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창훈

 


1. 개요
2. 경력
3. 설명
4. 던파 리그에서의 그의 입지, 그리고 업적
5. 초창기 던파리그의 가장 큰 피해자
6. 여러 사건들
6.1. 피격템 사건
6.2. 1인 시위 사건
6.3. 밸런스 패치 사건
6.4. 한놈만공익 규칙위반 적발 사건
6.5. 지연사출 귓속말 사건
6.6. 스틸 스폰서 무효화 사건
7. 게임 스타일
7.1. 1차리그
7.2. 2차리그
7.3. 3차리그
8. 은퇴의 계기
9. 이후의 행보
10. 리그 복귀?
11. 여담
11.1. 인간관계
11.2. 온게임넷 과의 관계
11.3. 네오플 과의 관계
11.4. 알려지지 않은 사실


1. 개요


던전 앤 파이터의 전 프로게이머.
1983년 생으로, 이미지 때문에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던파리그 출전 당시에도 최고연장자였다. 동년배의 던전앤파이터 프로게이머로, 정준, 정덕기, 구자철 등이 있다.
캐릭터명은 Poison. 닉의 유래는 파이널 파이트에 등장하는 포이즌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삼국지천명2 리그, 엑스틸, 액시스에서도 활동했다. 원래 키시리아 라는 닉네임을 가진 카시야스 서버의 넨마스터[1]였으나, 안톤서버로 이주 한 뒤 자신의 계정을 팔고 지인의 계정으로 독왕 '''Poison'''을 만들었다. 이후 지인의 계정이 해킹을 당한 이후로, 다시 자신의 계정을 만들어서 Poison.Jr이라는 퇴마사와 Poison.Dark라는 독왕을 다시 만들었다. 이후 지연사출 사건 때문에 던파를 완전히 접으면서 이 계정도 팔았으나, 이후 다시 계정을 만들어 전인파동권이라는 넨마스터와 멸승룡권이라는 남스트리트파이터를 키우고 있다. 소문에 남격투가를 모두 키운다는 이야기가 있다.

2. 경력


  • 1차 동서게임채널배 삼국지천명2 준우승
  • 1차 배틀탑배 삼국지천명2 우승
  • 2차 배틀탑배 삼국지천명2 2차리그 준우승
  • WCG시범경기 삼국지천명2 우승
  • 액시스 개인최강자전 우승
  • 액시스 온게임넷 팀플최강전 4위
  • 엑스틸 모두의리그 (Re:2)팀 소속,준우승
  • 기어즈오브워 대회 8강 기권
  • 1차 고래밥컵 던전 앤 파이터 리그 단체전 준우승 (굿바이 카인)
  • 2차 투니스컵 던전 앤 파이터 리그 단체전 3위 (굿바이 카인)
  • 3차 신한은행컵 던전 앤 파이터 리그 단체전 3위 (굿바이 카인)
(위 입상경력은 Re:클랜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그외에 라이브 배틀도 2회 진행했으며, 06년 부산 대회에서 우승하여 상장도 받았다(…). 또한 플레이플 무법지대 매니저도 했었다.

3. 설명


단순무식한 경기력과 과격한 세레모니로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모든 던전앤 파이터 프로게이머중 '''최고의 팬 수'''를 자랑하였으나, 역으로 불미스러운 사건들과 세레모니가 꼴보기 싫단 이유로 던전 앤 파이터 프로게이머중 '''최고의 안티 수'''를 자랑했다. 호불호가 철저하게 갈라지는 인물. 특히 던파타임과의 악연이 유명.
1차 리그 당시 독왕으로 출전해서 신성(현 마계카인) 팀을 상대로 리버스 스윕 + 올킬 + 적절한 포효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소환 버그로 인한 것 때문에 준우승에 머물게 되고 이후 해킹을 당한다. 복구따위 거의 없었기때문에 보상하나 받지 못했고 이에 분노한 백창훈이 2차리그 진행 전 네오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이로인해 해킹에 대한 개선이 어느정도 되게 되었다.
결국엔 40레벨 보정 퇴마사로 전향. 2차 리그에 출전했지만 상성상 이선호#s-3의 이동사격에 의해 꼼짝도 못하고 패배. 김병섭의 부진도 한 몫했다.
2차 리그가 끝나자 밸런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위해 네오플사를 찾아가 김대건과 1:1 만남을 가져 '''또다시 안티가 늘었다.''' 이유는 흑광검의 바닥판정이 삭제되었고, 크루세이더의 지나친 하향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P.Boogeepop과는 대차게 싸우기도 했다.
3차 리그때는 다시 독왕으로 출전. 천붕쇄팀에게 시드결정전에서 패해 8강 탈락 위기에 몰렸으나 결국 도전자 결승전 까지 올라가 방폭의 주범팀에게 패배했다. 다만 챌린지어택에서 천붕쇄팀을 상대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 팬들도 등을 돌렸고 안티도 '''다른 사람이 따라올 수 없을만큼''' 늘게되었다.
3차 리그가 끝나고 2대 프로게이머로 등록이 되었는데, 이 일로 자격이 있네 없네 하면서 이래 저래 시끄러웠다. 또한 이 일로 인해 던파리그 관계자들은 백창훈을 피하게 되었고 백창훈이 굿바이카인팀을 나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2]
4차 리그에선 시드가 있음에도 굿바이카인팀을 탈퇴, 리그에 출전하지않는다고했으나 근육곰탱이-예순네번째야와 함께 리그에 출전하려다 예선에서 탈락하였다. 이 후 5차 리그부터는 출전하지 않았다.[3]
던전 앤 파이터의 사냥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오로지 결투만 즐겼고, 레벨업을 하는 것은, 절친한 친구였던 '티파.'나, 다른 친구들에게 쩔을 받아서 키웠다. 하지만 결투 자체는 매우 소질이 있어서, 그가 키웠던 캐릭터들 중에서 지존2를 찍지 못한 캐릭터가 없었으며, 모두 승률이 80%를 넘었다.
리그 초창기부터 다른 선수들을 다 묻어버릴만큼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어 알려진 선수였기 때문에(덕분에 1차리그에서 우승했던 야화는 알려지기는 커녕 오히려 완벽하게 묻혀버리고 말았다) 여러가지 일화나 사건도 많았다.
2009년 5월 11일자로 은퇴했다.

