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치리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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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이 나나파 9화에서 묘사된 미미치리보지
耳切り坊主(みみちりぼーじ)
1. 개요
2. 유래
3. 오키나와의 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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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이가 울고 있으면 나타나서 날붙이로 귀를 베어가버린다는 오키나와의 유령. 이름은 오키나와어로 '귀 떼인 중(僧)', 또는 '귀 베는 중'이라는 뜻으로, 표준 일본어식으로 읽으면 미미키리보우즈(みみきりぼうず)가 된다.[1] 우는 아이를 겁줘서 울음을 그치게 할 때 이야기가 나오는 듯.
2016년 3월에는 나하 시 평화거리(平和通り) 시장에서 미미치리보지를 주제로 한 호러 보물찾기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2. 유래


쇼케이 왕(尙敬王) 재위기(1713~1751)의 류큐 왕국에 쿠루가니쟈시(黑金座主, くるかにじゃーしー)라는 요승이 나타났다. 그는 요술을 쓰며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여성들을 희롱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아우 챠탄왕자(北谷王子) 철(徹)[2]에게 쿠루가니쟈시를 퇴치하도록 명을 내렸다. 챠탄 왕자는 왕가의 보검인 치가네마루를 가지고 갔다.
챠탄 왕자는 쿠루가니쟈시에게 접근하였고, 경계심을 풀게 하기 위해서 바둑을 둘 것을 제안하였다. 쿠루가니쟈시는 이를 받아들여 둘은 바둑을 두게 되었다. 대국이 한창일 때, 쿠루가니쟈시는 챠탄 왕자의 살기를 눈치챘다. 그리고는 챠탄 왕자에게 내기를 제안하였는데, 왕자가 패배하면 무사에게 있어 목숨과도 같은 카타카시라(류큐식 상투)를 내놓고, 자신이 패배하면 부처님 귀를 닮은 자신의 복스러운 귀를 내놓는다는 것이었다. 챠탄 왕자는 이를 승낙하였다.
대국이 챠탄 왕자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쿠루가니쟈시는 돌연 도망쳤으나 챠탄 왕자가 뽑은 치가네마루에 베이고 말았으며 귀가 떨어지고 말았다. 쿠루가니쟈시는 챠탄 왕자를 저주한 뒤 죽었다. 쿠루가니쟈시는 귀를 빼앗겼기 때문에 '귀 떼인 중'이란 뜻의 미미치리보지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쿠루가니쟈시의 망령은 챠탄 왕자의 집에 남자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아이의 목숨을 앗아갔다. 챠탄 왕자의 집에서는 이후 이 망령을 속이기 위해 아들이 태어나면 '몸집 큰 여자아이가 태어났구나'라고 말하게 되었다.

3. 오키나와의 민요




미미치리보지를 소재로 한 오키나와 민요인 《미미치리보지(耳切坊主)》
오키나와어 가사(1절)
한국어 번역
大村御殿(うふむらうどぅん)ぬ角(かどぅ)なかい
우후무라 우둔[3]의 모퉁이에
耳切坊主(みみちりぼーじ)ぬ立っちょんど
미미치리보지가 서있네
幾人幾人(いくたい、いくたい)立っちょがやー
몇 명 몇 명이 서 있나
三人四人(みっちゃい、よっちゃい)立ちょんど
세 명 네 명이 서 있네
鎌(いらな)ん小刀(しーぐ)ん持っちょんど
낫인가 작은 칼인가 들고서
泣ちゅる童(わらべー)耳グスグス
우는 아이 귀를 서걱서걱
ヘイヨーヘイヨー泣かんど ヘイヨーヘイヨー泣かんど
헤이요- 헤이요- 울지 마라 헤이요- 헤이요- 울지 마라
가사를 읽으면 알겠지만, 우는 아이를 협박해서(...) 재우는 자장가이다.
[1] 오키나와어에서는 키(き)가 치(ち)로 변하고, 스/즈(す/ず)가 시/지(し/じ)로 변하는 음운현상이 있다.[2] 챠탄오우지 쵸키(北谷王子朝騎, 1703 ~ 1773)이다. 우후무라 우둔(大村御殿)의 파조인 숙증조부 홍재(弘才)의 양자로 들어갔다. 섭정의 직무를 맡으며 명재상 사이온(蔡温)과 함께 류큐 왕국의 중심적인 인물이 된다.[3] 御殿(うどぅん)은 류큐 왕국 왕족 가문 또는 그 저택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