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박트리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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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트리아'''
'''Βακτριανή'''
(그리스어)
''Baktrianḗ''
'''βαχλο''' (박트리아어)
''Bakhlo''
존속기간
BC 256년? ~ BC 130년?
위치
중앙아시아
수도
박트라
국가원수

주요 국왕
디오도토스 1세(BC 256~BC 239)
데메트리오스 1세(BC 205?~BC 171?)
언어
코이네 그리스어, 박트리아어
종교
그리스 종교, 조로아스터교, 불교
종족
그리스인, 박트리아인
성립 이전
셀레우코스 왕조
멸망 이후
인도-그리스 왕국
1. 개요
2. 역사
2.1. 건국
2.2. 발전, 왕조교체와 지배권 확립
2.3. 에우티데모스 인도 왕국의 설립
2.4. 멸망
3. 특징
4. 역대 왕

언어별 명칭
코이네 그리스어
Βακτριανή (''Baktrianḗ'')
박트리아어
βαχλο (''Bakhlo'')
고대 페르시아어
𐎲𐎠𐎧𐎫𐎼𐎡𐏁 (''Bāxtriš'')
페르시아어
باختر (''Bākhtar'')
파슈토어
بلخ (''Balkh'')
산스크리트어
बाह्लीक (''Bāhlīka'')
한자
大夏 (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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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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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56년 또는 246년~기원전 130년경까지 존속한 그리스계 인도-동방제국이다. 이 왕국의 재위 연도는 모두 ‘대략’적인 연도이다. 이는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왕들의 재위 연도를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 역사



2.1. 건국


기원전 325년부터 알렉산드로스 3세박트리아에 정착시켰던 그리스-마케도니아계 주민들은 향수병 때문에 계속 폭동을 일으키고 반란을 획책했었다. 결국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진 못했으나 이들의 후손들이 독립 왕국을 새우게 되었다.
박트리아 왕국의 초대 왕은 셀레우코스 제국의 박트리아 총독이었던 디오도토스로, 그가 바로 디오도토스 1세(BC 256/246~239)가 되었다. 그는 셀레우코스 제국의 지배권을 부정하고 자신이 왕임을 선포했다. 이 때 셀레우코스 제국의 안티오코스 1세는 이집트와의 시리아 전쟁에 휘말려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곧이어 스키타이계 다하이족의 일원인 파르니족의 아르사케스 1세가 셀레우코스 제국과 박트리아 사이의 호라산 서부 일대를 정복하고 파르티아를 건국하면서(BC 247) 박트리아의 그리스인들은 지중해 세계의 그리스인들과의 교류에 제한을 받게 되었고, 결국 이 지역에서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2.2. 발전, 왕조교체와 지배권 확립


이런 상황 속에서 디오도토스 1세의 아들인 디오도토스 2세(BC 239~230/223)가 왕위를 계승했다. 디오도토스 2세는 자신의 지배권을 확고히 했고, 파르티아 왕국의 창시자인 아르사케스 1세와 평화 조약을 맺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재위 17년만에 부하였던 에우튀데모스 1세에게 살해당했다. 이로써 디오도토스 왕조는 몰락했다.
에우튀데모스 1세(BC 230/223~200/195)는 찬탈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만회하기 위해 선정을 베풀었다. 그는 셀레우코스 제국과의 전쟁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BC 208년, 대왕 안티오코스 3세가 박트리아를 침공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그는 10,000명이 넘는 기병을 동원하고서도 안티오코스 대왕에게 대패하였으며, 안티오코스 3세의 집요한 추격을 피해 수도인 박트라로 필사적으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박트라는 요새화된 도시로서 안티오코스 3세의 포위 공격을 2년동안이나 견뎌냈다. 그 동안 나라는 말할 수도 없이 황폐화되었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빨리 이곳에서의 전쟁을 끝내고 지중해로 돌아가고 싶었던 안티오코스 3세는 에우튀데모스 1세에게 ‘반역자 디오도토스 가문을 처단한 공으로 박트리아의 제후로 인정해준다’는 교서를 주고 서로 화해하였다. 화친을 협상할 때 에우튀데모스 1세는 혼인 동맹을 제안함으로써 아들 데메트리오스가 안티오코스 3세의 딸과 결혼했고 이로써 그의 위상은 더 높아졌다. 셀레우코스 제국군이 철수하자 그는 국가의 재건을 위해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 그를 헤라클레스로 묘사한 은화가 오늘날 트란스옥시아나부하라, 호라산의 발흐 등 교역 중심지에서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그는 기원전 190년경에, 혹은 더 일찍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뒤는 아들인 데메트리오스가 계승하였다.