4. 던파 리그에서의 그의 입지, 그리고 업적


참으로 공헌한 바에 비해서 정말 낮은 평가를 받은 선수로 볼 수 있다. 그에 대해서 한 줄로 요약한다면 '''그가 없었다면 현재의 던파리그는 없었다.'''
최소한 1차리그 예선전부터, 그는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다른 선수들과는 달려드는 자세부터가 달랐다. '''비 네임드'''(최소한 1차리그 이전까지 그를 아는 사람들은 없었다. 오히려 같은 팀원이었던 정덕기가 훨씬 유명했다), 그리고 '''직장인'''에, '''비수도권 거주자'''(부산거주자이며, 2차리그 후반부터는 학업조차 포기하고 억지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정도였다)라는 프로게이머로써는 최악의 핸디캡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던파리그에서 흥행 대진을 이끌어 내며, 최고의 인기 게이머가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것들이 모두 '''계획적'''이었다는 것이다. 팀명부터가 최고 인기팀을 겨냥한 팀명이었으며, 인터뷰도 혼자서 도발적이었다[4]. 그리고 이후의 세레머니들을 보았을 때, 다분히 계획적으로 경기 내/외적인 부분을 준비하였다. 이러한 치밀한 계획을 기반으로 한 정말 뜬금없는 변수로 인해 온게임넷은 '''마계카인'''을 띄워주려던 계획을 전면 수정하게 된다. 그는 각종 세레머니를 WWE를 보고 준비했다고 하며, 초창기의 목긋기 세레머니는 언더테이커를 모방한 것이다. 철저하게 악역을 자처한 것이다. 이후에 각종 필수요소들을 적절하게 조합하면서, 독자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계획들이 치밀해도 e스포츠는 스포츠이기에 이기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 그는 최소한 1차리그까지는 '''최강의 플레이어'''였다. 독왕이 사기인 면은 분명하게 존재하였으나, 같은 독왕이자 최고의 독왕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며 커리어조차 비교가 되지도 않았던 정준차황전을 개발살내었으며, 모든 서버 통틀어 최강이라고 알려졌던 장웅조차 거의 압도했다.[5] 그것도 혼자서. 특히 같은 독왕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강함을 보여줬는데, 경기중에 HP가 깎인 것도 vs장웅에서 깎인 것이지, vs독왕에게는 거의 퍼펙트로 승리했다.[6] 다만 팀원들이 너무나도 빈약했으며(엘레멘탈 마스터는 그렇다 쳐도 런처…) 이는 두고두고 발목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결승전의 그 말도 안되는 재경기의 향연 덕분에, 그는 당연히 가져갔어야 했던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2차 리그에서는 1차 리그의 그 인기에 대한 보상으로 말도 안되는 시드제가 생겨날 정도였고, 이것은 초창기 리거들이 대부분 사라진 6차 리그가 되어서야 사라졌다.
2차 리그에서는 적절한 마이크웤과 관객의 폭소와 호응을 자아내는 동작으로 리그의 흥행에 큰 힘이 되었으며, 이는 1차 리그 당시 우승한 야화팀을 말 그대로 묻어버릴 정도였다. 2차 리그에서 야화 팀이 설 자리는 사실상 없었다고 봐도 된다. 또한, 리그 중간에 일본 던파를 디스하는 발언을 하여 이는 나중에 한일 던파 대결의 시발점이 되었다.
1차 리그 직후의 해킹 사건 때문에 2차 리그때는 급조한 보정 퇴마사로 경기에 임했는데,승률 92%의 괴악한 일반결투장 승률을 보여줬으나 루리웹에 올린 올킬 영상을 보고 당시 밸런스 담당자였던 김대건이 하향시켜버리는 바람에, 경기력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결국 마계카인 팀에 3:0으로 실신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때도 다른 팀원 2명이 삽을 퍼는 가운데서 유일하게 제 역할을 해냈다.
2차리그 이후에 던파 리그가 신한은행 스폰서를 따내며 장기 리그가 되면서, 그의 발언권이 무척이나 높아졌다. 그는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서 했으며, 그가 진행했던 라이브 배틀이 가장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단독으로 라이브 배틀을 진행하기도 했다.
3차 리그에는 다시 독왕으로 돌아왔는데, 독왕 중에서는 정시혁과 거의 대등하거나 앞서는 실력을 보여줌으로써 변함없는 실력을 과시했으나, 직장생활로 인한 연습량 부족이 치명적으로 작용하여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특유의 마이크웍이나 흥행력은 여전했으나, '''지연사출 사건으로 인하여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으며 몰락했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이 일구어 놓았던 팬들과 리그의 흥행력은 비슷한 이미지였던 정시혁, 해설자로 전향한 정준, 그리고 같은 팀원이자 DC의 지지를 받고있었던 정덕기가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이후 리그의 인기는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실력없이 입만 살아있었던 선수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데, 그의 전성기와 함께한 플레이어라면 절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온갖 새로운 전술을 제시함으로써 결투장의 패러다임을 바꿔 버렸으며, 그가 잡은 캐릭터 중에 승률이 80% 밑으로 떨어지는 캐릭터는 없다. 아니, 심지어는 90%가 넘는 캐릭터가 셋이나 될 정도다. 그리고 특히나 상대방에 대한 전력분석에 뛰어났는데, 통결이 없었던 과거에는 타 서버에 캐릭터를 생성하여 스토킹을 하다시피해서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대응하였다. 이로써 단순 컨트롤과 캐릭빨로 승부하던 던파 결장에, 전략전술을 도입한 최초의 게이머로 볼 수 있다.
또한, 다른게이머들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인생을 걸었으며, 던파리그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고, 아직까지도 바뀌지 않고 있다. 덧붙여서, 던파리그가 흥행하자, 스타리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리그에서 아래와 같은 시스템이 모두 도입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에 온게임넷에서 방송하기 시작한 TEKKEN BUSTERS가 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그는 온게임넷에 큰 족적을 남겼다.
- 리그에서 세레머니가 필수요소가 되어있고, 선수들의 마이크웤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 정기적인 국제대항전이 열린다.
- 던파리그의 예능화의 주범이다.
- 이후 많은 선수들이 그를 모방하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시혁이 있으며, 그의 평소 마인드를 자신의 것으로 삼아 행동하는 유저로는 박진혁이 있다.
- 상대선수를 디스하더라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가 되었다.
- 한동안 인기선수를 상위권에 유지하기 위한 시드제가 유지되었다.
그가 사라진 이후, 동년배의 게이머들이 대부분 게임을 접거나 해설자로 전향되었으며, 선수연령층이 급격하게 내려가면서, 던파리그는 경기력은 상승했으나 그 특유의 예능성에 대해서는 기나긴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데일리e스포츠의 던파리그PD의 인터뷰에 가장 많이 언급되었으며, 그가 없어져서 많이 아쉽다는 내용이나, 초창기 선수들에게 미안하다는 언급으로 보아 온게임넷에서도 그의 불명예 은퇴는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했다. 또한, 개인 블로그나 사적인 만남의 자리에서 리그에 대한 우려나 조언을 가장 많이 한 선수이기도 하다.

