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식렴
1. 개요
고려 왕조의 왕족이자 무장. 고려 세조 왕륭의 동생 왕평달의 아들이며 고려 태조 왕건의 사촌동생이다.
왕건은 형제자매는 물론 이복형제조차 없는 외아들이었기에 사촌 동생들을 친형제처럼 대하였을 것이고 실제 기록에서도 그렇게 추정된다. 왕식렴은 그 사촌들 중 왕건 다음인 둘째이다.
2. 생애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궁예의 태봉 시절 때부터 관직 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보이는 데 특별히 왕건이 북진을 하여 고구려의 옛 수도인 평양까지 되찾은 이후 그 곳을 왕식렴에게 맡겼다. 이를 통해 사촌 형인 왕건으로부터 상당한 신임을 받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서경을 맡게 된 이후 청천강 쪽으로 영토를 넓혀 안수진, 흥덕진을 쌓는 등 고려의 북진에 공을 세웠다.
이후 태조 왕건이 붕어하고 그 뒤로 혜종이 등극한 후에는 왕실의 어른 대접을 받게 되었는데 혜종 붕어 시점과 맞물려 왕규가 반란을 일으키자 왕건의 두 아들이자 자신에게는 조카가 되는 요, 소 두 왕자와 함께 난을 진압하여 왕규를 처형한 후 요를 임금 자리에 올리니 그가 바로 정종이 되었다. 다만 이 왕규의 난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다. 이미 권력에서 배제된 채 유배를 떠난 박술희를 왕규가 굳이 암살할 이유가 있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 왕식렴이 서경에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했던 걸로 볼 때 왕규를 제거하고 왕자 요를 임금으로 세우기 위해 박술희와 왕규를 죽이고는 기록을 조작한 것이 아니냐는 추정도 있다. 우리가 왕규의 난이라 알고 있는 그 사건이 사실은 왕식렴의 난이 아닌가라는 추측이 바로 그것.
조선 시대에 서거정이 편찬한 동문선에 정종이 왕규의 난 진압 후 왕식렴에게 광국익찬공신 공신호와 대승 품계를 내리는 조서(詔書)가 남아있다. 조서에서는 정종이 왕식렴을 매우 아꼈다는 것이 드러난다.
어쨌든 정종의 등극에 기여한 왕식렴의 입김 때문인지 정종은 서경 천도를 천명하며 이를 실행에 옮겼고 이 정종의 치세 때 왕식렴의 권력은 더욱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리한 서경 천도 공사에 일반 백성은 물론 개경 호족들까지 거세게 반발하는 데다 왕자 소마저도 서경 천도를 반대하는 등 정종의 치세가 혼란해진 가운데 949년 사망했다.
결국 두 달 뒤에는 그가 옹립했던 정종도 붕어했고 끝내 왕소가 즉위해 광종이 되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광종이 혜종과 정종의 아들들인 흥화군과 경춘원군을 밀어내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 것이 왕식렴과의 대립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무리한 천도로 개경 호족들이 반발하는 상황에서 대표격으로 반대했던 사람이 왕소였기 때문. 당연히 서경 천도를 반대하는 개경을 기반으로 잡은 호족이 왕소를 지지했을 것이고 이로 인해 왕소가 임금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3. 역임 관작
4. 창작물
고려 초의 중요 인물인 까닭에 태조 왕건과 제국의 아침에 모두 등장했다. 처음 등장한 태조 왕건을 제외하면 광종이 주인공인 까닭인지 권력을 탐하는 흑막으로서 등장하는 경우가 잦다.
태조 왕건에서는 정국진[2] 이 열연했다. 왕건의 사촌으로 정보 수집 등 여러가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견훤과의 강화로 교환된 인질인 진호 암살에 관여하기도 했다.[3] 궁예 시절에는 사촌형 왕건이 장군으로 전장을 누빌 때 수단령(수군 지휘관)으로 근무했다. 태조 즉위 후 서경을 총괄하면서 패서 호족의 대표가 되어 유금필과 갈등을 벌이는 모습도 나왔으나[4] 왕건의 꾸지람을 듣고 뉘우치고 갈등을 해소하였다.