2.3. 에우티데모스 인도 왕국의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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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트리오스 1세(BC 205/200~180/171)는 브라흐민들의 반란으로 국력이 쇠약해진 마우리아 제국의 북서부 영토를 침공했다. 마우리아 제국군은 박트리아의 그리스-중앙아시아의 혼성 군대에 힘없이 격파당했으며, 셀레우코스 제국이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쇠락해져 반란군의 세력에게 아라코시아를 잃자 그곳으로 쳐들어가 드란기니아까지 병합하였다. 마우리아 제국은 그 후 얼마 못가 숭가 왕조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 힌두쿠시 산맥 너머에 큰 영토를 만들고 대제국을 건설한 뒤 데메트리오스 1세는 암살당하고 말았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인과 페르시아인, 인도인이 서로 융합된 세계제국의 이상을 추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메트리오스 1세 재위 시기의 은화에는 코끼리 머리 모양의 모자를 쓴 모습의 그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그러나 힌두쿠시 산맥을 경계로 북쪽의 박트리아, 남쪽의 인도 왕국은 점차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 뒤를 이은 것은 에우튀데모스 2세(BC 180)였는데, 그는 곧 암살당했고, 다음으로는 안티마코스 1세(BC 180/171~167/160)였다. 그는 반란을 일으킨 에우크라티데스에게 패배하여 죽음으로써 에우튀데모스 왕조 박트리아는 끝장이 났다. 그러나 에우튀데모스 왕조는 힌두쿠시 산맥 남쪽으로 피신하여 탁실라를 수도로 인도-그리스 왕국을 수립하게 된다.

2.4. 멸망


이리하여 에우크라티데스 왕조가 시작되었다. 에우크라티데스 1세(BC 171/167~145)는 가장 유명한 박트리아 왕 중 한 명인데, 인도로 도주한 에우튀데모스 왕조를 추격하여 힌두쿠시 산맥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여 박트라로 쫓겨나고 말았다. 일설에는 에우크라티데스 1세가 셀레우코스 제국의 황족이라는 설이 있으나 매우 의심스럽다. 그의 출신 성분이 분명치 않지만 어쨌든 확실한 것은 그가 그리스계의 혈통이 강한 집안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이란 고원의 지배자가 된 파르티아의 왕 미트리다테스 1세와 싸웠는데, 그가 승리하여 잠시동안 파르티아와 인디아 왕국을 지배하에 둔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들들과 반목했던 것 같다. 에우크라티데스 1세는 후에 에우튀데모스 왕가의 아폴로도토스에게 BC 145년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은 것은 공동왕으로 에우크라티데스 2세(BC 145~140)와 헬리오클레스(BC 145~130)였는데, 에우크라티데스 2세가 헬리오클레스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헬리오클레스는 그 후에도 10년 동안 권좌를 유지했으나, 대월지의 침입을 받아 왕좌를 빼앗김으로서 박트리아 왕국은 멸망하였다. 인도의 에우튀데모스 왕가는 계속 살아남아 AD 10년까지 권좌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3. 특징


박트리아의 면적은 광대하다. 이 나라의 토양은 올리브 재배를 제외한 모든 경작에 적합하다. 셀레우코스로부터 독립한 이곳의 그리스인들은 이곳의 풍부한 자원 덕분에 매우 강력해졌다. 이들은 이미 많은 백성들과 속국들을 차지했으며,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인접한 해안 지방까지 쳐들어갔다.

- 스트라보[1]

박트리아 왕국은 특이하게 그리스계 왕국이면서 중앙아시아에 위치해 유목민적 특색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그리스적 특색은 왕들의 이름과 주화에서 찾아볼 수 있고, 중앙아시아-인도풍과 페르시아적 특색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원래 이 지역은 셀레우코스 제국의 영토였으며, 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의 동방 순수(巡狩)로 이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한 바 있다. 또, 이 왕국은 한 왕가가 지속성을 가지고 이어내려오지 못하고 여러 왕가로 대체되면서 왕국이 유지되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그리스 박트리아 왕국의 그리스인들은 대개 박트리아 현지인들로부터 조로아스터교 풍습과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리스인들이 불교로 개종하고 간다라 미술에 기여하는 시점은 이보다 후대인 인도-그리스 왕국 이후 시기부터이다.

4. 역대 왕


1.디오도토스 1세
2.디오도토스 2세
3.에우튀데모스 1세
4.데메트리오스 1세
5.에우튀데모스 2세
6.안티마코스 1세
7.에우크라티데스 1세
8.에우크라티데스 2세-헬리오클레스
9.헬리오클레스


[1] 고대 헬레니즘 세계의 지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