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타 겐사쿠

 


'''치바현지사'''
'''민선 제16-17대'''

'''민선 제18-20대'''

'''민선 제21대'''
도모토 아키코

'''모리타 겐사쿠'''

현직
'''일본 중의원 (도쿄 4구)'''
'''제41대'''
아라이 쇼케이[1]

'''제41-42대
모리타 겐사쿠'''

'''제43대'''
나카니시 가즈요시
'''민선 제18~20대 치바현지사
(もり((けん(さく
모리타 겐사쿠
'''
'''본명'''
스즈키 에이지 ((すず((えい()[2]
'''출생'''
1949년 12월 16일 (74세)
[image] 도쿄도 오타구 쿠가하라
'''국적'''
[image] 일본국
'''신체'''
175cm, O형
'''학력'''
사립 세이소쿠 고등학교 졸업
메이지가쿠인대학 법학부 중퇴
'''직업'''
정치인, 탤런트
'''소속 정당'''
[3]
'''현직'''
치바현지사
'''경력'''
탤런트
도쿄도 선거구 참의원
도쿄도 제4구 중의원
민선 제18~20대 치바현지사
1. 개요
2. 생애
2.1. 연예 활동
2.2. 정치 활동
3. 소속 정당
4. 기타


1. 개요


일본의 가수, 배우, 탤런트 출신 정치인. 치바현지사.

2. 생애


도쿄도 오타구 쿠가하라에서 태어나 4세 때 같은 구의 히가시야구치로 이사를 가 학창시절을 보냈다.

2.1. 연예 활동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입시에 실패하자 댄싱팀에서 활동하던 누나가 동료들을 소개하는데, 동료들 중 한 명인 후쿠다라는 사람의 제안으로 노래 레슨을 받게 되었다. 3달 뒤 여배우 마유즈미 준의 히트곡을 영화화한 영화에 출연했으며, 이후 학원 생활을 그린 다수의 텔레비전 드라마에 출연하게 되면서 ‘청춘의 거장’이라는 별명도 얻는다. 배우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자 대학을 중퇴했다.

2.2. 정치 활동


배우로 활동하던 가운데 1992년 정치가 오우치 게이고의 제안으로 제16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당시 도쿄도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선거 당시 민사당의 추천을 받았는데, 막상 당선 후 모리타는 민사당에 입당하지 않아 민사당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민사당 해산 뒤에는 자민당에 입당했다.
참의원으로 활동하다가 1998년 아라이 쇼케이의 자살로 열린 도쿄도 제4구 중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중의원이 되었다.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다가 2005년 뜬금없이 연고도 없는 치바현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그의 출신지와 지역구 모두 도쿄인 것으로 볼 때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이지만, 아무래도 당시 도쿄도지사가 같은 자민당 출신인 이시하라 신타로인지라 연고가 없는 치바현지사 선거에 출마한 듯하다. 실제로 이시하라 신타로도 당시 가나가와현지사였던 마쓰자와 시게후미와 함께 모리타를 지지했다. 하지만 연고가 없다는 단점 때문이었는지 불과 0.3% 차이로 아깝게 낙선한다. 4년 뒤 2009년 치바현지사 선거에 다시 출마해 민주당, 사민당 등의 추천을 받은 요시다 다이라 후보를 꺾고 당선되어 치바현지사가 되었다. 이후 2013년, 2017년 선거에서도 당선되어 현재 3연임 중이다. 3기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하네다 공항 허브공항화 추진에 반발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는 스가 요시히데에 대해 "정책 통으로 행동력과 결단력이 있다" "이런 때 일수록 주위에서 원한 남자"라고 말했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2 - 1994
정계 입문

1994
입당

1994 - 2005
입당

2005 -
현지사 선거 출마로 탈당

4. 기타


  • 탤런트 출신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다마키 데니 오키나와현지사와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둘 다 정치 활동 중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예명을 사용한다는 점과 중의원 경력이 있는 것도 같다. 다만 모리타는 자민당, 다마키는 민주당 출신으로 정치 성향은 차이가 있다.
  • 사이비 종교 행복의 과학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모리타가 2009년 치바현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전인 2008년에 행복의 과학에서 발행하는 잡지가 그를 다룬 내용을 특집으로 연재하였으므로 사실인 듯하다. 다만 모리타가 행복의 과학 신자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 태어났을 때 부모가 그의 이름을 원래는 '젠지(善治)'라고 짓고자 했으나 근처에 동명이인의 고인이 있어서(...) '에이지(栄治)'라고 지었다 한다.
  • 1990년에 치바현 산부군 시바야마마치에 '모리타주쿠(森田塾)'라는 사저를 지었다고 한다.
[1] 임기 중 사망[2] 법적 이름이며, 실명을 써야 할 경우에는 이 이름을 쓴다. 이는 모리타와 같은 탤런트 출신 정치인인 다마키 데니(본명: 다마키 야스히로) 오키나와현지사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스즈키 에이지’로 검색해도 이 문서로 올 수 있다.[3] 중의원 시절에는 자유민주당 소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