5. 초창기 던파리그의 가장 큰 피해자


지연사출 사건 때문에 묻힌 감이 있는데, 그는 던파리그 초창기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1. 카인을 꺾겠다는 포부를 밝힌 그 하나만으로 그는 모든 던파 유저들의 적이 되었다.
2. 결승전 1주 전에 소환 버그를 알았고 그걸 고쳐달라고 그렇게 하소연을 했는데 무시했고, 결국 이때문에 패배했다. 그리고 결승전 이후에 패치가 되었다.
3. 1차 리그 결승 다음날에 해킹을 당해, 영구정지가 되었다. 복구가 전혀 되지 않았기 때문에 2차 리그 예선장에서 1인 시위를 할 정도였고, 이 흔적은 2007년 이글루스 최다 댓글 5위에 당당하게 랭크되어 있다. 이때 입막음용으로 받은 세라가 있다고 하는데, 그는 이것을 기반으로 거지 퇴마사를 급조했다.
4. 저때 키운 퇴마사 얼마나 거지냐면, 아무 의미도 없는 45레벨 보정 퇴마사였으며(당시 유행하던 보정 레벨은 40이다), 경기마다 돈이 없어 1일짜리 아바타를 급조해서 경기에 임할 정도였다. 이쯤되면 안습이다. 게다가, 괜히 루리웹에 동영상을 올려, 김대건과 김태집이 그걸 보고 열정의 챠크라를 하향해 버렸다… 그것도 리그 중에. 당시의 밸런스는 정말 개판이었고(1차리그보다 더욱) 그는 최대의 피해자였다.
5. 심지어는 라이브 배틀때도, 거지 독왕을 만들었는데, 그가 입었던 유물 방어구는 그의 출연료로 그때 구매한 것이다. 던파 결덕후들이 당시 사냥으로 부유한 계층이 대부분이었다는걸 생각하면, 그는 정말 가난하게 게임을 했다. 당시 개나소나 입고 다녔던 성스러운 이슈타르 유물 셋트도 그는 교청은[7]의 지원을 받아 겨우 마련 할 정도였다.
6. 위에서 언급했듯이 초창기 던파리그의 가장 큰 공헌자임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지만, 그에 비해서 그가 받은 상금은 최하위권이다. 고생만 하고 얻은 것이 없다.
7. 그가 떠난 이후에야 팬 카페가 활성화 되었기 때문에 그는 팬 카페조차 없다. 사실, 초창기 정덕기 선수의 팬 카페의 50%는 백창훈의 팬이었다. 지금은 잊혀졌지만…
8. 그당시에는 결투 전적만으로 예선 대상자를 선발했기 때문에, 던파리그 내 유일한 직장인이었던 그는 결투 전적을 쌓을 시간이 없어 개인전에는 단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9. 그리고 그가 그나마 선수들을 위해 추진하던 스폰서도 망해버렸다.
이쯤되면 안습이다…

