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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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르비아는 동남유럽 판노니아 평원에 위치한 내륙국이다. 수도는 베오그라드(Београд / Beograd)이다.[3] 영토의 대부분이 남유럽으로 분류되지만 북부 보이보디나 자치주는 중앙유럽으로도 간주된다.
코소보는 세르비아에서는 코소보 및 메토히야 자치주로 간주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독립했다. 세르비아 정부에서는 코소보의 독립을 인정치 않는 상태로, 코소보가 세르비아의 일부인지 독립국인지는 세계 각국이 각자 다르게 파악하고 있는 대표적인 미승인국이다.
2. 상징
2.1. 국호
세르비아어 국호는 '스르비야(Србија / Srbija)'이다.
'세르비아(Serbia)'라는 이름은 주 민족인 세르비아인(Срби / Srbi)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세르비아인이라는 민족명에 대한 어원은 고대 슬라브어인 *sьrbъ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로마인, 슬라브인, 그리스인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이 지역을 세르비아와 비슷한 이름으로 칭했기에 어원의 명확한 의미를 알기가 힘들다.
2.2. 국기
국장 빼면 러시아 국기를 상하반전한 것과 같은데 이렇게 된 건 적-청-백이 슬라브인의 상징색으로써 슬라브 전역에서 통용되었기 때문이고, 범슬라브주의의 영향이기도 하다. 또한 네마니치 왕조의 스테판 블라디슬라브(Стефан Владислав Немањић, 1234–1243년 재위)가 적-청 배열의 깃발을 쓴 데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현대의 적-청-백 색깔 배열은 근대에 나타난 것이다. 그 전에는 시대별로 다양한 디자인의 깃발을 썼다. 이후, 세르비아의 적-청-백 깃발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다만 시대 별로 문양이나 깃발 디자인에 사용된 색깔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세르비아 공국 시절에는 단순히 적-청-백 깃발이 사용되었고, 세르비아 왕국 때에는 세르비아 왕실 문양에 휘장이 합쳐진 형태인 문양이 가운데에 놓였다. 시간이 흘러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적-청-백 깃발 한 가운데에 단순히 붉은 별만 박았다.[4] 이 때에는 몬테네그로도 세르비아와 같은 깃발을 썼다. 그러다 유고 연방이 무너지자 세르비아는 2004년까지 공국 시절처럼 단순히 적-청-백 가로 줄무늬만 들어간 깃발을 썼다.[5] 그리고 2004년에 깃발에 다시 세르비아 민족 상징을 집어 놓았다. 2010년에 현재 깃발이 제정되었는데, 전체적으로는 2004년 것과 큰 차이는 없으나 붉은색, 파랑색 채도를 바꾸어 예전에 비해 깃발이 좀 어두워 보인다.
국장이 공화국치고는 특이한 편인데 원래 왕관이 있는 형식의 국장들은 주로 서양 왕국의 국장에서나 쓰이는 형식이다. 자신들이 옛날 세르비아 왕국을 계승한다는 명목으로 비슷하게 한 거겠지만. 세르비아의 이웃나라들인 불가리아, 몬테네그로, 헝가리도 공화국이면서도 왕관이 있는 국장을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나라들도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기에 군주국이기도 했고...
2.3. 국가
3. 역사
4. 군사
5. 경제
6. 정치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박살나면서, 유고슬라비아 공산당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지도 아래 세르비아 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세르비아 급진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2000년까지 집권하였다. 밀로셰비치는 유고슬라비아 전쟁과 코소보 전쟁에서 연달아 패배하고, 2000년 세르비아 대통령 선거에서 3선에 도전했다가 야당 후보한테 밀리자 부정선거를 자행하다가 걸려서 결국 축출되었다. 여기서는 밀로셰비치 축출 이후의 세르비아 정치에 대해 다룬다.
2001년 세르비아는 헌법을 뜯어고쳤다. 세르비아는 명시적으로 의회는 단원제, 행정부는 의원내각제를 구성하고 있다. 세르비아의 의회는 국민의회(Народна скупштина / Narodna skupština)라고 한다. 세르비아 국민의회는 250석이며, '''명시적으로 126석 이상을 차지해야''' 내각을 구성할 수 있다. 세르비아의 의회는 재적 단순 과반수로 모든 것을 의결할 수 있다. 헌법 개정안도 의회 과반수 찬성을 한 이후 국민투표를 통과시키면 된다. 개헌 과정에서 세르비아의 대통령은 아무것도 관여할 수 없다. 세르비아는 100%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이며, 정당명부 순위는 정당 내부의 전당원투표 경선으로 정하도록 정해져 있다.