제국의 아침에서는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 무인시대에서 정중부 역을 맡은 김흥기가 연기했다. 전작에서의 뉘우침이 페이크였는지 제대로 흑화하여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해 노련한 야심가로 변신하였다. 배우의 수염 분장도 턱수염이 풍성한 분장에서 가운데로 몰린 턱수염 형태로 바뀌었기에 노회한 정략가의 인상을 물씬 풍긴다. 혜종이 붕어하자 서경의 군세를 동원, 패서의 호족들과 합세하여 개경을 점령한 후 왕규를 비롯한 관료들을 도륙내고 정종을 등극시킨 후 스스로 집정이라는 관직을 만들어 취임해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북벌을 위해 서경 천도를 자신의 일생일대의 사업으로 생각해 추진했는데 공역을 가혹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공역에 동원된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켜버렸고, 바로 얼마 전까지 난세였던지라 거의 대다수가 전직 군인이었기 때문에 이들은 순식간에 잘 조직된 반군이 되어버려 서경 공역은 실행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들을 무리하게 진압하려던 아들은 도리어 죽임을 당하게 되고 직접 서경으로 향했다가 아들이 전사했다는 보고를 받게 된다. 이후 서경을 둘러보는 와중 몇 차례 가슴에 통증을 느끼게 되고 서경 공역장이 불바다가 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아[5] 심장발작을 일으켜 그대로 낙마해 급사한다.
본래 기존의 역사 교양 서적에서는 간신 왕규를 물리친 충신으로 묘사될 때가 많았지만 제국의 아침을 기준으로 점차 권력에 대한 야심이 가득한 권신으로 묘사되는 추세로 기울고 있다.
2015년 MBC에서 방영한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는 이덕화가 연기했는데 여기서는 권력을 위해 사촌이기도 한 왕건을 음해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실제 기록에는 이러한 사실이 없지만 왕건의 뜻과 달리 혜종을 지지하지 않고 왕요를 지지해 정종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개연성은 어느 정도 있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SBS에서 방영한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에서는 야인시대에서 도꾸야마 역할을 맡았던 배우 박정학이 맡았다.
[1] 세조 위무왕의 남동생. 1품 1등위 삼중대광 품계를 가졌다.[2] 제국의 아침에서는 왕욱으로 나온다. 야인시대에서는 이만섭으로 출연했다.[3] 진호의 반대 급부로 후백제에 잡힌 인질은 다름아닌 왕식렴의 동생인 왕신이었다. 왕건과 견훤의 강화로 인해 고려가 군사를 일으키지 못하자 장수들은 이 상황을 굴욕적으로 받아들이고 타개할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는데 이 때 최응이 이에 대한 계책으로 진호 암살을 제안했고 옆에 있던 유금필과 박술희에게 극약을 건네주었다. 유금필과 박술희는 왕식렴의 집을 찾아가 진호의 목숨을 달라고 했고 왕식렴은 하나뿐인 동생을 잃을 각오를 한 채 눈물을 흘리며 진호 암살에 동의하였다. 값없이 죽을 목숨을 값있게 죽게 하자는 두 장수의 설득을 받아들이면서 동생 걱정에 울먹이는 왕식렴의 모습은 명장면이다.[4] 왕식렴과 유금필이 서경으로 가던 중 말갈 이민족들이 자신은 무시하고 유금필에게만 만세를 올렸다. 사실 만세를 황제에게만 올리는 것인데 이전부터 유금필이 신임받는 것을 질투해온 왕식렴이 이를 꼬투리삼아 홍유 등 관료들과 함께 유금필의 치죄를 건의했다. 왕건은 죄를 묻지 않으려 했으나 관료들 간의 총애를 둘러싼 불편한 기류를 없애는 한편 신료들에게 경계로 삼게 하려고 유금필을 곡도로 유배보낸다.[5] 이전까지는 언제나 냉정하고 교활한 면모를 보여온 왕식렴이 말을 더듬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