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니아누스 왕조
1. 개요
로마 제국의 왕조. (364 ~ 392년[1] ) 발렌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 시작되었다. 발렌티니아누스 1세는 '''최후의 서방 대제'''로 불릴 정도로 상당한 업적을 남긴 황제였지만 그와 함께 황제가 되어서 동방을 통치했던 발렌스의 경우 게르만족의 대이동에 불을 제대로 당겼던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대패하며 전사했고, 그의 아들들인 그라티아누스와 발렌티니아누스 2세는 어린 황제들인데다 둘 다 암살당하면서 결국 왕조는 28년만에 단명하게 되었다.
2. 역사
- 자세한 내용은 각 황제의 개별 항목 참조.
2.1. 발렌티아누스 1세와 발렌스(364~375)
요비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상당히 중용되었던 발렌티니아누스 1세는 364년 2월 26일, 요비아누스의 갑작스러운 사망후에 황제로 추대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단독 황제가 되지 않았고, 동생인 발렌스를 공동 황제로 지명하면서 제국의 동방을 맡기고, 본인은 제국의 서방을 다스리게 되었다.
이후 제국은 게르만족의 각종 침입에 대응해 유능한 발렌티니아누스 1세의 통치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침입에 대항한 발렌스의 통치로 그럭저럭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375년 갑자기 병으로 죽게 되자 제국은 그야말로 흔들리게 된다.
2.2. 발렌티니아누스 1세 사후 혼란(375~392)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갑자기 사망하게 되자 그의 아들인 그라티아누스가 황제로 추대되었으나, 당시 제국 서방의 주력 군대였던 일리리쿰군은 그라티아누스의 어린 동생인 발렌티니아누스 2세를 황제로 추대했고, 결국 그라티아누스는 그를 황제로 인정했다. 다만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영역은 한정되어 있었으며, 그의 어머니 유스티나와 프랑크인 메로바우데스의 섭정하에 있게 했다.
378년 훈족의 침입을 피해 이동해온 서고트족과의 전투였던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숙부인 발렌스가 전사하자 그라티아누스는 아버지의 중신이었지만 음모로 처형당한 테오도시우스 장군의 아들 테오도시우스 1세를 동로마 황제로 임명했다.
이후 제국은 각종 혼란을 겪게 되었는데, 그라티아누스의 경우 실정이 이어지는 바람에 383년 마그누스 막시무스에게 살해당했고, 테오도시우스 1세는 내전을 막기 위해 마그누스 막시무스를 황제로 인정했다. 하지만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387년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영역인 이탈리아를 침략하자 결국 테오도시우스 1세가 직접 나서 서방을 공격했고, 마그누스 막시무스를 정복했다. 이후 서방은 다시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영역이 되었지만 그는 무능했기 때문에 사실상 테오도시우스 1세가 동, 서 양 지역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리고 392년 발렌티니아누스 2세가 프랑크인 아르보가스트와 대립 끝에 살해당하자 결국 왕조는 종말을 맞고 말았다.
다만 발렌티니아누스 1세의 딸인 플라비아 갈라가 테오도시우스 1세의 황후가 되어 혈통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으나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에 단절되었다.
3. 평가
발렌티니아누스 1세는 유능한 군인황제였고, 통치도 훌륭했다. 특히 동생인 발렌스를 공동황제로 지명하여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한 것은 당시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가 급작스럽게 죽은 이후 후계자들의 나이가 어렸을 뿐더러 제국의 군대가 후계자 문제에 직접 개입할 정도로 황권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통치가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했다. 또한 발렌스가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제국의 동방이 갑자기 공백 상태에 놓이자 이를 유능한 테오도시우스 1세에게 맡기면서 그나마 혼란을 막을 수 있었으나, 오히려 발렌티니아누스 1세의 자녀들이었던 그라티아누스와 발렌티니아누스 2세의 통치력이 유능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제국 서방의 세력이 상당히 약화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