세르비아의 대통령은 의회의 투표가 아닌 국민 직선제로 선출한다. 세르비아 대통령은 세르비아 의회의 안건에 대해 1회에 한해 거부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의회의 재의결 허들이 높아지거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르비아 대통령의 거부권은 사실상 봉쇄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세르비아의 정치는 전형적인 의회제를 따르고 있다.
2020년 4월 27일 세르비아에서 총선을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2020년 6월 21일로 연기했다. 2020년 세르비아 국민의회 총선거 문서 참고.
보이보디나 자치주는 세르비아 정부와 별도의 자치정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선거 역시 따로 시행한다. 보이보디나 자치주 역시 의원내각제이며, 의원 수는 120석이다. 61석을 차지하면 과반수가 된다.
지방자치제도는 일찍부터 발달했다. 대한민국 전국동시지방선거와 달리 세르비아의 지방선거 일정은 각 지역마다 다르다.
6.1. 선거
- 세르비아 대통령 선거
- 2017년 세르비아 대통령 선거
- 세르비아 국민의회 총선거
- 보이보디나 자치주 총선거
- 2016년 보이보디나 자치주 총선거
7. 언어
세르비아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보이보디나에서는 세르비아어를 포함해서 루신어, 헝가리어 등도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6] 예전에 코소보가 포함되었을 때는 알바니아어를 사용자도 많이 있었지만,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는 알바니아인이 많이 줄어들었다. 현재 코소보에서는, 일부 세르비아 마을에 한해서만 세르비아어가 사용되고 있다. 또한, 세르비아 남부에 있는 몇몇 알바니아 마을에선 알바니아어가 사용된다.
8. 종교
대부분의 세르비아인들이 세르비아 정교회를 믿고 있다. 그리고 보이보디나에서는 개신교를 믿는 주민들이 일부 있고 세르비아 내 크로아티아인들은 천주교를 주로 믿고 있다. 세르비아 내 보슈냐크인들과 상당수의 알바니아인들[7] 그리고 터키인들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9. 문화
종교적으로는 정교회가 대다수이며, 가톨릭과 이슬람 인구도 있다(주로 보스니아계 사람들이 믿는다). 종교의 자유는 보장되고 있다. 종교인들의 인구 비율도 서유럽 국가들보다 높으며, '''로마 제국 시절부터 이어져 온 세르비아 정교회는 세르비아 민족의 정체성''' 역할을 한다.
세르비아 정교회는 1879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에 의해 독립을 인정받아 총대주교좌 교회로 격상되었다. 세르비아 정교회의 수장인 베오그라드 총대주교가 지닌 공식 직함은 페치의 대주교 겸 베오그라드와 카를로브치 관구장(Архиепископ пећки, митрополит београдско-карловачки)이다. 초대 대주교는 네마니치 왕가 출신의 성 사바 1세(Свети Сава I Немањић Српски, 1219–1233)이며, 현재 총대주교는 이리네이(Патријарх српски Иринеј, 2010–)이다. 정교회 내에서 베오그라드 총대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모스크바에 이어 서열 6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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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의 수도인 베오그라드에는 발칸 반도에 위치한 정교회 건축물 중 그 규모가 가장 큰 성 사바 대성당(Храм Светог Саве / Hram Svetog Save)이 위치하고 있다. 발칸반도에서 제일 큰 성당, 전 세계 정교회 성당 중 규모가 가장 큰 것 중 하나로 분류되는 이 건축물은 지상에서 꼭대기까지 높이가 82미터, 동서남북의 각 방향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종탑 높이가 40미터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축물로 정중앙에 위치한 돔형 지붕의 경우 무게가 400톤에 달하며 그 돔형 지붕 한가운데 위치한 금박이 입혀진 십자가의 경우 높이가 12미터, 무게가 4톤에 달한다. 금박이 입혀진 십자가의 경우 성당 외부 곳곳에 총 18개가 더 위치하고 있으며 성당의 전체 면적은 7,371 평방미터이다.
2019년 현재까지도 실내 '''흡연에 관대'''한 편. 거의 한국 사람들이 커피 마시는 수준으로 식당 안에서 담배를 핀다. 실제로, 세르비아내에서 담배 재떨이가 없는 카페와 음식점을 찾기가 힘들 정도. 일부 식당이나 카페의 경우, 금연 자리가 있지만 칸막이도 없고 한쪽 구석에 금연좌석을 밀어넣은 수준. 마치 맥도날드에서 햄버거와 콜라가 한 세트메뉴인 것 처럼, 일부 카페에서는 담배 한 개비와 커피를 하나의 세트메뉴로 팔기도 한다.
