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씨)

 



1. 개요
2. 역사
2.1. 본관별
2.1.4. 기타
3. 지역별 분포율
4. 실존 인물 혹은 가상인물
5. 여담


1. 개요


한국의 성씨 중 하나. 인구 순 3위이다. 신라 시대 초기 240여년, 통일 신라말의 15년 동안 왕의 성이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후손들로 순수 토착 성씨임을 강조하지만 귀화 박씨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박연.

2. 역사


신라 초기 왕들에 대해 기록이 있다 보니 박씨의 시작은 박혁거세 및 신라 왕기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 신라가 생기기 전에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일대에 여섯 개의 마을(6부)에 각각 촌장이 있었다.
> * 이(李)씨의 조상인 알천 양산촌(閼川 楊山村)의 알평(謁平).
> * 최(崔)씨의 조상인 돌산 고허촌(突山 高墟村)의 소벌도리(蘇伐都利).
> * 손(孫)씨의 조상인 무산 대수촌(茂山 大樹村)의 구례마(俱禮馬)
> * 정(鄭)씨의 조상인 취산 진지촌(嘴山 珍支村)의 지백호(智伯虎)
> * 배(裵)씨의 조상인 금산 가리촌(金山 加利村)의 지타(只他)
> * 설(薛)씨의 조상인 명활산 고야촌(明活山 高耶村)의 호진(虎珍)
>기원전 69년 이들 여섯 촌장들이 아들을 데리고 알천의 언덕 위에 모여서 백성을 다스릴 임금을 추대할 것을 의논하였다. 그러자 나정 우물가에 번개 빛처럼 이상한 기운이 하늘에서 땅으로 비쳤고, 흰말 한 마리가 꿇어 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였다. 그곳에 가서 보았더니 박처럼 생긴 이 있었으며, 그 알을 깨어 보니 그곳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아이를 혁연히 세상에 나왔다고 해서 혁거세(赫居世)라고 하고, 박(식물) 모양의 알에서 나왔다며 성을 박이라고 해서 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알에서 태어난 이후 고허촌장인 소벌도리10대까지 혁거세를 키웠고 이후 6촌장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이후 기원전 32년 신라 3대 왕위에 오른 유리왕(유리 이사금, 新羅 儒理王 8)은 이들 6촌장의 공로를 기려 각각에게 성을 하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李, 崔, 孫, 鄭, 裵, 薛 신라 건국의 6촌장의 씨(氏)들이 되었다.
박씨는 신라의 시조왕 박혁거세를 시조로 한다.[1] 李씨(중국 1위, 대만 5위), 金씨(중국 69위, 대만 94위), 崔씨(중국 74위), 鄭씨(중국 23위, 대만 12위), 姜씨(중국 60위, 대만 80위)인 것에 비해 박(朴)씨는 중국 성씨 순위권 밖이다.
朴이라는 글자는 소박할 박, 혹은 팽나무 박이며, 유래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박혁거세의 난생설화 때문에 표주박을 뜻하는 瓢(표)에서 갈라져 나와 朴이 되었다는 등 이설이 많다.
박씨는 300여 개의 본관이 있는데 밀양 박씨가 3,168,084명으로 본관별 인구로는 김해 김씨 다음이다. 2위 반남 박씨가 역시 경명왕의 장남 언침을 시조로 하고 있지만 밀양 박씨와 직접 관련성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고. 그외에 함양 박, 순천 박, 무안 박, 죽산 박, 고령 박, 충주 박 등 벌열이 컸던 순으로 따로 8박이라고 한다.
중국인 중에 '朴'씨(박씨)가 간혹 있는데, 신라방 출신이 현지에 정착한 경우이거나, 조선인이었다가 청나라(주로 병자호란 시기)에 끌려갔거나, 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에 따라 싸우지 않고 투항하고 정착한 조선인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중국인 중에서 중국 조선족 출신의 박씨가 숫자로는 가장 큰 비율이다. 박씨 성을 고집하는 조선족들은 한족이나 만주족 등의 어머니를 가졌더라도 중공 성립 후 조선족을 자처해 인정됐다고 한다. 中서 400년 혈통 지켜온 '번시 朴씨' 조선족 시조 ‘번시 朴씨’…400년 혈통 지켜낸 비결은? 중국어 위키백과에도 박씨는 조선인 특유의 성씨라고 서술되어 있다.
로마자 표기는 대부분 Park을 쓴다. 그러나 Bak, Bahk[2], Pak[3], Bag, Bark등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이씨도 마찬가지인데, 대부분이 Lee를 쓰지만, Rhee[4], Rhie[5], Ri[6], Li[7], Yi[8]등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Bak'''으로,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르면 '''Pak'''이 된다.

