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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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성채인 대 키즈카라. 무려 15m 가 넘는 높이를 자랑한다. 서쪽에 소 키즈카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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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마크이자 세계유산인 아흐마드 산자르 영묘
مرو
Меrv
1. 개요
고대에서 중세에 걸쳐 니샤푸르, 발흐, 헤라트와 함께 호라산 (동 이란) 지방의 주요 도시로 기능하였던 도시. 현재에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도시 마리 인근 유적으로 남아있다.
메르프는 호라산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여, 이란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튀르크 유목민 세력이 노리던 도시였고, 동시에 트란스옥시아나로 진출하려는 이란 세력의 거점이 되기도 하였다.
1.1. 고대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의 속주인 마르기아나 사트라프가 설치되었다가 알렉산드로스 3세가 점령하여 알렉산드리아로 개편되었다. 셀레우코스 왕조 시절에는 Ἀντιόχεια τῆς Μαργιανῆς (마르기아나의 안티오크)로 불렸다. 이후 파르티아가 쿠샨 제국과 메르브의 지배권을 두고 다투었으며, 파르티아에서는 카르헤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로마군들을 도망가지 말고 죽을 때까지 싸우라는 의미로 이곳에 주둔시켰다 한다. 쿠샨 왕조의 영향으로 이 지역에서는 불교가 번영했었다. 고대 말에는 사산 제국과 에프탈족이 이 지역을 두고 싸웠으며, 마니교와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가 번성했다 한다.
1.2. 호라산의 중심
651년, 니하완드 전투 이후 패주하던 사산 제국의 마지막 군주 야즈데게르드 3세가 메르브 남쪽에서 살해되었다. 성의 이란 지도부가 아랍 군대에 항복하여 정통 칼리파 (라쉬둔 왕조) 우마르의 사절단이 입성하여 이슬람 세력권에 포함되었다. 이후 메르브는 호라산의 주도가 되었다. 아바스 왕조 때의 알 마문이 거점으로 삼기도 하였다.
2. 중세 번영기 : 셀주크 제국
1118년의 셀주크 제국 동서 분열 이후에는 아흐마드 산자르의 동부 셀주크의 수도가 되어 다시 번영하였다. 이때에 메르브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그러나 1153년에 셀주크 제국의 튀르크멘 부족이 반란을 일으키며 도시를 약탈하는 과정에서 심각하게 파괴되며 쇠퇴하게 되었다. 산자르의 영묘는 도시 외곽에 남아있다.
2.1. 쇠퇴
그리고 1221년, 몽골군에게 도시가 파괴되고 몽골군에게 학살당한 페르시아인들의 자리를 튀르크멘족들이 메우게 된다. 13세기 이후로 메르브 근교의 농업은 쇠퇴해버리고 유목이 주가 되었다.
15세기 중반 티무르 제국의 아부 사이드 칸이 이곳에 머물렀다는 기록도 있어 어느정도 재건되었던것 같으나, 16세기에는 부하라 칸국과 사파비 왕조가 메르브 지배권을 놓고 싸우는 와중에 다시 한 번 폐허가 되었다. 결국 히바 칸국이 이 지역을 장악했으며, 메르브는 쉬아파 이란계 도시가 아닌 순니 튀르크 도시로 남게 되었다.
2.2. 현재
현재에는 이시가바트 (아슈하바트) 에서 출발한 카라쿰 운하가 마리를 통과하여 아무다리야 (옥수스 강) 까지 이어진다.
[1] State Historical and Cultural Park “Ancient Merv”[2]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историко-культурный парк Древний Мерв[3] Parc national historique et culturel de l’« Ancienne Merv »[4]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5]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