와 맞붙는다. 워싱턴과의 대결에서 다소 고전했지만, 5차전 알 호포드의 극적인 버저비터로 승기를 잡은 후, 6차전도 접전 끝에 94-91로 승리하면서 40년만에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친정팀으로 복귀한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를 만났는데, 코버가 부상으로 아웃을 당하고, 호포드는 매튜 델라베도바에게 팔꿈치를 날려 퇴장당하는 등 안좋은 모습만 보여주며 스윕당하는 바람에 다소 아쉽게 시즌을 마쳤다.
2.4. 2015-16 시즌
시즌 초반에는 퐁당퐁당하며 중위권에 위치하다 12월 중순을 기점으로 저번시즌처럼 연승기류를 타고 있다.
카일 코버는 부진한 모습이지만, FA로 토론토간 더마레 캐롤 대신 스몰포워드를 보는 켄트 베이즈모어의 부상과 데니스 슈뢰더의 약진등이 겹치면서 현재 동부 2위를 기록중이다.
그러다 1월 말부터 부진하면서 또 아슬아슬하게 28승 22패로 3위중인데 제프 티그, 알 호포드, 폴 밀샙등 주전들이 트레이드 블록에 오르면서 트레이드 설이 솔솔 오가고 있다. 특히 폼이 조금 떨어지고 데니스 슈뢰더라는 대체자가 있는것으로 판단되는지 제프 티그가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데, 여기에 몇몇 팬들은 아직 상위순위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그래도 이후 20승 12패를 거두며 정규시즌을 48승 34패에 플레이오프 진출성공으로 마무리했는데, 문제는 같이 3~6번 시드를 경합하고 있던 샬럿 호네츠, 보스턴 셀틱스, 마이애미 히트가 똑같은 성적을 거두면서 4팀 동률이 되어버렸다(...) 결국 타이브레이커로 4번시드가 확정되었고, 5번시드인 보스턴 셀틱스랑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붙게되었다. 상대전적은 3승 1패로 호크스가 앞서있어서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호크스가 가져간다.
상성에서 앞섰던 보스턴이었기에 애틀란타 팬들도 나름 기대했고 실제로 원정 3,4차전에서 아이제아 토마스의 폭발에 패배하긴 했지만 홈 경기를 전부 다 가져갔고 6차전 원정에서 압도적인 야투감을 보여주며 시리즈 스코어 4:2로 승리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1958년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보스턴을 이긴것이기에 나름 의미 깊었던 승리. 2라운드 상대는 저번 시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만났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다.
하지만 리그 상위권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는 팀 답지 않게 클리블랜드에게 수많은 오픈 찬스를 허용했고, 거기에서 이어지는 무차별 3점 폭격에 무너지며 결국 다시한번 4-0 스윕패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팀 역사상 클리블랜드와 3번의 플레이오프 시리즈를 가졌는데 전부 4-0 스윕패를 당하며 천적관계에 울어야했다. 시리즈 4경기 합쳐서 3점슛을 무려 77개나 얻어맞았으며, 2차전 원정 경기에서는 상대에게 25번의 3점슛 성공을 허용하며 NBA 역사상 한 경기 팀 최다 3점슛 성공 기록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3차전 홈 경기에서는 클리블랜드가 21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지만 애틀란타도 16번의 3점슛을 성공시키며 양 팀 합쳐 최다 3점슛 성공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나 기껏 핵어작전으로 묶은 트리스탄 탐슨 대신 나온 채닝 프라이가 미친 경기를 펼치는 바람에 패배했다. 또한 리바운드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으며, 빅 3를 보유하고 있는 클리블랜드에 비해 애틀란타 쪽에서는 마땅한 4쿼터 해결사가 없었던것도 뼈아팠다. 그나마 4차전에서 제일 분전했지만 막판 데니스 슈뢰더의 돌파이후 슛이 트리스탄 탐슨의 클러치 블락에 막힌게 컸고, 이후 슈뢰더의 마지막 돌파도 실패로 끝나며 결국 1점차로 패배하고 말았다.
