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트리아

 

βαχλο[1]
1. 개요
2. 초기 역사
4. 이후


1. 개요


고대 트란스옥시아나 중앙아시아의 지명. 아무다리야(آمودریا) 강과 힌두쿠시(هندوکش) 산맥 사이의 평야 지대로써, 현대의 아프가니스탄 북부 일대를 가리킨다. 사산 왕조 이후 이슬람 시대에는 토하리스탄(Tokharistan), 중국에서는 대하(大夏)라고 불렀다.
좁은 의미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정복 이후 박트리아 지역에 들어섰던 헬레니즘 국가인 그리스-박트리아 왕국(Greco-Bactrian Kingdom)을 가리키기도 한다.
서양권에서는 낙타 중 쌍봉낙타를 박트리아 낙타라고 하기도 하는데, 유럽에서 가장 가까운 쌍봉낙타 서식지가 그 주변이기 때문이다. 단봉낙타는 아라비아 낙타라고 한다.

2. 초기 역사


인도유럽어족의 발상지에서 인도, 이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지역인 데다 강이 많아 토지가 비옥하였으므로 고대부터 정착 사회가 발달했으며, 이란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웃한 지역인 소그디아나, 마르기아나[2]와 합쳐서 옥수스[3] 문화권이라고 하기도 한다. 페르시아의 국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선지자 조로아스터가 태어나 처음으로 교세를 편 곳도 박트리아였다.
키루스 2세에 의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병합된 후에는 비옥한 토지, 중앙아시아와 이란, 인도를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지라는 입지 덕택에 이집트, 바빌론에 버금가는 번영을 누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케메네스 왕조에 쳐들어왔을 때,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패배한 다리우스 3세가 도망쳐 재기를 도모한 곳도 박트리아였다. 하지만 그는 박트리아의 사트라프였던 베소스에게 살해당했고, 베소스 역시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살해당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디아도코이 전쟁의 결과 다른 동부 지역들과 함께 셀레우코스 왕조의 땅이 되었다.

3.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헬레니즘 제국
셀레우코스 제국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인도-그리스 왕국
파르티아
인도-스키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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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후


대월지를 서방에서는 토하르인(Tokharians)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박트리아 멸망 이후에는 이 지역을 페르시아어로 토하리스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중국에서 이곳을 대하(大夏)라고 부른 것도 그것을 음역한 것이다.
3세기경 쿠샨 왕조가 해체되는 와중에 페르시아에서 일어난 사산 왕조에 의해 정복되었고, 다시금 확고한 페르시아 문화권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는 에프탈이나 튀르크의 침입, 이슬람의 대정복과 호라즘과 같은 트란스옥시아나의 다른 페르시아 문화권 지역들과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게 된다.
하지만 쿠샨 왕조 시기까지는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서부의 문화가 상당한 정도로 그리스화된 배경이기도 하다.

[1] 영어로도 박테리아(bacteria)와 딱 한 글자 차이로 뜻이 달라진다.[2] 소그디아나는 사마르칸트(Самарқанд), 부하라(Buxoro) 등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 우즈베키스탄동부와 타지키스탄 일대를 가리키며, 마르기아나는 메르프(Merw)를 중심으로 한 투르크메니스탄 동부 지역을 가리키는 고대 지명이다.[3] 아무다리야 강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