2.1. 본관별


통계청의 2000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씨에는 56개의 본관이 있다. 그 중 벌열 순으로 높았던 8개 본관을 8박이라 한다. 밀양, 반남, 함양, 순천, 무안, 죽산, 고령, 충주 순이다.

2.1.1. 경명왕 계열


경명왕은 통일신라 말기의 왕으로 김씨에서 박씨로 다시 왕좌를 되찾은 신덕왕의 아들이다. 그런데 신덕왕은 아달라 이사금의 원손임을 자처한 바 있다. 아달라이사금은 일성왕의 아들로, 일성왕은 다시 유리왕의 장남이다. 그래서 유리왕의 차남인 파사왕계와 갈라진다.
  1. 장남 밀성대군(密城大君) 박언침(朴彦忱)의 후손
    • 밀양 박씨: 박씨의 큰집. 박씨 중 75.6%를 차지하며, 2015년 기준 약 316만 명이다. 조선 시대에만 문과급제자 261명, 무과급제자 1147명이라는 대단한 물량전을 선보였다. 인구가 많았던 탓에 아무래도 견제를 받았는지 재상은 없었다. 두산그룹 창업자 계열이 여기다.
    • 진원 박씨: 밀양 박씨의 분파로 고려 때 대장군 박진문을 도시조로 한다. 전남 장성이 본향이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명, 무과 급제자 3명을 배출했다.
    • 창원 박씨: 밀양 박씨에서 분적한 집안으로, 고려 후기 창원도호부사를 지낸 박령을 관향조로 한다. 2000년도 조사 결과 1897가구, 6,121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 되었다.
    • 영암 박씨: 밀성대군 언침의 10세손 박항을 시조로 한다. 밀양 박씨에서 분적한 것은 아니다. 조선조에 문과 급제자 1명, 무과 급제자 12명을 배출한 무골 집안이다. 1,954가구 총 6,120명(2000년)
    • 태인(태산) 박씨: 밀양 박씨 도평의사공파 돈재공파라고도 한다. 총 456명(2000년). 고려 때 밀직부사 박언상을 시조로 하며, 전 KBS 사장 박권상을 배출했다. 조선시대 문과급제자는 1명이다.
  2. 2남 고양대군(高陽大君) 박언성(朴彦成)의 후손
    • 고령 박씨: 박정희, 박근혜, 어사로 유명한 2등 분무공신 박문수 등을 배출한 집안이다. 현재 4만 명 정도의 인구로 작은 집안인데도 조선 시대 56명에 달하는 문과급제자를 냈다. 무과급제자는 23명이다.
  3. 3남 속함대군(速咸大君) 박언신(朴彦信)의 후손
    • 함양 박씨: 박씨 본관 중 현대 남한의 박씨 본관별 인구로는 2번째이다. 69명의 문과 급제자와 50명이 넘는 무과급제자를 배출했으며, 대한민국에서도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는 본관이다.
    • 삼척 박씨: 박언신의 14세손으로 고려 공민왕 때의 개성부윤 박원경(朴元慶, 1353~1426)을 중시조로 한다.# 1,535가구 총 4,929명(2000년)
    • 군위 박씨
  4. 4남 죽성대군(竹城大君) 박언립(朴彦立)의 후손
    • 죽산 박씨: 박씨 중 6번째로 큰 집안이다. 이시애의 난에서 공을 세우고 영의정을 지낸 박원형을 배출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9명, 상신 2명을 배출했다. 면천 박씨, 평산 박씨, 고성 박씨, 음성 박씨 등이 죽산에서 분적해 나갔다.
    • 평산 박씨: 평주 박씨라고도 한다. 죽산 박씨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한다.
    • 음성 박씨: 죽산 박씨의 분파로, 고려의 무장인 철성백 박서의 후인들 중 함흥차사 충민공 박순 계파의 성씨이다.
  5. 5남 사벌대군(沙伐大君) 박언창(朴彦昌)의 후손
    • 상주(상산) 박씨: 조선 문과급제자 수는 11명, 무과급제자가 30명이었다.
    • 충주 박씨: 박씨 본관 중 8번째 인구를 가진 집안으로 박찬호,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을 배출한 집안이다. 인구는 3만 명 정도로 22명의 문과급제자와 1명의 상신, 그리고 14명의 무과급제자가 있었다.
    • 평택 박씨
  6. 6남 완산대군(完山大君) 박언화(朴彦華)의 후손
    • 무안 박씨: 박씨 중 5번째 크기를 자랑하는 집안으로 완산군 박언화의 후손들이다. 한글 점자를 창안한 박두성을 배출했다. 조선시대 21명의 문과급제자와 62명의 무과급제자를 배출했다.
    • 전주 박씨: 전주가 들어가서 흔해 보일지 모르나 2015년 자료에 의하면 1,985명으로, 의외로 전국에 2,000명도 없는 희귀한 본관이다.[9] 조선시대 문과급제자가 1명, 무과급제자가 25명이다.
  7. 7남 강남대군(江南大君) 박언지(朴彦智)의 후손
    • 순천 박씨: 견훤의 사위로 후백제에서 장군을 한 박영규를 시조로 한다. 사육신 박팽년중종반정 일등 공신 박원종을 배출했다. 남한 내 인구가 10만에 달하는 박씨 중 4번째로 큰 집안이다. 35명의 문과급제자와 1명 상신이 있다. 무과급제자가 29명이다.
    • 춘천 박씨: 1만 6천 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집안으로,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6명을 배출했다.
  8. 8남 월성대군(月城大君) 박언의(朴彦儀)의 후손