오프시즌에는 드와이트 하워드와 3년 7050만 달러에 계약했고, 켄트 베이즈모어와 4년 700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
2.5. 2016-17 시즌
클리블랜드를 상대하기 위해서, 데뷔 후 쭉 애틀란타에서 주전으로 뛰던 호포드와 티그가 떠나고 하워드와 데니스 슈로더가 그 자리를 메웠다. 하워드로 페인트존 강화를 노렸다. 결과 11월 중순까지 9승 2패로 상당히 좋은 페이스로 달렸다가 이후 1승 11패로 드라마틱하게 추락했으나, 12월 7일 연패를 끊은 후 17승 16패라는 무난한 성적으로 2016년을 마쳤다.'''타도! 클리블랜드'''
1월에 11승 4패의 호성적을 거두고 2월까지 잘 버티다 3월에 7연패를 하며 다시 위기를 맞았지만 4월에 동부 선두다툼을 하는 보스턴과 클리블랜드를 모두 잡아내며 10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4월 9일 클리블랜드와의 경기에서는 3쿼터까지 26점차까지 밀리며 가비지로 가던 게임이던걸 4쿼터에 44점을 퍼부어 추격에 성공, 밀샙의 버저비터로 연장까지 끌고간 다음 결국 1점차로 승리를 거두는 명경기를 만들었다.
4월 11일 살럿을 홈에서 격파하며 동부 5위를 확정지었고, 4위인 워싱턴 위저즈와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경기하는것으로 확정되었다. 연패와 연승 롤러코스터를 타며 거둔 정규시즌 최종성적은 43승 39패.
결국 워싱턴의 빠른 가드진을 앞세운 속도전을 이겨내지 못하며 2승 4패로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2.6. 2017-18 시즌
샬럿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하워드를 처분하고 마르코 벨리넬리와 마일스 플럼리를 받아왔다. 거기에 폴 밀샙은 FA를 통해 덴버로 떠났고, 팀 하더웨이 주니어도 뉴욕으로 보내면서 리빌딩을 시작했다. 이어 드웨인 데드먼을 데려왔고 얼산 일야소바와는 재계약했다. 최선을 다해 탱킹을 하는 시즌이 되고있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에는 일야소바마저도 웨이브하고 데니스 슈뢰더 등 주축 선수들의 출전시간을 조절해가면서 탱킹 행보를 노골화하고 있다. 오죽하면 댈러스, 시카고와 함께 사무국에서 주전을 고의적으로 제외하는 것에 대한 경고를 할 정도.
최종 성적은 동부 최하위인 24승 58패.
2.7. 2018-19 시즌
드래프트에서는 3픽을 받아 루카 돈치치를 지명했지만, 곧바로 5픽 트레이 영과 2019년 1라운드 픽을 댓가로 댈러스로 넘겼다. 컨텐더 팀으로의 이적을 원하던 데니스 슈뢰더가 OKC로 이적하였고, 주전 1번은 제 2의 스티브 내시를 꿈꾸는 트레이 영이 꿰어차게 되었다.
애틀랜타에서 시스템 농구를 꽃피운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은 높은 전술 역량과 고연봉으로 리빌딩 팀인 애틀랜타가 잡아 두기에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결국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과 계약을 해지하였고 부덴홀저 감독은 곧바로 밀워키 감독이 되었다. 새 감독으로 로이드 피어슨 필라델피아 76ers 코치를 선임했다. 팀 리빌딩에 일가견이 있는 그가 팀을 얼마나 재건할지 관심을 모은다.
예상대로 3승 12패로 시즌을 시작하며 또 한 번의 탱킹 시즌을 예고하고 있다. 리그에 적응하며 초기 부진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트레이 영과 고효율 농구로 소포모어 시즌을 잘 보내는 중인 빅맨 존 콜린스의 성장 정도가 볼만하다. 전반기 성적은 19승 39패로 동부 12위.
