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라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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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디어 बाजीराव प्रथम
영어 Bajirao I
1. 개요
2. 생애
2.1. 시대 배경 : 무굴 제국의 쇠퇴
2.2. 정복전쟁
2.2.1. 데칸 평정
2.2.2. 델리 진격
3. 전술
4. 매체


1. 개요


생몰 1700년 8월 18일 ~ 1740년 4월 28일
집권 1720년 4월 27일 ~ 1740년 4월 28일
18세기 마라타 동맹의 대팽창을 이끈 명장. 직급을 붙여 대재상 (페슈와) 바지라오 (पेशवा बाजीराव)라고도 불린다. 비슷한 시기 나디르 샤를 '이란나폴레옹'이라 한다면 바지라오는 '남인도의 나폴레옹'이라 할 수 있다.

2. 생애


바지라오는 1700년에 콘칸[1] 지방의 브라만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인 발라지 (생몰 1662 ~ 1720년)는 마라타의 페슈와 (대재상) 직을 역임하며 무굴 제국과의 전쟁을 치렀다.

2.1. 시대 배경 : 무굴 제국의 쇠퇴


1660년대, 무굴 제국 황제 아우랑제브의 억압적인 통치에 반발한 시바지가 힌두교도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푸네와 수라트가 함락되었고 1674년엔 공식적으로 독립을 선포하니, 마라타 동맹의 성립이었다. 북인도의 반란들을 평정한 아우랑제브는 1686년, 마라타 동맹을 멸망시키는 목적으로 무려 70만 대군을 소집해 남하하며 20여년에 걸친 양국간의 대전쟁이 시작되었다. 1689년에 마라타의 2대 황제 삼바지가 잡혀 잔혹히 처형되었음에도 그의 동생 라자람이 3대 황제가 되어 항전을 이어나갔다. 한편, 삼바지의 어린 아들 샤후는 20여년간 무굴 측의 포로 신세였다.
며느리 타라바이가 공세를 버텨내었고 때론 반격에 나서 보팔까지 진군하며 무굴 제국의 마라타 정복 시도는 무산되었다. 그리고 1706년, 말와 대전에서 마라타 군대에게 패배한 아우랑제브는 후퇴 도중인 1707년 2월에 병사하였다. 엄청난 규모의 돈과 군대를 쏟아부었음에도 패배한 무굴 제국은 기근까지 겹치며 급속도로 쇠퇴하게 되었다.[2]

2.2. 정복전쟁



2.2.1. 데칸 평정



2.2.2. 델리 진격



3. 전술



4. 매체



[1] 인도 서해안의 푸네 일대.[2] 무리한 전쟁으로 인해 무굴 제국에서 약 2백만이 아사했다고 한다. 거기다 옆동네 누군가가 씨게 쥐어팬 덕분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