6. 여러 사건들



6.1. 피격템 사건


고래밥배 1차 리그 당시 피격템 효과가 상당히 오래갔던지라 문제가 많았는데, 4강 신성전 도저히 2독왕 1스커의 해답을 못찾은 백창훈이 같은 굿바이 카인의 팀원인 정덕기에게 찰리의 목걸이 착용을 권하게 되고 정덕기는 찰리의 목걸이를 착용했다. 이때 찰리의 목걸이를 착용하라고 시킨 이유는, 경기 도중에 찰리가 나오면 도발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소환 버그는 이당시에는 알지 못했다고 한다. 문제는 3세트 정덕기가 죽으면서 찰리의 옵션이 발동하면서 불리한 상황에 재경기를 치르게 된 것. [8]
방송에선 편집됐지만, 당시 리그를 직접 보러 온 사람들에게 정덕기와 같이 까였으며 이를 들은 던파타임에서도 원래 카인팀이 결승전에 가야했다며 도발빨, 실력없다며 신나게 굿바이카인을 까댔지만 '''사실 2독왕 1보정스커가 1독왕 1블래 1아크 조합보다 훨씬 강하다. 게다가 잘 보면 알겠지만 카인팀도 피격템을 덕지덕지 바른 상태였다.''' 만약에 피격템을 바르지 않았다면, 백창훈에게 올킬을 당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장면이 여러번 있었다.
정작 웃긴건, 4강전에서 백창훈은 피격템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착용하려고 했으나 방어력 하락 등의 디메리트가 너무 심해서(피격템은 대부분 천임을 기억하자)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 후 결승전에서도 유나영의 소환물 버그로 재경기를 무려 3번이나 했는데 어째서인지 '''이야기가 안나왔다.''' 백창훈이 패배한 요인을 말하길 재경기로 인해 페이스가 흐트러져버린 것으로 결국 준우승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당시 네오플에게 각종 물품으로 입막음을 당하게 되지만,이를 무시했고, 결국 2차리그전 1인시위 사건으로 네오플과는 하늘아래 공존할수 없는 앙숙이 되어버린다.

6.2. 1인 시위 사건


결승전의 재경기연타로 인한 통한의 패배 이후, 대략 3~7일 후에 해킹을 당해 모든것을 잃었다. 애초에 자기계정도 아니었지만, 캐릭터 육성과 장비는 자신의 힘으로 키워낸 것이기 때문에, 당장 다음 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그로서는 치명타를 입은 셈이었다.
그당시 독왕은 보정을 포기하고, 최대한 레벨이 높아야 되는데(혈독, 천라 등 상태이상 기술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자) 캐릭터 육성을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리그예선이 두달도 안남았는데…
결국 독왕을 포기하고 보정 캐릭터를 새로 하나 만드는 수 밖에 없었다. 스트라이커를 하자니 장웅이나 김현도보다 실력이 떨어지고, 넨마스터는 레벨이 높아야 하는 캐릭터이고. 결국 보정용으로 선택한게 퇴마사이다. 그는 이전까지 단 한번도 프리스트 계열을 플레이 한 적이 없었고, 그저 1차리그 결승전에서 장석훈의 경기영상을 보고 따라 한것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퇴마사의 장비가 모든 던파 아이템중 가장 가격이 저렴했다는것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백창훈은 2차리그 경기 내내 나눠주는 세라쿠폰으로 1일 아바타를 사서 입었다.
이와는 별개로, 이글루스에서 운영하던 블로그에서 여론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사이버수사대 등에 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네오플 측에서 증거자료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당시에 네오플의 보안 대책이나 복구 대책은 그야말로 막장중의 개막장이 아닐수 없었는데, 절대 캐릭터 복구를 해주지 않는게 기본 정책이었다. 그 흔한 고블린 패드도 없었다. OTP는 말할것도 없었고. 이에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서 여론을 모았는데, 무려 2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면서, 그는 1인 시위를 기획하게 되었다.
결국 2차 리그 예선장에서 1인 시위를 하였고, 그는 네오플 직원들에게 끌려나갔다. 하지만 1차 리그때 워낙 주목을 많이 받은 선수라 내보낼 수도 없었고, 백창훈이 대동하고 온 인원 또한 10명이 넘었으며, 현장에서의 즉석 호응도 엄청났다. 결국에는 나중에 다시 돌아와서 서명 운동을 하게 된다. 이 서명은 네오플에 전달되었으며, 네오플에서 보안에 대해서 힘을 쏟는 계기가 된다(실제로 던파조선 등에서 인터뷰까지 했다).
이때 네오플 직원과의 1:1 면담에서 뭔가 얻은것이 있다고 하나, 본인이 함구하고 있어서 알 수 없다.

