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고려)

 



'''고려태조의 사촌동생
만세
'''
'''작위 '''
영해공(寧海公)
'''향직 품계'''
대광(大匡)
'''성씨'''
개성 왕씨(開城 王氏)
'''이름'''
만세(萬歲)
'''생몰연도'''
? ~ ?
1. 개요
2. 설명
3. 만세의 가계
4. 역임 관작


1. 개요


후삼국시대의 인물. 고려태조의 사촌동생으로 '대광 만세', '영해공 만세'로 등장한다.

2. 설명


후삼국시대 후반부인 932년, 후백제의 해군장군 상애가 이끄는 수군이 서해예성강을 통해 대우도(大牛島)를 공격하자 여기에 맞서 싸웠지만 큰 패배를 기록했다. 대우도는 고려의 수도 개경과 가까웠기에 태조 왕건은 이 패전 소식을 듣고 우려했으며, 유금필 등 호족들의 지원으로 겨우 막았다.[1]
이렇게 칠천량 해전에 맞먹는 패배를 내고도 딱히 큰 책임을 지진 않았는지, 3년 뒤 935년 견훤이 고려에 귀순할 때 장군 유금필과 함께 전선 40척을 이끌고 바다에서 그를 맞이했다.[2]

3. 만세의 가계


만세는 성씨가 없는 듯한데, 늘 이름인 만세로만 등장한다. 하지만 '고려사 왕규 열전', '왕충 묘지명'의 기록을 보면 만세는 태조 왕건의 사촌동생이라고 명시돼 있다. 왕건의 사촌동생은 왕신, 왕육, 왕식렴 등 꽤 많았는데 만세도 이들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4. 역임 관작


만세의 향직 품계는 ''''대광(大匡)''''으로, 2품 1등위 품계다. 대광은 보통 왕순식 같은 유력 호족이나 왕식렴 같은 고위 왕족만이 봉해졌는데, 만세는 태조의 사촌으로서 대광에 봉해진 듯 하다.
고려사 왕규 열전이나 왕충 묘지명엔 ''''영해공(寧海公)''''이라는 작위도 나온다.
[1] 고려사 유금필 열전 출처.[2] 수도 바로 앞인 예성강에서 졌음에도 불구하고 후백제국왕 견훤을 맞이하는 사신으로 선택됐다는 점은 만세가 당시 왕건에게 가까운 인물이었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