세르비아의 인접국가들인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루마니아, 헝가리와는 달리 '''키릴문자가 제1 문자'''라서[8] 사전 정보 없이 입국한 여행자들은 당황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키릴문자보다는 라틴문자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9.1. 음식
의외로 동유럽 국가들이 그렇듯이 먹는 음식 값이 엄청나게 싸다. 실제로 세르비아에서 체류하고 있는 한국 네티즌의 증언에 따르면 구유고 연방에 속해있던 주변국가들과 피터지게 전쟁까지 벌였고,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유엔 등 국제사회와 서방권의 경제 제재를 받았던 적이 있어서 물가가 비싸거나 현재 한국 물가와 대등소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 나라에 와서 살림살이 해보니까 슈퍼마켓이나 식당에서 모두 식재료나 음식 모두 물가가 한국에 비하면 저렴했다고 한다. 특히 쇠고기와 닭고기, 돼지고기의 경우 7000원에서 5000원, 3000원 남짓이라고 증언했다. 다만 흡연에 관대한 국가답게 주방장이 담배 물고 조리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으므로 이런 점에 민감한 사람한테는 불편할 수 있다(...).
주요 요리로는 아침, 점심에 먹는 페이스트리 빵의 일종인 부렉과 다진 쇠고기와 양고기, 돼지고기를 모양을 내어서 불에 구운 육류요리인 플예스카비차, 돼지고기와 송아지고기를 치즈와 빵가루에 입혀서 기름에 달군 팬에 조리하는 육류요리 카라조르제바 슈니슬라, 콩과 소시지, 베이컨을 넣어서 끓여만든 요리 프레브라낙, 고기와 채소를 넣고 걸쭉하게 끓인 스튜의 일종인 무취칼리사가 있으며, 요리들 대부분이 육류를 식재료로 많이 사용하는지 육식 위주의 요리가 많은 편이다. 옆나라 불가리아만큼은 아니어도 치즈, 우유, 요구르트, 버터 같은 유제품도 즐겨먹으며 역사, 문화적으로 터키 요리와 슬라브 요리, 헝가리 요리의 영향을 받았다.
다만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다보니 아드리아 해를 접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 같은 다른 구유고 연방 출신 국가들에 비하면 바닷물고기나 새우, 게, 조개 같은 해산물은 잘 먹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내륙국가이다보니 해산물도 가격이 비싸거나 대도시인 수도 베오그라드나 노비 사드의 대형마트나 해산물 요리를 판매하는 식당 이외에는 보기 어렵다. 다만 내륙 하천이나 개울에서 민물고기도 잡히는데 이 때문인지 잉어나 송어 같은 민물고기를 먹는 식문화도 존재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캐나다, 스웨덴,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같은 다른 서방세계 국가들로 이민을 갔던 세르비아인 이민자들은 거리낌 없이 바닷물고기, 새우, 게, 조개, 굴, 바닷가재 등 해산물을 먹기도 하며, 바다를 맞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등 다른 구유고권 국가들에서 사는 세르비아인들도 세르비아의 세르비아인들과 다르게 해산물을 먹거나 요리 식재료로 쓴다.
의외로 맥주도 맛있다. 주요 맥주 브랜드로 옐렌과 라브, 자예체스코, 필스 플러스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 옐렌과 라브가 세르비아 맥주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여담으로 옐렌과 라브 모두 맥주상표가 사슴과 사자인데[9] 마치 포식자인 사자와 피식자의 사슴의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대결을 보는 묘한 느낌을 준다. 옐렌, 라브 같은 라거/필스너 맥주 브랜드들 뿐만 아니라 카비네트라는 크래프트 에일 맥주 브랜드도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이 나라도 '''와인 생산국'''이다. 심지어 세르비아의 국민 테니스 스타인 노박 조코비치도 개인 소유의 와인 농장을 경영하여 와인을 생산, 판매할 정도. 다만 이웃 동유럽 국가들인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와인들이 워낙 유명하여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다. 이외에도 라키야(Rakija)라는 이름의 전통주가 있다. 브랜디의 일종으로 자두 베이스에 꿀이 첨가된 라키야가 유명하다. 현지인들은 시중에서 유통되는 것보다 집에서 직접 제조한 라키야의 품질을 더 높게 친다.