6.3. 밸런스 패치 사건


2차리그때 밸런스에 대해서 심각하게 문제가 되자(리그 중에 밸런스 패치를 단행했으며, 이때문에 소환사와 엘레멘탈마스터가 그야말로 망했다), 네오플은 선수들로 구성된 밸런스 테스트를 시행하였다. 당연하게도(?)백창훈이 여기에 불려 갔는데, 문제는 그가 독왕 테스터로 간게 아니라, 프리스트 직업군 테스터로 갔다는 것에 있었다(정확하게는 퇴마사).
그는 예전부터 블로그 등지에서 크루세이더와 배틀메이지(지연사출에 한정했으나 이는 다른 비극을 불러오고 말았다)에 대한 지속적인 하향론을 주장해왔기 때문에, 3차리그 직전에 크루 대폭하향에 대한 주범으로 몰리고 말았다. 더욱이 그가 블로그에서 크루하향은 당연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던파타임에 거주하던 P.Boogeepop(당시 시로코 크루1위)와 분쟁이 발생했다.
이후 서로사과하고 끝냈지만, 이때부터 서서히 이미지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이때 밸런스테스트에서 테스터들의 의견이 받아진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관하기 때문에, 블로그에서 허세만 안부렸다면 욕먹을일이 없었다는게 주요 의견.
그당시까지만 해도, 네오플에 버그를 가장 많이 제보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백창훈이었다(당한게 있으니 이가 갈리겠지…).

6.4. 한놈만공익 규칙위반 적발 사건


리그의 규정상, 아바타는 반드시 '상급 아바타'만 사용 가능했으며, 이벤트 아바타는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한놈만공익의 팀원 모두가 피부 아바타를 '월하 아바타'를 착용하고 있었다. 2경기 패배 이후, 백창훈이 이것을 발견해서 문제제기를 했는데, 방송에서는 문제제기 장면이 편집되었고, 문제제기는 받아들여졌으나 2경기 승패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3경기때는 한놈만공익 팀은 피부아바타 여분이 없어서 피부아바타를 빼고 경기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는 백창훈에게 거의 올킬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6.5. 지연사출 귓속말 사건


모든 발단은, 천붕쇄팀과 굿바이카인 팀의 대화에서 시작되었다.
안그래도 챌린지 진출전에서 무력하게 패배했던 굿바이 카인이었고, 천붕쇄 측 선수들은 악의가 전혀 없이, 전력을 다하겠다는 의미에서, "이기는 경기를 하겠다"라고 이야기를 했다. 문제는, 이 발언을, 마치 챌린지 진출전에서 봐주면서 경기를 했다고 백창훈이 자기 마음대로 오해를 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전부터 백창훈은 각종 커뮤니티에서 지연사출 테크닉을 버그로 규정하는 등 가장 열성적으로 지연사출을 까대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평소에 받았던 수많은 악플로 인해 블로그도 폐쇄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신한은행배 3차 리그 챌린지 어택 천붕쇄팀과 경기가 있던 날 백창훈은 회사 업무 때문에 경기 시작 30분 전(원래 1시간 전에 도착해야 한다)에 리그장에 도착했는데, 악플과 악성 귓속말 때문에 여자친구를 가급적 방송에 등장시키지 않으려고 했었던 백창훈의 의견을 무시하고, PD와 정덕기가 이미 세레머니를 구상 해 놓은 상태였다. 자신과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마음대로 결정한 사항에 대해서 분노했고, 이와 같은 내용 때문에 의견 마찰을 빚었으며, 결국 세레머니는 대폭 수정되어, 매우 어색한 세레머니가 되었다. 엎친데 덮친격이 되면서, 그의 인내력은 이미 한계를 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신철우와의 1경기 중 기상사출을 이용해서 압도적인 승리를 취하자 귓속말로 신철우에게 '''지연사출 쓰지마라. 죽인다.'''[9] 라는 내용의 귓속말을 보냈고 여기에 쫄은 신철우가 컨디션이 저하돼서 황룡을 쓰고 점프하는 등 제대로 된 경기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경기력이 대폭 저하, 여기에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분노의 에너지로 먹고 사는 백창훈이 경기력이 급상승하면서 천붕쇄는 패배하고 말았다.
경기 직후에 백창훈은 자기가 저질러놓은 행동을 뒤늦게야 깨닫고 주저앉았으며, 영문도 모르는 다른 팀원들과 천붕쇄의 다른 팀원들 또한 영문을 모르다가, PD가 급히 소집을 해서 백스테이지로 모였다. 여기서 경기 관련자들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고, 신철우와 박정완은 눈물까지 흘리며 분노했다. 이때 백창훈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무릎까지 꿇어가는 대굴욕을 감수하며 상대팀에게 사과하였고, 자진하차하려고 하였으나, 자진하차만은 다른 방송관계자들이 극구 만류하여 경고에 그치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천붕쇄는 백창훈의 사과를 받아 들이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좋았으나…
이 사건은 신철우 선수의 뒤에있던 방폭의 주범 길드원, 특히 신철우의 스승 격인 신현수에게 목격 돼 던전 앤 파이터 갤러리, 던파타임, 던파조선 등 던전 앤 파이터 팬페이지로 급속도로 퍼져나갔으며 신나게 까였다. 천붕쇄 팀원들도 모두 홈페이지에 본 사태를 적극 홍보하며 재경기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며, 심지어는 백창훈에게까지 재경기를 요구하도록 요청해서 본인도 블로그를 다시 재오픈하고 사과문을 올리는 동시에 재경기를 요청하도록 하였다. 조금만 주의했더라면 조용히 넘어 갈 수도 있었으나, 이로 인하여 초창기 던파리그를 있게끔 했었던 비운의 스타는 더이상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백창훈을 옹호했던 던전 앤 파이터 갤러리에서는 당시 귓속말이 'ㄷ돌았냐? 지연사출 쓰지마라'로 잘못 된 내용으로 퍼졌고 ㄷ돌았냐? **하지마라 란 대화가 유행 할 정도로, 백창훈을 놀림거리로 삼곤 했다.
뒤늦게야 온게임넷이 공식 성명을 발표하였고, 천붕쇄 팀원들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나, 이미 백창훈은 가루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재경기는 원래부터 이루어 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후 한주 휴식을 하면서 던파 뒷담화를 방송하였고, 이중 절반을 어떻게든 백창훈에게 면죄부를 주기위한 내용으로 편성 할 정도로 어떻게든 잡으려고 했으나, 이미 가루가 되어버린 백창훈이 재기하기에는 무리였다.
이후 방폭의 주범팀과의 경기에서, 팀원들의 삽질(특히 정덕기)과, 다소 무력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어쨌든 명경기는 만들어 냈으나, 방폭의 우승의 길잡이가 되고 말았다.
4차 리그부터 출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팀에서 이탈했으며(이후 굿바이카인은 몰락의 일로를 걷게 된다), 방송 관계자들이 복귀를 종용했으나 듣지 않았다. 그리고 프로게이머 자격증이 나왔으나, 곧바로 은퇴 신청을 하여 은퇴 처리 되었다.

