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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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면 안 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협력해야 합니다.
잘 될 것입니다.
-상산 종사 최후법문
1. 개요
법통과 종통을 호위한 제자여래. 흔적 없는 보시를 베푼 밀행여래. 소태산 대종사와 함께 원불교 정전 편수에 참여한 마지막 제자.
2. 일생
유망한 명문가 출신으로, 지금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2] 을 졸업하고 기업체를 이끌던 특급 엘리트[3] 였으나, 소태산 대종사를 만난지 2년 만에 출가를 단행했다. 이후 젊은 나이로 총무부장 등 원불교의 중책을 맡았으며 원불교 정전의 편수에도 참여하였다. 대종사 열반 후 유일학림의 초대학장과 원불교 교정원장, 미주교령 및 수위단 중앙 등을 역임하였다. 그 와중에 각종 복지사업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올 줄 알았다."
- 상산 종사가 처음 원불교로 귀의할 때, 소태산 대종사의 첫마디
3. 아름다운 대사식
1994년 대산 종법사가 퇴임할 당시, 상산 종사는 가장 유력한 종법사 후보였다. 그러나 이미 80살이 넘은 고령이던 상산 종사는 "젊은 분이 교단을 힘있게 이끌어야 한다"며 고사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주변인들의 추천으로 입후보되어 선거가 치러졌고, 그 결과 간발의 차이로 25살이나 어린 좌산 이광정 종사가 차기 종법사로 선출되었다.
까마득한 후배이자 사적으로 사제지간이기도 했던 신임 좌산 종법사에게 교단의 원로인 상산 종사가 인사를 하러 가야하는가에 대해 원로원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투표가 (본인이 고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박빙이었고 상산 종사에 대한 원불교 전체의 존경심이 여전히 컸기 때문에 자칫 큰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상산 종사는 좌산 종사를 찾아가 오체투지[4] 로 큰 절을 올리며 모든 논쟁을 단숨에 종료시켰다.''' 상산 종사를 따르던 원로들 역시 함께 큰 절을 올렸고 좌산 종법사는 맞절로 화답했다.
덕분에 논란이 일 뻔 했던 대사식(종법사 취임식)은 원불교 전체가 한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이는 '아름다운 대사식'으로 회자되었다.
상산종사의 오체투지와 아름다운 대사식은 당시 권력다툼으로 골치를 썩던 종교계 전체에서 큰 화제거리가 되었다. 이는 아직 역사가 짧은 원불교에서 지도자 선출의 전통을 확립하는 중요한 사건이기도 했다. 원불교에서 종법사를 선거로 선출하면서도 100여년 간 한 번도 권력다툼과 교단의 분열이 일어나지 않았던 데에는 상산 종사가 보여준 모범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에 이견이 없다.
4. 열반
2011년 101세의 나이로 열반에 들었다. 원불교 정전 편수에 참여한 제자로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했다.[5]
"둘이면 안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협력해야 합니다. 잘 될 것입니다"라는 최후법문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