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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閔斗基
1932년 11월 2일 ~ 2000년 5월 7일
1. 개요
2. 생애
3. 저서
4. 수상
5. 평가


1. 개요


현대 역사학자·교육자. 본관은 여흥(驪興)[1], 호(號)는 산남(山南).
중국 근대화 연구분야에 있어서 한국에서의 중국사 연구를 세계적 수준까지 끌어올린 석학으로 동양사학의 총통으로 불렸다. 그의 저서들은 미국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에서도 필독서로 꼽힌다.

2. 생애


민두기는 1932년 11월 2일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당산리 태인마을[2]의 외가에서 아버지 민병하(閔丙河)와 어머니 장흥 임씨 사이의 1남 2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가는 해남면(현 해남읍) 백야리[3]에 있었다. 1939년 해남읍내 해리에 있는 해리심상소학교에 입학하여 1945년 졸업하였고, 이어 광주서중학교에 입학했다.#
1955년 서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1974년 중국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6년부터 숭실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있다가 1969년부터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오랜 세월 재직하면서 김세호, 이승휘, 강명희, 배경한, 나현수, 백영서, 김호동, 최희재 등 많은 제자들을 육성했다. 1998년 마지막으로 개설했던 서울대 대학원 강의는 취추바이에 관한 것으로, 평소 민두기 교수 연구 주제와 동떨어져서 학계에서도 많이 관심했다고 한다.
독일 함부르크 대학교 연구원,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칭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난징대학 민국사연구중심 객좌교수 등을 지냈다. 1998년 정년퇴임 후에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연세대학교 석좌교수로 강의를 계속했다. 중국의 한대사(漢代史)에서 시작하여 청대사·근대사·현대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를 연구했는데, '중국의 근대화'연구 분야에서는 최고의 권위자였다.

3. 저서


『강좌중국사』‧『중국근대사연구』‧『중국사 시대구분론』‧『중국 초기혁명운동의 연구』‧『신해혁명사』‧『중국의 역사인식』‧『중국에서의 자유주의 실험』‧『중국근대개혁운동의 연구』‧『현대중국과 중국 근대사』 등이 있으며, 그밖에 자서전적 수필집인 『한 송이 들꽃과 만날 때』 등이 있다.
특히 1989년 저술한 『강좌중국사』(전7권, 지식산업사)는 그와 제자들이 중국사의 시대별 중요한 주제에 대해 개괄적인 연구사를 정리한 내용으로, 단일학과 동문 연구자만의 것으로는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저작이다.[4] 또한 〈중국근대사연구〉는 한·중관계사 중심이던 국내 중국학의 전통을 탈피하여 중국사 내면으로 파고든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유작은 1998년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다산기념강좌에서 행한 강연들과 여러 국제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논문들을 엮어서 나온 『시간과의 경쟁: 동아시아 근현대사 논집』(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2001년). 삶이 몇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선고받은 상태에서 삶의 흔적을 마지막으로 남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후기를 2000년 4월 7일에 남긴 후 꼭 한 달 만인 2000년 5월 7일에 병환으로 작고하였다. 책은 민두기 교수 사망 후인 2001년 2월에 나왔다.

4. 수상


출판문화상 저작상(1986)
학술원상 저작상(인문사회과학부문, 1988)
금호학술상(1992)
중앙일보 학술상(1994) 등

5. 평가


민두기 교수는 그가 연구하던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현대 세계의 압력 속에서 자신의 문화에 대해서 고통스러운 재평가를 거치는 전근대 문명사회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관점은 동정적이면서도 동시에 객관적이었고, 우리도 중국인들도 가질 수 없는 형태의 것이었다.

필립 A.쿤, 하버드 대학교 중국사 교수

나는 민두기 교수의 미묘한 고전 문장과 그것이 일으키는 현대적 공명에 대한 인내있고, 사려깊고, 세심한 설명을 잘 기억한다. 민두기 교수는 절제와 품위를 가지고 동아시아 연구의 여러 분야를 오갔다.

피터 C. 퍼듀, 예일 대학교 중국사 교수

[1] 충정공파 31세 '''기(基)''' 규(圭) 배(培) 항렬.[2] 인근의 강절리·덕정리와 함께 장흥 임씨 집성촌이다.[3] 여흥 민씨 집성촌이다.[4] 다만 이러한 특징이 역으로 국내 학계의 다른 학파 연구자를 등한시했고, 서술의 형태가 읽기 어려운 난수표와도 같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