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흐

 

페르시아어/다리어 بلخ
영어 Balkh
1. 개요
2. 역사
2.2. 헬레니즘 시대
2.3. 박트리아의 수도
2.4. 불교의 융성
2.5. 이슬람의 도래
2.6. 호라산의 중심
2.7. 12세기의 혼란
2.8. 몽골의 침략
2.9.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1. 개요


호라산 지방에서 메르브, 헤라트와 함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이다. 현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인구 8만인 도시이다. 옛 이름은 박트라.[1] 현재는 작은 도시지만, 발흐 주에 그 명성이 남아있다. 다만 그 주도는 마자르 이 샤리프. 도시들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2. 역사


발흐는 기원전 2000년 경부터 아리아 민족이 살았고, 박트리아 분지의 중심 도시였다.

2.1. 조로아스터 교의 성지


발흐는 배화교의 창시자인 조로아스터가 첫 설교를 한 곳이자 그가 사망한 도시이다. 따라서 그를 기리는 신전이 있었고 그 신전의 이름을 따서 발흐는 자리아스파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2.2. 헬레니즘 시대



2.3. 박트리아의 수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이후 그리스 인들이 정착하여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 세워졌고 발흐는 박트라라고 불리며 그 수도가 되었다. 기원전 208-206년에는 안티오코스 3세 메가스에 의해 포위되기도 하였다.

2.4. 불교의 융성


바할리카라는 승려가 박트리아에 불교를 전파했다고 한다. 박트리아 ~ 파르티아 시기에 박트리아 일대는 중앙아시아 불교의 중심지였다. 그 흔적은 지금도 남아있어 스투파가 여러개 건재한다. 애초에 발흐라는 지명이 승려 바할리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2.5. 이슬람의 도래


645년에 아랍 분견대가 도시를 공격, 653년에는 발흐가 무슬림 세력에게 연공을 바치게 되었다. 663년, 칼리파 무아위야 1세의 군대가 발흐를 함락하여 번영하던 나바비하라 불교 사원을 파괴하고 학살을 자행하였다.
다만 670년에 불교 신자들의 대반란으로 발흐는 독립하였다. 그리고 715년, 왈리드 1세의 명을 받은 쿠타이바 이븐 무슬림의 군대가 발흐를 점령하였다. 많은 수도승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거나 살해되었고, 사원들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2.6. 호라산의 중심


도시는 호라산 총독 아사드 이븐 압둘라에 의해 726년에 재건되었고, 736년에는 총독부의 치소가 되었다.
747 아바스
821 타히르
870 사파르
900 발흐 전투 : 사만 왕조가 시파르 왕조 격파
997 가즈니
1006 카라한
1008 가즈니
1059 셀주크

2.7. 12세기의 혼란


1115 오구즈의 약탈
1141 호라즘
1142 셀주크
1153 오구즈
1154 니샤푸르 아미르
1157 서 카라한
1162 호라즘
1165 카라키타이
1198 구르 왕조
1206 호라즘

2.8. 몽골의 침략


1220 몽골군이 발흐에 쳐들어가 이슬람 도래 이전부터 유명했던 유서깊은 발흐의 대학과 도서관을 반달해버렸다.

2.9.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1] 박트리아 어로는 βαχλο 나 ẞaxlɔ 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