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공군 CT-43 추락 사고

 


1996 Croatia USAF CT-43 crash
(United States Air Force Flight IFO-21)
'''항공사고 요약도'''
'''발생일'''
1996년 4월 3일
'''유형'''
CFIT
'''발생 위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공항 근처
'''기종'''
보잉 CT-43(B737-200 Adv)
'''운항사'''
미국 공군
'''기체 등록번호'''
73-1149
'''출발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투즐라 국제공항
'''도착지'''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공항
'''탑승인원'''
승객: 29명
승무원: 6명
'''사망자'''
'''35명 전원 사망'''
1. 개요
2. 사고 과정
3. 사고 조사
4. 사고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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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고 과정
3. 사고 조사
4. 사고 이후


1. 개요


1996년 발생한 미 공군의 비행기 추락사고
[image]
사고 이전 밀덴홀에서 찍힌 사진.

2. 사고 과정


1996년 4월 3일 수요일,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공항에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크로아티아 수상과 크로아티아 주재 미국대사는 공항에서 대기중이었고, 폭우로 인해 민간항공기의 이착륙이 전부 금지되었으나, 조종사 애슐리 J.데이비스가 조종하는 IFO-21[1]은 공군소속 비행기여서 예외적으로 두브로브니크 공항에 착륙 준비중이었다. 당시 IFO-21에는 통솔자 미 상무부 장관 론 브라운[2]을 비롯해 미국 고위인사들이 다수 탑승하고 있었다. 오후에 두브로브니크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폭우로 인해 지체되고 있었고, 크로아티아 국경에 다다랐을 때, 공중조기경보기가 허가된 항로를 벗어나고 있으니 돌아가라는 경고를 전달한다. 허가된 항로를 비행하려면 서쪽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공항에 미리 착륙한 9A-CRO가[3] 회항할 수 있는 비행 루트를 지시해 주었다.
이후 공항에서 신호를 받고 착륙을 시도하던 IFO-21기는 오후 3시 '''공항과 연락이 끊겼다.''' 레이더가 없어서 위치를 파악할수 없는 상황에서 크로아티아 주재 미국대사는 교신이 끊겼단 소식을 듣고 국무부 작전센터에 연락해 미군에게 구조수색 작업을 요청했다. 다른 관제소에 IFO-21기와 연락된 곳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연락을 받은 곳은 없었다. 미군은 항공기의 항로를 중심으로 수색을 시작했고. 밤 7시 30분, 주민의 신고를 받고 올라간 산[4]에서 비행기의 잔해를 발견했다. 꼬리부분에서 생존자를 발견했으나 척추가 골절된 상태였고 병원으로 이송 도중 숨졌다. 그 외엔 생존자가 없었고 결국 탑승객 35명이 '''전원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야 했다.

3. 사고 조사


당시 일반항공기의 비행기 규정이 공군기에는 적용되지 않아서 IFO-21에는 '''블랙박스가 없었다.''' 결국 파편과 비행에 관련된 사람들만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당시 IFO-21은 공중조기경보기의 레이더 기록을 전달받은 대로 비행했다. 그러다가 20km를 앞두고 항로를 이탈한 뒤 일직선으로 비행하다가 산에 추락하며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방위오차는 약 7도 였다. 조종사는 관성항법장치로 착륙지점 위치를 탐색했는데 이 과정에서 무선 표지국을 찾지 않았고, 이것이 사고를 부른 것으로 드러났다. 지도에는 최소 하강고도가 정확히 나와 있지 않았고, 지도상의 하강고도는 미국 항공기준법에 따라서 산악지대에서는 2,800피트(853.4m)를 넘어야 했으나 지도에는 2,100피트(640.1m)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후 조사위원회에서는 이번 비행을 책임진 공수비행단의 작전 사령관 존 마즈로브스키 대령을 심문했다. 미 공군 지시사항에 의하면 외국에서 진행되는 모든 절차는 공군 조종사가 비행하기 전에 미국의 기준이나 자체평가를 통과해야 했으나 두브루브니크 공항은 공군이 승인한 공항이 아니었고, 착륙지도 또한 검사하지 않아 최소하강고도가 다르게 표기된 것으로 드러났다. 승인받은 공항만 이용시 임무 수행에 심각한 제약이 따르고 모든 공항을 검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 분명했기에 두브루브니크 공항을 포함한 몇 곳은 제외했는데 미국 국방부는 공항을 제외하는걸 허가하지 않은 상태였다. 문제는 이러한 상태에서도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공항에 계속해서 이착륙하고 있었던 것이다.

4. 사고 이후


이후 150건의 심문을 포함한 모든 조사가 끝났고, 추락사고 최종 보고서는 무려 7,000페이지를 넘었다.
장례식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이 진행했다. 임무 책임자인 존 마즈로브스키 대령은 강등되어 소령이 되었으며, 그 외에 고위급 인사 2명이 해임되었다. 현재 두브로브니크 공항은 계기착륙장치 장비를 설치했으며, 모든 공군 항공기는 블랙박스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되었고, 고위 외교관이 탑승해도 국방부의 승인없이는 이착륙을 할 수 없게 되었다.

[1] 특수제작된 보잉 737기로 미군 공군에서 운영중이다.[2] 미국 최초의 흑인 상무부 장관이었다.[3] 당시 공항은 과거 세르비아군에게 공격당해 레이더를 포함한 상당수의 시설이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무선 표지국에게서 신호를 받아가며 비행해야 했다.[4] 공항으로부터 약 3km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