2.1.2. 경애왕 계열


경애왕은 경명왕의 동생으로, 그의 후손들은 경명왕계와 갈라진다.
  1. 장남 금성대군(金城大君) 박교순(朴交舜)의 후손
    • 울산 박씨: 고려 개국공신(벽상공신) 박윤웅을 시조로 한다. 박윤웅은 경애왕의 장남 교순의 후예로 신라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할 때 자신이 다스리던 울산도 함께 고려에 귀부시킨 공으로 흥려백에 오르고 장무공이란 시호를 받았다고 한다. 2000년 인구는 2만 2천 명. 족보(로그인 필요)
  2. 차남 계림대군(鷄林大君) 박수현(受玄)의 후손

2.1.3. 파사왕 계열


신라 때 외교관 박제상은 파사왕의 자손이다.
  • 경주 박씨: 파사왕의 38세손이자 박제상의 33세손인 박앙(朴盎)을 시조로 한다. 족보(로그인 필요)
  • 영해 박씨: 시조는 박제상이며, 중시조는 박제상의 26세손 박명천(朴命天).# 후일 신라가 망할 때 고려 왕건이 신라를 도우러 갔다가 견훤에게 털리고 경북 포항 쪽으로 도주할 때 왕건을 호종한 공이 있다. 왕건이 영덕 대게를 먹었던 것이 영해 박씨들 덕이라고. 신라 외교관 박제상의 후손답게 조선 조에 역관을 많이 배출한 가문이다.

2.1.4. 기타


  • 반남 박씨: 박씨에서 가장 벌열을 자랑하는 집안으로, 정승 7명에 문과급제자 215명을 자랑한다. 무과급제자는 23명에 불과하다. 시조는 고려 고종 때의 호장 박응주(朴應珠)로, 이 집안은 위의 경명왕의 8왕자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배향 공신 박세채, 연암 박지원, 박세당, 개화파의 아버지 박규수, 현대엔 정치인 박영선,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자 계열 등이 반남 박씨이다. 항렬도 수교법 (숫자에 해당하는 一-二-三-四-五-六-七-八-九-十 혹은 그 변형자가 들어간 글자를 항렬로 하여 10대의 항렬자를 순환시키는 방법)을 쓴다.
  • 의흥 박씨: 원래 왕씨다. 태종 때 박을규를 시조로 한다. 복성하지 않고 박씨 성을 계속 써왔다.
  • 노성 박씨: 조선 초기 문신인 박연을 시조로 한다. 조선에 유명한 박연이 두 명인데 그와는 관련 없다. 다른 박연이다. 참고로 유명 박연 중 하나는 악성 박연[10], 그리고 벨테브레가 이름을 바꾼 박연이다.

3. 지역별 분포율


2015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주로 영남 동남부, 전남에서 총인구 대비 박씨 비율이 높다고 한다. 인구의 10% 이상이 박(朴)씨로 전국 평균 8.43%보다 높다. 목포시, 해남군, 진도군, 완도군, 신안군 등 전남 서부의 박(朴)씨 비율이 특히 높은 편. 충북 남부나 강원 영서 일부 지역도 박(朴)씨 비율이 높다. 제주도는 예외.[11]
전라남도 진도군은 무려 18.87%가 박(朴)씨다.[12] 그 뒤를 경상북도 청도군(14.25%), 경상남도 남해군(13.19%), 경상북도 군위군(12.94%), 전라남도 해남군(12.81%)이 이었다.
반대로 박(朴)씨 비율이 가장 낮았던 지역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로 '''5.23%'''. 그 뒤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5.97%), 충청남도 청양군(6.63%), 인천광역시 강화군(7.11%), 강원도 정선군(7.12%) 순이었다.