9.2. 스포츠
'''축구가 인기 있으며 현재도 강팀'''으로 평가되고 있다. 자세한 것은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대표적으로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데얀 스탄코비치, 마테야 케즈만, 네마냐 비디치, 네마냐 마티치,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 알렉산다르 콜라로프가 있다. 또한 k리그의 레전드로 손 꼽히는 라데 보그다노비치와 사샤 드라쿨리치도 이 국적이며 현재 팔로세비치도 이 국적이다.
'''농구도 세계적인 강호다.''' 과거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유럽 최강급으로 소련과 쌍벽을 이뤘다. 유로바스켓도 14번 우승한 소련(러시아 시절까지 합치면 15번)에 이어 8번 우승했다. 2001년 유로바스켓 대회 이후 유고연방이 무너진 뒤로 16년만인 2017년 유로바스켓 결승에 올랐다.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1개, 은메달 5개, 동메달 2개를 획득했으며 70, 74, 90, 98, 2002년 FIBA 농구 월드컵 전 명칭인 세계농구권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차지했었다. 2002 농구 세계선수권 대회같은 경우, 드림팀인 미국을 제치고 우승했으며 2010 농구세계 선수권에서는 4위를 거뒀다. 비록 세르비아가 올림픽에서 예전처럼 강한 모습을 보이지는 못하지만 NBA에 선수들도 진출시키고 있다.
하지만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 결승에 올라 미국에게 92-129으로 완패하며 최다 우승도 미국과 공동이 되었다. 준우승보다는 역대 2번째 최다 결승 득점차 기록(1994년 캐나다 월드컵에서 미국이 러시아를 137-91로 제치고 우승한데 이어 2번째)까지 당하며 너무나도 쉽게 졌다. 2017-18시즌부터 밀로스 테오도시치가 LA 클리퍼스 주전 PG로 뛰고있는데 NBA 진출 전까지 유럽 리그에서 최고 선수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선 바로 크로아티아랑 8강전에서 혈투를 벌여 86-83으로 겨우 이기고 4강에 올랐고 4강 상대인 호주를 크게 이기며 미국이랑 다시 맞붙게 되었다. 그리고 30점차로 대패하며 준우승. 그러나, 세르비아는 유고연방 해체 이후 세르비아 이름으로 역사상 첫 남자 구기종목 은메달을 받았다. 여자 농구 대표팀도 동메달을 받으며 남녀동반 농구 메달을 차지했다.
배구도 상당한 정상급이다. 유로 남자배구 선수권 대회(Men's European Volleyball Championship)도 선전하고 있다. 유고슬라비아 시절 우승도 해봤고 2011년에 세르비아로서 처음 우승했다. 다만 3위를 8번 거두면서 동메달 최다 우승국이기도 하다. 물론, 러시아나 이탈리아 등 배구강호가 가득한 유럽에서도 동메달을 많이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이 있다는 뜻. 유로 여자배구 선수권에서도 강호로 2011년에 남자랑 동반우승했고 2017년 대회를 우승하며 세르비아로서 우승 2번을 기록하고 있다.
올림픽은 유고슬라비아 시절인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남자 동메달을 받은게 첫 메달이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러시아를 제치고 금메달을 받았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는 여자 대표팀이 첫 메달인 은메달을 받았다. 배구 월드리그에서는 2016년 처음으로 남자 우승을 거뒀다.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도 세르비아인으로 국민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
10. 현황
지금은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사회도 안정됐지만 과거사 문제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는 부정적 이미지가 팽배하다. 이는 세르비아군이 유고슬라비아 내전(특히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내전) 당시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코소보 등지에서 대량학살, 집단 강간 등 온갖 잔악한 전쟁범죄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이런 전쟁범죄는 당시 세르비아의 독재자였던 인간도살자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당시 보스니아 내전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을 때는 인종학살 문제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1994 미국 월드컵에 출전을 금지당한 적도 있었다.
사실 세르비아인들 입장에서는 슬픈 역사도 있다. 중세시대에는 코소보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에 처절하게 맞서 싸우다 국권을 뺏긴 것이 세르비아 수난의 시작이었다.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 외세의 간섭을 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크로아티아인들에 의해 대량 학살당했다.[10] 그래서 우스타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아직도 과거사 청산 문제로 크로아티아와는 갈등의 골이 깊다.