6.6. 스틸 스폰서 무효화 사건


백창훈이 은퇴 후 던갤닉 레드나이트와 함께 던파리그 선수들에게 개인 스폰서 및 장비 지원을 해 주기 위해 앱솔루트 코리아와 개인적으로 접촉하여, 그동안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고 팀도 존재하지 않았던 선수들을 위하여 야심차게 준비했던 프로젝트였으나, 선수들의 무관심으로 인하여 하늘로 날아간 희대의 병크 사건.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1. 던갤닉 '레드나이트'가 백창훈을 위해 앱솔루트코리아와 접촉하여 개인 스폰서를 붙여주려고 했음. 앱솔루트코리아는 백창훈의 인기도를 확인하고 단번에 승낙.
2. 그러나 지연사출 사건으로 인하여 백창훈이 은퇴, 스폰서건이 공중증발의 위기에 처함. 레드나이트가 백창훈에게 이 내용을 이야기 함.
3. 백창훈은 스폰서를 다른 선수들에게 돌려주자고 하였으며, 레드나이트는 이 건을 진행하여, 선수들과 앱솔루트코리아 관계자가 만나는 자리까지 마련함.
4. 이자리에서 장웅, 박정완, 우호택은 매우 큰 관심을 보였으며, 당장 추진하자고 이야기 하였으나, 정준, 조승호, 정덕기는 "우리는 이미 리얼포스 쓰는데 뭔상관?ㅋ"이라며 희대의 병크발언을 하며 퇴짜를 놓았으며 김현도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으므로, 앱솔루트 코리아 관계자가 대 실망을 하여 스폰서 지원건을 없던일로 돌려버림.
5. 던파리그PD에게 로고라도 박아줄 것을 건의하였으나, PD가 퇴짜를 놓음.
6. 스폰서 건 자체가 하늘로 증발하였으며, 레드나이트는 이 일로 인하여 회사에서 짤림.
7. 레드나이트는 이 이후로 던파리그 선수들을 이를갈고 증오를 했으며, "이 건만 성사되었으면 프로팀이 생겼을 것인데 멍청하고 앞을 내다볼줄 모르는 놈들이 다 망쳤다."라고 이야기를 하였음.
8. 백창훈은 이후에 오수민과 손을 잡아 "플레이플 무법지대"를 진행하였으나, 이 또한 무관심으로 인하여 개박살 나면서, 던파계와 영원히 인연을 끊게 되었다.
9. 이후 스폰서는, 제넥스의 후원을 따낸 박진혁의 손에서 이루어 졌다.

