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초월

 

[image]
白初月
1878년 2월 17일 ~ 1944년 6월 29일(향년 66세)
1. 개요
2. 일생
3. 미디어
4. 여담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스님. 본관은 수원(水原)[1]#, 초월은 법호이며, 본명은 백인영(白寅榮)이다. 법명은 동조(東照)이다. 아명은 백학명(白學明), 족보명은 백도수(白道洙)이며 그 밖에 이명으로 백최승(白最勝)·백의수(白義洙)를 사용했다. 불교계에서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2. 일생


백초월은 1878년 2월 17일 경상남도 고성군 영오면 성곡리 금산마을#에서 아버지 백하진(白河鎭)과 어머니 김해 김씨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890년 출가하여 지리산 영원사라는 사찰에서 스님이 되었는데, 30대의 나이에 고승이 될 정도로 뛰어났다. 그러던 중 지리산 부근의 의병 활동을 목격하고 본격적으로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한다.
1919년 3.1운동 당시 불교계를 이끌던 한용운백용성이 체포되자, 초월은 그들의 뒤를 이어서 「승려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의용승군제를 추진했다. 또 중앙학림(현재 동국대학교) 안에 한국민단 본부를 설치하여 독립군임시정부를 위한 군자금을 모았고, 지하신문 〈혁신공보〉를 발행하였다. 또한 단군 건국일을 기념하고 3.1운동 1주년 만세운동, 일본의회 독립청원 등의 활동도 펼쳤다. 그리하여 1919년과 1920년에 구속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한편, 초월은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항일 이념을 알렸는데, 특히 새내기 승려들의 항일의식 고취에 노력했다. 그는 '''일심(一心)'''이라는 사상을 주장했는데, 이것은 모두의 마음을 합쳐 독립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독립운동 사상인 '일심교'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일심회(一心會)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1930년대에 들어서서 일제가 중일전쟁으로 침략을 시도하자, 초월은 만주행 군용열차에 '대한독립만세'라고 써넣는 거사를 주도했다. 이 일로 그와 일심회 회원들들이 체포 및 수감되었다. 그럼에도 출옥 후 군자금 모집에 힘쓰다가 다시 투옥되어 1944년 6월 29일 옥중 순국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용운 선생도 같은 날짜에 순국하였다고 한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3. 미디어


다음에서 초월의 이야기를 주제로 웹툰이 연재되었고 5화로 완결되었다. 그림은 이현세, 글은 이상훈
초월(初月)
오마이뉴스에서도 연재를 했고 30화로 완결되었다.
독립운동가 백초월스님의 삶

4. 여담


  • 위 웹툰이 연재가 된 계기는 은평구 진관동에 있는 "진관사''라는 절이 있는데, 보수공사중에 그때 당시에 만들어진 '태극기'와, 신채호 선생이 발간한 '신대한', 독립신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 등 당시 독립운동에 관련된 물품들이 발견 되어서 잊혀졌던 백초월 선생의 업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서 다음웹툰 "초월"은 은평구에서 이현세 작가에게 부탁해 만들어진 브랜드 웹툰이다.

[1] 26세손 수(洙) 항렬