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탈리언(폴라리스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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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라리스 랩소디의 등장인물. 작품 속 시대의 저명한 문객이자 연대기 작가로서, 온 대륙을 돌아다니며 커다란 사건을 기록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교황 퓨아리스 4세의 부활 현장에도 있었다고 한다.
출신지나 나이는 불명이나, 많아야 20대 초반 정도로 묘사되는 율리아나 공주를 조카 삼아 데리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연배는 되는 듯.
2. 작중 행적
키 드레이번이 다림에서 체포된 뒤 교수대에 오를 때 이를 구경하기 위해 온 수많은 각국의 인사들 중 한 명으로 나온다. 율리아나 카밀카르의 노예로서 처형장에 온 오스발을 보고 다른 사람과는 다른 분위기를 발견, 그와 안면을 트게 된다. 이후 노스윈드 함대의 다림 습격으로 율리아나 공주와 도망치면서 오스발에게 현재를 기록하는 '언어'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다고 고백한다. 언어는 고정되어 있지만 그것으로 기록하고자 하는 현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기에 언어로 현재를 기록하는 것이 모순된 것이며, 그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자신에게도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오스발은 남작이 현재를 사랑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마음은 변화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그가 훌륭한 연대기 작가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그를 독려한다. 그로써 바탈리언 남작은 현재를 기록할 용기를 얻게 된다.
이후 휘리 노이에스를 저지하기 위해 바스톨 엔도와 브라도 켄드리드가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전장으로 달려간다. 알레미지우스 회전과 볼지악 전투 등에서 전황을 기록하던 그는 브라도 서 브라도의 전사 이후 다벨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된 휘리의 가신으로 들어가 내정을 담당하게 된다. 정확하게는 휘리라는 인물 곁에서 문객으로서 그를 기록하고 싶었던 것이 이유다.
그리고 문필가로서의 역량만 보여 준 이전까지와 달리, 휘리 노이에스가 주문한 "20만 대군" 양성을 둔전병 제도라는 해결책으로 답하며 행정 쪽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선보인다. 그러나 이 제도는 1가구 1병사라는 터무니없는 병력 유지를 위해 문화, 예술 등등 모든 것을 포기하다시피 한 가혹한 정책이었기 때문에, 바탈리온 남작 스스로도 이 계획을 말도 안 되는 계획이라고 깐다. 국력이 아직 부족한 다벨이 어쨌건 페인 제국을 정복해야 하는, 정확히는 정복하고 싶은 상황에서 휘리가 주문한 내용에 대해 '어쨌건 주문받은 사양대로 만들긴 했는데,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짜 봤자 이런 것밖에 안 나온다'라고 한 것에 가깝다. 때문에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휘리도 이 계획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이런 가혹한 조건 속에서도 최소한이나마 문화와 사회를 고려하여 계획을 짜 온 바탈리언 남작의 재능과 통찰력에 감탄했을 뿐, 둔전제를 시행하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즉 휘리 입장에서도 이 둔전제를 정말 실행할 생각이라기보다는 다벨의 군사적 동원능력 한계를 파악하기 위한 참고자료 정도로만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서 바탈리언 남작이 신랄하게 비난한 둔전제를 제갈량의 둔전제와 비교하는 경우도 있는데, 둘은 둔전이라는 한 가지 요소 외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제갈량의 둔전제는 "주둔지가 다 거기서 거기인 파촉 땅에서, 상시 주둔하는 병력의 유지비를 줄이고, 유민 정착 등을 통해 경제적 부흥까지 기대할 수 있는 둔전제"를 실행한 것이고, 바탈리언 남작의 둔전제는 "징병제로 사람 납치하고, 그 가족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땅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강제노역을 시키며, 병력 유지 외의 다른 모든 사회적 기능은 포기하는 둔전제"다.
휘리가 폴라리스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기 전 림파이어 형제에게 '그에게 끊임없이 일거리를 주도록 하라'는 유언을 남긴 것으로 보아, 이후에도 계속해서 다벨의 신하로 남아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기타
이영도 작가는 데카르트의 명언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이 인물의 입을 빌려 신랄하게 깐 적이 있다(...).
사실은 틀린 비판이다. 바탈리언이 한 개인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요건은 5분 전의 나와 5분 후의 내가 동일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통해 데카르트가 증명하려 했던 자아는 생각하는 한 순간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특수하고 내용 없는 자아인 반면, 바탈리언이 '자아'라는 말을 통해서 논하는 바는 5분 후의(혹은 5분 전의) 내가 지금의 나와 동일할 수 있을 자아이다. '자아'라는 단어에 대해 이렇게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토론조차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바탈리언의 말은 전능한 악마의 존재에 대한 복선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진지하게 관심이 있다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항목 참조."사실 말도 안되는 모순문이야. '생각한다'는 것은 움직임이야. '존재한다'는 것은 고정이고. 이 궤변론자 역시 '생각'이라는 과정으로 '존재'라는 순간을 설명하고 있어. 그 궤변론자가 어떤 종류의 생각을 했던지간에 생각을 시작했을 때의 그 작자와 생각을 끝내었을 때의 그 작자는 서로 다른 존재야. 하다못해 생각이 바뀐 존재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그 궤변론자는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보일 수는 없어."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