4. 실존 인물 혹은 가상인물


박(성씨)/목록 문서로.

5. 여담


  • 축구박지성박주영, 야구박찬호, 배드민턴박주봉, 골프박세리박인비, 수영박태환 등 한국 스포츠에서 큰 족적을 남긴 선수가 많이 떠오른다. 성씨와 상관없이 각 개인의 피나는 노력으로 얻은 거겠지만.
  • 한자로는 한국에서는 을, 중국과 대만에서는 번체자인 '樸'과 간체자인 '朴'을 같이 쓴다. 중국 대륙에서는 朴과 樸을 섞어 쓰는데, 이는 朴이 樸의 간체자로 쓰이기 때문이다.
  • 현재 중국어로 발음은 Piao인데, 혹자는 원래 Po, Pu가 중국 동북지역의 방언인 -iao를 붙여 piao로 읽게 됐다는 썰도 있다. 朴을 Piao로 발음하는 이유 朴 글자 자체의 중국어 음가는 Piao, Po, Pu 등이지만 사람 성씨에는 Piao로 읽는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Pu로 발음하는 경우가 많다고. 현재로서는 대륙은 성씨로 쓰일때는 Piao로 대만은 성씨로 쓰여도 Pu로 발음한다.朴 Pu 발음
  • 35명 정원의 한 반에 성씨별 인구를 대입할 경우, 박씨는 대략 4명 정도. 간혹 이씨 성을 가진 사람과 인원 수를 비교할 때 이씨보다도 많은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13] 통상적으로, 35명 정원 기준으로 가나다 순번으로 번호를 부여할 때 11번에서 18번 사이의 번호를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 박씨 다음으로는 일반적으로 배씨, 백씨, 서씨, 손씨, 송씨, 신씨, 심씨, 안씨 등이 따라온다(간혹 바로 이씨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반에 김씨 인원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서 번호의 차이가 쩍쩍 벌어진다. 웬만해선 김씨와 박씨 사이에 들어가는 성씨를 가진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 굳이 김씨와 박씨 사이에서 그나마 흔한 성씨를 찾자면 나씨, 남씨, 노씨, 문씨 정도가 있다. 반에 김씨가 14명이라 박씨가 19번부터 22번을 부여받는 경우와, 김씨가 겨우 4명에 불과해 5번부터 8번까지의 번호를 부여받는 경우도 있다.
  • 서브컬처에서 여자 캐릭터 이름에는 드물다. 특히 순정만화 여주인공 중 박씨는 거의 없다. 발음이 여자 캐릭터에게는 센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실생활에서도 여자 이름을 짓기 어려운 성씨 중 하나로, 이름 지을 때에도 잘못하면 어릴 적에 아이들 사이에서 놀림을 당하는 이름이 나올 확률도 높은 편이다.[14]대신 반대 급부로 원톱 남자 주인공 이름으로는 활용 빈도가 높다. 어감이 강하기 때문에 카리스마 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1] 의흥 박씨의 경우는 시조가 고려왕족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2] 이명박 정부시절 기획재정부와 노동부 장관을 지낸 박재완씨는 Bahk를 쓴다. 사실 이쪽 철자(Bak, Bahk)는 성씨 박보다는 이름에 박이 들어갈 때 주로 쓰는 편. 한자도 당연히 다르게 사용.[3] 박세리 골프 선수[4] 이승만 전 대통령, 야구선수 이대은,이근.[5]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원복 작가.[6]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 북한의 로마자 표기[7] 중국인 이씨 로마자 표기[8] 조선 이씨 왕조 로마자 표기. 이왕가를 제외하면 주로 이름에 '이'가 들어갈 때 사용.[9] 참고로 1930년 일제강점기 때 실시한 국세조사에 의하면 대부분이 북한에 몰려 살고 있었다.[10] 밀양 박씨 난계문헌공파[11] 제주도의 상위 3개 성씨는 '김이박'이 아니라 '김이고'다. 고(高)씨, 강(姜)씨 등에 밀려 5위다.[12] 진도군의 상위 3개 성씨는 '김이박'이 아니라 '김박이'다.[13] 물론 학급으로 비유했으니, 해당 지역 세대의 출산이나 전학 등의 요소에 따라 이 비율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14] 예를 들어 여자 이름으로 흔한 '유미'로 지으면 Fuck you미로 놀림받을 가능성이 높고(..) '지민'으로 지으면 박쥐민, '혜민' 같은 ㅎ으로 시작하는 이름이면 특유의 거센소리되기 현상으로 풀네임 어감이 미묘하게 욕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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