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탄 사건
馬嘶灘 事件
1. 개요
1924년 5월 19일 참의부 소속 독립군이 평안북도 강계군[1] 고산면 남성동 마시탄(馬嘶灘) 강변에서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斎藤実)를 저격한 사건. 마시탄 의거라고도 부른다.
2. 상세
1919년 제3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는 1924년 6월에 열리는 제국회의를 앞두고 자신의 치적을 선전하는 동시에 국경지방의 안정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해 경무국장 마루야마 쓰루기치(丸山鶴吉) 등을 거느리고 한반도 국경지방 순시를 계획하였다.
한편 이 정보를 입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소속 참의부에서는 총독을 사살하여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전세계에 알리고 문화통치의 허구성을 폭로하기로 하였다.
참의부의 참의장 겸 제1중대장 채찬(蔡燦)은 총독암살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제2중대 제1소대를 특공대[2] 로 선정하였고, 제1소대장 이의준[3] 참위는 평북 강계군 마시탄 강변의 중국측 대안인 집안현 사랑곡 팔합목 절벽 위에 대원들을 매복시켰다.
5월 19일 오전 9시경, 총독순시선은 총독과 60여 명의 경찰을 태우고 압록강 하류를 향하고 있었고 절벽 위에 대기하던 독립군은 순시선이 근접하자 일제히 사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호위선 비조환(飛鳥丸)의 경비병들이 반격을 가하면서 교전이 벌어졌고, 그 와중에 사이토 일행을 태운 웅비호(雄飛號)가 도주하면서 사이토 총독 암살은 실패로 끝났다.
3. 영향
마시탄 사건은 『독립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우리 국민의 환호를 받았으며 독립군의 의기를 세계에 크게 떨치게 하였다.
하지만 제1소대장 이의준은 1926년 말 중국 관헌에 잡혀 일제로 신병이 넘어가고 1929년 1월 25일 일제의 사형집행으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