최종성적은 29승 53패, 동부 12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트레이 영은 댈러스 매버릭스의 루카 돈치치에 이어서 신인왕 투표 2위를 차지했다. 성적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트레이 영과 존 콜린스의 유망주 듀오가 잘 크고 있다는 게 위안이었던 시즌.
2.8. 2019-20 시즌
시즌 출발부터 악재가 터졌다. 단 5경기만 치른 상황에서 유망주 듀오의 한 명이었던 존 콜린스의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된 것. 25경기 출장정지의 징계가 주어졌고 존 콜린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흔한 약쟁이들의 변명급이라 싸늘한 여론을 돌리긴 어려웠다. 그래도 징계가 끝나고 돌아온 다음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대신 트레이 영은 눈부신 성장세를 이어갔다. 평균득점 29.6점으로 리그 4위를 차지했으며 평균 어시스트는 9.3개로 르브론 제임스에 이은 2위를 기록했다(!). 전년도에 신인왕을 두고 경쟁했던 루카 돈치치가 MVP 후보로 꼽힐 정도의 빼어난 성적을 거둔 것에 버금갈 정도의 개인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트레이 영은 이렇게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팀 성적이 약점으로 작용한 탓인지 올스타로도, 올 NBA 팀으로도, 올해의 기량발전 선수로도 뽑히지 못했다. 그리고 평득 30점을 넘긴 워싱턴의 브래들리 빌도 올스타와 올 NBA 팀에 들지 못한 상황이라 그다지 주목도 받지 못했다.
전술하였듯 팀 성적은 여전히 좋지 못한 상황. 20승 47패로 동부에서는 뒤에서 2등인 성적을 기록하고 있던 중 코로나 사태로 리그가 중단되어 버렸다. 그리고 올랜도 버블에서 재개된 이후에도 합류하지 못하고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11]
시즌 중간에는 4자 트레이드에 끼어서 센터인 클린트 카펠라를 얻어오기도 했다.[12] 하지만 카펠라는 부상을 안고 이적한 데다 시즌도 일찍 끝나서 호크스에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대신 다음 시즌부터는 카펠라-콜린스로 이어지는 트윈타워를 야전사령관 트레이 영이 이끄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13]
2.9. 2020-21 시즌
시즌 끝나고 유니폼 디자인을 바꾸면서 5년간 유지했던 형광색과 이별했다. 드래프트에서는 6번픽으로 수비가 좋다고 평가받는 USC의 포워드 온예카 오콩우를 뽑았다. 시즌 마감 이후 드래프트때까지 고든 헤이워드에게 관심을 표명한거 말고는 딱히 큰 루머 없이 조용히 지내다가, 드래프트 끝나자 마자 보그단 보그다노비치, 다닐로 갈리나리, 라존 론도, 크리스 던을 폭풍 영입했다. 팀의 젊은 코어들인 트레이 영과 존 콜린스를 받쳐줄 수 있는 훌륭한 영입이라고 평가받으며 동부 상위시드도 가능한 로스터를 구축해냈다.
시즌 초반엔 저 영입선수들 대부분이 부상에 시달리며 팀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팀의 핵심인 트레이 영도 모든 스탯이 소폭 하락했지만 클린트 카펠라가 괴수로 거듭나면서 중위권 싸움을 하고 있다.
3. 영구결번
'''9. 밥 페팃(Bob Pettit)''' (1954~1965) : 세인트루이스 시절 팀의 첫 우승을 안겨준 명 선수.
'''21. 도미니크 윌킨스(Dominique Wilkins)''' (1982~1994) : 휴먼 하이라이트 필름이라 불린 애틀랜타 호크스의 최고 스타.
'''23. 루 허드슨(Lou Hudson)''' (1966-1977) : 6차례 올스타에 선정되며 밥 페팃 시대 이후의 호크스를 이끌며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를 풍미한 슈터.
'''44. 피트 마라비치(Pete Maravich)''' (1970-1974) : 명성을 쌓은 재즈와는 달리 호크스에서는 팀원들의 따돌림과 농구전술의 차이때문에 오래 활약하지 못했지만 2017년에 영구결번되었다.