다만 여전히 현존하는 문제인 코소보 문제와 주변국과의 과거사 문제에서 유연한 자세를 보여주지 않는 점은 여전히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확실히 국민들 감정은 주변국과 여전히 앙금이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 세르비아 가수인 baja mali knindza가 만든 노래중 하나가 Мој је тата злочинац из рата! - 'My dad is a war criminal!'인데 제목 뜻은 '''우리 아빠는 전쟁범죄자!'''라는 뜻인데 내용은 자국의 전쟁범죄를 부정하고 있다. 서방에서 말하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의 전쟁범죄들을 프로파간다로 치부하면서 비웃는 내용이다.[11]
물론 공식적으로는 유고 전쟁 당시 저지른 학살 등 전쟁범죄 행위를 마냥 부정하는 건 아니어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 구 유고 연방 출신 주변국들에게 전현직 대통령이나 총리, 장관 등이 스레브레니차 학살과 오브차라 학살 등 전쟁 당시 모국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물론 이점은 발칸반도에서 비단 세르비아만의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주변국과의 관계 그리고 유고 내전에 개입한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세르비아/외교 참고
어쨌든 역사에 관심 있는 학생이라면 보통 세르비아의 존재를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알게 되고, 그래서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암살당한 사라예보를 수도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카더라. 사라예보는 세르비아의 수도가 아니라 당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휘하였던 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발칸 반도의 분쟁 국가, 유럽의 화약고라는 인식과 달리 실제 세르비아의 형편은 그리 나쁘지 않다. 밀로셰비치의 막장짓과 민족주의로 인한 내전에 질린 세르비아인들이 정권과 극단주의자들을 알아서 사회 주류에서 추방해 버린 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12]
한국에서는 전쟁 불안이 가시지 않은 위험한 나라라는 생각이 아직 남아있다. 한국 뿐 아니라 해외의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도 그런 편인데, 아직도 내전 흔적이 남은 건물에 총알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 2000년대 중순에 세르비아를 가본 이도 아직도 수도에 남은 건물에 총알 자국이 그대로 남아서 내전이 아직도 벌어지나 오해할 정도라고 쓰기도 했으니...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국에서는 세르비아를 여행 가서는 안 되는 위험한 나라라는 정서가 꽤 있다. 하지만 수도 베오그라드나 북부의 제2도시인 노비사드와 남부의 제3도시인 니슈 같은 대도시의 경우, 오히려 소매치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서유럽의 관광도시보다 걱정없이 다닐 수 있다.
사실 세르비아에 대해 알려진 게 별로 없는 건 별로 볼 것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도 베오그라드에 잠깐 들렀다 가는 수준'''이고, 같은 구 유고연방 출신 국가인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나 북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 호수처럼 특출난 관광 명소도 그리 많지 않다. 현재 한국에서 불가리아,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북마케도니아 등 다른 동유럽 국가들은 여행 후기가 많은데 유독 세르비아는 드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관광객은 커녕 현지 교민도 드물다. 세르비아에서 거주 중인 한 교민 네티즌에 의하면 한식을 팔거나 한국 식재료를 수입 판매하는 가게가 거의 없을 정도라고. 예전에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 한국 교민이 경영하던 한국 요리 전문점 음식점이 하나 있었는데 수지타산도 딱히 맞지 않았고 고기나 계란 등 육식 중심으로 먹는 세르비아 현지인들 취향에도 딱히 맞지 않아 결국 폐점했다고 한다.[13] 다만 일각에서는 요새 체코나 헝가리, 폴란드를 제외한 동유럽 다른 국가들에서도 한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이 늘어나고 있는데 한국 요리 전문 식당이나 한인마트가 존재하는 근방 이웃나라인 불가리아와 헝가리처럼 세르비아도 한식당이 생겨야 하지 않겠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예전에 존재했다가 폐점했던 한식당이 세르비아에서 다시 개점이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현지인들의 입맛 뿐만 아니라 한국인 교민들이 너무 적다는 것. 바로 옆나라인 불가리아와 헝가리의 경우 해당국에 체류하고 있는 한국인 교민 수가 불가리아는 218명, 헝가리는 1,735명이나 될 정도로 한국 교민들의 수요가 높기 때문에 해당 국가에서 한국 요리를 판매하는 식당들과 한국산 식재료를 판매하는 한인마트들이 개점, 영업하고 있다. 다만 세르비아는 현지에서 체류하는 한국 교민이 35명 정도로 불가리아와 헝가리의 교민 수보다 너무 적은데다, 소비 수요 또한 너무 낮아 현실적으로 한식당은 커녕 한인마트조차 개점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리고 세르비아는 '''인구 대비 총기 수가 미국 다음인 세계 2위'''다. * 다만 미국에 비해서는 총기 문제가 덜한 편. 물론 미국이 연간 1만 명씩 총기 범죄/사고로 사망하는 만큼, 소국에서 벌어지는 내전 수준의 규모로 문제가 심각한 탓도 있기는 하다. 한편 이 나라의 탄약 회사인 프르비 파르티잔(Prvi Partizan)도 상당히 큰 규모의 탄약 회사인데, 현대에 널리 쓰이는 주요 탄약부터 구식 총기에 사용되는 다양한 종류의 탄약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탄약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동유럽에서 대외적으로 극우성향이 강한 나라로 알려져있다. 유고 전쟁 당시 또는 그 전후에 태어난 젊은층 세대들은 어느정도 진보적인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중노년층들은 극우성향이 강성하다.