7. 게임 스타일


기본적으로 그의 높은 경기력의 원동력은 두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투쟁심'''과 '''자존심'''.
백창훈은 이 두가지를 경기력으로 바꾸는 힘을 지녔었다. 사실 기본기 자체는 결코 탄탄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콤보도 단순하고(본인은 가장 효율적인 콤보를 구사한다고 했다), 실수도 많았다. 하지만 그가 승리한 경기는 이 두 단어로 모두 요약 가능하며, 뒤지고 있었던 경기도 극적으로 역전하는 역전극을 많이 보여주었다. 유독 그가 속한 굿바이카인 팀이 셧아웃이 대부분이었던 초창기리그에서 명경기를 이끌어냈던 원인중 하나였다. 한놈만공익과의 경기에서도 키보드이상으로 2경기를 그냥 내주자, 3경기에서 오히려 올킬을 하려고 이를 갈았던 장면을 생각해보자.
비록 지연사출 사건으로 인해 저 두가지 심리가 선을 넘어버렸지만 이것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그 내용은 후술.
하지만 위 지연사출사건이나 고래밥리그 결승에서도 보듯이 결코 멘탈이 좋은편이 아니며, 동등한 조건에서는 투지를 이용해서 명경기를 만들어 내고, 우위인 상황에서는 압도적인 경기를 보이지만, 불리한 상황에서는 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로 그가 가진 투지를 능가하는 게이머는 여태까지 단 한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7.1. 1차리그


당시 존재하던 결투장의 룰을 모두 무시하는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당시 결투장에서 암묵적으로 존재하던 룰중 가장 유명한 것이 '피격템 사용 금지'였다. 하지만 그는 첫경기부터 화속 피격템을 착용하였다. 또한, 다른 독왕과는 차별화된 플레이를 보여 주었는데, '스탠딩 크레이지발칸'을 실전에서 유일하게 활용했으며, 당시 독왕들은 모두 '통파'를 착용했으나 혼자서만 '클로'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히든스팅, 정크스핀 등, 당시 독왕의 스킬의 활용법을 고안하였다.
주로 거너에게 약했으며, 격투가에게는, 특히 스트라이커와 같은 독왕에게는 절대 지지 않을 정도의 강력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초붕(박정완)은 그를 '독왕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플레이어'로 평가했다.

7.2. 2차리그


해킹을 당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45레벨의 퇴마사를 급조하여 리그에 출전했다. 열정의 챠크라가 하향당하기 전까지, 결투장에서 가히 악마와 같은 플레이를 선보였다(무한콤보, 현무 한방패턴 등). 하지만 이후 루리웹에 올린 결투장 영상을 보고, 김대건이 열정의챠크라를 하향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약한 대 거너전이 더욱 취약해졌고, 결국 마계카인의 벽을 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때 패배한 것은, 팀원들 또한 너무 약했기 때문이며(런쳐, 엘마가
당시 거의 쓰레기나 다름없이 하향되었다), 그는 여전히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7.3. 3차리그


다시 독왕으로 돌아왔으며, 연습량 부족으로 인하여 독보적인 위력은 선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항상 1킬은 보장했으며, '귓말사건'만 없었다면 여전히 최고의 독왕자리를 지켰다. 천라정크를 즐겨 사용했으며, 여전히 클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나, 당시 stuck의 비중이 몹시 컸었던 만큼, 콤보에 취약점을 드러내었다.
철저하게 한번에 많은 데미지를 주는 플레이를 했으나, 그것이 실패하면 상대방에게 전혀 데미지를 입히지 못하고 지는 모습도 연출되었다(vs한놈만공익 2세트).

8. 은퇴의 계기


1차리그 결승전의 어처구니 없는 3연속 재경기, 2차리그에서의 밸런스의 불합리함으로 인하여, 3차리그가 시작되기 전 부터 은퇴를 고려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전적'으로, 2차리그가 시작되기 전까지 그는 생성한지 1년도 되지 않는 캐릭터로 순식간에 12000승 1100패를 기록할 정도로 게임에 몰입했으나, 2차리그가 종료된 이후, 공백기 동안 그의 전적은 2000전이 채 되지 못했다. 또한, 그가 2차리그와 3차리그때 착용했던 아바타는 모두 1일짜리 기간제였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3차리그 초창기에 여자친구를 만남으로서 다시 불을 지피는가 싶었지만, 귓말사건이 결정적인 치명타로 작용하며, 결국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방폭의 주범 팀에게 패배할때 얼굴을 파묻은채 고개를 들지 못했던 모습에서, 스스로도 여기가 마지막인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9. 이후의 행보


'귓말사건'의 당사자들(초붕,로사페티다,폭주의시)와는 적극적인 노력에 의해 다시 예전처럼 친한 사이가 되었지만, 쏟아지는 악플로 인하여 극심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으며, 던파 프로게이머들을 위해 추진하던 '개인 스폰서'건이 물거품으로 돌아갔고, '플레이플 리그'가 실패하면서, 던전 앤 파이터와 관련된 모든것에서 손을 떼고, 일부 친한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과의 인연또한 모두 끊은 채 쓸슬히 고향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며, 간혹 던파리그에 대해서 우려하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기도 한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계템 악용사건'을 처음으로 제보한 사람이기도 하며, 이에 연루된 선수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극렬하게 비난했다.
남격투가가 업데이트 된 현재는 남격투가 전체를 플레이하고 있다.

10. 리그 복귀?