'''55. 디켐베 무톰보(Dikembe Mutombo)''' (1996-2001) : 올해의 수비수상을 4번이나 챙겼고, 블록슛 역대 2위에 빛나는 수비의 달인.
'''59. 카심 리드(Kasim Reed)''' (2010-2018) : 전 애틀랜타 시장.
'''-. 테드 터너(Ted Turner)''' (1977-2001) : CNN의 창립자로 애틀랜타 호크스의 구단주였던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결번했다. 과거 17번이 결번이었지만, 현재는 예전 로고에 이름을 새겨서 기념하는 중.
4. 마스코트
[image]
마스코트는 과격한 인상(?)의 '''해리 더 호크(Harry the Hawk)'''
키스 타임에 여성관객들과 코믹한 장면을 연출하거나, 잇달은 마스코트 폭행사건으로 악명이 높은 로빈 로페즈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등 NBA 마스코트들 중 가장 화끈한 편
해리의 분노
5. 2020-21 시즌 선수단
6. 역대 성적
7. G 리그 산하팀
칼리지파크 출신 래퍼 2 Chainz가 이 구단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8. 기타
- NBA 역사상 가장 많이 로고를 바꾼 팀이기도 한데, 1946년 창단 이래 11번이나 로고를 변경했다.[18] 로고를 가장 적게 바꾼 팀은 시카고 불스로 창단시에 썼던 붉은 황소 로고를 변경 없이 쓰고 있다.
- 독일 분데스리가의 FC 바이에른 뮌헨의 마츠 후멜스, 조지아 주 출신 3인조 힙합가수인 미고스도 애틀랜타의 팬이다.
[1] NBL 출범함.[2] NHL 애틀란타 플레임스(현 캘거리 플레임스)와 공용[3] NFL 애틀란타 호크스와 공용[4] 1999년부터 2011년까지 NHL 애틀랜타 스래셔스(현 위니펙 제츠)와 공용[5] 배우 제이미 거츠의 남편이다.[6] 보정 속옷 기업인 스팽스(Spanx)의 창업자[7] 세라 블레이크니의 남편이자 마키스 제트의 창업자[8] 물론 로이야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일찍 마쳤긴 했지만 그 당시 거의 최고의 픽이라 주목 받았다.[9] 호크스가 드래프트를 제대로 하고 제대로 꾸렸다면 크리스 폴 - 조 존슨 - 조쉬 스미스라는 빅3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10] 이 시즌부터 쓰게 되는 로고, 과거 1972년부터 1995년까지 썼던 로고를 바꾼 모양이다. 팩맨을 닮아서 팩로고라고 불리기도 하였다.[11] 리그 중단 전 이미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되었던 팀들은 버블에 초대받지 못했다.[12] 휴스턴에서 카펠라를 트레이드한 것은 오프시즌에 영입한 러셀 웨스트브룩과 카펠라가 서로 맞지 않았기 때문. 둘 다 외곽슛이 약해서 동시에 나오면 코트의 스페이싱이 급격히 좁아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웨스트브룩은 영입해 온 지 얼마되지 않은데다가 연봉이 4천만 달러가 넘어 트레이드가 힘드므로 카펠라를 대신 트레이드한 것.[13] 유망주 듀오 두 명이 모두 수비가 약한 상황이라 카펠라의 곹밑 수비력은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카펠라는 골밑에서 공을 받아 마무리하는 능력만큼은 좋은 선수라 트레이 영의 어시스트 적립을 증가시켜줄 수도 있다.[14] 디비전 순위가 의미가 없어진 2015-16 시즌부터는 컨퍼런스 순위 기재.[15] 1949-50 시즌까지는 서부, 중부, 동부 디비전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그 다음 시즌부터는 팀의 수가 줄면서 서부, 동부 디비전으로 구분되었다.[16] 이 시즌 부터 서부, 동부 컨퍼런스로 구분되었다.[17] 1974-75 시즌부터 플레이오프 1라운드가 생겼다.[18] 2위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및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총 10회), 3위는 뉴욕 닉스 및 새크라멘토 킹스(총 8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