세르비아 마피아들의 범죄가 세계적으로 악명 높다. 내전 당시 많은 민병대들이 마피아와 구분하기 어려웠으며 잔혹한 만행을 많이 저질렀다.
11.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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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성채의 대표적 예시인 골루바츠 성채
수도이자 발칸의 중심 도시 베오그라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탄생지 니슈, 중세 초기와 후기의 세르비아의 수도 스메데레보 & 라스 등 유서깊은 도시들이 많다. 이들은 모두 큰 규모의 성채를 지닌 것이 특징인데, 중세-근대 시기 헝가리와 오스만 및 오스트리아 제국 등과 수차례 전투를 치르며 세워진 것이다. 특히 다뉴브 강과 사바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세워진 베오그라드 성채와 다뉴브 중류에 중세 헝가리에 의해 세워진 골루박 성채의 풍경이 아름답다.
12. 외교
13. 대중매체에서의 세르비아
14. 세르비아인 캐릭터
15. 둘러보기
[1] 세르비아가 세르비아 영토의 일부로 주장, 간주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독립한 상태인 코소보(10,908㎢)를 포함하면 88,361㎢로 남한 면적에서 전라남도만큼을 제외한 크기가 된다.[결함있는민주주의] 6.22점[2] 세르비아 첫 여성 총리이자 레즈비언이다.[3] 영어로는 벨그레이드(Belgrade)라고도 한다.[4] 이는 당시 유고슬라비아 연방 깃발, 크로아티아의 깃발, 슬로베니아의 깃발과 동일한 특징이다. 전부 색깔 순서 배치만 다를 뿐, 청-백-적 가로 줄무늬를 긋고 가운데에다 붉은 별을 둔 다음, 그 색깔 배치 순서에만 차이를 둔 형태이다.[5] 현재 보스니아 내의 스르프스카 공화국 깃발을 보면 된다.[6] 게다가 현대에 추가로 밝혀진 언어도 여러가지 있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7] 일부는 토착 세르비아인들처럼 세르비아 정교회를 믿기도 하는데, 이는 알바니아 본토도 마찬가지이며 알바니아 본토인들 또한 일부는 알바니아 최대 종교인 이슬람교가 아니라 알바니아 정교회를 믿는다.[8] 불가리아와 북마케도니아는 세르비아와 마찬가지로 키릴문자를 사용하므로 제외.[9] 옐렌은 사슴, 라브는 사자.[10] 우스타샤 항목 참고.[11] 내전와중에 용기있게 세르비아의 전쟁범죄를 규탄한 노래라고 착각할 수 있겠지만 영상만 봐도 아니라는걸 알 수 있다. 1절 가사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Мој је тата злочинац из рата (우리 아빠는 전쟁범죄자라네), Ви се потрудите па га осудите (너희들은 그를 수치스럽게 만들 수 있겠지), Нема нико муда да води га до суда (아무도 그를 법정에 세울 용기가 없다네)[12] 그렇다고 아예 과격한 주장이 안 나오는 건 아닌 것이 크로아티아의 국기 상징이자 '''우스타샤'''의 상징인 방패 체스판 무늬 등 과거사 문제가 터지면 그 때 더 죽였어야 했다는 고인드립성 발언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전쟁은 싫지만 지금 하는 행실로 봐선 죽을 만 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13] 다만 옆나라인 불가리아와 헝가리에는 한국 요리 전문 식당들이 영업하고 있다. 실제로 동유럽 여행을 갖다온 한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세르비아에는 한식집이 없어서 한국 요리를 도통 못 먹어서 고생했는데 불가리아에서는 한식집들이 있어서 한식들을 배터지게 먹었다는 증언도 있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