온게임넷에서 기획된 팬투표 방송인 '''다시보자 던파'''에서, 맨 마지막에 세레머니 최우수로 무려 3년만에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매우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이후 여넨마와 남스파를 플레이하고 있으며, 개인 블로그에 따르면, 승률이 매우 높다. 최근 던파 공정한 결투장 PC방 이벤트 부산지역 예선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회사일로 인하여 한경기만 하고 모습을 감추었다. 이후, 광주지역 예선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다른 예선 참가자들을 압도하며 가볍게 본선진출자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본선진출 유일한 남격투가. 현장에서 지켜본 다른 유저들의 언급에 따르면, 현재까지 본 남스파중 가장 뛰어나다는 것.
하지만 이것으로는 리그 복귀를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일단 은퇴 이후 2년간 대회 출전 금지 기간은 이미 한참전에 지나긴 했으나, 그는 이미 직장인이므로 리그에 출전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재미로 출전하는 듯.

11. 여담



11.1. 인간관계


던갤[10]유저 사이좋게 지냈으나[11] '귓말사건'이 생긴뒤 일부 던갤러들이 엄청나게 까는바람에 던갤을 접었다. 천붕쇄와는 '귓말사건'으로 철천지 원수가 될 뻔 했으나, 그가 남자답게 용서를 구하였기 때문에 지금은 친분이 가장 좋다고 한다. 나이또래의 선수들과 어울렸으며, 내총은K-1, 티파., 쏴죽일껄`, 관훈 등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덤으로,

11.2. 온게임넷 과의 관계


알려진 것과는 달리, 정말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온게임넷이 선수에게 세레머니를 지시하는 등의 행위나, 선수들을 부려먹는 행위를 강하게 비난했으며, 애당초부터 PD가 띄워주고 싶어했던 인물이 아니었으므로[12], 당연히 좋아 할 리가 없었지만, 인기가 많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띄워 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지연사출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에, 온게임넷과 백창훈이 싸우는 것을 목격한 사람도 있다(세레머니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온게임넷은 그가 은퇴한다고 발언했을 때에는 백스테이지에서 은퇴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를 설득하기도 했다. 만약에 이때 그가 설득을 받아들였으면 4차리그의 스타인 우호택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온게임넷PD의 인터뷰에서도 가장 아까운 선수로 백창훈을 꼽았으니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11.3. 네오플 과의 관계


익히 알려진대로 하늘아래 공존할 수 없는 원수지간이다. 1차리그 결승전부터 재경기 사건 때문에 가뜩이나 불신이 가득했는데, 이후 며칠내로 해킹이 터져버리면서 백창훈은 선수로서는 할 수 있는 초강경 수단인 1인 시위를 기어코 하고 말았다. 네오플 측과 거의 현피뜰 기세였다고 한다. 다행히도 경기 자체는 방해를 하지 않았고, 네오플 측에서 대량의 뇌물(소문으로는 거의 십만 단위의 세라라고 한다)을 증여하여 사건을 무마시켰다는 소문이 있다.

11.4. 알려지지 않은 사실


  1. 군내 인트라넷 비디오게임 동호회인 공군 Video Gamer Forum의 초대 동호회장이다. 이것은 VGF의 유입 인구 중에서 던갤러가 상당수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2. 그가 세레머니를 처음으로 한 계기는, '긴장을 떨쳐버리기 위해서'이다.
[1] 리그를 통해 백창훈을 알게 된 유저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나, 그의 본캐릭터는 독왕이 아니라 넨마스터이다. 초창기 카시야스 3대 넨마스터 중 한명이었을 정도로 실력 또한 훌륭했다.[2] 던파리그 관계자들과 팀원들은 안티를 무릎쓰고 다시 리그에 출전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백창훈 본인이 거부하였다. 이미 3차리그 시작전부터 은퇴를 결심했기 때문. 이에대한 내용은 아래에 따로 설명.[3] 근육곰탱이의 이야기로는, 억지로 끌려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4] 같은 팀원이었던 정덕기와 김병섭은 그저 다른 선수들과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5] 그당시 그는 vs스트라이커전 연습을 현재 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불리는 김현도와 연습했으며, 김현도에게도 거의 지지 않았다![6] 마계카인이 8강전에 상대하였던 카시야스 서버 팀이 1독왕 2스트라이커였음에도 불구하고 마계카인에게 순식간에 박살난 것을 생각하면…[7] 겟앰프드의 스킨 메이커로 유명한 환타가 이 사람이다.[8] 소환물이 사라지지 않고 다음경기에서 계속 존재하는 버그. 특히 소환사의 버그가 심각했다. 지금은 수정 됨.[9] 백창훈은 당시 배틀메이지의 사출 테크닉을 버그로 폄하할 정도로 혐오하던 상태였다.[10] 던갤이 생성되기 전인 온갤 시절 유저들과 친한바람에 던갤에 유입되었다. 그리고 왕성한 활동… 이렇게 유입된 결덕후들이 상당수 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아직도 활동 중…[11] 친목질이 왕성한 던갤IRC에 접속하면 매일 백창훈을 볼 수 있었다. 던갤을 접고 난 뒤에도 한동안 IRC에선 볼 수 있었다.[12] 온게임넷이 외모지상주의자들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온게임넷이 굿바이카인 팀이 은퇴할 때와, 마계카인이 은퇴할때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